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개그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인 풍자가 아닐까 의심했다. 남녀가 서로 으르렁대며 공격하는 모습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중은 이들의 연기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독할수록 더 웃음이 터졌다. “예의 없다”고 핀잔을 늘어놓던 시청자들도 어느새 박수를 치며 깔깔댔다. 되돌아보니 그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저마다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대한민국 남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거침없는 말투와 특유의 코믹한 억양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설정한 박영진과 김영희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서로를 공격한다. 이에 중재자로 나선 김기열은 오히려 두 사람에게 호되게 당하며 매번 울상 짓는다. 전체적인 컨셉트뿐만 아니라 유행어도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여자가 어디서 건방지게~”, “그럼 소는 누가 키울 건데~?”,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잉~?”, “뭐라고요? 안 들리거든요~” 등은 2010 베스트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쯤 되니 실제 이들의 사이가 궁금했다. 혹시 무대 밖에서도 ‘톰과 제리’ 같은 앙숙 관계가 아닐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 세 주인공을 직접 만나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이라고. 오해받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를 펼치는 그들은 역시 타고난 개그맨이었다고 말이다.
오랜 무명 끝&데뷔 7개월 만에 얻은 인기
LADY 요즘 세 분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제는 코너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유행어도 웬만큼 다 알려졌는데요. 인기와 관심을 체감하실 것 같아요
박영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실감해요. 일단 눈으로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벌어들이는 수입 자체가 달라졌으니까요. ‘내가 좀 많이 팔리고 있구나’, ‘인기가 있구나’라고 생각하죠. 예전보다 많이 알아봐주시기도 하고요.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저를 잘 못 알아봤거든요.
LADY 박영진씨의 무명 생활이 꽤 길었다는 것은 이미 방송을 통해 들었는데요. 그래서 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박영진 저는 인기에 전혀 연연하지 않아요. 인기라는 것은 순간이거든요. 특히 개그맨들에게는 더 그래요. 계속 웃음을 줘야 하니까요. 가수나 배우들은 히트를 친 후 다음 작품이나 앨범을 준비할 때까지 공백 기간이 있어도 컴백할 때 굉장히 멋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그렇지 못해요. 다시 돌아오면 제로예요. 화려한 컴백이 없어요.
LADY 왠지 모르게 씁쓸하네요. 그래도 인기 개그맨으로 계속 활동하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박영진 물론 있죠. 그렇게 되려면 쉬지 않고 계속 활동을 해야 해요. 선배님 중 한 분이 얘기해주셨는데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은 하나의 활동이 끝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지만 저희는 그 시간에 쉬면 오히려 방전이 돼요(웃음).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이 고달프지는 않아요. 좋아서 하니까요. 인기에 연연하는 순간 돈을 좇게 되고 그러면 금방 무너질 거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LADY 그렇다면 박영진씨보다 더 늦게 빛을 본 김기열씨는 어떤가요?
김기열 저는 아직 ‘두분토론’을 통해서도 별로 빛을 못 봤죠. 저보다 영진이랑 영희가 더 떴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인기를 좀 느껴요. 팬들이 저를 알아보고 다가오면 신기하기도 하고요. 아직 적응이 잘 안 돼요.
박영진 그런데 그렇게 신기할 이유가 없는 게 개그맨이 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인기를 얻으려고 했던 거잖아요. 그동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겠죠. 김기열씨는 늘 밤새는 친구예요(웃음).
김기열 하하하…. 인기가 더 있어야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인기를 좇아가는 건 아닙니다. 인기를 좇았으면 다른 활동들을 더 했겠죠. 사실 저는 돈을 좇아가요(웃음). 최근에 저희 셋이서 함께 광고에도 출연했어요. 그런데 메이저급은 아직 섭외 요청이 안 들어와요. 그게 좀 아쉬워요. 케이블에서라도 불러주면 좋을 텐데 인터넷 광고나 라디오 광고만 했어요. 광고주들이 왜 우리 같은 개그맨들을 지상파에 잘 안 써주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박영진 광고주는 우리와 반대로 생각하겠지~(웃음).
박영진 글쎄요. 비결이라고까지는…. 그냥 뭐, 저희는 오히려 관객과 시청자에게 묻고 싶어요. 물론 웃기려고 만든 코너인 건 맞는데요. 저희가 처음에 기획을 하며 생각한 것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오히려 욕을 많이 먹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웃어주시더라고요. 좀 놀랐죠. 굳이 그 비결을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 신인 개그우먼인 김영희의 공이 큰 것 같아요.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이 친구가 그 부분을 많이 충족시켜줬다고 보거든요.
