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의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
국내 최초로 1980, 90년대를 휩쓸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던 세 명의 개그맨이 한자리에 모였다. 김정렬, 배영만, 황기순. 이들은 지난 26년간 고난과 어려움 그리고 웃음을 함께해왔다. 이들이 고백하는 젊은 시절 비하인드 스토리.
개그 대담 참석자
김정렬(49, MBC 개그맨 공채 1기, 1981년 데뷔)
황기순(47, MBC 개그맨 공채 2기, 1982년 데뷔)
배영만(51, MBC 개그맨 공채 3기, 1983년 데뷔)
‘남을 웃겨야 사는 사람들’,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힘을 얻는 개그맨들의 피는 역시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개그맨 세 명이 모이니, 순식간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재치와 입담으로 똘똘 뭉친 세 명이 같이 만나면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하자, 모두 정색을 하며 말한다. “우린 진지해요. 그럼 그럼, 굉장히 진지하지(웃음).”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한 3인방은 데뷔 이후 전성기를 함께 보냈다. 유난히 마음이 잘 통했던 세 사람은 모이면 명동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오락실 등도 같이 갔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PC 게임이 활성화된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락실이 저렴한 비용에 시간 보내기에 좋은 장소였다. “갤러그(오락 게임의 한 종류)를 (황)기순이가 가장 잘했지? 아마 기록이 10만 점이었나?” 이 같은 배영만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황기순이 갑자기 한마디 한다. “형! 백만 점이지~(웃음)” 잊혀진 줄 알았던 26년 전의 기억에 세 사람의 눈빛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story_ #1 그때 그 시절의 추억
“아가씨, 방귀 뀌었지?”
배영만 옛날에 우리 셋이 모이면 명동에 많이 갔지. 참! 우리 버스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재밌잖아.
김정렬 맞아(웃음). 그 이야기 좀 해봐.
배영만 아가씨가 자리에 앉아 있잖아. 그럼 (황)기순이가 갑자기 “어~ 이게 무슨 냄새야? 아가씨 방귀 뀌었지?”라고 물어보잖아. 그럼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집중되고 난리가 나는 거야. 하하하.
황기순 그때 내가 스물한 살이었지. 어렸으니까 그런 장난을 쳤지.
배영만 아가씨가 민망해서 “어~ 저 안 뀌었는데요?”라고 말하면 “아니, 뀌었잖아요. 냄새가 나는데~”라고 말해. 그럼 버스 안의 사람들이 웃겨서 난리가 나는 거야(웃음).
황기순 지금은 그런 장난치면, 아마 큰일 날 거야(웃음).
story_ #2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김정렬이 황기순의 여자를 빼앗았다?!
김정렬 내가 기순이 여자를 빼앗은 사건도 있었지.
배영만 하하하. 뭔데 그래?
황기순 내가 (서)승만이랑 대전에 놀러 가서, 나이트클럽에서 아가씨 두 명이랑 놀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정렬이 형이 대전에 온 거야. 바로 정렬이 형한테 나랑 같이 놀던 아가씨들을 양보했지. 나는 그때 형한테 아낌없이 다 줬네, 진짜.
김정렬 황기순과 서승만이 둘 다 후배니까. 딱 날 보자마자 아가씨들을 양보하는 거 있지(웃음).
황기순 그때는 김정렬 선배가 정말 무서웠어. 후배들을 혹독하게 다뤘거든.
배영만 나한테는 정말 잘해줬는데?
김정렬 그거야, 연세가 있으니까(웃음).
배영만 후배들이 김정렬씨를 좋은 선배로 모시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
황기순 아니야. 나한테는 단무지도 훔쳐오라고 시키는 무서운 선배였어.
김정렬 아마 개그맨 서열이 엄격했기 때문에 그랬겠지. 선배라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내가 무서운 건 아니었을 거야.
황기순 아니야, 형도 무서웠어. 한번은 소주를 먹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소주 한 병을 어렵게 사고는 “야~ 가서 단무지 훔쳐와!”라고 시키는 거야. 형이 단무지를 무척 좋아했거든. 그럼 어쩔 수 없이 가서 단무지를 훔쳐 와야 했어.
