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미안하다’며 떠난 그녀, 나는 아직도 그녀가 그립다”
지난 10월 19일은 영화배우 고 장진영의 49재가 열린 날이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가는 날, 장진영의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팬들까지 이제 그녀를 편하게 보낼 준비를 마쳤다. 짧았지만,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생을 살다간 장진영. ‘결혼’이라는 마지막 선물로 아내를 외롭지 않게 보낸 남편 김영균씨를 만나, 아내를 떠나보낸 심경을 들어봤다.
추모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장진영의 부모님과 함께 손님을 맞는 눈에 띄는 한 사람. 바로 그녀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김영균씨(43)다. 장진영이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 미국에서 둘만의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죽기 사흘 전 혼인신고를 마치면서 장진영에게 ‘결혼’을 선물한 김씨.
그는 “내가 곧 그녀였고 그녀가 곧 나였기에 아프고 힘든 길을 홀로 보내기가 너무 가슴 아팠다.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속에서나마 평생지기로 남고 싶었다. 현실에서 못다 한 사랑을 하늘에서 아름다운 결혼생활로 누리고 싶다”며 장진영의 영원한 남편이 됐다.
장진영을 떠나보낸 후, 그녀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영화 같은 순애보는 순식간에 언론과 팬들에게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그는 “언론의 갑작스러운 관심이 굉장히 당황스럽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것도 진영이가 나에게 남기고 간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밝혔다. 49재 추모식 현장에서 장진영의 운명 같은 마지막 사랑, 김영균씨를 만났다.
다음은 장진영의 남편 김영균과 나눈 일문일답.
“새벽만 되면, 진영이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Q 장례식을 치른 뒤,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나
A 사실 장례식 치르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진영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냥 병원에 장기 입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부터는 실감이 나더라. 낮에는 똑같이 생활하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매일 습관처럼 전화를 했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도 너무 힘들다.
Q 주로 어떤 생각이 가장 많이 나는가
A 많은 생각들이 난다. 특히 병실에서 내가 잠들어 있다가 깼을 때,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진영이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놀라서 “어디가 아파? 필요한 거 있어?”라고 물으면, 그냥 웃기만 했다. 또 함께 여행 다녔던 기억, 매일 나누었던 대화들이 생각난다. 아직까지 휴대폰에 저장된 그녀의 문자 메시지가 1백여 개다. 같이 찍은 사진들과 문자 메시지를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A 나는 ‘달링’이라고 불렀고, 진영이는 나에게 ‘부인’이라고 장난스럽게 불렀다. 내가 곁에서 그녀의 모든 것을 챙겨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Q 서로 어떻게 가까워졌나
A 워낙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던 진영이는 높은 탑 같았다. 1년 10개월을 만났는데, 반은 어떻게 해서든 진영이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는 시간이었고, 나머지 반은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고자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정말 힘들게 얻은 사람인데, 그렇게 가버려서 허탈하고 야속하다.
Q 데이트는 어떻게 했나
A 둘이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 가끔 진영이가 혼자서 글이라도 적고 있으면 “그런 걸 뭐 하러 쓰냐”며 데리고 나가서 영화를 봤다. 등산, 쇼핑, 여행 등 진영이가 실의에 빠질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계획을 세웠다. 같이 여행을 다니기 위해 차도 바꿨다. 지금도 운전석 옆의 빈자리를 보면 미칠 것 같다.
Q 어떻게 투병하는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진영씨에게 올인할 수 있었나
A 진영이와 있는 동안에는 손에서 일을 놓았다. 내 인생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당연히 진영이를 선택했다. 진영이에게는 내가 필요했다.
Q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김영균씨는 굉장한 로맨티스트 같다.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A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결혼을 못했다. 진영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결국 나와 만났다. 우리 둘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어렵게 만나서 사랑에 빠졌는데, 결국 암으로 허무하게 그녀를 보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가슴속에만 남겨두겠다”
A 여배우로서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그녀의 마음을 존중해주고 싶다. ‘암’을 처음 겪어봤는데, 사람을 정말 처참하게 만든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드는 병이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내 마음속에만 남겨두겠다.