김영희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음…. 개그우먼이 되기 전부터 ‘개그콘서트’를 계속 봤는데요. ‘두분토론’은 뭔가 좀 달랐어요. 사실 저도 이런 개그가 사람들을 웃길 수 있을까, 개그 소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많이 가졌거든요. 그런데 저랑 박영진 선배가 시청자들이 마음에 담고 있어도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그런 부분을, 남자와 여자가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불만과 지적을 대신 시원하게 개그로 풀어드렸기 때문에 좋아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남녀비하 논란은 잠시, 독한 개그 즐기는 시청자
LADY 그런데 이 코너를 처음 기획했던 분이 김기열씨라면서요?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기열 굉장히 조심스러운 코너였어요. 아름답고 밝은 개그를 지향하는 프로그램 속에서 유난히 저희만 너무 독해서 튀어 보일 것 같기도 했고요. 사실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감히 여자 앞에서 ‘하늘 같은 남자’라는 표현을 하고 툭하면 여자를 가리키며 건방지다고 손가락질을 하겠어요. 개그를 하는 저희도 신기한데 보는 분들 입장에서는 더 신기하겠죠. 그래서 웃어주시는 것 같아요.
LADY 평소 남자와 여자의 생각 차이나 그런 사소한 부분들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나요? 개그 소재로 등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더라고요.
김기열 원래는 남녀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지방선거 운동을 보며 패러디를 하고자 했죠. 정치 풍자, 정치인 패러디로 웃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의 포맷을 잡게 되었어요. 지금 상황에서 보면 차라리 잘된 거죠.
LADY 반면 코미디조차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부 시청자들은 이 코너가 처음 나왔을 때 남녀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어요. 당시 남녀비하 논란에 휩싸였을 때는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박영진 저는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욕을 많이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요. 예상했던 반응이었죠. 나쁜 남자 캐릭터인 제가 비난의 화살을 다 맞고 영희가 크게 웃겨버리면 될 것이라 믿었기에 그냥 밀어붙였어요. 2, 3주 정도 계속 욕을 먹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인터넷 게시판에도 안 들어갔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이 이것을 개그로 받아들이고 웃어주더라고요. 오히려 영희에게 더 독하게 공격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웃던데요?(웃음) 시청자들이 더 고수예요.
LADY 김영희씨는 어떠셨나요?
김영희 제 캐릭터는 박영진 선배에게 맞서 여자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욕을 덜 먹을 거라고 안심했어요. 그냥 시원시원하게 할 말만 다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고요. 쇼핑이나 연애처럼 여자들에게 유리한 소재가 있는가 하면 군대, 축구 이야기는 제가 좀 불리하니까요. 그럴 때는 지나치게 남자들을 비하하거나 자극적으로 양극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김기열 저랑 영진이는 제작진이 시키는 것을 참 잘 소화해요. 독한 말도 서슴지 않죠. “어디 건방지게 여자가 황도를 먹으러 술집에 와?”라는 대사나 ‘개족보’라는 단어는 사실 온 가족이 보는 주말 저녁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기에 매우 강한 개그거든요. 그래도 제작진이 시키기에 했죠. 영진이도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막상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잘하더라구요. 나중에는 점점 더 독한 멘트들을 찾아야겠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그런데 영진이가 굉장히 몸을 사리는 편이에요. 제가 인터넷 게시판을 보고 영진이에게 “사람들이 너 욕하더라”고 얘기해주면 멈칫 하던데요.(웃음)
박영진 하하하…. 몸을 사린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저를 너무 그 캐릭터로만 받아들일까봐 그랬죠. 제가 건방지게 얘기하면 진짜 건방지고 나쁜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 때문에 약간은 몸을 사리기도 했어요.
일상에서 우러나온 캐릭터, 비슷하거나 같거나
LADY 박영진씨와 김영희씨는 평상시에도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시는데요. 코너 속에서는 그 말투와 억양을 좀 더 독특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과정과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영진 저희 둘 다 경상도 사람이에요. 김영희는 대구, 저는 김천이거든요. 딱히 캐릭터를 작정하고 설정하지는 않았어요. 제 캐릭터는 김대성이라는 동료 개그맨이 만들어줬어요. 머리에 왁스를 발라 2:8로 가르마를 나누고 약간 고지식한 느낌을 연출하자기에 그렇게 했어요. 말투는 원래 표준어로 하려고 했는데 연기를 하며 흥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잘 들어보시면 완벽한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에요. 서울말을 약간 따라 하고자 하는 애매한 단계의 사투리예요.