김정렬 그 시절에는 단무지가 최고의 안주였지. 하하하.
story_ #1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정렬, 자전거를 훔치다!
김정렬 강석 형이 우리를 태우고 다니면서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많이 챙겨줬잖아. 그 형 집이 월계동이었는데, 술을 먹고 그 집 앞에 가서 2차를 했어. 그리고 새벽 2시에 집에 가라고 하는 거야. 버스도 끊겼는데, 돈이 없으니까 여의도 MBC까지 몇 번을 걸어왔어. 그런데 걸어오기가 너무 힘든 거야. 한번은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도저히 못 걸어가겠더라고. 그래서 연립주택에 들어가 자전거를 훔쳤지(웃음).
황기순 나는 술을 전혀 못 먹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바빴잖아. 그때 정렬이 형, 또 다른 형 그리고 나 그렇게 셋이 있는데, 두 형은 이미 거나하게 취했고, 차 타고 갈 돈은 없고 정말 죽겠더라고. 그래서 길바닥에서 밤을 새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어. 그런데 정렬이 형이 갑자기 “아~ 이거 어떻게 가지?”라고 말하면서 연립주택에 들어가기에, 난 소변보러 들어가는 줄 알았어. 그런데 덜그럭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글쎄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거야. 한눈에 보기에도 그건 절도잖아. 겁이 덜컥 나더라고. 그래서 “형 이거 왜 가지고 와?”라고 했더니 술 취한 목소리로 “아~ 이거 타고 가려고 왜?!”라고 하는 거야. 겁이 나서 빨리 가려고 같이 타자고 했더니, “안 돼” 이러면서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더라고.
배영만 진짜? 혼자 갔단 말이야?
황기순 그래서 원망 많이 했지. 후배 둘을 두고 혼자 가다니. 그러더니 다시 오는 거야. ‘아~ 우리 생각해서 다시 돌아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반가운 표정으로 “왜 다시 왔어?”라고 물었더니 정렬이 형 하는 말이 “어, 이 자전거가 안장이 망가졌어~”(웃음).
배영만 하하하. 정렬씨 정말 대단했어. 그래서 그 자전거를 팽개치고 또 다른 자전거를 태연히 들고 나오더라고. 할 수 없이 나는 정렬이 형이 버린 자전거를 주워서 술 취한 선배를 태우고, 한 손으로 떨어지지 않게 잡고, 여의도까지 쉬지도 않고 왔다니까. 그런데 자전거를 MBC에 놔뒀거든, 그걸 또 도둑놈이 훔쳐갔더라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없어졌어. 하하하.
story_ #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소주 한 병 원샷 하면, 만원 줄게~
배영만 나도 (강)석이 형과 얽힌 에피소드가 많지. 한번은 나한테 소주 한 병을 안 쉬고 마시면 만원을 주겠대. 그때는 나도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만원이 정말 큰돈이었거든. 그래서 벌컥벌컥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밤새 오바이트하고 데굴데굴 굴렀지. 그때 만원을 받긴 받았나?(웃음). 하여튼 그 형이 우리 후배들 데리고 다니면서 밥이랑 술 많이 사줬지.
김정렬 강석 형은 우리가 술 먹고 오바이트하면서 괴로워하는 걸 보고 좋아해.
배영만 맞아. 내가 토하는 걸 보고 나보고도 쇼한다고 좋아했지.
김정렬 선배가 원샷 하고 잔을 부딪치면, 죽어도 원샷을 해야 돼. 그리고 우리가 토하고 힘들어하면 그 모습을 아주 흐뭇하게 바라봤다니까(웃음).
황기순 나는 술을 안 마시잖아. 그런데 한번은 나를 눕혀놓고, 입에 술을 붓더라고. 정말 죽을 뻔했다니까(웃음).
배영만 우리 때는 그렇게 선후배들끼리 진한 우정도 나누고 그랬는데, 요즘 후배들은 그렇게 어울리는 문화가 없는 것 같아.
