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그래서 더욱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거예요”
지난 9월 25일에 열린 2009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참가자는 1위 수상자도, 최연소 참가자도 아닌 최한빛이었다. 안타깝게도 수상의 영예는 안지 못했지만 대회 기간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녀. 그리고 대회가 끝난 지금, 그녀는 조용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이제는 더 높이, 더 멀리 뛸 차례이기 때문이다.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델의 꿈을 이루다
‘솔’ 음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졌다거나, 섬세한 선을 가졌다거나, 여성성이 흘러넘친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아니다.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답하는 말하기의 방식이나, 대화를 이어가는 순서나, 말 속에 적당히 섞어 넣는 감정의 밀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한 케이블 프로그램의 ‘남녀 탐구생활’을 적용해본다면 영락없이 ‘여자는…’으로 시작할 만한 전형성을 갖추고 있는, 그런 여자다.
첫 만남에서부터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을 두고 꽤 오랫동안 확인하려 애쓰게 되는 건 그녀가 가진 특이한 타이틀 때문이다. 본인으로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과정이겠으나 워낙 독특한 이력을 가졌기에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과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최한빛(23)을 수식하고 있는 이름은 ‘국내 첫 트랜스젠더 슈퍼모델’이다. SBS가 주최하는 ‘2009 슈퍼모델선발대회’에 출전해 본선 진출자 32명에 이름을 올린 그녀는 비록 Top 11에는 들지 못했지만 당당한 ‘슈퍼모델’로 인증받았다.
“워낙 경쟁률이 높은데다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본선까지 오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다만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떨어진 직후에는 아쉬운 마음에 울기도 했지만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꿈을 이룬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아요.”
어려서부터 모델이나 방송계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슈퍼모델대회 출전을 두고 망설이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과연 나갈 수 있을까’, ‘워낙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은 대회니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원서를 냈다. 따로 모델 워킹을 배우거나 트레이닝을 해본 적이 없어 막막하기는 했지만 자신 안에 잠재된 끼와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1차 예선에 참가해 다른 도전자들과 맞닥뜨렸을 때는 약간의 좌절감도 맛봤다고 했다. 하나같이 예쁘고 늘씬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과연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그리고 이어진 1, 2, 3차 예선 통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델이 되겠다’던 그녀의 진심이 통했는지 본선 진출권을 따낼 수 있었다.
“그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능력과 노력으로 올라간 자리였는데, 마지막까지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달 동안 합숙하는데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아무래도 제가 마음을 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회 관계자들과 동료한테만 털어놨던거예요.”
며칠 뒤, 어떻게 알았는지 관련 기사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한순간에 그녀는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녀를 두고 대회 출전 자격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순전히 실력으로 거머쥔 자리였고, 또 계속 ‘최한빛’이라는 이름으로만 평가받고 싶었던 그녀에게는 괴로운 일이었다. 대회의 공정성에 문제가 생길까봐 ‘뒷말’을 낳을 만한 일은 철저히 차단했다. 들려오는 말들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대회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저는 정말 저한테 관심이 집중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대회가 끝날 때까지만은요. 지금도 어떻게 알려졌는지가 의문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제가 만약 수상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워낙 이슈가 됐으니까 상 하나 준 거’라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속상했죠.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노력했는데요.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교육에 임했어요. 그래서인지 떨어졌지만 후회는 없어요.”
함께 경쟁을 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녀가 먼저 다가갔다. 처음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혔을 때 “전혀 상상도 못했다”며 놀라던 동료들이었다.
“저는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요. 제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남들도 저를 다르게 볼 거예요. 저는 제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 그녀의 자세 때문인지 슈퍼모델대회 동료들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줬단다. 무척이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부터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야
누구보다 당당하고 긍정적인 그녀지만 사실 그녀가 다시 여자로 태어나기까지는 고통과 상처의 시간들을 겪어야 했다. 유난히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외모에 뭐든 ‘예쁜’ 것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았던 그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여자였다면 미스코리아대회에 내보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워낙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친구들도 대부분 그녀를 좋아했다고 한다.
여성스러운 외모나 취향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는 혹시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전혀 그런 적이 없단다.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서 대우를 받았을 정도라고.
