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탤런트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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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혼하러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드라마예요”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혼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혼 접수만 전국적으로 한 달에 4천5백 건. 중견 탤런트 박용식은 부부의 의견을 조정하는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 처한 부부들을 화해시키거나 보듬어 타협을 이루게 도와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지난달 전국에서 조정 성공률 1위를 기록한 그를 의정부지법에서 만났다.

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탤런트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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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활동 이은, 인생 2막의 길을 찾다
탤런트 박용식(63)은 스물두 살 때 탤런트 공채 시험을 계기로 연예활동을 시작했다. 42년 동안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했다. 물론 좋은 날도 있었고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운 나날도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한창 활동할 당시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이 정지된 적도 있었고 반대로 그 덕에 많은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방송 흐름이라는 것이 워낙 빠르고 젊은 층이 주류라 노장들은 설 곳이 없어요. 대부분의 중년 배우들은 요식업 창업으로 노후준비를 하죠.”

박용식은 이미 15년 전 지인들과 함께 자동차 외형 복원 관련 창업을 했다. 회사는 그 없이도 원활하게 운영될 정도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나니 그는 인생의 종반부를 덧없이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봉사활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 연배라면 대부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그저 막연하게 양로원과 고아원을 방문하고 불우이웃을 돕거나 연탄을 나르는 등 이벤트성 봉사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제가 40여 년 동안 쌓아온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죠.”

그러던 차에 작년 4월경, 동문 모임에 참가한 그는 우연히 의정부지법원장으로 있는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생각을 후배에게 털어놓았다.

“‘박 선배님, 가사조정위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 번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러는 거예요. 처음에는 참 생소했죠. 게다가 난 법에 문외한인데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가사조정은 이혼 분쟁이 났을 때 소송을 통한 판결에 의하기보다 당사자의 타협과 양보로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가사조정위원은 보통 변호사나 법무사가 많고 덕망이 높은 인사가 맡기도 한다. 금전적 혜택이 없는 100% 사회 봉사활동의 일환이다. 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까지 온 부부라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이다. 이미 극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을 화해시켜 재결합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소송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해주는 일을 한다.

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탤런트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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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달리 극단적인 경험도 하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인생을 살아온 만큼 비교적 해법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궁극적으로 화해시키는 것이 보람된 일인 것 같아 시작하게 됐어요.”

그는 회를 거듭할수록 가사조정은 참 어려운 일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법의 잣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이혼은 다른 소송과 달라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들춰내야 하죠. 법을 들이대는 것보다 내 자식이나 내 친구의 일처럼 감성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법 지식과 상식이 많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군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심이 필요하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박용식은 인생 선배로서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이야기해가며 부부의 마음을 달랜다. 그러면 상대방도 얼음장 같이 차가웠던 마음을 풀고 대화의 물꼬를 튼다.

“부부관계는 아무리 똑똑한 법관이라도 해결해주지 못해요.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저와 이야기를 한 후 갈라서려 했던 부부들이 재결합을 결심하고 나가면 판사들이 아주 감탄하더군요.”

가정의 붕괴 현장, 그 끝을 보며
박용식은 “가정은 인생살이의 제일 큰 축”이라고 강조한다. 가정이 붕괴되면 인생이 평탄치 않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보다 큰일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법원에 온 사람들이라면 설득해서 재결합을 하도록 하죠. 그런데 그 비율이 높지 않아요. 20% 정도. 일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조금 안 됐는데 소송까지 가지 않고 제가 조정에 성공한 부부는 500쌍 정도 됩니다.”

법원마다 매달 조정 성공률을 기록하는데 지난달에는 박용식이 활동하고 있는 의정부지법이 제일 좋은 성적으로 상을 받았다고 한다. 법원 내에서도 그의 조정 성적이 가장 좋았다. 조정위원의 성적이 좋을수록 일이 많이 배당된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게 배역이 많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통 한 달에 한 건 정도 맡는 것이 대부분이나 그는 평균 주 3일은 법원에 나가고 하루에 4건의 가사조정을 본다.

“성공률이 높은 비결은 한 가지예요. 가사 조정일 보름 전에 부부 양측이 제시한 기록들을 받아볼 수 있는데 한 부분도 허투루 보지 않고 쌍방을 체크합니다. 마치 내 일처럼 말이죠. 차분히 읽어보면 나름대로 잘못한 사람이 누군지 판단이 돼요. 뭐 딱 봐도 그냥 나쁜 놈들도 많고요(웃음).”

그는 부부와 삼자대면하며 다양한 질문을 하고 잘잘못을 가려낸다. 그러면서 부모처럼 야단도 치고 다독거리며 조정에 들어간다.

“법원 재판장에 서는 당사자들은 낯선 환경에 얼마나 긴장하겠어요. 그러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재판석에 앉아 있으니 반가워하기도 하고 신기해하기도 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죠.”

사람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가장 많은 이혼 사유는 무엇일까.

