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그러나 저를 비롯한 후배연기자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ㆍ당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고자 결심했습니다”
개그우먼 김미화(46)가 KBS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지난 7월 19일에는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출두해 5시간에 걸친 조사까지 받았다. 그녀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친정집에서 버림받은 딸의 비참한 심정
지난 4월 5일 KBS 김인규 사장이 직접 주재한 임원회의에서 “일부 프로그램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내레이터가 잇따라 출연해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미화가 내레이션을 맡았던 KBS-1TV ‘다큐멘터리 3일’ 방송이 나간 지 이틀 뒤였다. 이를 계기로 KBS는 ‘내레이터 선정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김미화를 겨냥한 것이라는 논란은 계속되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염경철)는 며칠 뒤 ‘KBS에 진정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7월 6일 김미화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직접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푸념 섞인 글을 남겼다. 김미화는 “어제 KBS에서 들려온 이야기가 충격적이라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라며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출연이 안 된답니다.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처음 그 말이 언론에 나왔을 때 제가 믿지 않았던,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주십시오”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미화의 트위터 글이 일파만파 퍼지자 KBS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근거 없는 추측성 발언을 한 김미화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코미디언일 뿐
김미화는 경찰 조사를 1시간 여 앞두고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취재진 앞에 선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 하지만 슬픔에 가득 찬 눈빛은 감출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일기처럼 쓴 트위터의 짤막한 글 하나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왔습니다. KBS는 저에게 아주 특별한 방송사입니다. 늘 저는 KBS를 친정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1980년대에 ‘쓰리랑 부부’로 전례 없는 60%의 시청률을 올리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저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친정집으로부터 고소당한 딸의 심정입니다.”
그녀는 KBS 측에 여러 차례 이 일이 고소로 갈 일이 아니며 더 이상 확대되고 논란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는데도 여기까지 오게 된 데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푸념적이었던 저의 글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죄가 된다면 기꺼이 수갑을 차겠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 있어서 저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 송사에 소모되는 정신적·금전적 피해와 소모적 논란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에 대한 책임은 KBS 임원 여러분께 있다고 봅니다. KBS는 저에 대한 명예훼손 부분을 어떻게 감당하실 생각이십니까?”
특히 그녀는 이번 일이 단순히 트위터 글로 우연히 촉발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후부터 자신을 ‘정치하는 연예인’, ‘좌파 연예인’으로 분류하며 일부 언론이 터무니없는 멍에를 씌워온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은 정치와 절대 무관한 인물이며 대한민국에서 자랑스러운 코미디언으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정치하는 것 보신 분 있습니까? 저는 단연코 한 번도 정치권에 기웃댄 적이 없습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행사에서도 기꺼이 제 재능을 가지고 빛내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때마다 집권당의 사상과 이념을 따지고 선별적으로 응해드렸던 적이 있습니까?”
김미화. 그녀는 그동안 무대의 크기에 상관없이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며 약자의 편에서 힘써왔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가부장적인 제도를 벗어나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앞장섰고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서는 직접 사회자를 자청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높였고, 미군 장갑차에 의한 의정부 여중생 효선이와 미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치적 인물로 몰린 채 본업인 코미디언으로서 국민을 응원하고 웃기는 일에 힘쓰지 못하고 국민 앞에서 슬픔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제가 코미디언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를 제발 코미디언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제 꿈은 평생 코미디언으로 사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여러분! 제발 저를 잃지 마십시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