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병헌이와의 술 약속도 벗는 신 이후로 미뤘어요”
말랑말랑했던 이범수는 잊어라. 무술과 체중 감량으로 다진 탄탄한 몸에서는 액션배우로서의 포스와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 영화 ‘홍길동의 후예’에서 고난도 액션신을 직접 소화해내는 이범수를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대역은 NO! 실감 나는 연기 위해 리얼 액션
이범수의 액션 연기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대역을 써도 좋을 위험한 장면을 그가 직접 소화해내고 있다.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걱정을 할 정도다.
“제가 직접 하고 싶었어요. 어려운 장면을 직접 했다고 티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우의 얼굴이 직접 나와야 긴장감 있고 보는 사람 입장에도 집중력이 생기거든요. 액션은 달리든, 구르든 신의 긴장감으로 이루어지죠. 제가 한 번도 액션 장르를 제대로 선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받고 매력을 느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하게 된 거고요.”
물론 이범수는 그동안 조직 폭력배 역할이나 싸움이 빈번히 등장했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영화들은 액션 영화라 불리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동안에는 액션 영화가 아닌, 액션 장면이 있는 영화에 출연했던 거죠. 마구잡이로 때리고 싸우고 구르는 차원이요. 이번 영화는 기술적으로 액션 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는 것들을 요하기 때문에 캐스팅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습했어요. 다른 영화 촬영이 있는 날에도 끝나면 연습하곤 했으니까요.”
액션 영화를 위해 그는 지난 세 달 동안 매일 서너 시간씩 무술 연습을 했다. 한 시간은 구르기, 뛰기, 넘기, 다음 한 시간은 발차기, 앞차기, 옆차기, 뒤돌려 차기, 마지막 한 시간에는 낙법을 배웠다. 제대로 액션을 연습한 셈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뛰기도 했다. 그것도 러닝머신 위에서가 아닌 운동장에서였다.
“사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은 제자리뛰기에 가깝죠. 앞으로 치고 나가는 느낌이 없기 때문에 이번 작품을 위해 운동장을 많이 뛰었어요. 그런데 정말 뛰는 신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구두를 신고 꼬박 닷새를 뛰고 있거든요. 그덕분에 장면은 화려해지고 풍부해졌죠.”
“구두에 쿠션을 대고 달리면 어떠냐”는 말에는 “쿠션으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며 웃었다. 그러나 구두를 신고 달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밥 못 먹으면서 4kg 감량, 보람은 몇 배
날렵해 보이기 위해 체중 감량은 필수다. 실제로 그는 얼굴이 눈에 띄게 야위었다. 인터뷰 자리가 식당이었는데, 그는 “밥 먹는 거, 참 오랜만이다”며 웃었다.
“영화 ‘킹콩을 들다’ 때보다는 선명해지고 날렵해졌어요. 체중은 4kg 정도 빠졌고요. 밥을 못 먹은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네요. 만날 샐러드 같은 것만 먹어요. 닷새째 액션신을 찍는데, (힘이 부칠 때는) ‘밥 많이 먹고 찍을 걸’ 하면서도 ‘아니야’ 하고 마음을 다잡아요.”
운동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영화 ‘고사’가 끝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몸만들기에 집중했다.
“영화 ‘고사’는 강행군이었어요. 5월에 들어가서 6월 마지막 주까지 촬영한 다음, 8월에 개봉했으니까 두 달 일주일 정도 걸렸네요. 영화가 끝나고 숨을 돌리면서 ‘뭐 할까?’ 생각하다가 다음 작품까지 3, 4개월 남은 상황이니까 제대로 몸을 만들어보자, 생각했어요.”
운동과 체중 감량을 하다 보니 연기자로서의 인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시나리오가 들어오게 된 것.
“요즘에는 액션이나 남성적인 역할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젠 나한테 기대하는 모습이 이런 거구나 생각해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몸을 만들고 자신을 계발하는 것은 다 그런 이유니까요.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벗는 장면이 나와요. 그런 신이 있으면 일단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이 실망하면 안 되니까 그럴듯한 몸을 만들어야죠. 평소에 술, 담배 안 하면서 관리한 보람이 느껴지죠.”
벗는 장면을 앞두고 잔뜩 긴장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의 촬영 날짜가 자꾸 미뤄졌다. 집중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셈. 다행히 이 같은 어려움은 친한 동료인 이병헌과 나누고 있다.