황기순 아니야. 요새 애들도 자기들끼리 어울려서 놀기는 하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래. 당구도 치고 그렇겠지. 그래도 우리 때보다는 선후배 간의 정은 좀 덜한 것 같기는 해.
배영만 우리는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이야기하고 안부 전화하고, 위로해주는 사이였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일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고.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겠어. 근데 우리끼리는 했지.
story_ #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후배 배영만, 선배 황기순에게 말 놓다!
배영만 참, 우리가 친하긴 했는데 나이와 선후배 호칭이 안 맞았던 부분이 있었지.
김정렬 내가 공채 1기고, 배영만씨는 공채 3기라서 내가 선배인 거야. 그래서 서로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존댓말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지. 지금은 호칭이 애매하니까 배 집사님이라고 부른다니까. 교회 다니시는데, 집사님이거든. 이제 와서 갑자기 “영만이 형”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잖아(웃음).
배영만 내가 나이는 더 많은데, 사실 기순이가 1년 선배야. 그래서 20년이 넘도록 “기순아!”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 몇 년 전에 기순이가 “형이라고 할게요. 말 놓으세요”라고 해서 말 놓았지. 개그계에도 서열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기순이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 놓으면, 후배들 서열이 확 틀어지는 거야. 그래서 나는 정렬씨나 기순씨에게 아주 깎듯이 했지. 그런데 정렬씨나 기순씨도 나를 대하는 호칭이 영 어색했을 텐데, 그러면서도 항상 친했던 거 보면 참 신기해.
황기순 영만이 형 나이가 나보다 네다섯 살 더 많잖아. 그러다 영만이 형이 한동안 공백이 길었던 때가 있었어. 나도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고. 그때 전화해서 느닷없이 “영만이 형”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야. “형 말이야, 내일 시간 돼요?”라고 했더니, 한동안 말을 못하더라고(웃음).
배영만 정렬씨랑 기순이가 참 착해. 우린 서로 이용하고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이야기하게 되는 거지.
story_ #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배영만, 드라마 캐스팅 이유는 ‘노숙자와 닮아서’
배영만 감독이 날 한참 동안 뚫어져라 보더니, 서울역에서 본 노숙자랑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면서 막 웃는 거야. 그러면서 드라마 주인공 하라고 해서 그냥 했지. 그런데 그 드라마가 반응이 좋았어.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 매력을 느꼈고 열심히 하고 있지.
김정렬&황기순 우리는 드라마를 해본 적이 없지.
김정렬 코미디 연기랑, 드라마 연기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고.
배영만 드라마 연기가 쉽지 않아. 드라마 할 때 김정렬씨한테 울면서 전화한 적이 다섯 번이나 된다니까. 내가 “드라마 연기는 할 게 못 된다”며 “연기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어. 탤런트와 개그맨들은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거야. 그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
김정렬 드라마는 호흡과 템포가 있잖아. 우리가 연기를 정통으로 배운 게 아니라서 한계가 있는 거지.
배영만 연기하면서 너무 서러워서 화장실 가서 울기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
황기순 근데 말이야, 내 생각에는 영만이 형이 울면서 연기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우리들이 연기 쪽으로 가면, 본인의 입지가 좁아질까봐 그런 게 아닐까?(웃음). 연기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하니까 말이야.
배영만 하하하.
황기순 그런데 매사에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코미디는 조금 과장시켜서 하잖아. 눈을 크게 뜬다거나, 놀라는 표정 등. 아무리 자제하려고 해도 튀어나오는 거지.
배영만 맞아. 나도 드라마 하면서 다른 사람 장면에 내가 불쑥 끼어들게 되는 거야. 감독이 “뭐야? 왜 튀어나와?”라며 호통을 치면 그때서야 “아차” 싶지. 어쩔 수 없는 개그맨의 끼가 있는 거야(웃음).
