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전후로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이현경을 만났다. 차분하고 단아하면서도 지적인 이미지에, 새색시의 화사함이 더해져 한층 아름다워 보였다. 늦었지만 결혼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마흔이 되기 전에 드레스를 입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며 소탈하게 웃는다.
이현경(39)·민영기(38) 부부는 발리로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결혼 전부터 계획했던 ‘성지순례’는 이 부부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됐다고 한다.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요. 함께 갔던 어른들에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울 수 있었고, 서로 잘못 알고 있던 부분들을 고칠 수 있었죠. 결혼 초기에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결혼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웃음).”
아직 한창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시기. “요즘 신혼 재미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역시나 “정말 좋고 행복하다”고 답한다. 사실 결혼하기 전에는 이현경 본인도 잘 살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어머님께서 음식을 굉장히 잘하세요. 반면 저는 밥을 잘 못 챙겨주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제가 약식으로 차려준 밥도 전혀 싫은 내색하지 않고 정말 맛있게 먹어요. 며칠 전, 제 생일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봤다며 생일상을 차려주더라고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몰라요(웃음).”
가만히 지켜보니, 이현경은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의 천생 여자였다. 이 같은 기자의 말에 그녀 역시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어릴 때부터 워낙 살림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는 것. 그런데 지금껏 인연을 못 만나서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그 인연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고.
일에 열정적인 남편, 멋있다
그렇게 만난 남편은 이현경을 처음 본 순간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다”며 첫눈에 반했고, 레슨 세 번 만에 이현경에게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대시를 했다. 그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왠지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그때는 누굴 만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남편이 계속 연락을 하더라고요. 조금 진중하게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남편이 성격이 좀 급한 편이라 기다리는 걸 잘 못하더라고요. 교제 한 달 만에 주변에 ‘결혼한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예요. 덕분에 제가 빨리 마음의 결정을 내렸죠(웃음).”
남편 민영기의 어떤 모습에 가장 반했냐고 물었더니, “자기 일에 열정이 있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답한다. 또 함께 지내다 보니, 이렇게 착한 사람이 없단다.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는 직업인데도 계산적인 면이 없는 것도 매력적이다.
“남편 별명이 ‘초딩’이에요. 참 웃기죠? 착하고 순수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래요. 저도 나름 소녀 같은 성향이 있는데, 남편은 저보다 더한 것 같아요(웃음).”
돈다발 프러포즈 화제
결혼 이후, 이 부부의 일명 ‘돈다발 프러포즈’가 사람들에게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천원짜리 1천 장이 들어 있는 돈다발 박스를 이현경에게 선물한 것. 이 프러포즈는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네티즌들로부터 ‘돈다발’ 프러포즈라는 별명이 붙었다. 민영기는 이 돈다발을 이현경에게 주면서 “1천원짜리를 10년 후에 모두 백지수표로 바꿔주겠다”고 프러포즈를 했다. 이 말에 이현경 역시 돈을 쓸까 하다가 보관 중이라고.
하지만 프러포즈 전, 이현경은 은근히 마음고생을 했다. 평소에 “프러포즈만큼은 정말 멋있게 할게”라고 종종 말해오던 그가 결혼식이 다가오는데도 프러포즈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결국 이현경이 프러포즈 받는 걸 포기했을 때쯤, 남편이 이현경을 한 와인바로 불러냈다. “예쁘게 입고 나와”라는 전화 때문에 대충 눈치는 챘고, 프러포즈를 받는다는 생각에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방송용 조명이 보이는 순간, 그녀는 크게 실망했다.
“방송용 조명을 보고, ‘아 남편이 준비한 게 아니라 방송에서 해줬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전혀 기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프러포즈 이벤트를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마쳤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오래전부터 공들여서 준비해온 이벤트였는데 방송국에서 잠깐만 찍어도 되겠냐며 찾아온 거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직접 준비했다는 말에 그제야 고마운 마음이 들었죠.”
이에 이현경은 부부싸움이라기보다는 서운한 적은 있다고 밝혔다. 이현경은 사회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상대방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졌다. 하지만 남편은 이현경과는 성향이 정반대였다. 남편은 “좋다”, “싫다”를 분명히 해줘야 이해하는 사람이었던 것.
“한번은 남편이 저를 혼자 두고 모임에 갔다 오겠다는 거예요. 속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억지로 ‘갔다 오라’고 말했어요. 예민한 사람들은 말투만 들어도 ‘싫어하는구나’ 하고 느끼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전혀 눈치를 못 채더라고요.”
결국, 이 부부는 서로가 말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남편 민영기는 아내의 말투와 표정만 보고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현경 역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말하도록 노력하자고 결심한 것. 비록 작은 트러블이었지만 서로가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굉장히 빨리 찾는 현명한 부부다.
결혼 후, 연기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이현경은 7월 3일부터 연극 ‘여보 고마워’를 통해 결혼 이후, 첫 활동을 시작한다. ‘여보 고마워’는 연극 ‘친정엄마’로 유명한 고혜정 작가의 두 번째 가족 이야기로 세 번째 앙코르 작품이다. 6년 차 전업주부인 철부지 남편, 슈퍼맘이 되어버린 아내, 그리고 아빠가 이상형인 딸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그리는 작품이다.
“솔직히 결혼하기 전보다 훨씬 공감되고 와 닿는 대사가 많아요. 조카가 있을 때랑 없을 때 아이를 대하는 게 좀 달라지잖아요. 상상이 아니라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남편이 있으니까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내 남편이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대 배우를 바라보면, 감정이 굉장히 달라져요. 그래서 이번 작업은 2년 전에 했을 때보다 훨씬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웃음).”
연극은 초반에는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흐르다가 후반에는 감동적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달링’, ‘내 사랑’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웬수’가 되고, ‘자기 없으면 못 살아’가 나중에는 ‘너 때문에 못 살아’로 바뀌는 감각적인 대사도 관객들에게서 유쾌한 웃음을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부부싸움을 하고 왔다가도 연극을 본 후에 자연스럽게 화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저와 친한 언니 부부는 아침에 크게 싸우고 서로 따로 왔다가 연극이 끝난 후 손을 잡고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연극이 주는 감동이 굉장히 커요. 저는 이 연극을 연인들은 물론 신혼부부, 중년부부 등 모든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살다 보면 나 혼자만 서운한 것 같잖아요. 그런데 객관적으로 연극을 보면서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또한 그녀는 연극 ‘여보 고마워’를 통해 부부싸움을 잘하는 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우리 이혼해!”라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이라는 것. 앞으로 살면서도 절대 책임지지 못할 말은 쉽게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아내는 베테랑 연기자, 남편은 뮤지컬 스타인 이 부부. 가끔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도 모니터를 하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현경은 “남편이 아무래도 뮤지컬 배우이다 보니 완벽주의가 있어서 그런지 칭찬을 잘 안 한다”고 약간의 서운함을 드러냈다. 특히 2년 전에 했던 연극 ‘여보 고마워’ CD를 보고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이현경의 사소한 버릇까지 발견해냈다. 그럼에도 남편의 날카로운 연기 모니터링은 그녀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앞으로 연기할 때는 좀 더 긴장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2세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갖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은 허니문 베이비를 원했는데, 잘 안 됐어요(웃음).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살짝 불안하기도 해요. 지난번 성지순례 갔을 때 ‘아이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생기지 않을까요?(웃음)”
알콩달콩 깨소금 냄새가 솔솔 풍기는 이현경·민영기 부부. 조만간 자신들을 꼭 닮은 아이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갈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 글 / 김민주 기자 ■ 사진 / 원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