LADY 전 처음에 박영진씨를 보고 혹시 특정 정치인을 패러디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박영진 그건 절대 아니에요. 어떤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삼고 캐릭터를 잡은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정치와 관련된 뉴스는 잘 보지도 않거든요. 제가 누군가의 흉내를 잘 내는 개그맨도 아니고요. ‘남하당’ 대표 캐릭터는 그냥 뭐, 우리 주변의 나이 드신 할아버지나 아직도 옛날 사고방식을 갖고 계신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고 비슷하게 흉내 낸 것뿐이에요.
김영희 저는 개그맨 공채 시험을 볼 때도 이 말투로 했어요. 거기에 제 어머니의 평소 캐릭터가 좀 들어갔고요. ‘여당당’ 김영희 대표의 스타일은 저희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고 보시면 돼요. 어릴 적부터 늘 들어왔던 말투이기 때문에 따라 하는 데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PD님이 처음에는 이 캐릭터를 살짝 부드럽게 표현해주기를 바랐는데요.
박영진 선배에게 맞서 연기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더 흥분하고 세진 것 같아요.
김기열 영희 외모가 그래서 그래요(웃음).
김영희 하하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제가 개그맨 활동을 한 지 얼마 안 된데다가 아직 다른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동안 계속 할머니나 아줌마 캐릭터만 맡았거든요. 자꾸 그쪽으로만 제 캐릭터가 잡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기는 하지만 시청자분들이 보기에 잘 어울린다면 받아들여야겠죠?(웃음)
박영진 김영희씨~자신을 좀 알아야죠.
LADY 그래도 실제로 뵈니까 방송에서보다 더 귀엽고 예쁘신 것 같아요.
김기열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얘는 못생겼다는 얘기를 200번 듣고, 예쁘다는 말을 1번 들으면 자신이 예쁘다고 받아들여요. 아무리 못생겼다고 말해줘도 그건 다 잊고 예쁘다는 얘기 하나만 기억해요(웃음).
김영희 왜 이러세요~ 아니거든요!
LADY 박영진씨는 코너 속 이미지 때문인지 실제로도 여자한테 굉장히 무뚝뚝하고 나쁜 남자일 것 같아요. 어쩌죠?
박영진 실제로도 무뚝뚝한 면이 없지 않아요. 낯을 좀 가리기도 하고 고지식하기도 하고요. 7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는데요. 이제는 거의 가족 같은 존재죠. 여자친구 앞에서는 자상해지기도 해요. 제가 여자친구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들 또 다른 제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당사자인 여자친구는 알 거예요. 제가 어떤 남자친구인지…(웃음). 다른 여자들 앞에서까지 자상하게 행동하면 좀 가벼워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지 생각하시는 것만큼 무거운 남자는 아니에요. 저도 필 받으면 잘 놀아요.
LADY ‘남하당’ 대표 캐릭터를 보고 여자친구가 뭐라고 하던가요?
박영진 저랑 비슷한 점도 약간은 있다고 하고, 더 재미있게 하라고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제 개그에 대해서는 잘 얘기 안 해요. 괜히 자기 생각을 다 얘기했다가 제가 상처받을까봐 배려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LADY 여자친구가 굉장히 현명한 분이신 것 같아요.
박영진 7년이면 이제 뭐…. 하하하!
사이좋은 선후배, 두 남자 휘어잡은 당돌한 막내
LADY 김영희씨는 약속시간에 가장 먼저 와주셨어요. 아직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집에서 바로 오신 건가요?
김영희 아뇨. 10시 30분까지 방송국에 출근해 도장 찍고 오는 길이에요.
LADY 모든 개그맨들이 다 그렇게 하나요?
김영희 그건 아니죠. 저는 공채 개그맨이 된 지 1년도 안 된 막내거든요. 그래서 아침에 일찍 출근해요. 다른 선배님들은 11시쯤 나오는 분도 계시고,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알아서 나오세요.
LADY 어머나, 막내인 줄 몰랐어요. 연차가 좀 쌓인 분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김영희 제가 주로 맡는 캐릭터가 아줌마, 할머니이다 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2011년 6월이면 KBS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한 지 1년이 돼요. 7개월 정도 만에 뜬 거죠. 하지만 개그맨 생활이 처음은 아니에요. OBS에서 1년, MBC에서 1년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다시 시험을 봐서 지난해 KBS에 입사했어요.