story_ #1 요즘 개그를 말하다
“최양락, 이봉원의 인기는 옛 기억의 향수”
김정렬 내 생각에는 향수와 추억이라고 봐. 우리와 같은 나잇대들은 요즘 애들 말 잘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우리가 나오면 좋아하는 거야. 기순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황기순 지금까지 살면서 40, 50대 기성 세대들이 TV 채널권을 10, 20대에게 많이 양보했잖아. 그런데 개그나 예능 프로그램이 몇몇 후배들 중심에 포맷도 비슷비슷하니까, 여러 세대를 아우르기에는 한계가 있지. 정렬이 형이 말한 것처럼 향수를 찾는 거야. 그걸 끄집어낼 만한 동기 부여가 없었는데, 한 토크쇼에 최양락 선배가 나갔다가 대박을 터뜨린 거야.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동시에 재미를 느꼈다는 거. 그 덕분에 우리 같은 개그맨들을 받아들이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 같아.
story_ #2 요즘 개그를 말하다
“요즘 버라이어티에 익숙해지기 힘들다”
황기순 우리가 후배들보다 살면서 겪은 일이 많잖아. 그런데 우리 세대에는 선배 말은 곧 법이었어. 군기가 세고, 예의를 많이 따졌지. 아무리 웃기고 인기 있는 후배라도 무조건 선배에게 깍듯했거든.
배영만 그럼, 우리 때는 그런 게 엄격했지.
황기순 그런데 요즘에는 들어온 지 일주일밖에 안 돼도, 재미있고 웃기면 PD가 바로 캐스팅해서 방송에 나가잖아. 그럼 선후배 간의 규율이 무너지지.
김정렬 예전에는 아무리 인기 있어도 보이지 않는 선후배 간의 규율이 있었어.
황기순 우리는 요즘 애들처럼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에 그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지. 지금은 우리가 사석에서 하는 그런 농담들이 방송되는 시대잖아. 과거 우리는 선배가 있으면 어렵고, 조심스러워서 말도 함부로 못했거든. 특히 개인적으로 나 같은 경우에는 홍역을 치른 적이 있으니까 말 한마디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일단 툭툭 뱉어야 하는데 정리하면서 말하니까 재미가 덜하지.
story_ #3 요즘 개그를 말하다
“선생님~ 소리 듣기 싫으면, 먼저 말을 걸어봐”
김정렬 요즘 후배들과 같이 방송을 해보면 정말 잘한다는 게 느껴져.
배영만 한민관이 나를 보고는 “아버지”라고 부르더라고. 그런데 조금 서글프기도 해. 일단 거리감이 느껴지니까. 지난번에 ‘개그콘서트’ 출연했더니, 나한테 연출자가 꾸벅 인사를 하면서 “선생님, 잘 모셔라”고 하더라고. 선생님~! 이러면서 어디 연출이 되겠어?
김정렬 PD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 우리같이 나이 많은 사람들과 방송 하는 걸 불편해하지.
배영만 그래서 나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 오는 8월에 드라마 하나 들어갈 것 같아.
황기순 그런데 형이 젊은 후배들에게 조심스럽고, 선배답게 행동하려고 하는 게 형을 자꾸 고립시킬 수도 있어.
배영만 미처 그런 생각은 못했네. 그냥 어려워하니까, 세대 차이만 느끼고 신기해했을 뿐이지.
황기순 나는 후배들하고 코미디를 하면서 서로 격의 없이 지내려고 많이 노력해. 젊은 친구들 만나면 먼저 장난을 치거든. 그러면 젊은 친구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다가오는 거야. 어떤 애들한테는 아버지뻘 되는 나이잖아. 형이 그걸 좀 열어줘야 할 것 같아.
story_ #4 요즘 개그를 말하다
“요즘 방송하면서 가장 힘든 건, 세대 차이!”
황기순 맞아. 서로 말을 주고받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더라고. 거침이 없는 거지. 요즘 예능 버라이어티는 5~7시간 촬영을 하고, 그 중에서 좋은 것만 골라서 방송에 내보내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게 익숙하지 않아.
김정렬 나는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못 따라가겠어. 아니, 흉내도 못 내겠어.
황기순 우리가 활동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야. 과거에 구봉서, 한무 선생님이 우리 세대의 코미디를 보고 굉장히 빠르다고 말씀하셨거든. 그런데 이제 우리가 후배들을 보면서 굉장히 빠르다는 걸 느끼잖아. 그게 세대 차이지.
