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댓글 공유하기
ㆍ“물질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인생이 즐겁죠”
ㆍ지난달 LA 갤러리 웨스턴에서 사진전을 연 이상벽.

이상벽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침마당’을 떠나며 그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읊었다. ‘가야 할 때’뿐만 아니라 ‘돌아올 때’를 아는 것 역시 시기적절함의 미학일 것이다. ‘건강 나이 마흔일곱’을 자랑하는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이야기가 구수한 입담에 실린다.

30년 만에 접은 방송, 귀소본능 발동하다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매일 아침이면 등장해 서민들의 이야기 벗이 되어줬던 방송인 이상벽(62)이 TV로 복귀했다. 케이블TV로 시청할 수 있는 BTN 불교TV의 ‘이상벽의 이야기쇼, 붓다야 붓다야’가 그것이다. 연예인, 때로는 일반인과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형식의 토크쇼다. 불교 신자인 그가 선택한 종교 방송의 프로그램이지만 굳이 불교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담은 소박한 토크쇼다.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한 멋이 있는 ‘이상벽다운’ 방송 복귀다.

“30년 동안 방송을 해왔죠. 1986년과 88년에 MBC 방송연기대상 MC 부문 우수상을 받았어요. 저 같은 프리랜서가 수상한 일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감동스러웠고 이제 방송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성취감을 느꼈어요. 그 이후로 적절히 그만둘 시기를 찾는 데 고심했습니다. 방송도 하나의 패션이라, 시대 흐름에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신문기자 생활 10년 만에 사표를 쓴 것처럼 말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을 만나면 ‘요새 왜 방송을 안 하느냐’는 질문을 곧잘 받아요. 아쉬움이 남는 헤어짐이 좋지요. 돌아설 때를 알지 못하고 지금까지 방송을 했다면 아마 개편 때 잘렸을 겁니다. 요즘 방송국 긴축재정으로 프리랜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으니까요. 갑작스럽게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단절감은 무슨 수로 감당했을까요. 제 발로 나왔으니 나중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쉬운 면도 있지요.”

그는 방송을 그만둔 후, ‘인생 이모작’을 준비했다. 방송 말고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뭐가 있을까?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으로 사진을 부전공했던 그는 언젠가 사진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아직 감성이 살아 있는 지금을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바로 다음날 카메라를 잡았습니다. 그동안 두 번의 개인전, 두 번의 해외전, 열 번의 그룹 전시회를 열었어요. 부지런히 뛰며 셔터를 눌렀죠.”

“사진은 취미생활로도 가능하지 않느냐”며 주위 사람들이 생업을 접고 사진에 몰두해 있는 그를 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소위 편하게 돈 벌려면 얼마든지 벌 수 있다. 그런데 하필 사진이라니.

“노주현씨가 절 나무라더군요. ‘홈쇼핑 같은 곳에만 출연해도 꽤 벌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며 ‘메뚜기도 한철 지나면 안 써준다’고 말이죠(웃음). 맞는 말입니다. 막말로 노주현씨도 나가는데 제가 뭐 잘났다고 안 나가겠습니까. 그런데 아직은 상업 방송을 하고 싶지 않아요. ‘방송쟁이’ 해서 돈 벌자는 사람 없을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생이 즐거운 법이니까요.”

20개월 동안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고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어느 정도 사진이 손에 익는다고 느낄 때쯤 그는 우연히 BTN 불교TV에서 토크쇼 MC 제안을 받았다.

“그 전에도 다른 채널에서 제의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기 전까지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더군요. 그렇게 4년을 하니, 옛것에 대한 미련을 떠나 비로소 귀소본능이 일었어요.”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방송에서도 서슴없이 막말이 오가는 요즘, 정도를 갖춘 그의 구수한 입담을 기다리는 중장년층 시청자들도 많다. 이상벽은 “요즘 방송도 형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운을 띄운다.

“요즘 TV에 막말이 유행이더군요. 제 관점에서는 ‘저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볼 때는 그게 또 ‘맞다’고 하니까, 그냥 맞는가 보다 해요. 방송에서 제가 할 몫이 있다면 할 수도 있겠지요. 예를 들어 지금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어 언젠가는 노인 중심의 프로그램도 필요할 거라 보거든요. 적절한 시기에 노인 관련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온다면 한 프로그램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4년간 몰두해온 사진을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다. 그의 무게중심은 지금도 사진이며 앞으로는 회화와 사진 혹은 도자기와 사진의 결합 등 새로운 시도에 도전할 생각이다.

방송인이 되기까지, 이상벽의 옛날 이야기
“나 자신은 지연도, 학연도 변변치 않다”고 말하는 이상벽은 ‘성실이 밑천’이란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황해도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 은행원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학교 다니기도 빠듯했다. 12월이면 교회에 가서 노트나 건빵을 얻고 4월부터는 절에 나가 과자를 받아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는 선생님의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못하는 숫기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는 친척에게 부탁해 웅변을 배우게 했다.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어린 시절에는 얌전했어요. 그러다 웅변을 배우면서 목청이 트이고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지요.”

