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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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야 치유되는 도박중독, 모두의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연예인들의 해외 원정도박, 도박에 빠져 회사 공금 900억원을 횡령한 회사원,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1명이 도박중독이라는데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 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 조현섭 센터장과 도박중독극 ‘돌아오는 길’을 준비하고 있는 탤런트 임호, 두 사람이 도박중독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도박중독은 평생진행형, 다방면에서 집중관리 필요
중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물이나 알코올, 도박중독뿐 아니라 섹스, 일, 주식, 쇼핑까지 우리는 심심찮게 ‘중독’이라는 말을 붙인다. 모든 중독이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 중 한 번 중독되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도박이다. 조현섭 센터장이 이야기하는 도박중독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었다.

“중독자가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치유된 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고 재발하게 되면 그동안의 치유과정은 없어진 채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도박중독의 특성이에요.”

도박중독은 고혈압이나 암처럼 약물로 조절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이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본인의 의지는 물론 도박 후유증을 위한 약물치료와 가족들의 도움, 상담과 치유활동 등 다방면에서 집중적으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만큼 회복이 힘들다.

“도박중독에는 ‘치료됐다(Recovered)’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요.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진행형, 회복 중인 상태(Recovering)인 거죠. 죽고 나서야 끝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무섭고 끊기 힘든 중독이에요.”

한 번 도박에 빠졌던 사람이 20년, 30년 동안 도박을 끊었어도 스스로 ‘도박중독자’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도박 문제로 한 번 거론됐던 연예인들이 같은 뉴스로 여러 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죽을 때까지 반복되는 도박중독의 특성 때문이다.

“오른손잡이가 어느 날부터 왼손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면 왼손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굉장히 급한 상황이나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오른손이 튀어나오는 거죠. 도박중독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돼요.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마음먹어도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습관처럼 도박에 손을 대게 되는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도박중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약물중독이나 알코올중독만 해도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하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도박중독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어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 문제를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8년도 사행산업 이용실태 조사(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도박 유병률은 9.5%로, 19세 이상 성인 인구를 기준으로 할 때 359만 명으로 10명 중 1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2~3%인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도박 빚, 절대 갚아주지 마라
최근 도박중독 치유를 위해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연극을 통해 중독자와 가족들을 돕는 중독치료극이다. 현재 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는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도박중독 예방 주간에 맞춰 도박중독 치료극 ‘돌아오는 길’을 준비 중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공연되는 이번 작품에 탤런트 임호가 주인공을 맡아 한여름 동안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 역시 도박중독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단다.

“저 역시 공연에 참여하기 전까지 ‘도박중독’ 하면 굉장히 멀게 느꼈어요. 저 같은 경우 고스톱이나 포커 같은 게임은 일 년에 한 시간이나 할까 싶거든요. 성격 자체가 활동적이어서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걸 잘 못해요. 등산과 운동을 좋아해서 가끔 명절 때 친척들이 모여서 화투를 칠 때도 잘 끼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성격이어서 도박에 빠지는 분들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었는데 도박중독자 역할을 하며 그 심각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에요.”

배우들이며 스태프들 모두 연습을 하며 “우리는 연기중독자여서 다행이다”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로, 연기를 통해 간접 경험한 도박중독자와 그 가족들이 갖고 있는 상처는 너무나 처절했다.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운 한 가정이 도박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회복되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많은 분이 도박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또 도박중독에 대해 생각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하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비극적이에요. 연극이라 극적인 요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실제 중독자들의 삶은 연극이나 영화보다 더 비참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여러 중독 중 특히 가족과의 화해가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도박중독이다.

“아이 분유값은 물론 아이 돼지저금통까지 털어서 도박장에 가져가요. 줄줄이 사돈에 팔촌한테까지 돈을 빌려서 파산 상태에 이르죠. 가족들의 용서가 힘들어요. 그게 도박중독이 다른 중독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도박에 빠지면 빠져들수록 가족은 물론 주위 사람과 사회에서 고립되게 됩니다.”(조현섭 센터장)
도박중독자들이 주변과 고립된다는 데에는 임호도 고개를 끄덕인다.

“미국에서 공부 중인 친한 친구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다음 학기 등록금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돈이 필요하게 됐으니 50만원만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계좌번호를 받아놓고 혹시나 해서 다른 친구들에게 알아보니 도박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한국에서는 그랬던 친구가 아닌데 유학 중에 사람들과 어울려 카지노를 다니다가 도박에 빠져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모두 날린 거죠. 그 와중에도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계속 도박을 하고, 절대로 큰 돈을 부탁하지는 않아요. 그게 참 묘해요. 500만원은 빌려주기 힘들지만 50만원은 가능하거든요.”

