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기에…”
지난여름, 고두심은 어린이재단과 함께 동티모르를 찾았다. 그녀의 고향 제주도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그곳에는 수많은 이산가족이 매일 그리움의 눈물을 쏟으며 전쟁과 분단 그 모든 것과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서 만날 수 있기를, 그날이 오기만을 기도하며 살고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가족이라는 사실이었다. 고두심이 동티모르에서 만난 희망, 가슴 뭉클한 감동의 순간을 그녀로부터 직접 들어본다.
슬픈 커피 향이 진동하는 나라
나는 국민의 많은 수가 내전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져 사는 나라, ‘해 뜨는 티모르’라 불리는 동티모르의 이산가족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사이에 있는 티모르섬의 동부에 있습니다. 독립을 이룬 지 8년이 지났지만, 여기는 마치 오래전 시간이 멈춰버린 듯 마을 곳곳에 길고 긴 전쟁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전쟁의 흔적만 지운다면 어딘지 모르게 나의 고향 제주도와 비슷합니다. 동티모르는 야생 커피 재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커피는 이곳 사람들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으로, 수확 철이면 마을 어디를 가나 커피 향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커피나무 숲에서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높고 가늘게 쭉 뻗은 커피나무 위에 마치 서커스를 하듯이 서 있는 소녀들이 보였습니다.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이 맨발로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몸을 지탱하고서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이 일은 비록 위험천만하다고 해도 가난하거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생계수단이라고 합니다. 세 시간 정도면 한 바구니를 채울 수 있고 그러면 5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1년에 2, 3개월 정도밖에 일이 없으니까 아이들은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1년 내내 커피 열매를 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 가난과의 힘겨운 싸움
동티모르가 독립되면서 동티모르에 살던 수많은 친인도네시아계 사람들이 서티모르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 국경선이 그어지고 그들은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독립전쟁으로 인구의 4분의 1 정도인 20만 명이 죽는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마을엔 특히 인도네시아 식민지 시절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만난 소년 알베르티나 역시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남의 집 소를 돌보며 사는 고아입니다. 소년은 친구들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는 동안에도 소를 돌봐야 합니다. 나는 알베르티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갔습니다. 문을 열자, 땅바닥에 앉아서 맨손으로 밥을 집어 먹는 아기가 보였습니다. 그때 아기를 제치고 옆에 앉아 있던 강아지가 혀를 내밀어 아기의 밥을 단숨에 핥아버렸습니다. 가축과 사람이 뒤엉켜 밥을 먹고 있다니…. 빈 그릇을 보더니 아기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빼앗겨 울어도 어느 누구도 아이를 달래거나 강아지를 쫓아내지 않는 게 알베르티나 집의 현실이었습니다.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고 두 번이나 불이 난 알베르티나의 집 내부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할머니와 형제들이 힘겹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동티모르에는 알베르티나처럼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가난과 고된 노동 속에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방치돼 있습니다. 열두 살 목동 알베르티나의 꿈은 훗날 자신의 소를 갖는 것입니다. 차를 닦는 소년들이 자동차 한 대를 세차해서 버는 돈은 고작 50센트입니다. 도시 아이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로, 하루 평균 열두 대의 자동차를 세차합니다. 군인이 되는 게 꿈이라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
돌 깨는 소년 아니세토는 열다섯 살입니다. 작게 깬 돌을 공사장에 팔아 책과 학용품을 마련합니다. 여덟 형제가 하루 종일 돌을 깨고 받는 수입은 7달러. 아니세토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입니다. 열네 살의 알리안스는 커피 열매를 따서 하루에 5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위험한 일이지만 그나마도 일할 수 있음을 아이는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목 놓아 부르는 이름, 보고 싶은 아버지
이튿날, 나는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마신라라’라는 바닷가의 작은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에도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은 독특하게도 바닷물을 길어다 불을 지펴서 소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바다와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전쟁으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 가족을 지키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바닷물을 길러오고 하루 종일 불을 지펴야 한 동이의 소금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기껏해야 5달러에 팔 수 있습니다. 이 돈으로 쌀도 사고 두 아이 공부도 시켜야 하니 살림이 늘 빠듯하기만 합니다. 아이의 아빠는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서티모르에 있다고 합니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에게 이제 그리움은 원망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지 10년. 흐른 세월만큼 커지는 그리움, 그게 가족인 모양입니다.
우리는 동티모르의 가족들이 이산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오래전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해오고 있는 모니카 수녀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먼저 서티모르에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전달받은 일행들이 그곳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을 찾기 위해 직접 서티모르 곳곳을 헤맸지만 이름만 갖고 사람을 찾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동티모르 어린이재단의 협조를 받아서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서티모르 난민촌을 샅샅이 뒤지던 어느 날 도밍가스의 아버지 루이스를 찾았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도밍가스가 들고 있던 그 사진 속의 아버지였습니다.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이름, 티토 곤잘레스도 찾았습니다. 처음 얼굴을 보는 순간 리타의 얼굴이 떠오를 만큼 너무나도 닮은 리타의 아버지였습니다.
