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추위가 몰아닥친 11월의 어느 오후. ‘딸랑’,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건네는 그녀는 찬바람을 몰고 온 사람답지 않게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동그란 이마와 온화한 미소, 무심한 듯 눈이 가는 옷맵시. 모전여전이라고,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와 배두나는 참 많이 닮았다.
“두나와 가장 많이 닮은 건 연기에 대한 감각이겠죠. 하지만 그 감각을 발현시킨 과정은 아주 달라요.”
그녀가 맨 처음 연기를 시작한 건 이화여대 국문과 1학년 때였다. 1970년대 초반, 아직 극단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시절, 대부분의 연극은 대학극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연희극회의 명계남, 서강극회의 문성근, 정약용과 함께 그녀 역시 학교에서 내로라하는 ‘딴따라’였다. 하지만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졸업하면 데뷔를 시키겠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녀는 졸업 전부터 요란하게 신부수업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딸을 연예인 시킬 만한 집안이 아니었어요.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신 탓에 아버님께서 굉장히 엄하시기도 했고요. 중학교 때부터 서예랑 수묵화를 배웠을 정도예요. 그래서 대학 때 그동안 참고 있던 끼를 발산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그런 통제가 아무 소용없다는 걸 겪어봐서 알죠.”
그렇게 스물다섯에 결혼을 해 2년 터울로 세 아이를 낳았다. 대학 4년 동안 연극무대를 날고 기던 그 끼를 누르고 살기가 얼마다 고되고 힘들었을까 싶지만 그런 건 또 아니었다. 육아는 그녀가 모든 걸 기꺼이 바칠 만한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였다.
“다들 애 셋을 어떻게 키웠느냐고 하세요. 저는 살림도 아이 키우는 일도 다 재밌었어요. 세상에 아이만큼 온전한 사랑을 주는 존재가 없잖아요. 아이들 재우고 먹이고 목욕시키고 입히고, 그 하나하나가 무척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그렇게 한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들에게 빠져 살았어요.”
그녀가 다시 무대로 돌아온 건 그녀의 나이 서른넷, 막내가 세 살이 되던 해였다.
하지만 큰아이가 대학 입시를 앞둔 시절부터 셋째가 대학을 가는 기간 동안 무대 배우는 다시 휴업에 들어갔다. 어렵게 돌아온 무대를 다시 떠나며 아쉬움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엄마라는 역할에 우선순위를 두었던 삶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아이들을 위해 했던 일들이 이제는 그녀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되었다.
“큰언니가 뜨개질을 잘하셨어요. 엄마가 안 계시다 보니 언니가 뜨개질로 이것저것 만들어 동생들을 입히곤 했죠. 저도 중학교 때부터 뜨개질을 했고요. 아이들 어렸을 때 모자나 장갑, 목도리 같은 걸 직접 만들어서 입혔는데 그것도 무척이나 재밌었어요. 즐겁고 행복한 일에는 앞뒤 안 가리고 빠져드는 얌체라 평범한 모자 하나도 변화구를 찾아 색다르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됐네요.”
그녀의 두 번째 뜨개질 책 「두나맘 베베」에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쉽게 만들어줄 수 있는 다양한 손뜨개 작품과 그녀의 육아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마흔 넘어서 시작한 연기 공부로 선생님이라는 이름까지 얻었으니 그녀의 모든 시작이 가족과 아이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한 아이, 사교육이 아닌 좋은 습관이 만든다
유난히 딸에게 ‘극성’이었던 그녀는 극성 엄마라는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극성 엄마 아닌 사람을 별로 못 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아이는 다 특별하고 두나 역시 그러했다.
“손녀만 다섯인 시댁에서 제가 시부모님께 첫 손자를 안겨드렸어요. 둘째 두나가 태어났을 땐 오빠만큼 시끌벅적한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제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친정엄마가 안 계셨기에 더 애틋한 마음이었죠. 어른들께 맡겨본 적도 별로 없고 밖에 나갈 땐 웬만하면 데리고 다녔어요. 오빠에 비해 조용하고 뭐든 느렸던 딸이어서 더 유난스럽게 마음이 갔죠.”
