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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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영화 시사회 후 성공이냐, 실패냐는 감(?)에 따라 식사 메뉴가
ㆍ달라지죠. 다채로운 메뉴의 한식집에서 지하 자장면집까지…”

박찬욱 감독을 말할 때 송강호, 신하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남자는 나란히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에 출연했고, 박찬욱 감독의 최근작 ‘박쥐’에서도 연기 호흡을 맞췄다. 박찬욱 감독과 두 남자가 롤러코스터와 같은 성공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한다.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명실 공히 한국의 대표 감독인 박찬욱(46). 그는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리고 최근의 화제작 ‘박쥐’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이슈를 불러 일으켜 왔다. 2004년 ‘올드보이’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2009년 ‘박쥐’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피시탱크’와 공동 수상)을 받으며 해외에서도 실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소피 마르소를 비롯해 해외 스타들까지 그와 함께 작업할 날을 기다릴 정도.

그런 그에게도 실패는 있었다. 최근 개봉한 ‘박쥐’는 칸영화제의 수상 소식에도 흥행 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정지훈과 임수정의 사랑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박 감독이 가장 싸늘한 반응을 경험한 영화는 바로 ‘복수는 나의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 이후 제작되었고, 전작의 흥행에 큰 공을 세운 송강호, 신하균 두 배우가 그대로 캐스팅되었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대단히 실험적이고 과감한 편집, 지나치게 어두운 내용, 당혹스러울 정도의 잔인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저주받은 걸작’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누나의 병을 고치기 위해 류(신하균 분)는 자신의 전 재산인 1천만원에 신장까지 팔게 된다. 그러나 결국 사기를 당해 돈을 잃게 되자, 동진(송강호 분)의 딸을 납치한다. 이야기는 의도치 않게 아이가 죽으면서 꼬이게 된다. 자신 때문에 아이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안 누나는 자살을 하고 류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사기꾼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동진 역시 류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공동경비구역JSA’ 때와 너무 다른 분위기
‘복수는 나의 것’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와 함께 ‘복수 3부작’으로 묶인다. 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박찬욱 감독전’에서 감독과의 대화에 앞서 이 영화가 상영된 것은 숨겨진 명작을 재평가하려는 속내도 있는 듯했다.

“여간해선 제가 만든 작품을 다시 볼 일이 없어요. 오랜만에 봤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이제는 ‘덜 이상한 영화’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기운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더군요.”

박찬욱 감독은 기억을 더듬어 당시 이 영화를 발표했을 때 느꼈던 심상치 않았던 분위기를 회상했다.

“언론 시사회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어요. 일단 시사회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중국집에 갔는데 메뉴부터 다르던데요. ‘공동경비구역 JSA’ 때와는 다른 음식들이 나왔고….”

그러자 옆에 있던 송강호가 거든다.

“전작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잖아요. ‘공동경비구역 JSA’가 크게 성공하고 아주 분위기가 좋았어요. 그때는 큰 한식집에서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았죠. 그런데 몇 달 후 똑같은 날 개봉했는데, 지하에 있는 중국집으로 가는 거예요. 맥주가 세 병 나오고….”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박찬욱이 옆에서 “맥주가 미지근했다”고 장단을 맞추자, 송강호는 “워낙 오래된 집이라 바퀴벌레도 나오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장면을 먹었다”며 당시 상황을 코믹하게 전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꾸준히 해외에 알려지면서 최근에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신기한(?) 기록을 세웠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저를 욕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죠. 감독을 죽이러 간다는 둥…. 그랬던 영화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가 알려지면서 덩달아 관심받게 됐어요. 복수 3부작이라는데, 또 하나가 ‘복수는 나의 것’ 이라는 영화래 하면서요. 그러더니 수출도 조금씩 됐죠. 그래서 (이 영화가 개봉된 지 7년 만에) 지난달에 손익분기점을 넘겼어요. 영화배급사 해외팀으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감격했죠.”

배우들, ‘복수는 나의 것’ 찍으면서 다른 작품 계약해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감독과 배우들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가운데, 송강호와 신하균은 ‘복수는 나의 것’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이 두 사람이 처음 시나리오를 받은 직후의 첫인상은 극과 극이었다. 일단 신하균은 첫눈에 반했다.

“전 정말 좋았고 흥분됐죠. 내가 이런 영화를 할 수 있구나, 하고 마냥 좋았고. 굉장히 큰 숙제를 안고 시작했어요. (극중 농아로 나오기 때문에)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이에 반해 송강호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거절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을 세 번 거절했어요. ‘… JSA’가 성공하고 좋은 반응을 얻고 난 후라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거절하기 참 힘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받고 바로 다음날 신하균씨한테 전화를 했죠. ‘어떻게 하기로 했니?’ 그랬더니 바로 ‘너무 좋던데요. 하기로 했어요’ 하더라고요. ‘야, 정말 대단한 배우구나’ 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렸죠. ‘나는 거절할 수 있겠구나’ 하고. 왜냐하면 전작의 결과도 좋고 다 좋았는데, 한 사람만이라도 출연한다니 예의상 덜 미안하잖아요. 제가 선배지만 굉장히 새로운 영화를 받아들이는 신하균씨의 태도가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결국 네 번째 러브콜에 응하게 된 송강호. 그러나 촬영하면서도 개봉 이후의 반응과 평가, 이후의 진로에 대해서까지 우려했단다.

