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ㆍ“양심고백 해준 가해자에게 감사할 뿐…죄는 이미 다 용서했습니다”

그동안은 군복무 중에 사망한 사람의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과거에 억울한 누명을 쓴 의문사의 진상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군복무 중 사망한 개그맨 김정렬의 친형의 사연과 억울했던 가족의 심경을 들어본다.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유난히 막내 동생을 아끼던 형
처음에 김정렬은 인터뷰하기를 꺼렸다. 세상을 떠난 친형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억울한 사연을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막냇동생에게 유난히 각별했던 친형, 죽음을 맞은 지 30년이 지난 이제야 그 한을 풀어준 것 같다는 김정렬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유난히 눈빛이 촉촉했다.

30여년 전, 충남 청양에 살던 김정렬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그 어느 가족보다 단란했다. 김정렬은 유난히 형과 친분이 돈독했다. 김정렬은 어릴 적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다. 형은 그런 동생이 마냥 기특하고, 예쁘기만 했다. 형은 막냇동생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서울로 전학을 보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그런 형의 배려 덕분에 김정렬은 서울에서 유학을 했다.

“당시 형이 저를 무척 예뻐하셨어요. 형은 그 당시 매우 깨어 있는 분이었어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하잖아요. 당시 우리 집 형편에 형의 권유가 아니었으면, 서울에서 공부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죠.”

형은 군대에 입대한 이후에도 휴가를 나오면 꼭 막냇동생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형의 사망 소식을 접하기 전날에도 그는 형을 만났다. 선임 병사가 외박을 나가는 날이라, 동생이 보고 싶어서 몰래 빠져나왔다는 것. 그날도 두 형제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앞날에 대한 이야기들, 공부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등 건설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잠깐 들러 동생 얼굴만 보고 돌아갈 예정이었던 형은 날이 밝은 후에야 허겁지겁 군대로 돌아갔고, 김정렬은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학교를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군용 차가 집 앞에 있었어요. 쌀을 한 가마니 내려놓으면서 고향집 주소를 물어보는 거예요. 당시 어머니와 누나들은 제가 시험 보는 기간이라서 형의 죽음을 사실대로 알리지 않았어요. 그냥 형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죠.”

구타로 사망한 형, 농약 먹고 자살한 걸로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나중에야 어머니와 누나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형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던 그날, 형은 사망했고 원인은 ‘구타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당시 외박을 나갔던 선임 병사가 일찍 군에 복귀한 후, 몰래 빠져나간 형을 밤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결국 형은 구타로 인해 사망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군에서는 형의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연금을 줄 테니 화장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어머니와 누나는 순순히 응했어요. 그런데 화장을 하고 나니, 군의 태도가 돌변했어요. 그리고 6개월 뒤에 형이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다고 공표했고, 국립묘지에 안장도 안 됐죠. 연금도 없었던 일이 됐고요. 가족이 억울해서 땅을 치고 통곡을 했죠. 그런데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는 거예요.”

화장하기 전 어머니가 형의 시신을 확인했는데,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시골에 살던 어머니는 평소 농약을 먹고 죽은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농약을 먹고 죽으면 입이 퍼렇고 농약 냄새가 난다. 하지만 형은 그저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을 뿐이었다. 누가 봐도 구타로 사망한 게 명백한데, 이미 화장을 했으니 어찌할 도리 없이 억울하게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개인이 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밝혀냅니까. 역부족이죠. 가해자를 찾는 게 가장 빠른 길이지만, 개인이 그걸 찾기도 힘들죠. 어머니는 형의 억울한 죽음 때문에 화병으로 심장병까지 얻으셨어요. 누나들과 저도 그렇지만, 어머니 심정은 오죽하셨겠어요.”

김정렬의 어머니는 형이 죽고 난 뒤, 화병의 한 증상으로 결벽증 비슷한 증세에 평생을 시달렸다. 접시 하나를 닦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족이 보기에는 깨끗한데도 뭐가 묻어 있다면서 닦고 또 닦았다. 당시 김정렬은 어머니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게 다 형의 죽음 때문에 생긴 ‘화병’이었다.

