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동안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거나, 가지고 있던 커다란 재능이 발현되고 있다는 등의 호들갑을 떨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데니안과 심은진이 연기를 대하는 자세만큼은 한없이 진지하고 깊은 밀도를 지녔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지금, 처음 그들의 도전을 바라볼 때의 막연한 반발심 대신 한층 편안한 기대가 생겨난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자신을 바꿔오는 동안, 두 사람은 단순한 ‘변신’을 뛰어넘어 본인들만의 아우라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최고’라는 짜릿함을 맛봤고 높은 곳에서 머물러왔던 ‘아이돌 스타’가 ‘안주’ 대신 ‘정진’을 선택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이 성장할 수 있는지를 데니안과 심은진은 온몸으로 보여준다. 올 겨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에서 각각 스물여섯 살 어리바리 백수 ‘캣츠비’와 엉뚱발랄한 매력의 ‘선’을 맡아 더욱 새로워진 모습을 선보이는 데니안과 심은진. 이제부터는 이들의 멋진 반전 2라운드를 관람할 차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는 남자, 데니안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제가 생각한 대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국민 그룹. 데니안이 속해 있던 ‘god’ 앞에 늘 붙어 있던 이 수식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인정을 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한때의 거품일 뿐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지지 여부가 아닌 그 수식어 자체에 있다. ‘god 다섯 남자들’을 규정하던 이 수식어는 그대로 하나의 기준이 되었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된 지금도 그들을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god’란 이름을 내려놓고 난 뒤 더욱 고민이 많았죠. 저는 사실 원래부터 연기에 뜻이 있었어요. 갑자기, 그냥 한번 시작하게 된 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항상 ‘god 출신’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에 그 기준과 기대까지도 모두 수용해서 갈 수밖에 없어요.”
“이왕 도전하는 거 대형 뮤지컬로 시작하지 그랬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god 때부터 대형 콘서트보다 팬들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무대를 좋아했어요. 스케일 큰 무대는 이상하게 재미가 덜하더라고요. 연극 무대에 매력을 느낀 것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어서였거든요.”
요즘 뮤지컬, 드라마, 영화까지 모두 소화하느라 ‘첫 무대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
“요즘 아이돌 후배들을 보면 그룹 활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영리하게 길을 찾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되게 부럽기도 하고, 만약 제가 활동할 때도 이런 시스템이었다면 아마 일찍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사실 나이를 따지면 연기를 좀 늦게 시작한 편이잖아요. 그래도 다행히 아직까지는 제가 생각한 대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어요. 조금씩 조금씩 완벽해져야죠.”
화보 촬영이 끝나자마자 데니안은 피곤이 잔뜩 묻어 있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더니 지체 없이 공연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스로 “노래에 재능이 없는 래퍼였다” 라고 말하는 데니안이 ‘순수한 감성의 캣츠비’가 될 때까지 10분이라도 더 연습하기 위해서다. 잔잔하게, 하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데니안은 아직 미완성이라서 더욱 매력적이다.
노력으로 자신감을 채워나가는 여자, 심은진은 믿음이 간다
“무대에 섰던 경험을 살려 시원한 한 편의 쇼 같은 뮤지컬 무대를 완성해보고 싶어요”
모든 것은 ‘얼떨결’에 시작된 일이었다. 자라면서 단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려보지 않았던 ‘연예계’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파워풀한 춤과 노래로 한국은 물론 중국, 태국 등 아시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것도, 막연히 ‘디자이너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했던 서른의 자신이 무대 위에서 관객과 눈을 맞추게 된 것도, 모두 특별한 열망이나 욕심이 아닌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대신, 그 시작 뒤에는 언제나 완벽에 대한 갈망과 혹독한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다. 이왕 하는 거 누구보다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만 번 목소리를 고르고 춤을 가다듬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대사는 물론 상대방의 대사까지 모조리 외어버렸으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갖고 있는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 부었다. 시작은 ‘얼떨결’이었으나 그 어느 것 하나도 ‘거저’ 얻어진 것은 없었다.
“이번에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된 것도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엄두도 안 났었고, 아껴뒀다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완벽하게 준비해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어요. 제가 ‘센’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웃음) 열에 아홉이 저를 강한 캐릭터 ‘페르수’로 생각하는데, ‘네가 딱 선이야’라며 제안이 들어오니까 부딪혀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귀요미 아이콘’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던 것처럼, 사실 심은진에게는 엉뚱하고 귀여운 ‘선’의 모습이 많이 숨어 있다. ‘아주 친한, 정말 가까운’ 사람들한테만 보여온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면을 이제 무대 위에서 드러내 보일 차례가 온 것이다.
“겉모습이 차갑고 ‘세게’ 보이는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제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노력해요. 사실 제가 남을 잘 관찰하는 편이거든요. 잘 봐뒀다가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챙겨주려고 해요. 제가 처음 ‘대조영’으로 연기를 시작할 때 훌륭한 선생님들께서 저를 정말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지도해주셨어요. 그때 연기도, 살아가는 법도 참 많이 배웠어요. 저도 그렇게 상대방에게 도움과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아직은 비록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장점을 살리고 그 위에 열정을 더한 ‘심은진식 위대한 캣츠비’를 만들어내겠다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 겉으로는 여유를, 속으로는 옹골찬 내실을 쌓아가는 심은진에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바라봐도 좋을 것 같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스타일리스트 / 임영순(데니안), 백지혜·박희진(심은진) ■헤어&메이크업 / The 0809(데니안), 정샘물(심은진) ■의상 협찬 / ad hoc, customellow,스튜어트 2 by 폴 스튜어트, ezio, BJ CLASSIC by M2, 오즈세컨, TNGT, 릭시즈드미오, 오르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