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 그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어요”
연기자 최수지가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개인전이다. 그녀의 붓끝에서 살아나는 소녀와 꽃은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그녀는 각박한 시대에 행복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다.
최수지(42)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간 군의관인 남편을 따라 대구 캠프워커 관사에서 생활하다가 지난 8월 남편의 발령으로 서울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만학을 닦던 대구예대 졸업을 앞두고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원래 미술품을 좋아했어요. 모으기만 하다가 남편이 늦기 전에 그림을 시작해보라며 지원해준 게 큰 힘이 됐죠. 붓을 잡은 지 벌써 10년이 됐어요. 급하게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더라고요. 유화를 그릴 때도 2, 3일 충분히 마른 후에 덧칠을 해야 돼요. 욕심에 서두르면 늘 망쳐요. 뭐든 천천히 한 계단씩 밟아가는 마음으로 해야지요.”
처음 붓을 잡았을 때는 욕심이 났다.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화폭에 담기에 급급했다.
“영화나 연극은 스토리가 있고 장면 장면으로 채워지잖아요. 그런데 그림은 화폭 하나예요. 하나에 모든 스토리를 넣어야 해요. 이것저것 넣다보니 숨이 막히더라고요. 색깔에 감정을 넣어 표현하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무궁무진한 색깔들로 감정을 표현하다보면 화폭에 자연스레 제 생각이 녹아나더군요.”
그림 그리기는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작업해야 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다. 최수지는 보통 가족이 잠든 새벽에 그림을 그린다.
“어깨와 팔이 직업병에 걸린 것처럼 아파요. 에너지 소비가 굉장해요. 느낌이 좋은 날엔 날이 새도록 그림을 그려요. 그런 순간이 있거든요. 그걸 잘 맞춰야 돼요.”
그러나 힘든 일뿐이라면 10년 동안 붓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림 작업에서 새로운 재미와 기쁨을 느꼈다.
“일단 그림을 보면 제가 마음이 편해져요. 다른 분들도 좋아하시니 그게 기뻐요. 힘들고 바쁜 일상 속에서 제 그림 한 점이 어떤 분께 잠깐의 휴식을 줬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최수지는 전시회 ‘Sweet Spring’을 성황리에 마쳤다. 그녀의 그림은 조화로움과 감성의 공간이 적절하게 표현됐다. 전시회 제목답게 봄의 판타지와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녀가 작업한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보고 주위에서는 미술 치료 공부도 병행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최수지는 자신의 천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연기자가 제 천직이고 그림은 두 번째일 수밖에 없어요. 온전히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좋은 일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는 거죠. 그리고 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반동하는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 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길은 저절로 열리더군요. 무슨 일이든 최소한 10년은 해야 좀 되는 것 같아요.”
한 해씩 나이를 먹으면서 여유와 깊이에 대해 깨닫는다. 그녀는 ‘나만의 욕심을 고집해 되는 일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다고 한다.
달콤한 봄날 같은 그녀의 일상
화가 최수지에게 가장 중요한 관람객은 남편과 딸이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감상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순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하잖아요. 저희 집에 두 사람밖에 없으니 종종 작품에 대한 조언을 부탁해요. 진아(딸)에게 색 좀 봐달라고 해요. 아이가 예쁘다고 하면 정말 예쁜 거예요.”
그녀의 전시회 제목 역시 남편이 지어줬다. 여유와 봄의 느낌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많아 ‘달콤한 봄’이란 의미로 제목을 지었다. 새벽녘에 작업하는 아내를 위해 따뜻한 차 한 잔과 빵을 가져다주는 자상한 사람이다. 최수지 역시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이유로 주부 역할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미국으로, 대구로 발령이 나는 남편을 따라 묵묵히 근무지로 따라가 내조했다.
“남편이 오전 7시에 출근해야 해서 도시락 싸주고 준비하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해요. 결혼한 후에는 남편과 아이 스케줄에 맞춰서 생활해왔죠.”
아이와 남편 내조만 하다보면 커리어가 없어지고 자칫 주부 스트레스가 생길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그림이 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그 대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온전히 저만의 시간이에요.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다보면 데이트하는 기분도 들어요. 그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기쁜 거죠.”
“작품은 그 사람의 에너지가 함축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림을 소장한다는 것은 저와 함께하는 것과 같아요. 항상 밝은 기운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고요. 갤러리에 온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부담 없이 편안해하는 게 좋아요.”
그림이 팔릴 때는 묘한 기분이 든다. 처음 전시회를 열 때는 한 점도 나가지 않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들다가도 말이다.
“전시회를 끝내면 그림들이 각자 구입한 분들의 자택으로 보내져요. 그러면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어요. 마치 드라마를 끝냈을 때의 느낌과 같아요.”
그녀의 전시회에는 함께 활동을 했던 황신혜, 강수연, 최명길, 김혜선 등 옛 동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수지는 결혼하자마자 미국으로 떠나 연기생활을 접어야 했다. 때문에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며 연기에 대한 미련을 가질 법도 하다.
“지난 세월도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제 뭘 시작하더라도 넓게 보고 차분히 이뤄나갈 거예요.”
내일의 봄이 시작되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고 한다.
“10년 쯤 되니까 저도 제 그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더군요. 연기도 10년은 해야 스스로 자신의 연기가 보이거든요. 그런 여유를 알고 방송활동을 했다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그녀는 1987년 열아홉 살에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했다. 이후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서희’ 역을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파도에 휩쓸리듯 지나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어디서든 주목받고 싶었어요. 세월이 지나고 생각하면 그 나이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절을 그대로 반복하고 싶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고 착각인 거죠.”
그녀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한 걸음씩 발을 떼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군의관인 남편을 내조하며 스케줄을 따라가다보니 방송활동은 무리였다.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 욕심을 부릴 만큼의 능력은 없었어요. 지금 그림을 그리는 건 딸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고 작업에 전념하기 딱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죠.”
남편은 군의관이나 엄밀히 말하면 대령 지위의 군인 신분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부 명령에 따라 근무지를 이동해야 한다.
“남편은 언제 어디로 발령이 날지 몰라요. 5월이 되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는데 미국이 될지, 한국 지역이 될지 아직 몰라요.”
남편을 따라 해외생활을 하다보니 그녀 역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외국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려면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많아요. 저도 한국의 어머니처럼 굳세지고 강해졌죠. 외국인들을 대할 때도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들도 다가오지 않아요.”
물론 눈에 익고 편한 내 나라가 제일 좋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든 최수지는 주어진 환경에서 꿈을 이룰 수 있는 법을 깨달은 듯하다.
“제가 활동하기에도 한국이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맞춰야죠. 미국으로 가게 된다면 부족했던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고요.”
연기도 마찬가지다. 환경적 여건이 가능해진다면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고 산 적이 없다.
“연기자는 평생 직업이에요. 앞으로 몇 년 후라고 기약할 수는 없지만 좋은 작품에서 굳이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딱 맞는 역할이 있다면 해야겠죠.”
인생은 퍼즐과 같다.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공부를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게 조화롭게 그 역할을 해나갈 때 인생의 퍼즐은 완성되는 것이다.
연기 역시 어느 한 부분이 딱 맞춰지는 역할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과 열정은 다른 말이다. 욕심은 때론 오만이며 이기심일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열정을 폭발할 줄 아는 이야말로 진정한 재주꾼인 것이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원상희 ■헤어&메이크업 / 주은주, 이가빈(Foresta) ■스타일리스트 / Ji-hyun ■장소 협찬 / 이현서울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