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누가 더 빨리 따라쟁이 되는지가 관건,
하루 한 개씩 익히면 누구나 영어 고수 될 수 있어요”
안 다녀본 학원이 없고 안 본 책이 없는데 영어 실력은 늘 제자리다. 어제 외운 영어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다. 외국인 앞에만 서면 입 한 번 뻥긋하기 어렵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개그맨 박수홍과 영어 강사 이근철은 “더 이상 배우지 마라. 알고 있는 영어만 써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고속도로 달리듯 시원하게 입이 뚫리려면 오랜 시간 투자해야 해요.”
박수홍은 요즘 영어 삼매경에 빠져 있다. 하루 한 가지씩만이라도 제대로 표현하면 언젠가는 영어 고수가 될 거란다. 그의 얘기를 들으니 “요즘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 일어는 옵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거리에 즐비한 영어 간판을 보면 영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듯하다. 이대로 영어를 포기하면 자신만 손해다.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이 1백만 명이 넘는대요. 비싼 돈 들여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죠.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친구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의사소통 수단이 한국어냐 영어냐일 뿐인데, 글로벌시대니만큼 영어로 자신을 표현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인터뷰 도중 몇몇 영어 문장을 읊던 박수홍이 도움의 눈빛을 보내자 영어 강사 이근철이 군데군데 틀린 표현을 짚어줬다. 평소에는 형님, 아우님지만 영어를 배울 땐 스승과 제자.두 사람은 얼마 전 의기투합해 「10년 배운 영어 사용설명서」(중앙북스)를 펴냈다. 이근철은 “중학생 때부터 적어도 10년 이상 영어를 배웠다면 필요한 영어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다만 써먹는 법을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영어책 출간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궁금할 것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뭉쳤는지, 방송 진행과 사업 등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갑작스레 책을 쓴 계기가 무엇인지….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부드러운 진행과 적재적소의 유머로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1990년대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영어 강사 이근철은 현재 KBS 라디오 프로그램 ‘굿모닝 팝스’를 진행하고 있고, 개그맨에서 웨딩사업가, 요리사로 다양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박수홍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 ‘박수홍의 두근두근 11시’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농담과 진담을 오가며 수다를 늘어놓던 두 사람은 “평소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평소에는 형님과 아우, 영어 공부할 땐 스승과 제자
박수홍과 이근철은 7, 8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났다. 마음이 잘 맞아 금세 친해졌고 3, 4년 전부터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공연을 보러 다니고, 크리스마스나 불꽃축제 같은 기념일을 함께 보낼 정도로 돈독해졌다. 이근철이 “성격 좋고 배려심 깊은 수홍씨에게 많은점을 배운다”고 말하자, 박수홍은 “형님은 영어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렇다고 형님과 나를 이상야릇한 관계로 오해하진 말아달라”며 손사래를 친다.
“얼마 전 형님과 자전거를 타던 중 부모님을 만났는데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수홍아, 네가 말하던 남자가 저 남자니?’ 하고…(웃음). 오래전부터 형님과 친분을 쌓아왔는데, 어느 날 보니 (김)영철이가 형님과 자주 어울리더라고요. 영어 실력이 향상된 건 물론이고 「뻔뻔한 영철영어」를 내고 강연하는 걸 보고 속으로 ‘어쭈, 이것 봐라? 그 자리는 원래 내 자리인데!’ 했어요.”
그는 “영철이가 낸 책보다 많은 부수를 찍어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다”며 짓궂게 웃었다.
처음 집필 얘기를 꺼낸 건 박수홍이었다. 이근철이 지난 2007년 ‘박수홍의 두근두근 11시’ 게스트로 출연, ‘영어로 스트레스를 풀자(이하 영스풀)’ 코너를 진행했는데, 당시 요리책을 출간한 박수홍이 “형님, 기회가 되면 또다시 저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 것. 그 말을 잊고 있었던 박수홍과 달리 그 말을 기억한 이근철은 ‘영스풀’을 통해 박수홍이 영어회화가 점점 늘자 영어회화 책 집필을 제안했다.
“수홍씨가 단어는 꽤 아는데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어내는 걸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이런 방법으로 말하면 돼. 모두 네가 아는 단어야’ 하면서 한 번에 완성된 문장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 연결해서 표현을 늘리는 방법을 알려줬죠. 그러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홍씨와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근철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꼽은 박수홍의 가장 큰 장점은 센스. 문법, 관용표현 등 전문 지식은 다소 부족하지만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이 늘었다고.
“수홍씨는 유창하진 않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해요. 곁에서 들어보니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즐거워하죠. ‘거침없이 들이댄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이에요. 그런데 영어 실력 편차가 심한 것 같아요. 남자와 있을 땐 말이 잘 안 나오던데 여자와 있으면 술술 나오더라고요. 특히 매력적인 분과 얘기하면 발음부터 달라지던걸요(웃음).”