돌이 넘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목욕 후 온몸 마사지를 해준 것도 극성 엄마의 한 면이다. 오일과 로션을 섞어 아이 몸에 발라주며 아이에게 이야기도 건네고 노래도 부르고 당기고 스트레칭을 시켰던 것이 딸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단다. 딸의 팔다리가 긴 건 아마도 그때의 정성 덕분이었을 거라고. 수시로 발바닥을 주물러주기도 하고 수유시간에는 딴청 없이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극성 엄마가 맞지만 또 어떤 부분에는 그 반대일 수도 있어요. 전 한 번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거든요. 학원을 챙겨 보낸다든가 1등을 해야 한다든가, 이런 거에는 욕심이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무심한 엄마죠. 대신 공연이나 여행, 문화 체험에는 욕심을 부렸어요. 아이들에게 감성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것들과 접촉면이 많았으면 했고 수시로 아이들을 즐겁게 할 이벤트에 골몰했어요. 아빠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면 보물찾기나 장기자랑을 준비하고 할아버지나 할머니 생신 때는 직접 사회를 맡겨보기도 하고요. 감성적으로 풍부한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는 면도 많아요. 다들 극성 엄마예요.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죠. 특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세상엔 여러 모습이 있잖아요.”
남편에게 딸 아이 과외비를 받아 함께 쇼핑을 간다든가, 입시 100일 전에 함께 여행을 떠난다든가, 다른 엄마들이라면 좀처럼 상상하지 못할 ‘기행’은 얽매이지 않는 그녀의 교육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다.
아이들에게 강요보다는 선택을,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우선시한 그녀였지만 꼼꼼히 챙긴 것이 있다. 바로 습관이다. 생각은 바꿀 수 있지만 습관은 바꾸기 어렵다. 특히 어렸을 때 잘못 잡힌 습관은 성인이 된 후에도 끈질기게 남아 삶을 괴롭힌다.
“단순히 규칙적인 생활, 바른 생활이 아니라 아이들의 감각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사소한 습관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아이와 하늘을 보며 함께 기지개를 켠다든지, 목욕할 때 자기 몸을 스스로 아끼게 하는 마사지법을 가르쳐준다든지 말이에요. 특히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칭찬할 것들을 찾아 이야기해줬어요. 평생 건강의 기초가 되는 먹는 습관은 특히 중요하니까요.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데는 사교육보다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에게 찬사를 보내세요
엄마의 소망대로 두나는 일찍이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 언제나 예민하게 딸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녀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나는 절대 연기할 것 같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수줍음이 많아서 어딜 가든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어느 날 제 대본이 없어져서 한참을 찾았는데 두나가 이불 속에 숨겨놓고 보고 있더라고요. 어렸을 때 제 공연이나 연습 무대에 자주 데려 가곤 했는데 조용히 앉아 무섭도록 집중하곤 했어요.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배우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엄마는 마흔에 연기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너는 좀 빨리 시작해라 했죠.”
어린 시절 엄마의 연극무대를 놀이터 삼았던 배두나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계에 입문했고 참신한 매력을 발산하며 하이틴 스타로 급부상했다. 보통 여배우라면 쉽지 않았을 다양한 역할도 그만의 색깔로 소화해내며 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겨 연기파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언젠가 두나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엄마가 처음부터 리모컨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고요(웃음). 환경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했고 다작을 하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작품을 할 때마다 그 과정을 지켜봤으니까요. 재능이 있었고 그것이 발현될 환경적 요인도 좋았던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캐스팅 당시, 당당하게 영화사 ‘우노필름’ 문을 열고 들어가 “배두나는 내 20년 기획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노출 배역을 두고 고민하는 딸에게 “배우에게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건 없다. 귀신도 할 수 있고 옷도 벗을 수 있다. 너의 삶에서만 함부로 벗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배우 배두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나갈 딸을 믿는다.
“절대로 아이의 아픈 곳을 건드리지 마세요.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아요. 어린 시절 두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너는 특별하다’였어요. 아이들에게 엄마가 주는 칭찬 한마디는 삶의 전부가 될 수 있어요. 칭찬으로는 부족해요. 아이에게 찬사를 보내주세요.”
바쁜 일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 어느덧 서른을 넘긴 딸을 보며 문득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는 그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모녀는 점점 더 닮아간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제공 / 안진형(프리랜서), Holi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