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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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국민 드라마! ‘허준’, ‘대장금’, ‘이산’을 만든 이병훈 감독이 지난 30년간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은 책, 「꿈의 왕국을 세워라」를 발간했다. 차기 드라마‘동이’ 제작으로 눈코 뜰 새 없는 그가 갑작스레 책을 낸 까닭은 드라마를 만드는 이유와 같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쇤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층에게 사극은 지루한 역사책과 다르지 않았다. 고어의 사용과 획일화된 의상, 비 오는 날 들으면 섬뜩하기까지 한 곡소리 배경음악까지, 무엇 하나 젊은 층의 기호에 맞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개혁이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던 우리 사극계에 혁명을 일으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병훈 감독이다.

9년 전 드라마 ‘허준’을 들고 전 국민의 안방을 웃음과 울음바다로 만들어놓은 그는 말한다. “젊은 층을 위한 사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이 우리의 역사를 재미있게 알아가도록 돕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2009년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둔 듯싶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우리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한복과 한식, 한국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책도 재미있어야
이병훈 감독은 “조금 더 빨리 책을 냈어야 하는데, 그동안 드라마 만들면서 정말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책 쓰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희미해진 그 시절 이야기들을 모으느라 꽤 힘들었다”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15년 전 그는 한 스포츠 신문에 드라마 제작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 달 정도 연재를 진행하던 중, 드라마 제작 일로 해외 출장을 빈번하게 나가게 됐다. 결국 자연스럽게 드라마 제작 에피소드 연재는 중단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고, 또 끝낸 후에 그가 차기작 구상과 함께 해온 일은 바로 드라마 제작 후기를 담은 책을 쓰는 일이었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해요. 드라마도, 책도 시청자와 독자에게 흥미와 신선한 재미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이번에 출간한 「꿈의 왕국을 세워라」(해피타임)도 최대한 생생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꿈의 왕국을 세워라」는 이병훈 감독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까지의 이야기와 각 작품의 주인공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 작품을 만들면서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 좋은 작품과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의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특히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이 책의 표지도 인상 깊다. 선글라스를 목에 건 채, 대본을 돌돌 말아 오른손에 든 이병훈 감독은 마치 사진 밖으로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기세로 서 있다. 남은 공간에는 드라마 제작의 필수 요소인 카메라와 메가폰 등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첫 페이지부터 재미를 주는 이 책의 디자인은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병훈 감독의 아들이 직접 구상했다.

“외국의 경우 드라마 혹은 영화 제작이 끝난 후, 대본이나 제작 후기를 책으로 발간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일본은 대본부터 여러 종류의 작품 관련 발행물을 내놓고 있죠. ‘대장금’의 경우에는 대본과 소설, 화보집을 포함해 스무 가지 정도의 책이 나왔고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시청자들이 여러 방법으로 그 작품을 기억해주는 것은 드라마를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기도 해요.”

‘허준’과 ‘대장금’을 종영한 후 번번이 무산되었던 책 쓰는 작업은 한 프로덕션의 제안으로 그동안의 드라마를 총망라하는 내용으로 기획됐다. 또 이병훈 감독의 절친 배우인 이영애, 전광렬, 한지민, 이순재, 임현식이 들려주는 그와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이병훈 감독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정도로 재미있었다”라는 문자를 받고 무척 즐거워했다.


사극의 제왕
요즘 방송국의 드라마 PD는 작품을 할 기회가 생기면 제작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 준비에 필요한 일을 한다. 그러나 이병훈 감독이 활동하던 1970, 80년대에는 상대적으로 PD가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PD의 역량과는 관계없이 모든 작품을 스스로 제작해야 했고, 심지어 연중 네 번의 개편도 단독으로 감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싫든 좋든 정말 많은 작품을 맡았어요.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죠. 하루에 두 번씩 데이트를 하면서 점차 일에 소홀해졌어요. 결국 드라마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쫓겨가게 되었죠. 그때 20분짜리 드라마를 맡았는데, 온 정성을 다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물론 반응은 뜨거웠고, 다시 드라마로 복귀할 수 있었죠.”