Q 장진영씨가 투병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A 암이라는 게 암 자체로 힘들기보다, 항암치료 때문에 힘들다. 토하고, 속이 메스꺼워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먹지 못해서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속이 쓰리다고 해서 궤양 때문인 줄 알고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검진 결과 위암 4기였다.
Q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진영씨는 본인 병의 심각성을 잘 몰랐나
A 알고 있었겠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진영이는 ‘암’을 가볍게 생각했고, 3개월 정도만 고생하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Q 병세가 호전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미국에 갔다 오고 나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된 건가
A 죽기 한 달 전만 해도 혈색도 좋고 멀쩡해 보였다. 라스베이거스에도 놀러 가고 결혼식까지 하고 일상생활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암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람이 한 달 만에 죽을 수가 없다.
Q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무엇인가
A ‘내 몸이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고 했다. 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맙고,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Q 미국에서 올린 둘만의 결혼식이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신부였나
A 진영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갔다가, 결혼식을 올렸다. 조촐한 결혼식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였다. 하지만 진영이가 내 아내이긴 하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결혼식’ 모습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사진과 동영상은 적당한 시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혼인신고, 상속 문제 불거졌을 때 후회했었다”
Q 결혼식은 충분히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혼인신고까지 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A 결혼을 했으면 혼인신고 하는 건 당연하다. 아내가 아프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건 비겁한 짓이다.
Q 혹시 혼인신고를 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나
A 기사가 나가고, 사람들이 상속 문제 때문에 날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게 힘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그때는 내가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상속 문제를 진영이 부모님께 일임했더니, 사그라지더라. 그 후에는 후회한 적이 없다.
Q 부모님 모르게 혼인신고를 했는데,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A 많이 안타까워하신다. 진영이가 암에 걸렸다는 기사가 났을 때부터 아버지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남자답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줘라”고 말씀하셨다. 진영이가 가고 난 뒤, 내가 너무 부각이 되니까 요즘은 내 인생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신다.
Q 장진영씨 부모님과는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가
A 물론이다. 자주 연락을 하고, 사위 대접을 해주신다. 그분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가는 게 진영이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석 때도 진영이 부모님과 추모관을 찾았다.
Q 양가 부모님들께서 만남을 가진 적이 있나
A 장례식 후, 추모관에서 약속을 정해 한 번 만났다. 서로 안타까워하는 인사들이 오갔고, 건강을 챙기라는 당부의 말도 오간 것으로 안다.
Q 장진영씨 부모님 입장에서는 김영균씨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A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진영이 부모님께는 그런 생각 하지 마시라고 당부를 드렸고, 우리 부모님께도 똑같이 말씀드렸다. 아들이 좋다고 하는데, 이해해주실 거라 믿는다.
“그녀는 나에게 ‘아쉬움’이다”
Q 약 2년 동안 열정적이고 운명 같은 사랑을 했는데, 애초에 장진영이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A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Q 진영씨가 아이를 굉장히 좋아했다는 걸 사후에 알게 됐다. 2세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은 없는가
A 진영이가 아이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나도 이왕이면 진영이를 닮은 아이를 원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질 상황이 안 됐다. 농담 삼아 대리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 적도 있을 정도다.
Q 지금 현재 장진영씨에 대한 마음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A 그녀는 나에게 ‘아쉬움’이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 몇 달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하는 아쉬움, 결혼해서 1년이라도 같이 살아봤으면 하는 아쉬움. 하지만 그녀가 살아 있을 때는 인연이 끊어져도, 나랑 같이 살지 않아도, 다른 남자와 사는 모습을 봐도 좋으니 제발 살려만 달라고 기도했었다.
Q 장진영씨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은가
A 지금 이 나이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또 이런 사랑이 찾아올까 싶다. 진영이를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Q 만약 꿈속에서 장진영씨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뭔가.
A 진영이 영혼이 살아 있고, 나를 보고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인지, 그리고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Q 앞으로 어떻게 살 예정인가
A 그동안 손 놓고 있던 회사 일에 복귀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진영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생각 중이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