“원래 초반부에 찍어야 했는데 후반부에 찍게 됐어요. 힘들죠. 병헌이도 ‘아이리스’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술 먹자고 전화가 오면 ‘벗는 신 끝나고 보자’고 해요. 병헌이도 영화에서 벗는 신이 있어서 ‘넌 언제 끝나냐?’ 물었더니 9월에 있다면서 그 신 끝내고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못 만나고 있어요(웃음).”
그는 연기할 때 가장 살아 있는 배우다. 힘든 액션을 소화해내는 것도, 독하게 식이 조절을 하는 것도, 어려운 무술을 익혀나가는 것도 모두 그에게는 행복이다.
“지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흥분되는 거죠. 그게 전 정말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벌써 포기할 텐데…. 실제로 억지로 참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연기자가 되지 않았더라도 연기했을 것 같아
영화 ‘고사’, ‘슬픔보다 슬픈 이야기’, ‘킹콩을 들다’에 연이어 출연했던 그는 하반기에 ‘홍길동의 후예’와 ‘정승필 실종사건’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해에만 네 작품이 개봉하는 셈. 그렇지만 그는 다작하는 배우라는 평에 대해서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개봉이 미뤄지거나 우정 출연한 작품 때문에 그래요. 한 해에 두 작품이면 정상적인 패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면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고 매력을 느낀 인물을 살아 있는 인물로 구현할 때 희열을 느끼게 되거든요.”
그는 진정으로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다.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열정과 사랑은 식지 않고 여전히 가슴속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제 스스로 연기에 대한 정열을 대학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학창 시절에 38편의 연극 작품을 했으니까요. 어마어마했죠.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구나,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만약 제가 연기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었더라도 회사 내에서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서 모임을 주도했을 것 같아요.”
지금의 이범수는 멋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슬며시 예전 이범수가 그립기도 하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편안했던 이범수.
“예전에는 소탈한 서민적인 역할, 악역, 멜로, 코믹을 많이 했죠. 말랑말랑한 이범수를 그리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옛날의 구수한 이미지, 저 또한 그런 이미지가 좋아요. 그래서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저 사람은 그거 하나는 잘해’라는 말을 뛰어넘고 싶었어요. 지금 맡은 인물은 또 다른 캐릭터인데 새로움에 대해 스스로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힘들게 얻은 근육질 몸매지만, 그는 새롭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는다면 얼마든지 포기할 자신이 있다.
“제 목표가 배우이지 속옷 모델은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말 나온 김에 80~100kg까지 찌워서 능글능글하고 비열한 이미지의 캐릭터에도 한 번 도전하고 싶어요.”
결혼? 이젠 외로움을 넘어선 것 같아
영화 ‘홍길동의 후예’는 언뜻 생각하기에 퓨전 사극 같은 느낌이 든다. 홍길동의 후손들이 밤이면 이중생활을 한다는 시놉시스 역시 액션보다는 코미디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홍길동을 어떻게 재현해낼지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극중 홍길동의 후예로 등장하는 홍무혁은 슈퍼맨처럼 낮에는 정상적인 직장인(교사)으로, 밤이 되면 홍길동의 후예로 밤의 세계를 활보한다. 일반인에서 홍길동의 후예로 변신하는 모습에서, 의상이 궁금해진다.
“의상은 다섯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졌어요. 돈 많이 들었죠.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장비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달았는데, 그 모습이 꼭 퀵 서비스 아저씨 같았죠. 그 다음에 주머니를 없앴는데 빙상 스케이트 선수나 전신 수영복 같은 형태가 된 거예요. 최종적으로 완성된 옷은 스파이더맨 의상처럼 몸 좋은 사람의 형태를 그대로 떠서 제작했어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복면도 마찬가지다. 복면을 하고 대사를 하면 전달이 잘 되지 않아서 두 개의 조각으로 나뉘게 제작했다. 이 대목에서 기자가 미심쩍은 눈빛을 보이자 그가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며 웃었다.
사랑에 있어서 한 차례 아픔을 겪었던 이범수.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도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는 것이 익숙해서일까? 지금은 사랑보다 일이 좋다고 한다.
“소개팅요? 이젠 쑥스럽고 남세스러워요(웃음). 이제는 외로움 그런 걸 넘어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결혼이나 인연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늘 촬영한 부분을 생각하고 내일은 오늘 찍은 마지막 신을 다시 찍자고 해볼까? 그런 생각뿐이에요.”
액션 배우로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이범수.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이다.
“힘들지만 타협은 없어요. 분명한 건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이범수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 어나더라이프컴퍼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