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일곱 살, 네 살배기 두 딸의 아빠로서 가족을 지키는
부성애에 가슴이 찡했습니다”
김윤석은 화려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절대 강점 하나를 쥐고 있는 배우다. 바로 ‘현실감’이다. 만약 김윤석이 어떤 허무맹랑한 판타지 영화에 출연하더라도 연기 하나만으로 관객을 납득시킬 만한 충분한 리얼리티가 부여될 것이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그는 가족을 지키는 40대 가장 역할을 맡았다.
김윤석(41)이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맡은 역할은 탈주범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형사 조필성이다. 싸움도 못하고 느리고 어설프지만 거북이 같은 끈기로 끝까지 범인을 쫓는다. 또 김윤석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일하는 우직한 모습도 보여준다.
“이번 영화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실제로 제가 두 딸의 아버지이기도 하구요. 가족을 생각하는 부성애가 가슴 찡하게 다가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일곱 살, 네 살배기 두 딸의 아빠다. 영화 속 조필성 형사는 큰딸을 걱정하게 만드는 못난 아빠다. 실제로 김윤석은 밥을 먹지 않으면 딸들에게 잔소리를 듣곤 한단다. 그동안 출연한 작품 중 실제 자신의 모습과 가장 흡사할 거라고 말한다. 그는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때보다 현실감을 살려 연기했다.
“모든 역할이 다 그렇죠. 경험하지 않고 관심이 없으면 연기는 흉내 내는 것에 그치고 말아요. 일상생활의 모습과 감정을 영화로 잘 끌어오기만 해도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지요.”
누군가는 그의 전작 ‘추격자’와 이번 영화를 견주며 같은 형사 역할이라 캐릭터가 흡사해짐을 우려했다. 범인을 쫓는다는 기본 스토리는 같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코미디다.
“저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 ‘추격자’ 생각은 0.1%도 나지 않았어요. 정서 자체가 다른 영화입니다. ‘거북이 달린다’는 범죄자의 설정, 인물, 캐릭터가 위험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 안에 코미디가 다분해요. 저도 ‘저런 상황 안에서 주는 코미디가 과연 관객을 웃길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시나리오를 보니 마음에 들더군요. 드라마와 코미디의 조화가 적절했습니다.”
영화 ‘추격자’의 성공 이후 그에게 수많은 작품 제의가 들어왔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부분의 장르가 스릴러였단다. 그는 수많은 시나리오 중 ‘거북이 달린다’를 택했다.
“감독이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는 것은 러브 레터와 같아요.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에 들면 감독과 데이트를 하지요. 전 시나리오에 대한 확답을 하기 전에 영화의 주 무대인 충남 예산에 내려가봤어요. 영화에서 표현되는 정서가 실제로 같은지 확인하려구요. 전 땅바닥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영화는 리얼리티다
그는 충청도 시골 형사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영화 배경지인 예산을 찾았다. 직접 충청도의 정서를 느끼는 것이 영화에 임하는 그의 첫 번째 작업이었다. 그는 사투리를 배운다고 배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지역 정서에 융화되면 저절로 익혀지는 것이다.
김윤석의 고향은 충북 단양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부산으로 내려가 20년 넘게 살았다. 충청도 사투리를 써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사투리를 현지인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구사해냈다.
“원래 편해 보이는 생활 연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거든요. 미세한 진동까지 표현해야 하는 섬세함이 필요하죠. 대부분 사람들이 충청도 사투리는 끝에 ‘~유’만 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군요. 은유와 도치, 허를 찌르는 표현 등이 충청도 사투리의 진짜 멋이었어요.”
발군의 연기는 사투리뿐만이 아니다. 그가 범인에 의해 손과 발에 수갑에 묶인 채로 어쩔 줄 모르며 걷는 신은 저절로 웃음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장면은 일부러 연습하지 않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수갑 하나에 손과 발이 동시에 묶이는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상황을 즉석에서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하는 행동을 자연스레 담아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다리에 힘이 없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수갑은 움직일수록 조이는데 닭싸움 자세로 몇 발자국도 뛰지 못하겠더라구요(웃음).”
그는 전작의 흥행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추격자=김윤석의 영화’라는 이유로 이번 영화 ‘거북이 달린다’를 보러 오는 관객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입소문이 나기 전 관객 동원력은 성공한 거잖아요?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처음 ‘추격자’를 택할 때도 200만 명만 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영화 ‘추격자’는 관객 수 500만 명을 기록했다). 관객이 스릴러란 장르를 그렇게 많이 볼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현재 ‘거북이 달린다’는 개봉 첫주에 50만 관객을 돌파해 외화 ‘터미네이터: 미래의 전쟁’보다 많은 관객 수를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선전하고 있다.
“전 영화가 개봉하고 나면 가족과 여행을 떠납니다. 후반 작업, 홍보 일정을 봐가면서 가족과 놀러갈 궁리를 해요. 배우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일만 없으면 평일에 놀러갈 수 있잖아요. 대신 휴일에는 절대 안 나갑니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어디를 가도 주목하는 시선이 많아졌다. 김윤석은 요즘 가족이 공공장소에서 불편해지는 것이 가장 마음에 쓰인단다. 어린 딸들은 아직 아버지가 배우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마흔 살이 다 되어 영화계에 데뷔한 늦깎이 배우 김윤석. 거북이같이 꾸준하게 달려온 그의 뒤에는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이 있었다. 앞으로도 김윤석에게 우리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명품 생활 연기’를 기대해본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