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각자의 일과 가정에 더욱 충실해야죠”
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 농구선수 우지원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다. 우지원은 그저 농구선수로 부르기 어렵다. 그는 우리들의 찬란한 젊은 날을 빛낸 우상이었다. 그래서 그의 은퇴 소식에 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지원과 그의 아내 이교영씨와 함께 추억과 앞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갑작스러운 은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저 역시도 올해 은퇴할 줄은 몰랐어요. 올 시즌 마지막인 내년 2월쯤 은퇴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지만요. 구단과 많은 상의를 거쳤지만 마지막 발표하기 전날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마음이 딱 반반이었어요.”
운동선수에게 은퇴 시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분위기와 체력, 부상을 감안해 구단과 함께 정하는 것이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주장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끈 현재가 가장 명예로운 시기라고 최종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아쉬움을 숨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는 평생 농구공을 손에 쥐고 살았다. 그것을 놓는다는 것은 농구를 시작할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내 이교영씨(32)는 은퇴하던 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심 남편이 1, 2년은 더 코트에서 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은퇴 보도가 나오자 저도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날 남편이 지인들과 함께 위로주를 마시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죠.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내가 이 정도인데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그 다음날까지 계속 눈물이 났어요.”
우지원은 지금까지 자신의 은퇴 기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양한 행사와 인터뷰 요청이 밀려들어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아직은 씁쓸한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뛴 모습을 편집해 동영상을 만들었더군요. 아내가 그걸 보고 있었고 저는 소리만 들었어요. 멀리서 화면을 보니 대학교 시절 모습이더라고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 일부러 보지 않고 피했어요.”
그의 정식 은퇴식은 올 시즌 프로농구가 개막되는 10월에 있을 예정이다. 그때까지 감정이 정리되고 누그러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의 은퇴가 아쉬운 이유는 농구대잔치 시절 그와 함께 인기를 주도한 ‘연세대 빅 3’ 이상민, 문경은도 연달아 은퇴 결정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선수들 사이에 은퇴 시기는 매우 민감한 문제라 서로 상의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저희는 정말 공교롭게도 2, 3주 안에 발표를 했어요. 그래서 주위 반응도 더 컸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를 나눌 수 있게되어 좋아요.”
세 사람은 요즘 대학 시절만큼이나 자주 만난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향후 일에 대해 상의도 많이 한단다.
“세 명이 같이 다닌 지 벌써 일주일 됐어요(웃음). 함께 방송국 인터뷰도 하러 다니다 보면 그런 상황이 좀 웃기기도 하더군요.”
대학 농구 전성기 ‘코트 위의 황태자’
연세대 시절 우지원의 인기는 절정이었다. 농구를 좋아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지원의 브로마이드, 책받침, 화보집 중 하나는 누구나 갖고 다닐 정도였다. 그야말로 슈퍼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그 시절을 추억해보자는 질문에 우지원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다음날 큰 수술을 앞둔 환자였다. 우지원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수술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 가족 몰래 병원을 빠져나왔다는 것. 소녀를 어르고 달래 간신히 병원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다. 그럴 정도이니 우지원의 열애설이 톱스타들만큼이나 화제가 된 건 당연한 일. 아내 이교영씨는 당시 상황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열애설이 났을 때 제가 스물두 살이었고 사귄 지 100일쯤 됐을 때예요. 정말 당황스러웠죠. 그 나이에 누가 결혼 생각을 하면서 남자를 만나겠어요. 게다가 제가 일반인인데도 이름 석 자가 기사에 모두 공개됐어요. 너무나 요란하고 구체적으로 기사가 실린 바람에 마치 결혼발표를 당한(?) 느낌이었죠.”
가족에게조차 교제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그녀였다. 이교영씨 주변인들은 “나중에 헤어지면 여자 쪽만 손해”라며 두 사람의 교제를 우려하기도 했다.
“서로 믿음직스러웠죠.”
“남편의 이메일에 저를 음해하는 편지가 오는 건 기본이었어요. 제 미니홈피에 악플을 달기도 하고 경기장에 구경을 가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죠.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은 지금까지도 그런 분들이 종종 계세요. 오히려 아직까지도 애 아빠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네요(웃음).”
다른 운동선수의 아내보다 유독 엄한 잣대를 자신에게 대는 것 같아 당황스러울 때도 많았다고 한다.
“우지원씨는 농구장에서 가장 빛나고 화려하죠. 저도 그때만큼은 남편 같지 않고 낯설어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오면 평범한 남편이에요. 아니, 조금은 부족한 남편이죠. 1년에 반 이상 집을 비우니까요.”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우지원’과 결혼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농구선수 우지원’과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딸들도 가끔씩 집에 들어오는 아빠가 그리운 건 마찬가지.
“첫째 딸 서윤이는 ‘엄마가 나가서 돈 벌고 아빠가 집에 있어’라고 해요. 아무래도 제가 육아와 집안 살림을 모두 담당하고 있으니 싫은 소리를 많이 하게 되고 늘 옆에 있는 엄마의 소중함을 모르는 거죠.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면 늘 재밌게 놀아주고 예뻐하고 사달라는 장난감을 사주니까 마냥 좋죠.”
서윤이는 요즘 “아빠가 농구를 그만뒀는데 왜 집에 와서 놀아주지 않냐”며 오매불망 아빠를 기다린단다. 서윤이는 외모부터 운동신경까지 아빠를 쏙 빼닮았다. 딸이라 발레나 피아노를 가르쳐봤지만 모두 적응하지 못하고 현재 태권도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서윤이가 발레를 그만두고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우길 때는 좀 당황스러웠어요. 남편을 닮아서 운동을 좋아해요. 수영을 가르쳐도 금세 접영을 하고 두발 자전거도 쉽게 배우더라고요.”
이교영씨는 두 딸 서윤이와 나윤이를 보고 있으면 아들 욕심이 생긴단다. 셋째 계획도 생각하고 있다고 살짝 귀띔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
“이미 구단 전력분석가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대학농구 경기를 보러 다니거든요. 전력분석가란 타 구단 선수를 분석하는 것이 임무예요. 모든 경기를 보고 리포터를 써야 해요. 오늘도 인터뷰 끝내고 곧바로 경기를 보러 가야 합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사회에 나온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농구만 해오던 30여 년의 생활과는 다른, 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서른일곱 살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죠. 앞으로 지도자 수업도 받아야 하고 기회가 되면 스포츠 관련 방송도 하고 싶어요. 또 저만의 사업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제 이름을 브랜드화해서 아카데미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일단 올해 안에 유소년 농구 교실을 만들 예정이에요.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운동은 협동심을 키우고 정서 함양에도 좋아요. 서윤이만 보더라도 공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태권도로 푸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 농구는 아이들 성장판을 자극하는 매우 좋은 운동입니다.”
이미 3, 4년 전부터 차근차근 계획했던 일이라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지만 헤매지 않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선수 시절 우지원은 경기에서 뛰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어도 항상 농구공을 손에 쥐고 있었다. 공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팬들은 아직 농구공 없는 그의 빈손이 어색하다. 그러나 준비된 승부사 우지원의 손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들려 있을 것이다. 그를 보며 은퇴의 아쉬움보다 앞으로의 기대감이 더 큰 이유다.
■글 / 이유진 기자 ■사진 / 원상희 ■헤어&메이크업 / 최훈, 이성주(라뷰티코어 분당점) ■의상 협찬 / 피피캣(www.ppca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