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은미는 요즘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새롭기만 하다. 지난해만 해도 “못됐다”며 손가락질하던 시청자들이 요즘은 “너무 불쌍하다”며 편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뜻하지 않은 악재로 오랜 기간 연기를 할 수 없었던 사연이 있었다. 다시 연기를 시작한 요즘은 열정과 설렘으로 충만하다.
연기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
“너무 불쌍한 여자예요. 모든 걸 갖췄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요. 촬영을 끝내고 집에 가면 벌써부터 선영이의 미래가 그려져서 눈물이 나요. 두 달 이상 선영이로 살다 보니 누구보다 감정선을 잘 이해하게 됐어요.”
남편인 세훈(류진 분)과는 만날 티격태격하다 보니 사랑에 겨운 은님(이수경 분)과 강호(정겨운 분) 커플을 보면 부러워 어쩔 줄 모르겠단다. 대본 연습 때는 부러움에 한참을 쳐다봤을 정도다.
“결국 남편은 외도에 빠지죠. 대리모였던 은님이 집에 들어오면서 선영이는 갈등해요. 저 같으면 아예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결혼을 안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대리모까지 등장하면 본의와 달리 악하게 변할 것 같기도 해요.”
부담감 떨치고 솔직함으로 승부
2001년 영화 ‘킬러들의 수다’로 데뷔한 고은미는 한창 주가를 높일 수 있었던 시기에 전 소속사와의 분쟁에 휘말렸다. 지금은 “덕분에 ‘반 변호사’가 돼 동료들의 법률 문제를 살펴준다”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분쟁은 길었지만 행운은 더디게 왔다. 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 역을 제안받았지만 고사했고, ‘미워도 다시 한번’에 출연할 뻔했으나 배역이 없어지면서 무산됐다.
“데뷔 때는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쉬는 동안 열정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연기를 못하는 후배를 보면 ‘아, 저 역을 저렇게밖에 연기 못하나’ 싶기도 했죠. 소송에서 이길 때쯤에는 그저 모든 게 감사했어요.”
발목을 잡던 부담을 떨치자 본연의 솔직한 성격을 보여줄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나이를 속인 일도 당당하게 고백했고, 친언니가 10년 동안이나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집안 사정도 털어놓았다.
“언니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주변에 오랜 기간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많더라고요. 그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고은미의 연기 인생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수로와 함께 영화 ‘홍길동의 후예’에 등장할 예정이고, 여장부 같은 강한 역도 도전해보고 싶다. 가슴에서 시련을 비우고 희망을 채운 그에게는 모든 것을 품는 ‘달관의 경지’마저 슬쩍 엿보인다.
“자극적이지 않은 드라마가 될 거예요. 열심히 할게요. 참,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갑자기 산부인과 검사를 받아보고 싶어졌어요.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요(웃음).”
■글 / 하경헌(스포츠칸 문화연예부 기자) ■사진 /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