박수홍은 “말이 통한다는 건 가치관이 통한다는 뜻이지 않느냐”며 얼굴을 붉혔다.
“형님 같은 멘토에게 배우는 것도 좋지만 외국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곁에 있다면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웃음).”
그러자 이근철은 “이성친구와 관계가 깊어지면 눈빛만으로 대화가 통하므로 탐색 기간을 오래 갖는 게 중요하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생활패턴에서 영어 찾고 스스럼없이 감정 표현해야
“문장을 외우기보다 상황을 먼저 떠올리는 게 좋아요.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부어 있고 머리카락에 비듬이 있고 이를 닦으려고 보니 치약이 다 떨어진 거예요. 이런 상황을 떠올리며 한두 개씩 영어 표현을 이어나가는 거죠. 여기에 감정을 잘 활용하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요. 별일 아닌데 손을 들고 어깨 들썩이며 ‘와우~’, ‘웁~스’ 하는 거죠.”
박수홍은 “배운 영어 표현을 잠시 덮어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생활 패턴에서 영어를 녹여내면 오래 남는다. 그러다 보면 생활영어, 비즈니스영어, 클럽영어 등 다양한 영어를 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추천하는 영어공부법은 U-M-R식 회화. 어떤 상황에 마주쳤을 때 일단 알고 있는 영어를 소리 내어 말하고(Use), 잘못된 표현을 수정해 기억하면(Memorize) 며칠 뒤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다(Remind)는 원리인데, 예를 들면 “그 사람 이름이… 박… 박, 뭐더라? 아, 그래, 박수홍이지!” 하고 먼저 말을 내뱉은 후 박수홍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다.
“궁금한 건 표시해뒀다가 일주일에 두세 번씩 형님을 만나 물었어요.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응용하니까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더라고요.”
이렇게 이근철에게 비밀 지도(?)를 받은 박수홍의 영어 실력은 많이 향상됐다. 김영철에 이어 또 한 명의 수제자를 키운 이근철에게 두 사람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그는 난색을 표했다.
“두 사람은 공부하는 스타일이 달라요. 영철씨는 한 번 질문하면 묻지 않은 얘기까지 다 얘기하는 스타일이고 수홍씨는 필요한 얘기만 적재적소에 던지는 스타일이죠. 영철씨에게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더니 ‘근철 쌤의 수제자 1호를 자부하는 저 대신 수홍 선배와 책을 내다니 약간 샘나면서도 기대가 큰걸요?’ 하더라고요(웃음). 영철씨나 수홍씨를 도운 건 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99퍼센트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뤄진 겁니다.”
이에 대해 박수홍은 “영철이는 영어학원을 거의 빠지지 않고 다닌다고 한다. 나도 저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창작물이나 작품은 각별한 법이잖아요. 이 책이 꼭 자식 같아요. 주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자랑스러운 책으로 만들어져서 만족스럽고 뿌듯해요.”
많은 사람들과 영어 정보 교류하고 싶어
“지인이 일본, 중국뿐 아니라 네덜란드에서도 제가 출연한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된다고 하더라고요. 기쁜 일이죠. 저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 진출하고 싶어요. ‘아시아 아시아’를 하면서 그곳에 가봤는데 자연경관이 좋고, 가난하고 열악하지만 순박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언젠가는 저와 비슷한 꿈을 꾸는 후배들과 그곳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후배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프로듀싱하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고 영어도 더 잘해야겠죠?”
그는 “해외 진출이 현실도피로 보이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할 생각”이라고 했다.
“요즘 일주일에 다섯 개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번은 어머니가 ‘네가 나온 프로그램은 녹화를 해도 허탈해. 네가 잘 안 나오니까……’ 하시더라고요. 있는 듯 없는 듯한 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앞으로는 개그맨으로서, MC로서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2007년부터 시작한 웨딩사업도 순항 중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큰 손실은 없다고. 박수홍은 해외에 관심이 많은 만큼 우수 직원을 선발해 해외연수를 보내는 ‘통 큰’ CEO이기도 하다.
그의 다음 도전은 결혼이다. 그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와요. 얼마 전 경림이가 남편, 아이와 산책하면서 영상전화를 연결해줬는데 아이가 정말 예쁘더라고요. 영어를 배우면 세계 여성들과 교류할 가능성이 커지니 그쪽에도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나중에 근철 형님하고 저하고 각각 결혼해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떠나 사람들에게 숨은 맛집과 여행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요.”
온라인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이근철은 “많은 사람들이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영철씨, 수홍씨와 함께 영어 관련 책도 내고 싶어요”라며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