도박중독자들은 절대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단다.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작은 돈을 계속 빌리면서 도박을 하고 나중에는 돈을 빌리기 위해 거짓말과 사기까지 서슴지 않는다. 얼마 전 도박에 빠져 900억원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도박꾼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집 팔아먹는 것은 기본, 사기에 공금횡령까지. 그러다보니 반사회적 인격이 형성되는 건 시간문제다. 도박중독이 개인과 가정, 회사, 경제, 국가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조 센터장은 도박중독자 가족들에게 “냉정한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빚을 갚아주기 시작하면 지금 100만원이 다음에는 200만원, 1000만원이 됩니다. 자식 카드빚 갚아주다가 함께 손 붙잡고 치유센터 오시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스스로 진 빚은 스스로 갚게 하고, 도박으로 진 빚은 절대로 갚아주면 안됩니다. 부도를 맞더라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해요. 가족 중에 도박중독자가 있으면 최대한 주변에 알려서 돈을 빌리지 못하게 하세요. 가족으로서 정말 힘든 부분이죠. 감추면 감출수록 중독자는 더 고립됩니다. 정말로 가족을 도박중독에서 구하고 싶다면 냉정해지세요.”

용서받을 수 없는 중독 도박, 작은 증상부터 문제 인식해야
스스로 ‘연기중독’이라고 말하는 임호는 한편으로는 중독이 시작되는 계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리는 기분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첫 무대에 섰을 때 그 희열, ‘빅윈(Big Win)’을 잊지 못해요. 대학교 1학년 때 무대 위해서 처음 했던 대사가 ‘장군!’ 딱 한 마디였거든요. 조명에 반짝이는 관객들의 눈빛을 받으며 느꼈던 긴장과 떨림을 극복하고 첫 마디를 내뱉었을 때의 그 짜릿했던 감동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겁니다. 그걸 느낀 사람들은 누구나 연기중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무대를 잊지 못하고, 무대를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요. 어떤 면에서 보면 저 역시 중독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조현섭 센터장과 탤런트 임호, 도박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다

문제는 숨기고 덮어두면 곪는 법이다. 도박중독에 대해 공론화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중독자 중 일부는 스스로 치유센터에 찾아가 자발적으로 치료 의사를 보이지만 그렇게 용기를 내기까지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 어느 정도가 되어야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명절에 한두 번 하는 건 괜찮습니다. 주기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 서서히 중독에 접어드는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다음에 본인에게 부담이 되는 액수를 도박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면 중위험군, 하루 종일 도박 생각을 하고 도박을 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고위험군이에요. 술을 마시다 보면 주량이 느는 것처럼 도박도 할수록 점점 액수가 커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독’ 하면 폐인이나 아주 회복 불가능한 사람을 떠올려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크죠. 꼭 심각한 상황이 벌어져야만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 친구들과 재미로 했던 도박이 자꾸 생각난다던지, 혼자 자발적으로 도박을 하기 시작했다던지 등 작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부터 문제를 인식해야 합니다.” (조현섭 센터장)

개인 심리뿐 아니라 사회성, 정신적·심적인 문제까지 총체적인 부분에 걸쳐 나타나는 도박중독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도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가 연계해 분주히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는 음악과 독서, 미술, 원예, 연극 등 여러 활동을 통한 대안요법으로 중독자들의 관심을 건강하고 긍정적인 분야로 환기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담배 끊을 때도 주변에 한두 명만 같이 끊으면 훨씬 쉬워지잖아요. 중독자 분들도 같은 일을 겪으신 분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교류하면 회복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어요. 간접경험이지만 도박중독자를 연극하면서 인생의 나락에 떨어졌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역할극만큼 내적충동을 일으키는 장치도 없어요. 역할극을 하면서 스스로와 자꾸 만나게 되거든요. 중독자분들이 직접 참여하시면 도박으로 불행해진 자신의 자아를 대면해 마음의 얘기를 나누시게 될겁니다. 깨닫고 용서하고 보내는 작업을 통해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임호)

“도박중독 회복자의 가족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문 상담가의 전화번호를 10년 동안 지니고 계셨대요. 번호를 갖고 있으면서도 막상 전화를 못 거신 거죠. 많은 분들이 문제가 심각해지고 나서야 도움을 청하세요. 도박중독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됩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 분들도 조금이라도 기미가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현섭 센터장)

도박중독 자가 테스트

0점(없음), 1점(가끔), 2점(때때로), 3점(거의 항상)

1 경제에 큰 타격을 줄 만한 금액을 도박에 걸어본 적이 있다.
2 도박을 할 때 흥분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걸어야 한다.
3 도박에서 잃은 돈을 찾기 위해 다음날 또 도박을 한 적이 있다.
4 도박을 하기 위해 돈을 빌리거나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판 적이 있다.
5 스스로 자신의 도박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6 도박 때문에 스트레스나 불안감과 같은 건강상의 문제를 경험했다.
7 주위에서 도박에 너무 큰 돈을 건다거나 도박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8 도박으로 인해 본인이나 가족이 경제상의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9 자신이 도박하는 행동이나 도박 후의 결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

진단 결과
0점
비도박자 혹은 낮은 위험집단. 도박중독에 문제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1~2점 위험집단. 도박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통제와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3~7점 문제성 도박자. 도박에 점점 빠져들며 조금씩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활을 관찰·조절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도박 문제로 생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위험한 단계로, 생활 점검을 하고 혼자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8점 이상 병적 도박자. 도박중독 단계로 모든 생활이 도박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심각한 악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 현재의 상태는 혼자서 해결하는 것이 어려우며 중독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당장 도움을 받아야 한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자료 제공 /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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