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ㆍ“미용실이 아닌 아버지가 짜주신 스케줄대로 미스코리아 준비해…
ㆍ 땀 흘려 얻은 ‘미’는 ‘진’보다 값져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는 딸의 말에 아버지는 “아빠가 계획한 대로 잘 따라올 수 있느냐”는 말로 허락을 대신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유명한 미용실로 보내는 대신 월 계획 화이트보드를 사서 스케줄을 관리하고, 유명 피부과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수소문했으며, 신문을 스크랩해서 읽을거리로 제공했다. 2009 미스코리아 박예주와 그녀를 미스코리아로 만든 아버지 박동순씨 부녀의 특별한 미스코리아 준비기를 들어본다.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미스코리아 당선 소감으로 자주 등장하는 멘트가 있다. 바로 “00 미용실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이다. 언젠가부터 ‘미스코리아가 되려면 미용실부터 가라’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미스코리아의 메카라 불리는 몇몇 미용실은 해마다 미스코리아들을 배출하고, 또 예비 미스코리아들은 해마다 미용실을 찾고 있다.

2009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된 박예주(22)는 이와 다른 길을 통해 미스코리아가 된 경우다. 그녀의 뒤에는 미용실 원장이 아닌 아버지가 있었다.

가슴속 간직한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하던 박예주.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가슴속에는 연기자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제게 끼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도 항상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죠.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나서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막상 유학 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것 같았어요.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결국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꿈이 더 생각났죠.”
결국 그녀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패션 공부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으니 늦기 전에 진짜 해보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어머니 송나윤씨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문제는 아버지 박동순씨였다.

“방송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경쟁력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어요. 그래야 아빠를 설득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길 테니까요. 가장 빨리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이잖아요. 특히 미스코리아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대회니까 제게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죠. 또 나중에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고요.”

그녀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여섯 장의 긴 편지를 썼다. 혹여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저녁 식사 전 편지를 내밀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아버지가 하루나 이틀 정도 생각하고 답을 해주실 줄 알았어요. 편지를 다 읽더니 선뜻 ‘해봐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진짜 혼신을 다해서 후회가 없도록 열심히 해봐라. 아빠가 계획한 대로 잘 따라와줄 수 있느냐’고 하셨어요. 그때는 아버지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허락하신 것만으로도 뛸 듯이 기뻐서 ‘네, 네’ 했죠.”

쉽게 허락한 듯했지만, 아버지 박동순씨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예주가 우여곡절 끝에 유학을 간 거예요. 그런데 1학년 마치고 집에 오더니 미국에 가야 할 시간이 됐는데도 갈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제가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서 개강 준비해라’며 재차 말했는데, 듣지 않더군요. 편지를 받는 순간 대충 무슨 내용인 줄 알 것 같았어요. 편지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은 가치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공부도 시기와 때가 있듯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허락할 거, 확실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예주도 제가 선뜻 찬성하자 무척 놀란 거 같더라고요.”

최고의 매니저 자처한 아버지
“아빠가 계획한 대로 잘 따라와줄 수 있느냐”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의 계획은 원대하고 치밀했다. 우선 그는 미스코리아 대회 1년을 앞두고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버지께서 한 달 스케줄을 짜 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일주일 스케줄을 요구하셨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꼼꼼히 계획을 세우게 하셨죠.”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전자에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현재는 IT 회사인 르네상스정보기술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동순씨는 미스코리아의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지만 대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단 허락은 했는데,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일단 정보를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아는 PD나 작가들에게 물어봤죠. 한결같이 돌아온 대답은 ‘미용실에 가라. 미스코리아는 미용실에서 나온다’였어요. 우선 미스코리아를 많이 배출한 미용실에 갔죠. 그런데 어떻게 준비해라, 하는 조언보다는 ‘우리 방식을 따르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이 부녀는 정해진 시스템에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과감히 나름의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박동순씨는 우선 월 계획 화이트보드를 구입했다. 그 화이트보드에는 매월 빼곡한 일정이 기록되었고, 박예주는 거기에 맞춰 생활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버지께서 유명한 피부과를 알아오셨어요. 미스코리아로서 피부 관리도 중요하거든요. 워킹 레슨도 받았고, 특기로 대금을 배웠죠. 원래 단소를 좋아했는데, 이왕이면 그보다 더 큰 대금을 해보자는 생각에서였죠.”
대금을 선택한 아버지 생각은 이보다 깊었다.

“미스코리아 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인데 단순히 예쁜 것보다는 한국적인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소리나 창, 동양화 등이 있는데 그 중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게 대금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보통 소리를 내는 데에만 6개월이 걸린대요. 다행히도 예주가 단소를 해서 그런지 한 달 좀 못 되어 소리가 났어요.”