대학도 웅변 실력을 바탕으로 정치외교학과를 희망했다. 그러나 “월급쟁이 아버지를 둔 장남이 졸업하면 바로 돈벌이를 해야지, 정치는 안 된다”는 선생님의 반대에 부딪쳤다.

“당시 선생님께서 ‘웅변 말고 잘하는 것 없냐’고 물으시기에 ‘그림을 잘 그립니다’라고 했더니 홍대 산업디자인학과에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졸업하면 100% 취직된다고 말이죠.”

지난달 LA갤러리 웨스턴에서 사진전을 연 이상벽.

지난달 LA갤러리 웨스턴에서 사진전을 연 이상벽.

미대에 가려면 회화의 기초라도 배워야 할 터, 당시 상의할 사람도 없고 학비가 없어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던 때라 학원은 그림의 떡이었다. 미술부 학생의 어깨 너머로 배운 걸로 대학에 합격했다.

“졸업할 때가 되니 아버지께서 신문사 모집 공고를 들고 와 ‘사회성을 기르라’며 ‘신문기자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신문사 면접을 보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그저 웅변하듯이 큰소리로 떠들었어요.”
이상벽은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문화부지만 유신 시절에 평탄하게 기자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옆에 일하던 선후배 동료 기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안기부에 끌려가곤 했다.

“신문기자 생활에 신물이 나더군요. ‘방송하려면 10년만 버텨라’는 선배 기자의 말에 10년 되는 날 딱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방송국에 가서 글도 쓰고 교열도 보고 스크립터도 하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는 그 어떤 상대와도 대화를 잘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방송인보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스럽게 리드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고 소통이 어려운 사람이 있지요. 그러나 신문기자 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 정도 대화하다 보면 성향이 대충 파악됩니다. 그 사람이 싫어하는 부분, 좋아하는 부분, 장단점을 파악하고 샛길을 찾아 진행하면 되죠.”

그의 방송 복귀를 누구보다 반긴 사람은 딸 이지연 아나운서다.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방송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같은 방송인의 입장을 이해해주는 든든한 딸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딸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고 사진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에요. 사진은 ‘올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입니다. 내년에는 늘 생각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완성하려 합니다. 접사로 꽈리를 찍어볼 생각입니다. 꽈리의 일생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표현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는 어여쁜 초록색이었다가 곧 신랑각시처럼 빨갛게 무르익죠. 나이가 들면 사람의 검버섯처럼 빨간 껍질에 반점이 생겨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보려 합니다.”

신체 나이 47세, 이제 색소폰을 불어볼까?
이상벽은 내년에 또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친환경 사업가로 변신을 꾀하려는 것. 그야말로 쉼 없는 달리기다.

“제가 좋아하는 여성 CEO들과 일을 벌여볼 생각이에요.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사업인데 저희가 개발한 것은 음식물을 분쇄해 떡볶이 떡 모양으로 최종 처리가 되는 제품이죠. 그러면 음식물쓰레기를 한 달에 한 번만 버리면 되는 편리함도 있고 또, 음식물의 염분을 제거해줘서 환경오염을 막기도 합니다.”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자, 방송인, 사진작가, 그리고 사업가 이상벽의 즐거운 인생

기존의 음식물쓰레기 처리기는 염분이 제거되지 않아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개발한 제품의 경우 최종 처리물을 관련 기관에 의뢰했더니 2급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첫 번째 목적은 공인으로서 환경사업으로 사회에 일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송은 한 달에 두 번만 녹화를 하면 되고, ‘꽈리 프로젝트’도 이동 없이 작업할 수 있는 촬영이니 새로운 일이 가능해졌다. 이상벽은 인생 이모작에 이어 삼모작을 시작하려한다.

“머리 까맣고 치아 튼튼할 때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봐야죠. 꿈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제 오랜 친구인 나훈아 쇼에 깜짝 출연해서 색소폰 솔로 연주를 해보고 싶어요. 재밌잖아요?”

이상벽은 얼마 전 측정한 신체 나이가 47세로 나왔다며 즐거워한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깅하는 것이 그의 건강 비결이다.

“조깅은 육군 소위 때부터 쭉 해왔어요. 그런데 요즘 7년 전에 끊은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는데 어서 끊어야지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다 보니 상황이 전환돼서 그런지 자꾸 담배에 손이 가네요.”

삶이 즐거우면 건강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행운아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나오는데 이상벽은 창문 너머 해가 지는 풍경을 지그시 바라본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경 사진의 프레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운도 노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상벽은 인생 삼모작으로 끝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사모작, 오모작의 열정을 그의 눈동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이성훈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Ladies' Exclusive

      Ladies' Exclusive
      TOP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