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봉사활동을 마친 한지민이 직접 쓴 포토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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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불빛조차 없는 깜깜한 알라원의 밤. 그곳에서 들려오던 피리 소리…
ㆍ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할게요”

필리핀에는 휴양지의 화려한 이미지에 가려진,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오지마을이 있다. 마닐라 공항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2시간을 가야하는 민다나오 섬. 그 섬의 해발 2,000m에는 알라원이라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18km를 걷고 또 걸어 오지마을에 사는 30여 명 어린이들을 찾아 배우 한지민이 떠났다. 그녀가 직접 쓴 알라원에서의 4박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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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원 서포터즈, 이렇게 모였어요
저, 한지민의 꿈 중 하나는 실버타운을 직접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노인 문제에 관심이 생겼지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학에선 사회사업학과를 택했고 배우가 되기 전에도 수시로 봉사활동을 다녔습니다. 2007년부터는 한국JTS 홍보대사가 되어 거리 모금과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한국JTS는 민다나오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해 학교를 지어주고, 선생님이 부임할 수 있게 지역 정부를 설득하고, 생필품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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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아, 필리핀 산골마을에 학교를 하나 지어주면 어떨까?”
몇 달 전에 작가 노희경 선생님이 문득 꺼낸 말씀이었습니다.

“하, 학교를 지어요? 어떻게 지어요? 나무라도 사서 기부하나요?”
알라원에 학교를 짓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의 일입니다. 봉사단체에서 건축자재를 지원하고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모아 학교를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건축 기술도 없고 왕복 8시간이나 되는 산길을 걸어서 자재를 운반해야 하는 상황에 주민들 모두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난과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힘을 합쳤습니다. 마침내 2006년 8월에 학교가 완성됐습니다. 일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학교를 보러 가기로 한 것뿐이었습니다. 한국 JTS의 열혈 활동가 노희경 선생님과 우리 회사 이정희 대표님, 그리고 저 셋이서 자비로 필리핀을 타녀오기로 한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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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알라원 마을까지 가는 18km의 산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수없는 반복이었습니다. 다 왔나보다 하면 고갯길이 나오고, 또 다 왔나 싶으면 어김없이 오르막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5시간을 계속 걷자니 나중엔 내리막길이 나와도 ‘다 왔으려니’ 하는 기대가 생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이 등산 때문에 제 별명은 다람쥐가 됐습니다. 동료들을 앞질러 성큼성큼 걷다 보니 알라원에 1등으로 도착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눈앞에 마을이 보입니다. 학교 앞 커다란 너럭바위 위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손을 흔듭니다.

“야호! 드디어 다 왔다! 마용 분타(안녕하세요)!”
마을 주민도 모두 학교에 나와 우리를 지켜봅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도 마주 웃어주는 얼굴이 없습니다. 긴장한 걸까? 아직은 어색한 걸까? 몇 년 전 학교에 처음 부임한 선생님이 주민과의 불화로 하루 만에 산을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 혼내는 걸 이해하지 못해 생긴 충돌이었답니다.

서로 마음의 문을 충분히 열지 못해 일어난 일일 것입니다. 얼어붙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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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피리를 나눠줍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최고의 수단, 음악! 그 음악을 소리로 표현해주는 악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악기에 입을 대고 불면 소리가 나지요? 여기 있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모두 막아보세요. 그리고 구멍을 하나씩 열 때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데 이걸 이용해서 노래를 연주하는 거예요.”

아이들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구멍을 열었다 막았다 하면서 제멋대로 가락을 만드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습해볼까?” 빠른 아이들은 그걸 금세 따라 합니다. 욕심이 납니다! 더 알려주고 싶고,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피리는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장난감이기도 했습니다. 불빛이라고는 별빛과 반딧불이의 반짝임밖에 없는 어두운 알라원 산중에 울려 퍼지던 피리 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피리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과 우리가 나눈 언어였고, 오락이었고, 서로를 사랑한 수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따다준 꽃은 최고의 이별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따다준 꽃은 최고의 이별 선물이었다.

파티! 파티! 떡볶이 파티!
간식으로 떡볶이를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매워할까봐 고추장 대신 간장 조금, 비상식량으로 가져간 온갖 참치캔을 넣은 퓨전 떡볶이! 맛은… 아이들이 떡볶이의 맛을 오해할 만큼 오묘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무 불평 없이 맛있게 먹습니다. 무슨 음식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다 먹었으니 더 달라고 하는 아이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순박하고 욕심이 없을까요?

그런데 음식을 받으러 온 아이들이 한 손으로 접시를 내밉니다. 저는 일부러 두 손으로 받고 두 손으로 주면서 “살라맛!”이라고 인사를 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이 곧 나를 따라 두 손으로 빈 그릇을 내밀고 두 손으로 음식 접시를 받으며, “살라맛!”이라고 답해줍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일들이 이젠 이 아이들에게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지민표’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준 아이들.

‘한지민표’ 떡볶이를 맛있게 먹어준 아이들.

이제 걱정하지 않아요!
하루가 아주 길고, 또 너무 짧습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자꾸 생겨납니다. 활짝 열어젖힌 마음에 넘치도록 사랑을 쏟아 부어준 이 아이들 때문에 가슴은 터질 듯 행복한데, 한편으로는 자꾸 아쉬움과 걱정이 쌓입니다.
“여러분의 선생님이에요!”라고 말했는데 사흘이라는 짧은 일정 뒤에는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것! 사실 서울을 떠나올 때부터 그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알라원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곧 떠나야 합니다.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을 할 수도 없습니다. 순간순간이 아쉬워 더 꼬옥 안아주고 더 웃어주는 것이 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허전함을 심어주는 일이 되면 어쩌나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안은 다 잊었습니다.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함께 있는 이 시간을 더 따뜻하게, 더 행복하게 채우고 즐기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웃는데 내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눈물이 많아 연기할 때도 잘 우는 성격이라 떠나올 때부터 이 순간을 걱정했습니다. 헤어질 때 울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아이들의 손에, 손에 들린 맨발로 젖은 숲을 헤치고 다니며 따온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총천연색의 꽃다발들! 아무리 둘러봐도 알라원은 온통 초록색뿐인데, 이 화려한 빛깔의 꽃이 어디 숨어 있었던 걸까? 아이들은 눈물 대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이별을 이토록 아름답게 바꿔준 나의 친구들, 고마워!

■기획 / 이유진 기자 ■글&사진 제공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한지민 저,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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