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컴백, 변함없이 감수성 짙은 목소리
“공백은 무슨, 제가 활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다만 방송에서만 자주 볼 수 없었을 뿐이지 정말 바빴어요. 일단 이번 앨범을 준비하느라 그랬고, 공연이나 행사를 통해 무대에도 계속 섰고요. 개인적인 시간에는 평소 좋아하는 골프도 치고,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녔고요.”
2007년에 발표했던 정규 11집 앨범 이후 3년 만에 컴백한 변진섭(45)은 이번에도 역시 가슴 절절해지는 발라드로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린다. ‘눈물이 쓰다’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힘들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는 듣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곡을 작업하는 데만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간다.
“굉장히 정성을 쏟았죠. 느낌이 오는 곡을 완성시키기 위해 인내하고 참아야 했던 시간도 좀 있었어요. 한 곡을 만들기까지 6개월 이상이 걸렸으니까요. 들었을 때 마음에 확 와 닿는 노래를 하고 싶었거든요. 이번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들이 그래요. 멜로디와 가사는 단순하지만 처음 들었을 때 귀에 잘 들어오죠.”
알고 보면 재밌는 남자, 발라드 고집하는 이유
변진섭이라는 이름은 발라드 그 자체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발라드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노래를 시작하며 처음부터 발라드를 고집했던 건 아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밴드 활동을 하며 록 스타일을 즐겨 불렀다. 그러다가 아르바이트를 위해 라이브 카페를 다니며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면서 록의 팝적인 요소에 한국의 통기타 감성이 더해지며 그만의 음악적 성향, ‘변진섭표 발라드’를 찾게 됐다. 변진섭은 그때의 기분을 “내게 딱 맞는 옷이 생긴, 내 색깔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트렌드를 의식하다 보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돼요. 자기의 주체성, 색깔이 바래지는 거죠. 전 그래서 장르도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저의 장르를 시대의 흐름 때문에 바꾼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그건 사랑하는 사람을 바꾸는 일보다 더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는 ‘변화’ 대신 ‘추억’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늘 변함없는 모습을 지키는, 추억과 같은 존재감으로 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때문에 요즘에도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나는 절대 변하지 말자’고 되뇐다고.
이쯤 되니 평소 그의 성격이 궁금해졌다. 슬프고 애절한 사랑 노래가 대부분인 발라드 가수는 왠지 모르게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외로움을 더 잘 타고, 나뒹구는 낙엽에도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할 것만 같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실제 성격은 노래와 전혀 다르죠. 전 정말 쾌활해요. 사람들은 변진섭을 떠올리며 굉장히 여성적이고, 감수성 예민하고, 내성적이고, 자상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쩜 그렇게 반대로 생각하는지…(웃음). 다만 노래할 때는 온전히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되어서 우울하고 슬픈 감성을 최대한 끌어내며 200%의 연기를 하는 거죠.”
아줌마가 된 20년 지기 팬들, 언제나 고마운 존재
그의 세월만큼이나 오래전부터 그를 ‘오빠’라 부르던 팬들은 이제 대부분 아줌마가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들은 변진섭과 해마다 여름 캠프를 다닐 만큼 20년이 넘도록 식지 않는 애정을 과시한다. 대신 요즘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참석하는 이들이 늘었을 뿐이다.
가수로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변진섭을 붙잡아 준 이들도 바로 팬들이었다. 선천적으로 보헤미안 기질이 있다는 그는 데뷔 때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아무리 좋은 공연이 있어도 친구들이 더 재미있는 여행 계획이 있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고 여행을 떠났다.
“가수 동료들도 그걸 알아요. 신승훈씨도 저를 그렇게 기억하고요. 할 일은 하지만 굉장히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그런데 저는 그래야 제 인생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어요. 물론 무조건 노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요.”
그의 말처럼 ‘본업’보다 ‘노는 일’에 충실하면 가수 생활에 위기가 오기 쉽다. 자꾸만 노는 데 습관을 들이면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지 않는 한 늘어지게 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잇따라 스케줄에 펑크를 내며 나락으로 한순간에 떨어질 수 있는 직업이 바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가수로 살아오면서 돈이 없어 불편한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늘어지게 되는 거죠. 하지만 팬들이 그때마다 저를 잡아줬어요. 스스로는 각성이 잘 안 되고 컨트롤도 안 되지만 팬들이 저를 각성하게 만드는 거죠.”