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탤런트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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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많은 이유는 성격 차이예요. 서로 양보하지 않고 목소리가 크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사랑에는 늘 애정과 증오라는 양면성이 있죠. 두 번째 이혼 사유는 생활고예요. 요즘 젊은 부부들의 경우 금전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해요. 경제도 어렵고 사회적으로 남자들의 역량이 많이 약해졌죠. 그만큼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확고하지 못해요. 아내가 잔소리하기 시작하면 더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러면 술에 손을 대고 폭언, 폭행… 그 이후로는 너무 뻔한 스토리죠.”

고부간의 갈등도 심심치 않은 이혼 사유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부부간의 부정행위다.

“황혼이혼도 많아요. 80대 노부부도 조정해본 적이 있어요. 남자들이 정년이 넘는 나이가 되고 할 일이 없으면 미주알고주알 아내에게 잔소리가 많아져요. 평생 수발한 아내는 이제 혼자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후에 외롭지 않으려면 아내에게 잔소리하지 마세요.”

그는 “한 건, 한 건이 모두 드라마”라고 말한다. 사연이 깊어 놓칠 수 없는 아픔들이 다 있다. 그가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라마 같은 인생, 인생 같은 드라마
그는 수십 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대통령에서 걸인까지 다양한 인생을 경험했다. 배우는 역할을 맡으면 온전히 그 인물의 삶을 살게 된다.

“남의 인생을 많이 살다 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잘 돼요. 내가 저 입장이고 저런 성장과정을 거쳤다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런 성격이 되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충 그 사람에 대해 파악이 돼요.”

그는 성격파 조연 배우로 승승장구했다. 신인 시절에는 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1981년 당시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모든 방송국에서 출연이 정지됐다. 그때 그의 나이는 36세였고 부인과 올망졸망한 3남매의 생활을 책임져야 했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꼴이었다.
“매일 밤 9시면 ‘땡전뉴스’가 나오는 시절이었는데 자신과 닮은 배우가 TV에 나와 망가지고 악역을 하는 모습이 거슬렸던 거죠. 제가 봐도 비슷하게 생겼으니…(웃음).”

법원 가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인 탤런트 박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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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잘나가는 연예인들도 목돈 만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국민소득 자체가 낮았던 시절이고 겨우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는 출연료를 받았다.

“미처 벌어놓은 돈이 없어서 먹고살기에 바빴어요. 어렵게 방앗간을 차렸죠. 돈 천원 남기자고 오토바이 배달도 직접 했으니까요. 사고도 많이 났어요. 삶이 전쟁이었죠. 그렇지만 그분을 원망하지 않아요. 제게 시련도 줬지만 동시에 유명세도 안겨줬잖아요.”

당시 일하며 동상에 걸린 손과 발은 요즘도 추워지면 저려온다. 손톱이 까매지도록 막일을 했기 때문이다. 한창 자존심 강할 나이에 그는 밑바닥 인생을 알게 됐다. 그러나 1988월 2월 전두환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그는 비로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야간 업소에서 물밀듯이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하루에 평균 10여 곳에 행사를 다녔다.

“1990년대에서 2000년까지 연예인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다 누렸죠. 야간업소 1회 출연료가 방앗간에서 참깨 수십 가마를 짜서 얻은 수입과 같았으니까요. 고통을 경험한 덕분에 모은 돈을 낭비하지 않았더니 2003년에는 저축의 날 대통령상도 받았어요.”

그는 이후 지인들과 함께 자동차 외형 복원 회사를 차렸고 현재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다. 자녀들도 장성해 큰딸은 성우로 활약하고 있으며 큰아들은 영화사 제작팀장, 막내아들은 미래의 영화감독을 꿈꾸며 중앙대학교 영화과에 다니고 있다. 그에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을 묻자 “마누라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정생활을 하는 데 힘든 점이 있고 위기가 찾아오죠. 저도 ‘갈라설까?’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TV에 나와서 ‘우리는 언제나 잉꼬부부’라는 사람들 다 내숭이에요. 사는 건 다 똑같고 어느 부부나 문제는 겪죠. 그럴 때마다 서로 화해하고 반성하면서 사는 거죠. 저는 집이 조용한 게 좋아서 마누라가 하라는 대로 해요. 그게 제일 속 편하죠(웃음).”

그는 요즘 가사조정위원 활동을 하면서도 깨닫는 점이 많다. 특히 미처 몰랐던 아내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게 됐다.

“가사조정 일을 하면서 인생 공부도 해요. 이런 경우에 아내들한테서 이혼하자는 말이 나오는구나 하는 걸 느끼며 반성하게 되죠. 그래서 마누라에게 좀 더 잘하게 됩니다.”

법은 냉정하다. 사람의 감정을 정해진 공식으로 계산한다. 한때 어느 누구보다 사랑했던 부부가 득과 실을 따지며 악착같이 싸우기도 한다. 박용식은 그곳에서 아버지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권한다. 브라운관에서 인생을 그리던 그가 이제 법원에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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