치매 걸린 어머니만 몰라서 안타까워
그러던 중 노무현 정부 때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고, 김정렬의 가족 역시 ‘진실’을 밝혀달라며 접수를 했다. 그리고 누나들과 진상규명위원회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드디어 가해자를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군에서 의문사의 원인을 명백하게 밝힐 수 있는 게 흔치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해자가 나타났고, 그가 양심고백을 해줬다.

“가해자가 ‘내가 때리지 않았다’라고 말하면 밝힐 수 없었던 사건인데, 다행히 가해자가 양심고백을 해줬어요. 오히려 가해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심정이죠.”

그는 누나와 함께 가해자를 직접 만났다. 가해자는 형과 비슷한 나이대로, 형이 살아 있다면 57세가 됐을 터다. 가해자는 담담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가해자는 “평생 유가족에게 죄 짓는 마음이었고,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 잘 수 없었다”고 사죄한 뒤 용서를 구했다. 김정렬의 가족도 가해자를 용서했다. 그렇게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32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었던 ‘짐’을 내려놓게 됐다.

형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 후, 가족의 마음은 뭐라 표현하기 힘들었다. 속 시원한 정도가 아니다. 마음속 오랜 체증이 한 번에 내려간 듯한 기쁨이었다.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30여년 전 군복무 중 구타로 사망한 친형 사연 공개한 개그맨 김정렬

지금 88세의 고령인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서 자식들의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어머니를 찾아가서 “어머니, 형을 때린 가해자를 찾았어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려? 그렇구나?”라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시더니 “그런데 너는 누구냐?”라고 하셨다. 그래서 “막내아들이에요”라고 하자 “아~ 니가? 그렇구나”라고 답하셨다. 김정렬은 “정작 이 기쁜 사실을 알아야 할 어머니가 모르셔서 너무 안타깝다”며 착잡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정신이 맑아지실 때마다 알려드릴 예정이다. 언젠가는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실 어머니를 위해서 말이다.

김정렬은 자신처럼 억울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조언한다. “밝은 사회,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처럼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진실이 밝혀져서 명예를 회복하는 영광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유난히 아껴주셨던 형님, 32년 동안 억울하게 구천에서 맴도셨죠. 이제 편안하게 잠드시길 바랍니다.”

한동안 소홀했던 가정, 이제 지킬 것
친형에 대한 이 같은 희소식에 그의 부인과 아이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22년 전 미모의 중국인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둔 김정렬. 큰딸(김기연, 22)은 현재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있으며, 둘째 딸(김도형, 20)은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스러운 딸들이다.

1986년 우연히 길에서 만난 아내, 참하고 단아한 인상 때문에 그녀를 마음속에 담았고 꼭 결혼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전화번호를 달라는 말도 못했어요. 그래서 대신 제 전화번호를 알려줬죠. 외울 수 있을 만큼 계속 번호를 외쳤어요. 그랬더니 진짜 두 달 후에 전화가 왔더라고요. 중요한 건, 때마침 제가 집에 있었고 그 전화를 받았다는 거죠(웃음).”

그런데 아내가 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또 한 번 이별의 시간을 갖게 됐다. 대신 두 사람은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당시 중국어를 몰랐던 김정렬은 아내에게서 편지가 올 때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먹은 자장면만 수백 그릇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내 측에서는 결혼을 극구 반대했고, 결국 첫째를 갖고 나서야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김정렬은 “결혼생활 22년째인데도 아내가 좋다”고 말하고 “하지만, 문제는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웃는다. 그는 그동안 가정이 그냥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아내의 그런 말이 이해가 된다는 것.

“저는 결혼 후 가정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냥 밖의 일만 잘하면 가정은 저절로 돌아가는 줄 알았죠. 사회생활 위주로만 살았어요. 앞으로는 가정에 더욱 집중하는 삶을 살 계획입니다.”

두 딸에게도 지금까지는 한없이 부족한 아빠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좀 더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가정생활도 본인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앞으로는 아내와 등산도 가고, 쇼핑도 가고, 여가활동도 즐길 예정이에요. 언젠가는 아내도 제 노력을 알아주겠죠(웃음).”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를 움직이는 건 가족이다. 그 사실을 좀 늦게 깨달았지만, 그는 아직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그동안 못한 만큼 더 많이 사랑하면 될 테니까.

“지금처럼 저와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 ■장소 협찬 / 워킹온더 클라우드(02-789-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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