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두 번 만났다.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와 뮤지컬 ‘김종욱 찾기’ 무대에서. ‘앤티크’에서 그는 꽃미남들로 가득한 화면에서 껑충 큰 키의 어수룩한 보디가드 캐릭터를 원래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소화해냈다. 그리고 뮤지컬로 선회, 춤과 노래, 연기에서 무난히 합격점을 받고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최지호는 ‘김종욱 찾기’에서 김종욱 역과 첫사랑을 찾아주는 남자로 1인 2역을 연기한다. 모델 출신으로 한창 연기에 재미를 느끼고 있을 그에게 연기자의 정체성에 대해 운을 띄웠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친한 동료 모델들도 다른 일을 하지만 본업은 모델이잖아요. 장윤주, 송경아씨도 그렇고요. 지금은 연기하느라 바쁘지만, 다시 런웨이로 돌아갈 겁니다.”
연기 데뷔는 2007년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지만 아무래도 영화 ‘앤티크’가 그의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이다. 최지호는 매사에 여유가 있어 보여도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순발력이 있다. 여기에 오디션 운도 좋은 편이다.
“연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오히려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앤티크’는 이것저것 해보고, 무척 재밌게 촬영했어요. 어려운 점이었다면 김재욱씨와 동성애 연기를 하는 것이었죠. 같은 매니지먼트사 소속이라 허물없이 지내는 편인데, 둘이 비 맞으면서 뛰어다니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연기는 난감했어요(웃음). 영화는 편집이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뮤지컬은 무대에서 라이브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요즘이 오히려 더 긴장되고 힘들어요.”
연기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감을 익혔지만 춤과 노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앞두고 매일 10시간씩 연습할 정도였다. 백지와 다름없는 상태라 흡수 속도도 빨랐다. 뮤지컬은 ‘싱글즈’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김종욱 찾기’에서는 세 명의 여주인공과 멜로 연기를 펼치는 역을 맡아 뭇 남성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본인도 싫지 않은 눈치. 멜로 연기는 어느 배우와 가장 잘 맞는지 물었더니 슬쩍 피해간다.
“트리플 캐스팅이어서 여주인공이 세 명이고, 남자주인공도 돌아가면서 해요. 전부 선배님이라서 배울 점이 많고 연기하기도 편해요. 밀고 당기는 호흡이 딱딱 맞을 때의 쾌감이 좋아요. 비록 연기지만 사랑에 빠지고, 첫사랑을 찾아주는 역할이라 외로울 틈이 없네요.”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편이라 지금은 다른 데 눈 돌릴 정신이 없다. 듬직하고 편해 보이는 스타일이라 여성 팬들이 제법 많다. 사인을 청하는 팬층은 대부분 여학생들인데, 기분이 좋기는 해도 우쭐하거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제가 팬클럽 카페에 글을 남기거나 하지는 않아요. 누군가를 흠모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아, 그런데 본받고 싶은 분이 한 분 있어요. 배우 리암 니슨인데, 그의 연기를 보면서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나이가 들면 그만 한 내공이 쌓일까요? 열심히 해야죠.”
요즘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는 안무, 리듬감, 살아 있는 연기 이런 것들이다. 함께 연기하는 배우가 늘 바뀌기 때문에 연습량이 만만치 않지만 그것마저 좋다. 공연이 없을 때도 다른 공연을 모니터하느라 공연장을 떠나는 날이 없는 정도. 일 외에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과 서울에서 강릉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 이제 서른 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결코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가 두렵지는 않아요. 제가 운동선수(태권도)였는데 군 제대 후에 모델아카데미에 등록했거든요. 조급한 것도 없고, 앞서 이 길을 간 누군가와 비교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저는 신인이고 배울 것도, 재밌는 것도 많아서 행복할 뿐이에요.”
자신이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만류하던 사람들이 무대에 선 그를 보고 놀랄 때가 즐겁다고 한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그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낼 예정이다. 이후의 계획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결혼 계획도 없다. 장남이긴 해도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는데 뮤지컬 ‘김종욱 찾기’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건 어떨까요. 좋은 작품이에요.”
홍보도 빠트리지 않는다. 참, 그는 「레이디경향」과 구면이다. 2005년 모델로 데뷔할 당시 처음 찍었던 화보가 본지였단다. 수소문해 사진을 싣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소중하니까.
■글 / 위성은(객원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카페 오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