“가수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두세 번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인터넷 팬클럽 게시판이나 제 미니홈피에서 저를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때는 활동도 뜸했으니까 팬들 역시 나에 대한 마음이 시들해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제 노래를 듣고 싶다는 글들이 쌓여 있더라고요. 뭔가 찡했죠.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그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무대에 서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더 책임감을 갖고 노래하게 됐다. 지쳐 있던 마음, 느슨해져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주는 팬들은 변진섭에게 ‘배터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생연분 아내, 금쪽같은 두 아들과 사는 법
팬들에게는 ‘영원한 오빠’인 변진섭도 어느덧 초등학생 아들을 둘이나 둔 어엿한 가장이 됐다. 그는 지난 2000년 수중발레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열두 살 연하의 이주영씨와 결혼했다.
“아내는 제게 최고의 여자예요. 띠 동갑이기는 하지만 제가 정신연령이 어려서 그런지 나이 차는 잘 못 느끼고요. 제 아내는 객관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지만 제게도 최고의 아내라고 생각해요. 단점이 없어요. 저를 늘 인정해주고, 제 말에 잘 따라주고요.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다 들어줘요.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거든요. 정말 알뜰해요. 저랑은 정말 천생연분인 것 같아요.”
그는 전형적인 한국 남자다. 자신은 자상하고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내는 그를 무뚝뚝하고 무심한 남편이라고 말한다고.
“아내가 그래요. ‘오빠는 늘 최고인데 칭찬에는 조금 약하다’고요. 듣고 보니 저는 표현에 좀 약해요. 낯간지러워서 애정 표현 같은 거 잘 못하거든요. 대신 잘 때만 사랑한다고 말해요. 평상시에도 좀 해달라고 하는데 부끄러워서 못하겠어요. 그래도 아내가 제 마음을 잘 알아주니까 괜찮아요.”
그는 스스로를 ‘가족에게 늘 희생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라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가장이란 가족을 위해 절대 희생하는 존재라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스케줄이 없을 때면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학교 숙제를 도와주고, 틈틈이 해외로 가족 여행도 다니는 편이다.
“큰애는 열 살, 둘째 애는 여덟 살이에요. 얼마 전에는 둘째 아들이 집에서 영어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잘 못하는 거예요. 일부러 자극을 좀 주려고 아내와 눈치를 보며 연기를 했어요. 교재를 바닥에 던지면서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다 그만두라고 혼을 냈죠. 그랬더니 애가 울면서 ‘학원 그만두면 미국에 유학 가서 못 따라간다’며 울더라고요. 어찌나 기특하고 귀엽던지…. 평소에는 좋은 아빠이면서 결정적일 때 좀 무섭게 하는 게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매년 가족과 함께 친척들이 있는 미국에 다녀온다는 그는 머지않아 두 아들을 유학 보낼 계획이다. 한국의 입시 전쟁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회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큰 세계 속에서 느끼고 배우며 자신만의 인생 목표를 세웠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부모로서는 선물이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경험이죠. 물론 떨어져 지내다 보면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저랑 아내가 시간이 될 때마다 가서 보면 되니까 별 걱정은 안 해요. 우리 아들들은 정말 순진하고 순수한데 앞으로도 부디 지금처럼만 커줬으면 좋겠어요. 똑똑하지 않아도 좋고, 성공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해맑은 모습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계속 부모로서 지원해주고 싶어요.”
변진섭의 희망사항은 멀리 있지 않다. 딱 지금처럼만 평생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동안 살아온 45년 세월을 뒤돌아보니 참 감사한 인생이라고 한다.
“행복하고 과분하죠. 원했던 꿈을 일찍 이뤄서 잘 살아왔으니까요. 지구에 살고 있는 60억 인구 중에서 하늘이 저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내려줬는지, 제 노력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노력한 것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만나서 아이들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요.”
그가 앞으로 바라는 일은 팬들의 곁에서 늘 잊혀지지 않고 노래하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두 가지다. 앨범 판매 순위 1위, 음원 인기 차트 1위 등에는 더 이상 욕심도 미련도 없다. ‘변진섭’이라는 이름 석 자로 은은하게 롱런하며 사는 삶이 더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정상에서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오스카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