2009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한 고정선 여사
코미디언 이봉원의 뒤에는 언제나 어머니 고정선 여사가 있었다. 가난 속에서 자식들을 위해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생계를 도맡았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직과 성실을 가르쳐주었다. 2009년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고정선 여사와 아들 이봉원을 만났다.
최양락과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코미디언 이봉원. 그는 데뷔 후 지금까지 ‘곰팽이’로 통한다. ‘시커먼스’ 등 인기 캐릭터를 여럿 내놓았지만, 그의 인기는 ‘곰팽이’로 정점을 찍었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곰팽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여전하다. 어리숙하고 엉뚱하지만 친근감 있는 그때의 이미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봉원도 한 어머니의 아들이며, 어머니에게는 세상의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다.
“남들이 아무리 ‘곰팽이’라고 불러도, 제게 봉원이는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잘난 아들이에요.”
지금의 이봉원을 있게 한 어머니 고정선 여사(72)다.
가난한 시절, 정직과 성실을 가르쳐준 어머니
이봉원은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봉원의 가족은 고향인 경남 마산에서 올라와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겨우 새우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이봉원의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가족의 생계는 모두 고정선 여사의 몫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하셨죠. 저에게 늘 착하고 성실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장한 아들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장한 어머니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고정선 여사가 엿장수로 나섰을 때의 일이다. 어쩌다 아들과 함께 엿장을 팔러 나가면, 그의 어머니는 친구들이 지나갈 때마다 리어카 아래로 그를 숨겼다. 행여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걱정되어서였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이봉원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반듯하게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봉원이는 참 착한 아들이었어요. 한집에 오래 세들어 살아도 한 번도 동네 아이들하고 싸워본 적이 없어요. 뒷바라지 하느라 힘든 건 없었어요. 제가 신경을 써주지 못했어도 정말 잘 자랐어요.”
고정선 여사는 “(아들이) 무척 잘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항상 자랑스러운 아들이지만, 가장 대견했을 때를 떠올려본다.
“신인상 탔을 때가 가장 감격스러웠어요. 신인상은 일생 중 한 번밖에 탈 수 없는 상이니까요. 그리고 대상을 탔을 때도 대견했고요. 박미선하고 결혼했을 때나 손자, 손녀들 낳았을 때도 기뻤고요.”
이봉원의 재주는 누구를 닮은 것일까? 고 여사는 “글쎄… (스스로) 재주를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봉원은 “엄마가 좀 웃기시다”고 말해 어머니를 닮았음을 고백했다.
아들로 인해 기쁜 날들도 있었다면, 남모르게 속을 끓인 시간도 많았다. 이봉원이 한창 잘나가는 코미디언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저는 항상 사업하지 말고 방송 활동해서 출연료만 받고 살자고 말해요. 그동안 사업에 여러 번 실패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가 도와줄 힘도 없고, 정말 안타까웠어요.”
어머니의 걱정과 우려, 기도 덕분인지, 현재 이봉원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다시 인기를 얻으며 방송에 전격 복귀했다. 함께 활동했던 최양락, 양원경 등이 주목을 받는 가운데, 이봉원이 빠질 리 없었다. 아내 박미선과 ‘우리집 라디오’를 진행했고, KBS Drama ‘하하호호 부자유친’과 KBS N ‘엔터 뉴스 연예부’ 등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또 지난 4월부터는 OBS 경인 TV의 정통 코미디를 표방한 ‘코미디 多, 웃자 go’에 후배 개그맨들과 출연하고 있다.
“그동안 버라이어티 등에 출연해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통해 재미를 주었어요. 그런데 뭔가 허전함이 남더군요. 역시 사람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해요. 품이 많이 들어가지만 사람들과 부딪히고 땀 흘리면서 코미디를 만들어 시청자에게 웃음을 주고 싶은 갈증이 깊었습니다.”
말 없던 아들이 털어놓은 어머니 사랑
고정선 여사는 지난 5월 4일 ‘2009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소설가 이순원의 어머니 김남숙 여사, 화가 김선두의 어머니 김정임 여사,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의 어머니 김소희 여사, 국악인 정화천·정회석의 어머니 장복순 여사, 무용가 윤덕경의 어머니 김광자 여사와 함께 수상을 했는데, 아들이 이끌고 온 박수 부대로 인해 이날 최고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손녀인 이유리양과 손자인 이상혁군이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하는 감동적인 무대를 펼쳤다(박미선은 방송 스케줄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할머니, 상 받으신 것 축하해요. 만날 말 안 듣는 저희 키워주신 것 감사합니다. 오래 사세요. 사랑합니다.”(이유리)
“장한 할머니, 허리가 아프신데도 많은 일을 하시는데 제가 자꾸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할머니 장수하세요.”(이상혁)
짧은 메시지였지만, 투박한 정이 묻어났다. 할머니 입장에서는 더없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녀들이 편지를 낭송하는 모습을 보고 이봉원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리허설 때는 재미있었는데, 본방이 재미없네요.” 그러고는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상을 많이 받아봤지만 오늘같이 기쁘고 영광스럽고 떨리는 상은 없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엄마라고 부릅니다. 그냥 ‘어머니’라고 만 불러도 저절로 눈물이 나오죠. 어머니는 무허가 단칸방에서 여섯 식구가 살 때부터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평범한 소시민의 어머니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정말 오늘 이 자리, 이 나라를 만들어주신 밑거름이자 토대입니다. 좋은 세상 만들어주셨으니 많이 즐기시고 만수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던 아들이었다.
“봉원이는 평소에 말이 일절 없어요. 며느리는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꼭 인사를 하지만, 아들은 말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가슴속 이야기를 말하는 걸 보니 그래도 ‘나를 알아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뭉클했죠. 속이 깊은 아들이에요. 말도 못하게 깊어요. 참을성도 많고….”
이 세상에 자식 걱정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연예인이라는 굴곡 많은 직업을 택한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 걱정이 더 클 것이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봉원, 그의 밑바탕에는 어머니의 가르침과 밤낮 없는 기도가 있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