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이 남자의 삶은 유난히도 굴곡지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떠나 지난 시간 걸어온 개인의 삶을 뒤돌아봐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하며 자신을 굳게 믿었다. 상처투성이로 덩그러니 남겨져 세상을 등지기보다는 부러진 날개로 다시 나는 법을 깨우쳤다. 지금 그의 비상이 조금 더 남다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마흔여섯의 김국진, 생애 첫 대학교 특강
김국진은 KBS-1TV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 촬영을 위해 강단에 올랐다. 김국진을 포함해 이경규, 김태원, 이윤석,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 전 출연진이 함께한 이날 강연회에서는 평균 나이 40.6세 아저씨들이 직접 나서 청춘을 즐기는 일곱 가지 방법을 전했다.
“저희들이 여러분에게 뭘 가르칠 자격은 없어요. 잘 살지도 못했고요.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 하나, 여러분이 앞으로 가야 할 20, 30, 40대를 먼저 걸어왔다는 것 하나로 이 자리에 서게 됐을 뿐이에요.”
특히 김국진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청중으로부터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동료 연예인이나 지인들을 통해 방송에서 이따금 폭로되기는 했지만, 그가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서 힘들었던 과거사를 스스로 털어놓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오늘 제 이야기의 주제는 ‘롤러코스터’예요. 제가 참 버라이어티하게 살았거든요. 제 인생에 비하면 이경규씨는 ‘시소’ 정도죠. 절대 비슷하지 않은 삶이니까요. 저는 20년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요. 인생이 참 다이내믹하죠.”
행복은 잠시,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의 시련
김국진은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15명의 동기와 함께 개그맨으로 데뷔한 후 혹독한 연수를 거쳐 무대에 올랐다. 신인임에도 빠른 시간 안에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며 사랑도 받았다. 하지만 행복은 짧았고, 시련은 일찍 찾아왔다.
“잘나갔던 신인 시절이 있었죠. 신인상을 받고 당시 프로그램을 5개나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제가 돌연 방송을 그만두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자 다들 놀라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내리막길 인생이 시작됐어요. 오해가 있어서 연예인 영구제명이라는 일을 겪기도 했고요.”
“미국 가기 전 6개월, 미국에서 1년을 그냥 보냈죠. 돌아와서 MC를 맡았던 프로그램도 6개월 만에 망했어요. 이름이 ‘오키도키 쇼’였어요. 기억 못하시죠? 망했으니까요. 막막했지만 그래도 김용만에게는 걱정 말라며 나만 믿으라고 했어요. 전 자신 있었거든요.”
그의 강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김국진은 이후 ‘도전 추리특급’, ‘테마게임’, ‘일요일 일요일 밤에-칭찬합시다’ 코너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영화와 가요계를 통틀어 국내 연예인들 중에서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고(당시 2위는 조용필), 그의 이름을 내세웠던 ‘국찐이빵’은 하루에 60만~70만 개씩 팔렸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참 싫지만…, 5년 동안 무려 40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상을 휩쓸었어요. 너무 많아서 안 받으러 간 상도 있을 정도였어요(웃음).”
그런데 그가 다시 내리막길을 만났다. 결혼 1년 만에 파경을 맞아 ‘돌아온 싱글’이 됐고, 설상가상 사업까지 실패했다. 취미로 시작했던 골프에 푹 빠져 프로테스트에 15번이나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그야말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결국 그는 연예계를 떠나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세월을 낚시질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갔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은 채 계속 내려가는 롤러코스터를 타면 기분이 어떨까요? 하지만 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내려온 만큼 다시 오를 수 있을 거라 믿었거든요. 오죽하면 매니저 동생은 제게 ‘형, 이제 그만 롤러코스터에서 내려. 너무 힘들잖아’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때 저는 ‘아니야, 나 앞으로 3년은 더 탈 거야’라고 했죠.”
죽기 전에 해야 할 마지막 미션은 ‘결혼’
5년 만에 방송에 복귀한 김국진은 다시 시동을 걸고 오르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음악여행 라라라’,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 빡빡한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냈다. 그리고 2009년,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통해 다시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의 저는 바닥을 찍고 다시 일어나려는 상태예요. 아이가 걸으려면 2천 번을 넘어져야 한대요. 저 역시 그랬죠. 사랑에 넘어지고, 사람에 넘어지고…. 그렇게 많이 넘어진 뒤 일어났을 때 비로소 뛸 수 있고 날 수도 있는 거예요. 오르는 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어요. 내리막길을 두려워하면 더 많이 오를 수 없어요, ‘쑤욱’ 내려가면 이후에 얼마든지 ‘쑤욱’ 올라갈 수 있어요.”
“제가 그런 얘기(힘들었던 과거)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예능이라는 게 참 묘한 선이 있어요. 이게 너무 안 받아도 문제고 너무 정색을 해도 문제거든요. 그걸 또 받으면 희화화가 되고요. 선을 잡기가 참…. 그래서 웬만하면 웃어요. 거기서 화를 내면 이상하잖아요. 멋쩍은 웃음을 짓죠.”
연예인으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김국진에게 이제 남은 일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는 것. 이정진과 김성민 등 ‘남자의 자격’ 출연진들은 프로그램이 종영하는 날 이뤄야 할 최종 미션으로 김국진의 결혼을 꼽기도 했다. 그에게 사랑은 언제쯤 다시 찾아올까.
“글쎄요. 그냥 저는 지금이…. 사실 좀 애매한데…. 간혹 방송 중에 김구라가 제 소개팅 얘기를 해요. (김)구라가 해주는 소개팅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좀 그렇죠. 제 일거수일투족이 불안할 것 같고요. 저도 사리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김)구라가 아니면 모르겠는데 유독 (김)구라가 그런 말을 하네요(웃음).”
거침없이 질주하며 올라갔던 정상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인기와 명예를 송두리째 잃었고, 사랑에 무너지며 쓰디쓴 좌절도 맛봤던 김국진. 하지만 그는 벼랑 끝에 매달린 순간에도 자신을 믿었기에, 성급한 욕심보다는 느긋한 여유로 ‘때’를 기다릴 줄 알았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진정한 ‘남자의 자격’ 아닐까.
“실패를 걱정하지 마세요. 롤러코스터의 특징은 안전바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도 알게 모르게 인생의 안전바가 있어요. 그러니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더라도 즐기세요.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