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이번에 필리핀에서 리조트 사업을 시작했죠”
개성파 감초 연기의 달인, 송경철
송경철(57)에게 전화를 해봤다. 필리핀 세부에서 스킨스쿠버 숍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그가 현재 한국에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다행히 “여보세요?” 하며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여 됐다고 한다. 소문대로 그동안 그는 해외에 있었단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물고기 밥 주면서 놀고’ 있었단다. 지금은 리조트 사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며 사무실은 여의도에 있다고 했다.
송경철은 드라마 ‘수사반장’, ‘옥이이모’, ‘형’, ‘파랑새는 있다’ 등의 드라마에서 범인이나 동네 건달 등 주로 악역을 소화했다. 특히 ‘파랑새는 있다’에서는 탤런트 이상인과 함께 차력사로 출연하면서 주연 못지않게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드라마로 KBS 연기대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때 차력사라는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삭발했는데 그 이후로 머리카락을 못 길러요. 관리하기도 좋고 특히 운동하기에 편하더라고요.”
그는 1973년 MBC 공채 6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탤런트 정소녀, 임채무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그의 동기다.
“그 당시에는 ‘수사반장’, ‘113 수사본부’ 등 남성적인 드라마가 많았어요. 아마 방송국에서 악역이 필요하니까 써먹으려고 절 뽑은 거 같아요. 심사위원의 잠깐 실수로 제가 뽑힌 거죠(웃음).”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나라 바닷속이 맑고 아름답다고 하면 찾아가보고 또 어딘가에 난파선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서 보고 오는 거죠.”
지금이야 세부가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가 됐지만 1995년 당시에는 직항편도 없어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2003년, 결국 그는 세부에 스킨스쿠버 숍을 열고 정착했다. 그런데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가 물을 좋아하고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본업인 연기를 그만두고 세부로 행한 그의 행보가 말이다. 연기자만큼 자유로운 직업도 없을 텐데, 스포츠가 좋다면 일하다가 틈틈이 여행을 다니며 만족해도 될 일이다. 그동안 송경철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흔아홉수에 찾아온 우울증, 세부로 가다
“한낱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마흔아홉수(49세에 인생의 고비가 온다는 속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게도 그게 찾아왔죠. 정말 사람을 못 견디게 하더군요. 말도 못할 사고들이 연일 계속됐죠. 지인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는 건 부지기수였어요.”
그는 서울 청담동에서 ‘한국회관’이라는 큰 고깃집을 운영했었다. 최고급 한우를 취급하는 한식당으로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고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그런데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선뜻 돈을 내준 것이 화근이 됐다.
“장사가 잘되는 거야 친구들은 다 알고 있으니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거절할 수 없잖아요. 도박을 한 것도 아니고 흥청망청 유흥에 빠진 것도 아닌데 번 돈이 그냥 다 없어지더라고요. 그러다 형제, 가족들 사이도 안 좋아지고 결국 부모님까지 돌아가시는 악재가 겹쳤죠.”
제일 큰 사고는 2002년에 있었다. 월드컵 4강전 한국과 독일의 경기가 있던 날, 그는 한국 팀을 응원하기 위해 한강에서 제트스키를 탔다.
그의 얼굴에 부딪힌 것은 커다란 바지선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교각에 묶어놓은 굵은 와이어 줄이었다. 그 사고로 코뼈와 광대뼈가 함몰돼 송경철은 얼굴 전체에 쇠심을 박는 대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은 깨어난다 해도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수술 후 16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이후 그는 건설업체 H사, S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건설업체가 경고표지판 등 안전설비를 설치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을 인정받아 ‘원고에게 7천7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어느 매체는 제가 10시간이 넘도록 깨어나지 않자 사망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어요. 곧 정정보도가 됐지만 송경철이 죽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은 제 앞에서 ‘어? 당신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 서 있는 거지?’라며 깜짝 놀라기도 했으니까요.”
사고 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에게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소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것만 같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가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늘 ‘사람 부자’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이 있었죠. 그런데 한순간에 사람이 싫어지고 가족들에게도 이런 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독방을 쓰기도 했습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제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이런 제 모습을 보게 될까 겁이 났어요. 게다가 전 ‘방송 비즈니스’에 서툴렀어요. 로비도 몰랐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요.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오해를 많이 사기도 했습니다.”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그는 세부의 바다를 떠올렸다.
송경철은 필리핀 세부에 가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스킨스쿠버 다이빙 숍을 차렸다. 그곳에서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본격적으로 관광객을 지도했다. 마침 세부는 2001년 직항 비행기가 생기면서 신혼 여행지나 어학연수지로 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필리핀에 어학연수를 왔다가 세부에 들르는 한국 학생들이 주 고객이었다. 이미 1995년부터 세부를 즐겨 찾던 그는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취미로 시작했던 스킨스쿠버 다이빙이 우울증의 돌파구가 될 줄은 그도 미처 몰랐다.
“우울할 때는 물고기 밥을 주고 놀며 심신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 학생들이나 신혼부부들이 찾아오면 TV에서 많이 본 얼굴이라며 반가워하더군요.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직접 가르쳐줬어요. 그동안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살았습니다.”
그는 스킨스쿠버 다이빙 덕분에 현지 주민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최근 현지 지인들의 도움으로 1만㎡가 넘는(약 3천2백평) 1백실 규모의 호텔을 인수하게 됐다.
“세부는 필리핀에서 역사가 제일 깊은 휴양지고 우리나라에서 직항 비행도 일주일에 18편이나 뜹니다. 비행기로 4시간이면 도착하고 해양 스포츠와 골프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죠.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호텔을 인수했는데요, 저렴한 가격에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호텔 내에는 2천㎡(6백평 규모)의 수영장 시설이 있어 스킨스쿠버 다이빙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자신이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 여행을 와서 쉬어가기보다는 잠시라도 체력을 단련하고 가라는 의미로 다양한 운동 시설을 구비해놓았다. 이미 탤런트협회와도 제휴를 맺어 연예인 1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그의 재기가 가장 반가운 사람들은 바로 가족일 것이다. 특히 아들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송경철의 사진을 올려놓을 만큼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각별하다.
“아들과는 친구처럼 지내죠. 스물네 살이고 현재 게임산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닮아서 키도 크고 아주 잘생겼어요. 운동을 좋아하는 건 날 닮았는지 이종격투기, 복싱, 태권도, 검도, 유도 등 못하는 게 없습니다.”
송경철은 사업과 더불어 올가을부터는 연기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미 한 외주 제작사에서 기획하고 있는 사극에 캐스팅됐다.
“한국을 떠나 있을 때도 제 본업은 연기라는 걸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재충전의 시간이었습니다. 사극에 캐스팅돼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갑니다. 아직 어느 방송사에서 방송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년 초에는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죽었다 살아난 몸이니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그의 몸을 보면 그가 곧 예순의 나이를 바라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따뜻한 남국에서 인생의 고비를 넘기고 돌아왔기 때문일까, 험악하고 강하게만 보이는 인상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지독한 악역에서 웃음을 주는 감초 연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자 송경철을 빨리 만나고 싶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