다음날, 리타네 식구들은 서티모르에서 온 아버지 소식을 듣기 위해 모두 모였습니다. 얼굴만 봐도 좋은 사람, 그게 바로 가족인가 봅니다. 도밍가스에게도 아버지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도밍가스는 10년 만에 아버지 얼굴을 보고 그리움과 서러움에 눈물만 흘렸습니다. 소녀는 지난 10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아버지의 귀환을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산가족이 만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리타네 가족의 표정에서는 기대와 설렘이 엿보입니다. 아버지를 처음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제 동티모르가 안전하니까 돌아오라고 말하겠다고 합니다. 한편 올 수 없을 것 같다던 아버지가 온다는 소식에 도밍가스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했습니다. 나는 국경에서 서티모르에서 오기로 한 가족들을 기다렸습니다. 다리 위에 그어진 노란선이 국경선인데, 이 작은 선을 넘어오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저 멀리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도밍가스가 눈물로 기다리던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리타의 아버지를 기다려보지만 웬일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루이스씨와 함께 가족이 기다리는 상봉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이미 약속 장소에는 가족이 와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가족들 사이로 자동차가 도착하고 아버지와 딸이 10년 만에 서로 부둥켜안았습니다. 딸을 안고 쓰다듬는 루이스씨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나는 리타에게 차마 아버지가 오지 않았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밍가스네 가족은 10년 만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주 앉은 아버지와 딸은 서로 말이 없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는 아버지는 그저 음식을 먹기만 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에게 10년의 세월은 꽤나 길었나 봅니다.
한편 몇 시간째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리타네 가족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불안하고 초조해질 무렵,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가 차에서 내렸습니다. 리타는 달려가서 그 품에 안겨 한참을 말없이 눈물만 흘립니다. 그러고는 직접 준비해간 음식들을 차려놓더니 아버지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었습니다. 친정아버지를 위해 따뜻한 밥상 한번 차리고 싶었던 그 소원을 비로소 이루었습니다. 아들들은 자신들도 어려운 처지지만, 몸이 아픈 아버지를 위해 병원비를 마련해왔습니다. 오랜 기다림 뒤의 만남은 너무나 짧기만 합니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홀로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국경을 초월한 사랑, 희망의 씨앗을 심다
나는 다시 헤어져야 하는 가족들을 위해 작은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어 즉석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몸은 비록 떨어져 있어도 사진을 통해 서로의 그리움을 달래고 위로가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어색함도 잠시, 얼굴 가득 환한 웃음꽃을 피운 도밍가스와 그녀의 아버지. 또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가족뿐입니다. 제 살을 도려내듯 아프고 힘겨운 이별 앞에 선 사람들이 전쟁과 분단, 그 모든 것과 화해하고 다시 하나가 되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그날이 오기를 가슴 깊이 기도합니다.
도밍가스와 리타는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헤어져야만 합니다. 사실 이들이 돌아올 수 없는 이유는 여권 때문입니다. 국경을 넘어오기 위해 필요한 여권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30달러 정도. 서티모르에서의 생활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하루 먹고사는 것도 힘에 부치다 보니 여권을 마련할 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족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에드너 빈센트 밀레이의 시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활짝 편 손에 담긴 사랑, 그것밖에 없습니다.
보석 장식도 없고, 숨기지도 않고, 상처주지 않는 사랑,
누군가 모자 가득 앵초풀 꽃을 담아 당신에게 불쑥 내밀듯이,
아니면 치마 가득 사과를 담아 주듯이.
나는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드립니다. 아이처럼 외치면서.
“내가 무얼 갖고 있나 좀 보세요! 이게 다 당신 거예요!”
내 고향 제주도를 닮은 땅 동티모르. 나는 지금도 이 아름다운 마을 어딘가에서 꿈을 키우며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작은 농장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정에 동행한 아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서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막막하기만 했던 농장 건립도 함께하니까 금세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목장을 채워줄 염소들도 데려왔습니다. 이들에게 가축은 배를 불려주고 삶을 이어줄 소중한 재산입니다. 내 이름을 딴 ‘두심농장’ 안에서 이들의 고단한 삶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지면 동티모르도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요.
나는 동티모르가 평화를 찾은 나라라고 들었기에 눈물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가족과 생이별을 한 나라, 그것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얼마나 아픈 일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이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속으로 외쳐봅니다. 헤어진 가족들은 다시 만나야 한다고, 희망은 꼭 전해져야 한다고.
■정리 / 윤현진 기자 ■사진 제공 / 어린이재단(02-775-9121) ■참고 서적 / 「희망로드」(KBS 희망로드대장정 제작팀 저, 예담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