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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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는 디자인마다 빅 히트를 기록하며 세계를 놀라게 한 산업디자인계의 ‘미다스의 손’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의 최고 성공작은 무엇일까. 목에 거는 MP3? 가로 본능 휴대폰? 슬라이딩형 콤팩트? 그의 답은 ‘나의 아이들’이다. 소년 같은 아버지 김영세와 아버지의 끼를 그대로 물려받은 힙합가수 김윤민. 다른 듯 닮은 두 남자와의 유쾌한 인터뷰.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열여섯, 결정적 타이밍
풀어헤친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내일모레 예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한 감각을 자랑하는 김영세 대표(59)는 아들을 보며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터뜨리고 아들 윤민씨(26)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조금은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인터뷰 구경해도 돼요?”라며 자리를 잡은 아내 최금주씨(57)까지,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 가족의 집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대학 시절 첫사랑인 아내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김 대표는 1980년대 중반 실리콘밸리에 ‘이노디자인’을 설립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딸 수진씨(28)와 아들 윤민씨는 각각 홍콩과 한국에서 요가 강사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 홍콩에 네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셈이다. 자신들 세대와는 반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김 대표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느낀다.

“재미있는 게 제가 아이들 나이 때 미국에 갔거든요. 근데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요. 제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에서 새 출발을 했다면 아이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셈이죠. 수진이도 홍콩에 있고, 점점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얼마 전, 홍콩에서 나이키의 ‘세계 요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수진씨의 이야기가 기사화돼 화제가 됐다. 미국 UCLA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LA의 유명 투자관리그룹에서 금융가로 일하다 4년 전 요가 강사로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MYK’라는 예명으로 인기 힙합 그룹 에픽하이의 ‘명예 멤버’로 활동하며 역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윤민씨까지, 이 남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원하는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김 대표의 영향이 컸다.

“열여섯 살 때 아버지와 진로 문제로 밤새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아트와 음악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버지를 보니 디자인은 예술보다 비즈니스에 가까운 것 같았어요. 좀 더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제 말에 흔쾌히 인정을 해주셨고 결국 음악을 선택하게 됐죠.”

왼쪽부터 홍콩에서 세계 요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딸 수진씨와 김영세 대표, 아내 최금주씨, 아들 윤민씨.

왼쪽부터 홍콩에서 세계 요가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딸 수진씨와 김영세 대표, 아내 최금주씨, 아들 윤민씨.

김 대표가 우연히 친구 집에서 좥인더스트리얼 디자인좦이라는 잡지를 보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을 했던 나이도 열여섯이었다. 김 대표는 “정 미술의 길을 고집하겠다면 건축공학과에 지원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재수 끝에 서울대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재주를 타고나는 것이 첫 번째 축복이라면 그걸 깨닫게 되는 계기를 찾는 것이 두 번째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윤민이는 열여섯 살이 그 타이밍이었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범생 딸과 ‘모험생’ 아들
아버지의 예술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윤민씨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강아지 그림을 그려도 슬픈 강아지와 기쁜 강아지로 감정을 담아 그렸고, 가지고 놀던 거북이 장난감도 미세한 근육 하나하나를 살려 스케치북에 옮겼다. 어렸을 적 꿈이 만화가였을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던 그가 그림에 싫증을 느낀 건 열여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가 소질이 있으니 디자인 공부를 시켜볼까 하는 생각으로, 웬만한 디자인 학교에는 다 들여보낸다는 유명 입시학원에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 아닌 공부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가 지치더라고요. 윤민이는 청개구리과예요. 하라고 하면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해요. 전 그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걸 거부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랬기 때문에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이 원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자는 부부의 교육관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미국식 교육환경의 영향도 있었지만, 입시를 위한 강압적 교육에 옥죄였던 자신들의 학창 시절을 아이들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였다.

“아내도 저도, 둘 다 공부를 끔찍이 싫어했어요(웃음). 한국에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기 때문에 아이들한테까지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어요. 아이들이 피곤할까봐 그런 게 아니라 자신들의 진로를 찾는 데 방해가 될까봐요. 제 경험을 뒤돌아봤을 때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수진이와 윤민이도 스스로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죠.”

