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예외적인 작품을 제외한다면 감우성은 언제나 멜로의 선상위에 있었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애지상주의자 준영을 비롯해 헤어진 아내를 끝내 놓지 못하던 드라마 ‘연애시대’의 동진, 영화 ‘왕의 남자’의 광대 장생이었을 때조차 우리는 사랑 앞에 약한 한 남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었다.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에서 그는 장검을 휘두르며 말을 달린다.
“사실 그동안 사극을 즐겨 보지 않았어요. 사극에 출연할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내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드라마 할 시간만 되면 각방을 쓸 정도예요. 지난여름엔 ‘추노’에 빠져 있어서 살짝 질투가 나더라고요. 마침 ‘근초고왕’ 대본이 들어왔는데 마음에 들어서 출연을 결정하게 됐죠.”
이번 작품에서 그는 백제의 13대 왕인 부여구(근초고왕)를 연기한다. 어린 시절 쫓겨난 왕자로 소금 장수를 하며 끝없는 방랑을 꿈꾸지만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왕이 되는 역할이다. 고되기로 유명한 사극 촬영. 칼싸움과 말 타기는 기본,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리고 뒹굴며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여름에 갑옷을 입고 10시간 동안 예고편을 찍었어요. 촬영 후에 3kg나 빠졌더라고요. 정말 여름에 촬영하는 분들 대단하다 싶었죠. 영화에서도 사극을 해봤지만 그때는 촬영이 끝난 후에도 그떡 없었거든요. 이번 작품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체력의 반을 써버린 것 같아요. 영양제도 먹고 몸보신도 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습니다(웃음).”
카리스마 연기 호평받으며 순항 중
사실 이번 작품은 방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몇 번의 구설수에 올랐다. 9월 말에는 촬영장에서 감우성과 스태프 사이에 가벼운 다툼이 있었던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바 있고, 여주인공을 맡은 김지수의 음주운전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기자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아무래도 껄끄러운 질문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진지함과 차분함으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어떤 현장에서나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갈등은 늘 있어요. 그런 일들이 일일이 기사로 나왔으면 10번은 더 나왔을 거예요. 아마 저희 작품이 홍보가 잘 안 돼서 일부러 화젯거리를 만들어주신 게 아닌가 해요.”
오히려 세트장이나 현장 분위기 등 전반적인 시스템은 10년 전에 드라마 촬영할 때보다 훨씬 안정되고 좋아졌다고. 지난 11월 6일 첫 전파를 탄 방송에서 그는 왕의 면모를 한껏 과시하며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호평을 받고있다.
“어떤 왕을 그릴지 미리 계산하지는 않았어요. 근초고왕이 고구려나 신라의 왕보다 조금은 소외된 스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저하고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 잘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해서 다른 작품들 못지않은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감우성. 그만의 섬세한 감성이 강인한 왕의 모습 위에 어떻게 그려낼 지 시청자들은 즐겁게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강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