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국내는 물론 세계가 인정한 배우, 전도연이 돌아왔다. 잡티 하나 없이 투명한 피부와 몸에 착 달라붙는 누드톤 원피스 사이로 드러난 가녀린 몸매는 이제 막 첫돌을 넘긴 딸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2년 만의 컴백, 연기의 힘은 남편과 가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배우가 아닌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도 결코 놓칠 수 없었던 전도연은 2008년에 출연한 영화 ‘멋진 하루’ 이후 잠시 작품 활동을 쉬었다. 그리고 지난해 1월, 결혼 1년 10개월 만에 2세 탄생의 기쁨을 맛봤다.
항간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혹시 전도연의 배우 인생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녀의 연기는 한층 더 깊고 진해졌다. 결혼 후 영화 ‘밀양’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찬사를 얻었고, 아이를 낳은 후 첫 작품인 ‘하녀’ 역시 개봉 전부터 해외 영화제들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제가 결혼을 선택했을 때 이로 인해서 배우 전도연이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하는 데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전도연이기 때문에 달라지고 싶지 않았고 바뀌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 고마웠던 건 저보다 남편과 가족이 배우 전도연이 결혼 후에 달라지는 것을 더 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제가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서 참 고마웠어요. 특히 이번 작품을 선택할 때는 가족의 힘이 더욱 컸어요.”
20년 연기 인생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연기
전도연이 차기작으로 선택한 ‘하녀’는 장르부터 다소 남다른 에로틱 서스펜스다. 1960년에 발표됐던 동명의 원작은 고(故)김기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과감한 스토리와 에로티시즘의 파격적인 표현을 통해 불륜과 살인, 욕망이 불러온 중산층 가정의 파국과 몰락을 그려 아직까지도 국내 에로틱 서스펜스 장르의 교과서로 불린다. 이 때문에 2010년판 ‘하녀’는 리메이크 자체만으로도 기획 단계부터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전도연은 극중 나이답지 않은 순수한 성격으로 최고 상류층 집안에 하녀로 들어가서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지내는 ‘은이’ 역할을 맡았다. 본능과 욕망 앞에서도 숨김이 없고 주인집 남자의 유혹마저 순순히 받아들이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격렬한 관계를 맺는 캐릭터다. 그동안 그녀가 출연했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은이’로의 변신은 작품마다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인 전도연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지나치게 순수하기 때문에 당당하고 솔직한 ‘은이’라는 캐릭터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저 감독을 믿고 주어진 대로 충실히 연기했고 모든 촬영을 끝낸 순간에도 자신을 의심했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완벽하게 다 파악하고 촬영을 마친 것도 아니었고요. 은이에 대한 물음표는 작업을 마칠 때까지 계속됐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은이를 너무 멀리서 찾는 것은 아닌가, 제 자신에게서 찾아도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끊임없이 제 자신을 의심했지만 감독님은 처음부터 제게서 은이라는 캐릭터를 발견하고 믿어주신 것 같아 그 부분에서 많이 감사할 따름이에요.”
역할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촬영 역시 고되고 힘들었다. 고난도의 와이어 연기, 격정적인 정사신, 와인 병과 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수십 계단을 올라야 하는 장면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았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이렇게 은이라는 캐릭터가 해야 할 일이 많은 줄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하다 보니 1인 다역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해야 할 일이 많은 거예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촬영하면서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행복하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그 힘든 것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쾌감으로 느껴졌고요.”
여왕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감행한 전도연.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에 대한 열정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인기를 먹고사는 스타이기보다 연기를 토해내며 진정한 배우이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그녀의 도전이 있기에 우리는 이제 또 한 번 새로운 전도연을 만난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강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