아이들에게 결정을 맡겼다고 해서 부부가 아이들을 마냥 내버려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출석과 과제, 운동, 클럽, 봉사활동 같은 학교활동은 철저히 챙겼다. 스스로 알아서 했던 딸 수진씨와는 달리 방과 후 놀러 나가기 바빴던 윤민씨 때문에 아내 금주씨는 “학교 다녀오면 무조건 숙제부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수진이가 저를 닮고 윤민이는 남편을 닮았어요. 수진이가 굉장한 모범생이었다면 윤민이는 ‘모험생’이었죠(웃음).”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하고 싶은 일 찾은 것이 최고의 행운
현재 ‘맵더소울’ 소속 힙합가수로 에픽하이를 비롯한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반에 참여하고 있는 윤민씨는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기타를,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 꿈을 키웠다기보다는 음악 자체가 일상이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 학교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고 DJ로도 활동하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고 금주씨가 자랑을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만든 ‘위크엔드 세시(Weekend Sesh)’라는 그룹으로 스무 살 때 한국에 공연을 왔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친구들과 LP바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아버지가 대학 시절 내셨던 ‘도비두’ 음반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죠.”

김 대표 역시 경기고 시절 ‘다이아먼드포’라는 그룹을 만들어 기타리스트 겸 리드싱어를 맡았고 서울대 미대 시절엔 ‘아침이슬’의 김민기씨와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듀엣으로 음반을 냈었다. 음악적 재능은 부전자전이다. 윤민씨가 아버지의 재능을 존경하듯이 김 대표 역시 아들의 음악을 인정한다.

“윤민이가 힙합가수라는 걸 알고 친구 녀석이 ‘너 참 대단하다. 아들을 어떻게 그렇게 내버려둘 수가 있느냐’고 하더군요. 보통 사람들이 대중음악에 대해 갖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전 아이가 다 커서 부모에게 ‘아빠, 나 뭐 해야 돼?’라고 묻는 상황이 정말 ‘골 때리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윤민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하며 살 수 있게 된 건 정말로 잘된 일이에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버지로서 김 대표의 솔직하고 확고한 신념이다. 딸 수진 씨가 탄탄한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 강사가 됐을 때 금주씨 역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는 말과 위로 아닌 위로를 들었다.
“수진이가 신문에 나온 걸 보고 친구가 제게 ‘괜찮아, 요즘은 다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사는 시대야’라고 위로를 하더라고요. 좋은 사람 만나 빨리 시집가기 바라셨던 수진이 할머니도 반대를 하셨어요. 수진이가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대요. 하기 전에 행복하고, 하는 동안 행복하고, 하고 난 뒤에도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고요. 저 역시 그 생각에 동감하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응원해줘야죠.”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김영세·윤민 부자 “하기 전에, 하면서, 한 후에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으세요.”

디자이너로서 김 대표는 늘 ‘나눔’의 정신을 강조한다. 디자인은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과 요가가 그러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기에 김 대표는 두 자녀가 더욱 대견하다.

“수진이가 요가를 가르치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도 행복을 나누잖아요. 음악 역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죠.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요. 두 아이 다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아버지로서 뿌듯합니다.”

열심히 하라=좋아하는 일을 하라
인터뷰를 하는 내내 김 대표는 잠시도 생각을 쉬지 않는다. 수진씨 얘기가 나왔을 땐 그녀가 출연한 요가 DVD를 틀고, 윤민씨가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존 레논’을 말하자 그의 명곡 ‘Imagine’ CD를 오디오에 건다. 그의 이러한 ‘산만함’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윤민씨는 듬직한 모습이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인지 김 대표와 금주씨가 하는 말에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조금은 무뚝뚝한 아들이 아닐까 싶었는데 실제로는 애정 표현을 잘하는 다정한 아들이란다. 그가 7년 전 어머니날 선물로 금주씨에게 준 ‘쿠폰북’은 부부가 어딜 가나 자랑하며 아끼는 보물 1호다.

“밤늦게까지 뭔가를 만드는가 싶더니 다음날 얇은 수첩을 주더라고요. ‘엄마 차 세차하기-유효기간 3주 이내’, ‘빨래하기-4주 이내’ 등 설거지, 개 산책시키기, 마사지 등 자신이 엄마에게 해줄 서비스와 유효기간이 찍혀 있는 쿠폰이었는데 맨 마지막에 ‘엄마 사랑하기’의 유효기간은 ‘Forever(영원)’였어요. 가슴이 뭉클했죠.”

언제나 ‘디자인 퍼스트’를 외치는 김 대표지만 가족은 순위를 매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래서 행복하고, 또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거예요. 열심히 하라는 말은 곧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과 같아요.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아이들 세대는 우리 세대와는 가치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환경과 평화를 생각하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아요.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을 리드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승낙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고 귀담아들어야 할 때입니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사진 제공 / 이주석, 이노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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