이병훈 감독의 사극은 감수성이 남다르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젊은 청년 시절부터 쌓아온 그만의 영역일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목표대로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사극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암행어사’,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가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암행어사’와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정말 사극이 나의 무대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또 역사책에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하나씩 찾아가는 일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고요.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극 속의 소재는 성에 차지 않았으니까요.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사극이 되려면 그 역사 속의 인물이 매력적이어야 해요. 「조선왕조실록」에서 장금이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바로 이거다 싶었죠. 왕의 주치의가 된 여자는 충분히 흥미 있는 소재였으니까요.”

수많은 역사책을 펼쳐가며 그가 발견한 매력적인 인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사극의 특성상 왕가나 유명 위인을 그리는 것보다는 서민의 삶을 그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요즘은 많이 너그러워지긴 했지만 역사학자나 해당 가문의 후손들이 사극을 위해 재탄생한 캐릭터를 비판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윤봉길 의사의 후손들이 방송국으로 단체로 찾아온 적이 있었죠. 드라마에서 윤봉길 의사를 짝사랑하는 여인을 잠깐 등장시켰는데, 결코 살아생전에 그런 일은 없었다며 항의하러 왔던 거예요. 결국 아침 프로그램에서 윤봉길 의사에 대한 30분짜리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기억이 나네요.”

지난 독재 정권의 경우 상황은 더 비참했다. 방송에서 쿠데타나 반란 이야기를 다룰 수 없었다. 제작에 들어갔다가 결방한 경우도 많았다. 그것이 곧 자신들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자의 난’ 부분은 독재 정권의 압력으로 1/3가량을 편집해야만 했다.

“사극은 우리 민족의 역사예요.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고 있죠. 4·19혁명과 군부독재 정치, 전두환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까지…. 역사는 우리 현실의 지표가 되고 미래를 내다보게 해요. 결국 우리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하죠.”

자신의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요즘 학생들은 국사를 선택 과목으로 배운다. 이런 실정에서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기는 힘들다. 그가 만드는 사극은 재미있는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이병훈 감독이 목표하는 사극의 이유이기도 하다. 미래의 주인공에게 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대학에 강의를 갔는데, 강의실에 앉은 학생들이 ‘허준’을 보고 자란 세대더라고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이렇듯 청소년이 제가 만든 사극의 애청자가 된다면, 죽을 때까지 모든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죠?”


그의 사람들과 함께 꿈의 왕국으로!
이병훈 감독은 욕심 많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수많은 드라마에서 20% 이상을 다른 사람이 제작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두 눈으로, 두 손과 두 귀로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성 때문에 그는 드라마 PD를 시작한 이후로 30년째 비정상적인 퇴근을 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한류 드라마 제왕’ 이병훈 감독의 아직 못다 한 이야기

“기본 체력이 무척 좋은 편이죠. 북한산 등산을 좋아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40분 정도 요가를 포함한 체조를 해요. 그러나 늘 부족한 수면 시간이 문제죠. 한 시간밖에 못 자더라도 40분은 꼭 운동하고 있어요. 어느 날 집사람이 ‘운동하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며 톡 쏘아붙인 적이 있었는데, 그래도 운동을 하면서 잠을 떨쳐버려야 그날의 스케줄을 맞출 수 있거든요.”

그에게 시청률은 곧 자존심이자 성적표다. 여러 편의 히트작을 만들었지만, 이병훈 감독에게도 아쉬웠던 작품이 있을 것이다.

“‘상도’는 개인적으로 정말 큰 성공을 거둘 거라 확신했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시청률은 20%대 중반을 들락날락했죠. 그때 ‘여인천하’와 ‘겨울연가’가 함께 방송되고 있었거든요. 60표를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 20표 밖에 못 받았다는 생각에 늘 아쉬웠어요.”

이렇듯 완벽한 그의 사극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배우를 찾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스타급 배우는 장기간 촬영을 해야 하는 사극의 특성 때문에 출연 제의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또 여배우는 추우나 더우나 하나의 옷을 입어야 하기에 그에 따른 신체적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이병훈 감독은 늘 자신의 사극을 위해 뛰어나고 아름다운 배우를 찾아 나선다.

