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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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함께 있어주지 못해 두 아들에게 미안해요.
ㆍ열심히 개그해서 갚아 나갈 겁니다”

‘정만호’라는 이름보다 ‘만사마’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2003년 SBS-TV‘웃찾사’에서 ‘동남아 보이스’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왜 없어’, ‘싸스’ 등의 코너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 정만호가 컴백했다. 가수 데뷔와 뮤지컬, 연기 등 외도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온 정만호.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의지로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도약하는 그를 만났다.

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다시 돌아온 웃찾사,
오랜 외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느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얼굴을 가졌다는 것은 개그맨에게 축복 아닌 축복이다. 개구진 표정, 묘한 미소, 독특한 음색,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정만호는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보는 사람은 웃음을 참고 있는데 정작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많은 분들이 그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궁금해하세요. 언론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앨범 활동도 하고 뮤지컬도 했어요. 외도를 좀 했죠. 다시 ‘웃찾사’를 시작하고 보니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에요. 이제 다시 차근차근 제 페이스를 찾아가야죠.”

그의 노래 실력은 그동안의 코너들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원래 꿈은 가수’라는 말을 할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는 그는 개그맨 활동을 쉬는 동안 앨범을 3장이나 냈다. 앞으로도 개그를 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노래할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쉬었던 개그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 원년 멤버와 제작진이 모여 전격 개편을 시행한 ‘웃찾사’의 ‘얼굴마담’이 되다 보니 어깨가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다.

“모두들 각오가 대단해요. 한창 전성기였던 시청률 30%를 바라보고 있어요. 현재 5%에서 3개월 안에 무조건 12%를 만드는 게 목표예요. 새벽까지 아이디어 회의하고 연습하면서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는데도 힘든 줄 모르는 걸 보니 역시 개그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요즘만큼 개그에 집중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사실 맨 처음 개그를 시작할 때 ‘개그만이 살 길이다’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2002년도에 한창 드라마 엑스트라를 하고 있었어요. SBS 개그맨 공채 공고를 보고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시험을 봤는데 최종까지 한번에 통과가 됐어요. 마지막 심사에서는 무대에 올라가 고개를 들자마자 ‘타고난 외모’ 덕분에 심사위원들이 ‘빵’ 터졌죠. 개그맨 시험을 많게는 50번도 넘게 본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어요.”

하지만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공채 개그맨이 됐으니 이제 방송에 나가겠구나’라는 희망은 산산이 무너진 채 대학로 공연장에서 3년 동안 혹독한 트레이닝을 치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방송국이에요. 김태현, 김신영, 윤택 등 잘나가는 동기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죠. 그땐 정말 개그에 미쳐 살았어요.”

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제2의 전성기 향해 다시 한번 도약하는 ‘만사마’ 정만호

17세·10세 두 아들의 아빠,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3년간의 트레이닝 기간 동안 힘들었던 건 그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한 가정의 가장인 동시에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두 아들의 아빠인 그가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미안함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개그맨 하기 전에 6년 동안 중국집을 하면서 모아뒀던 돈을 대학로에서 3년 동안 트레이닝을 하며 다 써버렸어요. 무능력한 가장에게 한 소리 할만도 한데 잔소리도 안 하고 묵묵히 지켜보면서 기다려준 아내에게 지금도 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서른넷인 그에게는 현재 열입곱 살과 열 살짜리 아들이 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갑자기 아이를 갖게 돼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리게 된 사연이 공개돼 한동안 화제가 됐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들을 아버지 호적에 올리고 공장 노동자와 오토바이센터 기술자, 중국음식점 운영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누구보다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다. 그때의 경험은 그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을 가지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열일곱에 큰애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벌써 열일곱 살이 됐어요. 빠르면 쉰 살 안에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아이들한테는 항상 미안하죠. 아이들 방학인데 함께 놀아주지도 못하고…. 얼마 전에는 아이들이 물놀이 가자고 조르더라고요. 그런 말이 나오기 전에 제가 먼저 해줬어야 했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어요.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 텐데 요즘엔 회의하고 연습하느라 집에도 잘 못 들어가거든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애들이랑 게임이나 목욕도 같이하고 애정표현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해요. 뽀뽀도 자주 해주고 TV 볼 땐 항상 안고 있어요. 가족간에 스킨십이 중요하잖아요.”

아이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가족과 함께 휴가라도 다녀와야 할 텐데 요즘 같아선 그럴 여유가 없다. 열심히 해서 다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다. 아직 결혼식도 올려주지 못한 아내에겐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다.

“가족들에겐 앞으로 살면서 평생 갚아야 할 것들이 많아요. 항상 사랑하고, 항상 미안하고, 항상 존경하며 더 노력해서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남편과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 나갈 생각이에요. 열심히 개그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타가 되고 유명해지면서 스스로 자만했다”라고 솔직히 말한다. 전성기 시절 승승장구하며 머릿속에 생겨난 엄청난 거품과 자만심이 헝그리 정신을 잊게 하고 초심을 잃게 했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다하는 개그맨, 아이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지켜봐주세요.”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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