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통곡은 십리 밖에서도 들린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 리 없다. 혹시나 피해가 갈까봐 톱스타 최진실·최진영 남매가 ‘내 자식’이라고 드러내놓고 말 한 번 편히 한 적이 없는 아버지 최국현씨. 자식들이 죽고 난 뒤에야 최씨는 처음으로 최진실·최진영 남매에 대해 입을 열었다.
“부모가 살아 있는데, 자식으로서 할 도리냐고…”
장례식을 끝내고, 일주일 넘게 고열과 사투를 벌이다가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까칠하고 수척해져 있었다. 갑작스럽게 죽은 아들을 한 줌의 재로 떠나보내고, 그의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탔을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식사 자리를 제안했더니, “무슨 입맛이 있겠어요.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어요”라며 먼저 간 자식들에 대한 야속함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살려고 기를 쓰는데, 왜 저희들 스스로 목숨을 끊느냐고…. 부모도 이렇게 살아 있는데,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자식으로서 그게 할 도리냐고….”
이야기를 끝까지 맺지 못하고,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진실이가 죽었을 때는 믿어지지도 않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얼떨떨하기만 했지요. 그런데 진영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고. 자주 연락은 안 했어도, 내가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데….”
대한민국은 두 명의 스타 연기자를 잃었지만, 아버지는 마음으로 의지하던 자식을 잃었다. 최씨는 두 남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우울증’을 꼽았다.
“우울증이라는 병이 정말 무서운 거예요. 명예, 재산, 자식까지 다 안 보이는 거예요. 부모가 돼서 이제 열 살, 여덟 살 된 자식을 두고 죽는다는 게…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모든 게 소용이 없게 되는 거지요.”
우리 진실이 어렸을 때는 정말 인형 같았어
경복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던 최씨는 KBS 탤런트 1기 출신이다. 하지만 최씨는 경찰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눈물을 머금고 연기자의 꿈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끼와 재능은 아버지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었다.
최진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예계에 데뷔한 후부터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최국현씨.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내가 톱스타 최진실·최진영의 아버지’라고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다.
“우리 진실이 어렸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정말 인형처럼 예쁘게 생겨서 방긋방긋 웃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진영이는 아무래도 남자아이니까 조금 덜했지만, 자식이니까 말 안 해도 마음이야 다 똑같지요.”
아버지와 오래 떨어져 살았던 두 남매는 어른이 된 후, 아버지에 대한 속 깊은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남매는 아버지의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곤 했다. 최진실은 아버지에게 불쑥 자가용을 선물로 보내는 한편, 최진영은 가끔씩 통장으로 몇백만 원씩 용돈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예뻐했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최진실은 죽기 전에 아버지를 애타게 찾았다고 한다. 최씨는 딸이 죽고 난 뒤, 주위 사람들로부터 “최진실이 죽기 2, 3일 전부터 아버지에게 가겠다며 애타게 찾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진영이한테 야단을 쳤어요. 진실이가 나를 그렇게 찾았으면 빨리 연락을 하지 왜 안 했느냐고. 그랬더니 진영이가 조만간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누나가 그렇게 빨리 죽을 줄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내가 가서 힘이라도 돼줬으면 좋았을 걸….”
최진영 “제가 아버지를 너무 닮아가요”
최진영은 누나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유독 아버지와 통화하는 일이 잦았다. “진실이가 죽고 난 무렵에, 진영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요즘에는 제가 아버지랑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아들이니까 닮았겠지’라고 말했죠.”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시점이 있다. 최진영도 어느새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이 닮아 있음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마 누나가 죽고 나서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팔이 하나 떨어져 나간 것과 똑같았겠지요. 그런데 사회생활도 마음대로 잘 안 됐나 봐요. 사실 진영이가 돈이 없어요, 집이 없어요. 진실이 살아 있을 때는 어디를 가도 대접받다가, 갑자기 대우가 달라지니까 자기도 굉장히 힘이 들었을 거예요.”
자식들과 떨어져 살다가, 몇 해 전부터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제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느끼며 사는구나 싶었다는 최국현씨. 그러다 갑자기 그의 자랑이던 사랑스러운 딸이 세상을 떠났고, 곧이어 마음을 의지하며 살던 아들마저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유난히 예뻤던 딸과 아들의 죽음에 온몸에 기운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아버지 최국현씨. 일흔세 살, 주름 가득한 노부의 얼굴에는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사망 전 최진영,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 내용
“아버지… 저 힘들고 어려워요”
지난 3월 27일 오전, 최진영은 평소답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늦게 안부전화를 걸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할 말도 없으면서 유난히 전화기를 오래 들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아들의 긴 한숨과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따금 들려올 뿐이었다. 최씨는 특별한 내용 없이 20분간 이어졌던 아들과의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아들이 정말 힘들었나 보다 싶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아버지… 식사하셨어요?”
“뭐 잡수셨어요?”
“반찬은 뭐 해서 드셨어요?”
“요즘에는 무슨 일 하면서 소일하세요?”
“아버지… 저 힘들고 어려워요.”(한숨)
“아버지, 어려우시죠?”(오랜 침묵)
“어려우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버지 잘 사시게 해드릴게. 연락드릴게요.”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이성원, 경향신문 포토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