또 다른 특기 적성으로는 플라멩코를 준비했다. 춤은 다른 경쟁자들이 많이 준비할 것 같지 않은 장르를 선택한 것이다. 몸을 만들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 미스코리아에 뽑히기 위해서는 너무 마른 몸이나 뚱뚱한 몸은 부적격이다. 볼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녀는 근육운동에 집중했다. 피부를 관리하거나 몸매를 만드는 하드웨어 이외에 소프트웨어를 다지기 위한 계획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영어는 꾸준히 공부했어요. 영어는 안 쓰면 자꾸 잊어버리잖아요. 그리고 신문이나 책을 통해 시사와 상식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지식을 쌓는 데도 아버지의 역할이 지대했다.

“미스코리아가 얼굴이나 몸매가 예쁘고, 춤만 잘 추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적인 아름다움도 갖춰야 하죠. 일단 예주에게 2002년 미스코리아 진 금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사다주었어요. 그리고 신문에서 하루에 두세 칼럼씩 스크랩해서 읽게 했죠. 알파 걸의 성공 스토리라든지, 상식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었죠. 만화로 읽는 인문학, 근현대사 같은 책들도 읽게 했어요.”

예선과 본선에 걸쳐 두 번 있을 인터뷰도 4개월간 준비했다. 그 준비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치밀하고 계산적이었다.

“주로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을 분류했어요. 의사, 변호사, 전문 경영인, 저명 인사 등. 그리고 의사라면 치과 의사, 성형외과 의사로 세분화했죠. 그리고 ‘내가 치과의사라면 어떤 질문을 할까’를 생각하고 예상 질문을 뽑아봤어요. 300개의 예상 질문과 모범 답안을 만들었죠. 그리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어요.”

땀 흘려 얻은 ‘미’, ‘진’보다 값져
월별로, 주별로, 하루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최고의 강사에게 워킹 교육과 메이크업 교육을 받고, 최고의 피부과에서 관리를 받았지만,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것에 대한 박동순씨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떨어지더라도 1년간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이 예주 인생에서 좋은 전환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보는 안목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토양이 될 거라고요. 대금이나 플라멩코도 그렇고, 단기간이지만 습득해놓으면 굉장한 플러스가 되겠죠.”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미스코리아 미 당선된 박예주의 도전기

1년간의 긴 준비 기간을 마치고 미스코리아대회에 선 박예주. 지역 예선에서는 서울 미, 본선에서도 역시 미(미 네 명 중 1등, 요즘 미스코리아 대회는 진 한 명, 선 두 명, 미 네 명을 뽑는다)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 부녀에게는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예선에서 미로 뽑혔어요. 본선 때 더 잘하라는 건가 보다 하고 진짜 열심히 했죠. 그런데 본선에서도 미가 된 거예요. 미 네 명을 부르고 선을 부르는데, 미 세 명을 부르기까지 제가 호명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네 번째로 제 이름이 불리더라고요. 솔직히 안 나가고 싶었어요. 너무 아쉬웠죠. 네티즌 인기상도 받았는데…. 아버지는 크게 실망하셔서 그날 집에 안 들어오셨어요.”

이들이 분석한 실패의 원인이 있었다. 바로 미스코리아 전통에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그때까지 제 고집, 제 스타일만 내세웠어요. 그런데 미스코리아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스타일은 너무 모던했거든요.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저에게 딱 맞는 화장법을 배웠지만,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서니 저 혼자 너무 튀더라고요. 한마디로 미스코리아에 어울리지 않는 화장이었어요.”

비록 기대했던 결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대회를 통해 얻고 경험한 것이 많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지닐 것이다.

“솔직히 아빠가 스케줄을 짜주실 때는, ‘미용실 가면 편할 텐데 왜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땀 흘려 얻은 ‘미’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값진 것 같고, 아빠와 도와주신 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한 게 무척 많아요.”

박동순씨는 이제 미스코리아 전문가로 나서도 될 정도로 그 분야에는 달인이 되었다.

“예주와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해보니까 미스코리아 아카데미를 열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아마 예주는 다른 친구들보다 자부심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미스코리아 대회도 앞으로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슷비슷한 미인이 아니라 진선미의 개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박예주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나고 나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년 동안 미스코리아로 활동하면서 오랜 꿈인 연기를 배워보고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생각이 달랐다. 딸이 미스코리아가 되는 것은 찬성했지만, 연기자가 되는 건 여전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아빠에게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이번에는 일주일 동안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웃음). 주위 분들에게 조언을 받고 연기자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내년에 올려질 뮤지컬에 합류해 연습하고 있고요. 패션 디자이너요? 물론 그 꿈도 이뤄야죠!”

딸을 지켜보는 박동순씨의 마음은 여전히 걱정이 많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딸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기에 딸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이다.

“연예계라는 곳이 굉장히 유혹이 많은 곳이고, 사람의 심성은 약하잖아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 수도 있거든요. 그래도 예주가 정말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좋은 타이틀을 가지고 디자이너가 되건, 배우가 되건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 거침없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박예주는 아름답다. 그러나 딸의 뜻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아버지 박동순씨의 마음은 그보다 몇 배 더 감동적이었다. 바로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글 / 두경아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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