“예쁘장한데다 학용품도 핑크색에 공주 그림 같은 걸 갖고 다녀서 굉장히 ‘튀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선생님들도 저를 무척 예뻐해주시고 친구도 많았어요. 중학교 남자애들이라면 싫어할 법도 한데 오히려 잘 해줬던 건,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여성스럽다고 해서 조용하고 소심했던 게 아니라 밝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친구들이 ‘넌 왜 핑크색 갖고 다니냐?’ 그러면 ‘이게 더 예쁘니까’라고 받아치는 애였거든요.”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구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내 속의 나와 다른 몸을 가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큰 충격은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밝고 당당하게 사람들과 어울렸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남자 여자의 구분보다는 ‘나’라는 관점에서 항상 생각하려 했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요. 온전히 여자로 변한 저를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잠시 걱정도 했는데, 기우였어요. 성별만 변했지 제 성격이나 말투, 행동은 다 그대로라서 전혀 어색하지 않대요. 오히려 ‘더 예뻐졌다’, ‘얼굴이 환해졌다’면서 더 좋아해요.”
성 정체성으로 힘들었던 것은 사실 완전히 성인이 된 후부터다. 예고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던 그녀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였던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에 성공하고 나서 그토록 좋아하던 무용 때문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무용을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그래요. 어려웠던 순간들도 무용이 있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대학에서 공연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추는 춤이 다른 거예요. 저는 아름답고 섬세한 선을 보여주는 춤을 잘 추는데 막 뛰어다니면서 남성스러운 느낌을 표현하려고 하니까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잘 되지도 않고요. 모든 남학생들이 작품에 참여할 때도 저는 빠졌어요. 너무 못하니까 잘린 거죠. 그토록 무대에 서기를 갈망했는데 저만 대기실 뒤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병원에서 수술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 처음 레슨을 받던 날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자애들은 이제 한빛이 때문에 다 끝이야. 너무 돋보여”라는 칭찬에 ‘드디어 이제 내가 제자리를 찾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지금도 그녀는 기쁠 때나 슬플 때는 춤을 춘다. 모델로 우뚝 서고 싶은 것 못지않게 춤에 대한 열망도 뜨겁기 때문이다.
믿고 인정해준 고마운 가족
성전환 수술 후 새롭게 얻은 이름 ‘최한빛’은 그녀의 어머니가 지어주신 것이다. 수술실에 들어간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창에 기대 깜박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서 한 줄기 햇빛과 마주하는 강렬한 경험을 했던 것. 순간 마음이 화사해지는 것을 느낀 어머니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나온 그녀에게 한 줄기 빛이 되라는 의미의 ‘한빛’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께 정말 잘했어요. 옆에서 조잘거리면서 말도 많이 하고 애교도 많이 부리고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제가 힘든 선택을 했을 때 처음에는 두 분 다 저 못지않게 힘들어하셨어요. 지금은 저를 무척이나 대견스러워하고 믿어주시지만요.”
그녀가 ‘다시 태어날 것’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보다 더 신경 쓰였던 사람은 바로 남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우애가 좋았던 형제였고, 동생에게 늘 믿음직한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였기에 처음에 동생이 받은 충격은 컸다. 결심을 털어놨을 때 방 안에서 아무 말도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몇 시간을 울었을 정도. 그런 동생을 붙잡고 “미안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그녀 또한 많이 울었단다.
“동생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많이 미안했어요. 지금은 예쁜 누나가 있어서 좋다고 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여자일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엄마가 제 태몽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멋있게 생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걸 보던 엄마가 막 박수치는데 갑자기 꼬리가 잘리면서 꼬리만 떨어졌대요. 엄마가 안타까워하니까 그 용이 웃으면서 더 멋지게 하늘로 가더라나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신기했다고요.”
거추장스럽던 꼬리를 잘라버리고 멋지게 승천했다는 용처럼 그녀는 살을 잘라내는 듯한 큰 용기로 맞지 않던 옷을 벗어던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어려움도, 상처도,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무사히 헤쳐왔다. 그리고 이제는 꼬리를 잘라내버렸으니 더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오를 일만 남은 셈이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스타일리스트 / MIO ■의상 협찬/ st.a·CC club·아날도바시니·LIST·에고이스트·제시뉴욕(02-3442-0151), 아즈나브르(02-508-6033) ■헤어&메이크업 / 유양희 뷰티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