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원 제작비의 화려한 마술과 감동이 공존
지난 11월 중순 ‘더 일루전(The Illusion)’ 미디어콜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7월 군 제대 후, 새로운 마술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군분투해왔다”고 밝혔다. 이런 생각의 일환으로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12월 초까지 펼쳐지는 마술 공연 ‘더 일루전’은 1, 2부로 나누어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스타일의 마술을 보여준다.
우선, 1부에서는 10년 동안 마술을 해오며 쌓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보여준다. 총 제작비 20억원과 대형 컨테이너 10개 분량의 거대한 마술 도구,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첨단 특수효과 등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부는 그동안 이은결이 보여준 마술 영역과는 확연하게 다른 형태의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빛과 손을 이용한 그림자 퍼포먼스로 아프리카의 풍경을 담아낸 ‘아프리카의 꿈’이 주제다. 그는 ‘아프리카의 꿈’을 통해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마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의 꿈’은 사람들이 봤을 때 마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마술은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이고,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마술사의 임무죠. 트릭에 국한된 기존의 틀을 깨고 마술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군 제대 후 사진작가 김중만, 고려대학교 의료봉사단과 함께 떠난 아프리카 봉사활동에서 가슴에 꽃피웠던 영감들이 ‘아프리카의 꿈’으로 다시 태어난 것. 또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모션 그래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감각적이다.
새로운 마술의 영역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
이은결이 지적한 현재 마술계의 문제점은 마술 비법의 카피와 중국산 제품의 난무로 신비감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는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지만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면서 후배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그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수많은 고민과 생각을 담아낸 결과물이 바로 이번 공연이다. 관객들에게 마술사로서 나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에서 마술사로 사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은결은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마술에 대한 뿌리 깊은 선입견과 함께 특히 속임수나 사기 등으로 생각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지금은 한국 마술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내가 그 과정 중에 있으므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는 미국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의 쇼를 연출한 돈 웨인이 예술감독으로 무대를 연출했다. 웨인은 이은결에 대해 “항상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마술사로서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도 높게 보고 있다”고 평했다.
돈 웨인에게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이은결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그는 “관객에게 항상 더 좋은 마술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게 공통점이고, 차이점은 카퍼필드가 마술의 기술적인 부분에 다소 치중한다면, 이은결은 마술에 휴머니즘을 불어넣어 사람들과 호흡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후배 마술사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할 터
마술에 대한 전통도 없고 인식도 낮은 우리나라. 하지만 그럼에도 이은결이 마술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바로 마술을 통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것.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자극적이 되어가잖아요. 이런 세상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마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은결에게 무대는 가장 편하지만, 또 가장 어려운 곳이다. 마술은 어떤 매체를 통하지 않고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새로운 환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경험이다. 그는 오늘도 마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주고 긍정적인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으며 무대에 오른다.
■글 / 김민주 기자 ■사진 / 강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