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여 제자’는 ‘30금’ 연극이다. 30대 이상 관람가다. 극단은 ‘교수와 여 제자’는 ‘절대 성인연극’을 표방하고 있으며 새로운 장르 개척이라고 설명한다. 여배우의 알몸 연기와 과감한 성적 묘사로 중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기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중·장년층의 지지로 4개월 만에 유료 관객 5만 명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남성 관객이 전라로 공연 중이던 여배우에게 난입했던 사건이 있었고 또 관람을 하던 50대 남성이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종종 몰카 촬영 사고가 터지기도 했다. 결국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던 여주인공 최재경은 무대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연일 터지는 사건을 접한 네티즌은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냈다. 극단 측은 각종 여성단체로부터 공연 종영을 요구하는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비난이 거세질수록 연극의 인기도 높아갔다. 현재 극단 측은 ‘교수와 여 제자’ 시즌 3을 준비하며 공모를 통해 새로운 여배우를 모집 중이며(응시율이 꽤 높다고 한다) 나아가 영화 제작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연극을 관람하기 전 ‘교수와 여 제자’의 연출가 강철웅을 만났다. 그는 전작 ‘마지막 시도’라는 작품의 외설시비로 우리나라 최초 구속 수감자라는 이력을 갖고 있었다. ‘마지막 시도’는 1997년 작품으로 공연음란죄로 제작자, 연출자, 주연배우까지 입건된 화제의 연극이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이유로 그는 비난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왜 자꾸 ‘야한 연극’을 만드는 것일까?
“13년 전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이었죠. 요즘은 포르노도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시대가 왔으니 다시 한번 특화된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는 논란 속에서 비교적 여유로웠다. 자신의 연극이 외설로 불리는 것에 자유로워 보였다. 예술이든 외설이든 관객의 관점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술이나 외설은 표현의 자유인데 어떤 잣대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관객이 판단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표현에 대해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제 방식대로 소신 있게 갈 겁니다.”
무대 위에서 노골적인 노출을 감행하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연극에서 노출이 필요한 것인가?
“몸은 작품을 위한 소도구일 뿐이고 연기가 되고 완성도가 있으면 몸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연극에서는 분명 상업적인 면도 필요하죠.”
연출자의 말에 따르면 연극은 교수와 여 제자의 부적절한 관계 속에서 웃음 코드를 즐길 수 있고 종국에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랑과 화해, 가족 간의 행복의 소중함이라고 한다. 선뜻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교수와 여 제자의 불륜과 가족 간의 사랑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도무지 모르겠다. 일단 연극을 보고 이야기하자.
‘교수와 여 제자’를 보다
초조하게 연극의 막이 오르길 기다렸다. 관객의 성비 구성은 남녀 반반이었고 대부분이 40대를 넘은 중·장년층이었다. 부부나 커플 관객도 눈에 띄었다. 기자 앞으로 남녀 단체가 들어왔기에 “부부 사이냐?”고 물었더니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깜짝 놀라 여성 직장인에게 “어떤 연극인 줄 알고 왔느냐”고 물었다.
“남자 동료들이 재밌는 거 보러 간다고 하기에 우리도 따라왔어요. 야한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다들 기혼자들이니 별로 쑥스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요?”
확실히 중·장년층에게는 성에 대한 노골적인 이야기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일단 극단 측의 ‘30금’ 기획 의도는 성공적인 듯하다.
기자가 관람하러 간 날엔 연극을 시작하기 전 강철웅 연출가가 나와 관객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성 칼럼니스트나 전문가들이 나오기도 한단다.
“관객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닥칠 엄청난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연극을 제작했습니다.”
그는 연극을 30금으로 정한 이유는 ‘야해서’가 아니라 30세 이하는 ‘이해를 못해서’라고 했다. 실제 연극은 30금이 될 리가 없다. 연기하는 여배우가 고작 스물두 살이다.
“이 연극은 30대부터 50대 이상의 성 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연극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불끈’하는 20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얻을 수가 없죠. 그래서 ‘30금’이라는 표현이 나온 겁니다.”
역시나 극장에 들어갈 때 별도로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절차는 없다. 그 대신 연출자는 관객을 향해 20대 관객이 있는지 확인했다. 한 커플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는 그들에게 왜 이 공연을 보러 왔는지 이유를 물었다.
“화제의 연극이잖아요. 호기심에서 보러 왔습니다.”
연출자는 그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비록 연극 내용이 공감이 되지 않더라도 공연 중간에 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부탁해요.”
그는 건강을 위해 음식을 먹듯 성생활도 필요한 것이라고 운을 띄었다.
“우리는 음식 이야기는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건강에 필수인 성생활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립니다. 프랑스에는 ‘욕망의 트럭’이라는 것이 있어요. 트럭을 개조해 상담실을 만든 거죠. 갱년기 여성이 프랑스 전역을 돌며 성기능 장애를 가진 남성을 상대로 트럭에서 상담을 해줍니다. 우리는 그런 통로가 부족하죠. 성 문제를 쉽게 입에 담지 못해요.”
그는 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해 연극을 기획했다고 강조하고 퇴장했다. 드디어 ‘교수와 여 제자’의 막이 올랐다.
어둠 속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만이 들린다. 마치 연극에 대한 기대로 벅찬 기자의 심장박동과 같다. 야한 비디오를 부모님 몰래 보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리고 한 부부가 성생활하는 실루엣이 비친다. 남녀의 실루엣이 시각을 자극한다. 부부는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남편이 ‘고개를 숙인 남성’이 되어버린다. 아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남편 즉, 교수는 발기부전으로 아내에게 냉대받는 현실을 비관하다가 여 제자와 함께 대낮에 모텔을 찾는다. 치료를 위한 색다른 흥분을 원하는 교수와 이를 거부하는 여 제자 간의 옥신각신 끈적끈적한 연기가 시종일관 계속된다. 촐싹대며 끊임없이 들이대는 교수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실소를 자아냈다. 연극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커버하기 위해 교수에게 코미디적인 캐릭터를 넣은 듯 보였다.