“전북 순창에서 신하균, 배두나와 즐겁게 촬영하면서 다 같이 이야기했죠. ‘이 영화 개봉하면 우리 모두 골로 가니까(‘끝’이라는 의미) 바로 다음 작품 계약하자’ 하고. 그 정도로 배우가 느끼기에도 대중영화로서 획기적이고 이질적이었어요. 그래도 그 정도일 줄 몰랐죠. 개봉하고 나서 반응이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관객은 아직 새로운 영화에 대해 탄력성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복수는 나의 것’을 촬영하던 중 송강호는 영화 ‘YMCA 야구단’을, 신하균은 ‘지구를 지켜라’의 출연 계약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영화 모두 오랫동안 사랑받은 영화다.

‘복수는 나의 것’ 이전 송강호는 유머러스하고 사람 냄새 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나름 파격적인 변신을 한 것이다.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차가운 이미지든 따뜻한 이미지든, 기본적으로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감상적인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인데, 오늘 제 연기를 다시 보면서 ‘덜 감상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더 냉소적이었다면, 아마 관객이 더 안 들어왔겠죠(웃음). 그럼에도 엔딩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감상적인 것 같아서 아쉬운 느낌이 있네요.”

신하균으로서도 이 영화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씌어 있으니까 해야죠. 처음 감독님의 요구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건조한 연기였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대사도 거의 없고, 수화로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요. 지나고 보니 제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당시에 젊은 기운으로 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 송강호가 맡은 동진은 전 재산을 털어 죽은 딸을 위해 복수하는 인물이다. 송강호에게도 딸이 있기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촬영했다.

“딸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찍을 때 도움이 됐어요. 슬픈 장면에서 구체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되죠. 실제로 촬영할 때 딸을 생각했어요. 그러나 다른 장면들에서는 친구나 가족을 생각하기보다 그 상황에 철저하게 몰입했어요.”

박찬욱, 왜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었나
‘… JSA’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른 박찬욱은 전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따뜻한 영화였다면 차가운 영화를, 감정이입이 된 영화였다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했다.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정감이 넘치고 따뜻한 영화를 찍고 나니까 다음 영화는 냉정하고 비정한 영화, 인정사정 안 봐주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었죠. 또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는 영화, 감정을 차단하고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영화요. 편집도 익숙한 리듬으로 가지 않고, 감정이 생길 만하면 끊어지고 음악이나 모든 면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의도했어요. 화면에 유난히 빈 곳이 많고 편집도 예측불허인데, 그런 것들이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더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끼게 했던 요소 같아요.”

이 영화의 엔딩신은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진이 류의 아킬레스건을 끊고 죽인 다음 끝이 나는 듯하지만 결국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회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엔딩 후보로 수십 가지가 있었어요. 잘 생각이 안 납니다만, 일단 류를 풀어주는 엔딩도 있었어요. 결국은 못 죽이고 놔주는데, 마음을 또 바꾼 강호씨가 차를 몰고 뒤에서 돌진하는 거예요. 이 엔딩은 다들 반대했는데, 봉준호 감독한테 말했더니 좋다고 해서 그거 믿고 했죠.”

박찬욱 감독이 이 엔딩을 좋아했던 이유는 황당무계하고 혼란을 느끼며 여러 가지 상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밖에도 병원으로부터 아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로 대꾸하는 엔딩이나, 동진이 물 밖으로 나올 때 죽은 딸이 업혀 있는 엔딩도 있었다. 어쨌든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 엔딩에도 있다. 바로 칼에 찔린 송강호가 중얼거리면서 가슴에 칼로 꽂힌 종이를 보는 장면이다.

“실제 시나리오에는 없는 장면이고, 그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추측해보면 ‘내가 왜 죽어야 하나’ 정도겠죠. 원래 의도도 정확하게 들리지 않도록 연기를 했어야 했어요.”

동진이 류를 죽이기 전에 “너 착한 사람인지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명대사다.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어쩔 수 없는 복수다.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송강호, 신하균 그리고 박찬욱이 털어놓는 ‘저주받은 걸작’

“아비의 심정을 이해하지 않겠느냐, 라며 동의를 구하는 장면이에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영어 제목(Sympathy For Mr.Vengeance)에서 나타나듯, 서로 원수고 못 죽여서 안달인 두 남자의 이상한 동정에 관한 영화예요. 후반부의 서로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구나.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 거예요. 반대편 레일을 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공감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복수는 나의 것’에 대한 추억은 끝이 없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곱씹을 게 많은 영화, 여전히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박찬욱과 송강호, 신하균 이 세 남자는 성공과 실패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할 말이 더 늘었다.

송강호는 ‘의형제’를 한창 찍고 있으며, 신하균은 ‘카페 누아르’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다. 다음 영화는 한국이 아닌 할리우드에서 찍을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박찬욱 감독은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으며, 일단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제작에 전념하고 있다. 조만간 세 사람이 다시 뭉쳐 두고두고 이슈가 될 영화를 한 편 더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글 / 두경아 기자 ■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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