“배우는 사극을 통해 제대로 연기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요. 김현주의 경우 ‘상도’의 다녕 역을 위해 목소리 톤, 발성, 표정 등을 훈련시켰어요. 그러나 전혀 개선되는 점이 보이지 않아 본인도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렇게 한 달 정도를 열심히 연습했더니, 결국 다녕에 어울리는 김현주가 되었죠. 나중에 들으니 출연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네요.”

이병훈 감독이 캐스팅한 배우는 그의 철저한 감독 아래 사극을 위한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곧 그의 사극을 끝낸 이후에는 검증받은 연기자가 된다는 뜻이다. 송윤아의 경우 이병훈 감독의 러브콜에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는데, 이 감독은 아직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 듯싶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가 얽혀 있어,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는 언제든 신뢰할 수 있는 듬직한 조연들이 있다.

“심각한 스토리는 외면받게 마련이죠. 결국 즐겁기 위해 드라마를 보니까요. 제 철학은 코미디에 적절한 비극이 들어갈 때 감칠맛을 낼 수 있다는 거예요. 사극에도 웃기는 장면이 반드시 필요해요. 임현식, 임호, 지상렬, 이희도, 금보라의 코믹 역할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이병훈 감독이 생각하는 드라마의 핵심 요소는 스토리와 캐릭터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지의 여부가 바로 드라마의 성공 원인이다. 이때 주인공 캐릭터가 특별하기는 어려운데, 따라서 조연 캐릭터가 강해져야 한다. 이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드라마를 만들어준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제 드라마를 잘 이해하는 배우들을 사랑해요.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기 때문에 남다른 신뢰도 갖게 되죠. 최진실의 경우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무척 성실한 배우였으니까요.”

▲ ‘이산’ 현장에서 아역 배우를 지도하고 있는 이병훈 감독. ◀ ‘정조’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이산’. ▶ 외교관들도 백년동안 이루기 힘든 일을 해낸 ‘대장금’

▲ ‘이산’ 현장에서 아역 배우를 지도하고 있는 이병훈 감독. ◀ ‘정조’가 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이산’. ▶ 외교관들도 백년동안 이루기 힘든 일을 해낸 ‘대장금’

한류 드라마의 제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병훈 감독이 만들어낸 한국 문화의 파급 효과는 실로 놀랍다. 대표적으로 ‘대장금’의 성공을 두고 외교관들도 백 년 동안 이루기 힘든 일을 해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한 편의 드라마로 한국의 건축, 풍속, 요리, 한복, 유행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장금’ 제작 초기에는 이렇게 성공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방송국 간부들은 음식 이야기를 삭제할 것을 수없이 요구하기도 했다. 아직 음식 드라마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이 맛깔스레 담긴 ‘대장금’은 지금도 한국을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 이 감독은 2010년 초에 방영할 차기 드라마 ‘동이’ 제작에 한창이다. ‘동이’는 숙빈 최씨에 관한 이야기다. 천민의 피를 받은 왕자라 하여 제왕 교육을 받지 못한 영조에게 숙빈 최씨는 남다른 교육을 시켰고, 영조는 조선의 임금 중 손꼽히는 성군이 된다.

“사실 최숙빈에 대한 기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죠.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운 작업이 될 거예요.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그녀의 인생을 복원하게 되었으니까요.”

급할 때는 계단도 서너 개씩 뛰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대장금’ 때는 팔이 부러지고, ‘이산’ 때는 여섯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했고, ‘서동요’ 때는 바위에서 굴러서 다쳤다. 그의 아내는 더 이상 활동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병훈 감독은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위해 계속 사극을 만들고 싶다.

“사람마다 성공의 모습은 다르게 다가오죠. 아주 어려서부터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찾아 남들보다 일찍 꿈을 이루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뒤늦게 결실을 얻는 인간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10년 이상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죠.”

이병훈 감독은 첫 인사부터, 인터뷰를 끝내고 손을 흔드는 그 순간까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기자가 예상했던 철두철미한 감독의 인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의 웃는 얼굴은 현장에서 길러진 버릇이다. 야외촬영이 많은 고된 사극을 연출하면서 서로 웃지 않으면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와 닮아 있었다.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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