배영만 요즘 복귀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최양락씨도 우리랑 같은 세대이기 때문에 방송하면서 조심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는 거야.
황기순 최양락 선배는 능력 있고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순간적으로 ‘이 이야기가 웃길까, 안 웃길까’를 먼저 생각하고 이야기하니까 굉장히 조심스러운 거야.
김정렬 나도 ‘해피투게더’에 한 번 나갔는데, 말을 꺼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정말 진땀 뺐네. 일단, 생각을 하고 말을 꺼내려고 하니까 이미 지나가버리더라고. 그래서 몇 번 타이밍을 놓쳤어.
배영만 요즘 애들이 엄청 빠르다니까.
김정렬 녹화 중에도 후배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조심스럽더라고.
배영만 사실 우리는 방송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으니까 못하는 거지. 나는 드라마로 성공하고 싶어. 그래서 스타가 되면 이리저리 모셔갈 거 아냐. 연예인은 자유직업이라 이름을 날려야 되는 거야.
story_ #1 미래의 개그를 꿈꾸다
내 인생에서 개그란?
배영만 우리는 인생 자체가 개그 아니야? 한 명은 필리핀 도망갔다가 오고, 한 명은 도박하다가 망하고(웃음).
황기순 나는 그동안 개그맨으로 평생을 살아왔잖아. 27년 동안 방송을 할 수 있었다는 게 행복해. 학교 다닐 때 막연히 꾸었던 꿈이 직업이 됐고, 한때는 돈도 많이 벌어봤고, 무모하고 헛되게 날려도 봤잖아.
배영만 그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이지.
황기순 이제는 기준이 생겼어. 그 기준대로 살면, 10년 후의 모습이 그려지더라고. 부를 쌓는 게 문제가 아니라, 후배들이나 더 어린 친구들에게 존경은 못 받더라도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고. 그때는 내가 어려서 잘 몰랐어. 감사한 것도 몰랐거든.
배영만 이제는 좀 철이 들었구나(웃음).
story_ #2 미래의 개그를 꿈꾸다
“요즘엔 행복하세요?”
배영만 그럼 빚은 모두 갚은 건가?
황기순 아니지. 그래도 돈 한 푼 없이 한국에 돌아와서 황기순이 엄청난 빚을 10만원, 20만원 갚으면서 살았잖아. 갈 길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니까 태산처럼 높았던 빚이 어느 순간 내 발 아래 있더라고.
배영만 이야~ 진짜 대단하네.
황기순 3년 전 결혼 전후로 문제가 됐던 빚들은 다 정리가 됐어. 물론 아직 은행 대출금은 있지. 과거의 경험 덕분에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어. 이젠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마음을 비우고 살아. 삶의 진정한 행복이 뭔지 알게 됐거든.
배영만 이젠 편하게 웃고 살 수 있게 됐지?
황기순 행복이라는 게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고민거리가 없는 걸 말하는 것 같아. 요즘에는 근심이 없거든.
배영만 그럼, 걱정 없이 사는 것만큼 행복한 게 뭐가 있어.
황기순 재벌 회장도 젊음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고 하잖아. 내가 살아온 삶 중에서 어느 부분은 굉장히 후회했어. 그런데 과거는 이미 지나간 거니 묻어두기로 했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니까.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내 인생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story_ #3 미래의 개그를 꿈꾸다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배영만 나는 무대에서 죽는 게 꿈이야. 그만큼 내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거든.
황기순 이게 평생 직업인데 방송인으로서 열심히 연기하고 능력이 부족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싶어. 내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나는 70세가 돼. 그 아이가 사회에 나갈 나이가 됐을 때 인정받는 부모가 되는 게 꿈이야.
배영만 나는 솔직히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인생에 후회는 없어.
김정렬 내 꿈은 잊혀져가는 개그맨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방송인으로 남는 거야. 외도를 하지 않고, 방송을 끝까지 하면서 영원한 개그맨으로 남고 싶어.
시청자는 연예인이 TV에서 보이지 않으면 ‘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모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꿈과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 아직 꿈이 있어 행복한 8090 개그맨 3인방. 이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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