연극 중간에 교수는 관객석으로 와서 직접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직 왕성하신가요?”라고 묻자 “예!” 하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관객도 있었고, “교수님과 비슷한 과인 것 같아요…” 하고 말끝을 흐리는 관객도 있었다. 교수의 거침없는 대사에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드디어 교수를 거부하던 여 제자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몸 연기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이제야 시작되는구나! 관객들은 몰입 그 자체. 점점 긴장감이 고조됐다. 여배우는 뒤를 돌아선 후,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다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침 넘어가는 소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또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돌리는 관객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알몸이 된 여배우는 무대 동선을 따라 연기를 시작했다. 부끄럽거나 망설이는 기색 따위는 없었다. 대범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행위 묘사 장면은 기자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실적이거나 관능적이지는 않았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혹시 관객이 과도하게 흥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은 교수의 발기부전은 치료됐고 아내의 만족스러운 미소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커튼콜에서 여배우가 나오자 관객석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아마도 그녀의 용기에 대한 박수일 것이다. 여배우 연기에 가려진 교수 역할을 한 배우 남상백의 속사포 같은 대사 처리는 연습량을 실감할 정도로 맛깔스러웠다. 그렇게 연극은 끝이 났다.
연극 관람을 마친 후 기자는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교수가 치료의 목적으로 제자와 불륜을 시도한다는 설정, 그 덕에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내용이 관객의 이해를 살 수 있을지 궁금했다. 30대 초반인 기자가 다소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연극을 보고 나오는 50대 남성에게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 물었다.
“‘고개 숙인 남성’을 표현한 부분은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불륜을 시도하고 치료가 되는 것은 그저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연극적인 허구라고 생각해요.”
옆에 있던 아내는 “실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변태가 아닐까” 하고 응수했다. 또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표현만으로 웃음의 포인트를 주는 것은 다수의 관객을 흡수하기엔 부족해 보였다. 노출 수위는 어느 연극보다 강했다. 이것이 결국 연극 흥행의 주된 요인이 된 듯하다. 노출은 때에 따라 극을 표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제를 표현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예술과 외설의 갈림길에 선다. 그 판단은 관객에게 맡길 뿐이다.
미니 인터뷰 ‘여 제자’ 역의 이탐미 인터뷰 그녀의 연기 없이는 연극의 흥행도 없었을 테니까. 스물두 살의 당찬 여배우 이탐미를 만났다. 몸매는 이름만큼이나 예뻤다. 이탐미(22)는 극단 대표가 지어준 가명이란다. 처음에는 이름이 야한 느낌이 들어 싫더니 이젠 자랑스럽게 느껴진단다. 갓 스무 살 넘은 처자가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열정이 샘솟았을까. 여자로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심적 스트레스를 받는지 상상할 수 없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망설이니 극단 측에서 끊임없이 설득했어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섬광처럼 탁 하고 느낀 게 있으니 하겠다고 했겠지요.” 처음에는 여 제자 역을 맡았던 최재경의 갑작스러운 하차로 그녀는 연습이 미처 덜된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야 했다.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전 배우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공연을 볼 때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전혀 다르더군요.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더블 캐스팅 역이나 후속 여배우가 없는 실정에서 그녀는 강행군하여 무대에 오르고 있다. 매일 저녁 5시, 8시 두 번의 공연을 소화해내고 있다.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어요. 설날과 삼일절이 월요일이라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오르기도 했어요. 성대도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렇지만 저 말고 할 사람이 없잖아요. 처음에 열정으로 시작했다면 지금은 책임감이 더 커요.” 노출에 대해서는 자신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하고 있단다. 이탐미는 외설 배우라는 일각의 비난도 있지만 연극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고 평가해달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가명 쓰고 숨기려고 했는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니까 차라리 당당해지려고 해요. 친구들도 다 알게 됐고요. 오히려 격려해주고 용기를 줘요.” 연극의 공연 횟수가 늘면서 연기하며 관객의 반응도 살필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조는 사람은 확실히 보여요. 술 한잔 하고 오셔서 조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은 제가 옷을 벗는 부분이 시작되면 깨시죠(웃음).” 벗는 장면에서 본격적으로 보려고 자세를 고치는 모습, 아주머니들의 “어머” 하고 놀라는 모습. 아저씨들의 헛기침하는 소리 등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단다. “관객석에서 흘러나오는 긴장감을 즐겨요. 스스로 몸의 예쁜 각도를 찾으려 노력하고요. 관객의 반응을 하나하나 신경 쓰고 ‘벗어야 돼 말아야 돼’ 하다 보면 너무 힘들어요. 연극 안에서는 모든 걸 즐겨야 해요.” 꾸준히 보러 오는 남성 팬들도 생겼다. 무엇보다 당당한 매력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다. “커튼콜에서 큰 박수에 늘 힘을 얻어요. 연기력이나 외형적인 것들보다는 제 용기에 보내는 박수일 거예요. 아저씨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세요(웃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벗는 배우’라는 꼬리표가 달리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과감한 연기는 작품이 좋다면 피하지는 않겠지만 다음 연기에서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 이탐미의 진짜 매력은 탐스러운 몸매나 섹시한 외모가 아니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
■글 / 이유진 기자 ■사진&제공 / 홍태식, 예술집단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