LADY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아까 김영희씨가 박영진씨에게 ‘선배님’이라는 깍듯한 호칭과 함께 90도로 인사하는 모습을 봤는데요. 박영진씨는 평소 많이 무서운 선배인가 봐요.
박영진 제가 군기 반장이거든요(웃음).
LADY 김기열씨는 그럼 위치가 어떻게 되나요? 전체적인 서열이 궁금합니다.
김기열 저는 2006년 21기 공채 개그맨이고요. 영진이는 저보다 한 기수 아래예요. 하지만 동갑이라서 그냥 친구처럼 지내요. 영희가 가장 막내죠.
LADY 김영희씨 입장에서는 하늘 같은 두 선배와 코너 속에서 제대로 맞먹는 역할을 맡았는데 부담되지 않으세요? 세 분 실제 사이는 어떤가요?
김영희 무대 위에서만큼은 아무 생각 없어요. 몇몇 분들은 제가 박영진 선배와 사이가 나쁜 거 아니냐고 물어보세요. 실제로 ‘네이버 지식인’에 저희 사이를 묻는 질문도 올라와 있더라고요. 절대 사이 나쁘지 않습니다. 박영진, 김기열 선배님 모두 좋은 분들이세요. 물론 두 분이 매우 솔직한 면은 있으세요. 사실 제가 보기보다 속이 좀 여린데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기도 했죠. 그런데 점차 겪다 보니 아니면 아닌 것, 맞으면 맞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선배들의 스타일이 참 좋더라고요. 무뚝뚝한 모습에서조차 배우는 게 많아요.
LADY 혹시 선배들에게 혼난 후 남몰래 울었던 적은 없나요?
김영희 개그우먼이라고 해서 매번 웃길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제가 기획한 아이템이나 개그 소재가 안 웃기면 정말 많이 속상해요. 그럴 때는 선배들이 오셔서 어깨 한 번 꾹 눌러주세요. 그런 게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돼요. 제가 단순하기도 하고요. 아, 김기열 선배는 처음에 다가가기 좀 어려웠어요. 이미지는 부드럽지만 말하는 게 워낙 솔직하시거든요. 그래서 대하기 어려워서 주춤했어요. 지금은 장난도 쳐주고 해서 좋아요. 가르쳐줄 부분은 똑 부러지게 잡아주시고요. 조언해주시는 대로 하면 개그가 더 잘돼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절대로 사이가 나쁘거나 서먹하지 않습니다.
박영진 영희는 능력도 있고 끼도 많은 후배예요. 개그우먼들이 개그맨에 비해 개그에 부딪히며 겪는 힘든 부분이 더 많은데요. 영희는 굉장히 당차게 실력을 보여주기 때문에 상당히 기대되는 친구예요. 괜찮은 친구고요. 남들은 이 친구가 얼굴로 웃겨 승부하는 개그우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웃음), 알고 보면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욕심 많은 친구예요. 뭐든 도전해보려고 하죠. 오히려 욕심을 좀 삭일 필요가 있을 정도예요. 욕심이 지나치다 보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LADY 김기열씨가 볼 때는 어떠세요?
김기열 영희는 선배를 잘 따르는 후배예요. 개그맨이 된 지 1년도 안 돼서 잘된 친구는 박휘순 이후로 처음 봤어요. 방송국에 들어오자마자 잘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지난해 영희가 신인상도 탔는데 이제부터 더 잘해야겠죠. 조심해야 하고요. 신인상 탄 다음에 오히려 잘 안 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두분토론’을 좀 더 잘해나가야 하는데 요즘 이 친구가 자꾸만 새 코너를 짜려고 해요. 새 코너를 두 개나 생각해놨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글쎄요, 그건 우리는 버리고 다른 코너로 옮겨가겠다는 건지….
김영희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웃음).
박영진 에헴~ 회사가 잘되니까 문어발 경영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죠. 패기와 열정이 너무 넘쳐요. 물론 아직 신인이니까 한창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때이긴 하죠. 그래도 좀 적당히 해, 영희야!
대한민국에서 개그맨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LADY 요즘 방송계를 보면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MBC ‘하땅사’,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모두 폐지되고 이제 지상파에 남아 있는 개그 프로그램이라고는 KBS ‘개그콘서트’와 ‘개그스타’뿐인데요. 개그맨으로 산다는 일이 점점 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떠신가요?
박영진 개그맨으로 산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운 좋은 일이고요. 그냥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인데 개그맨으로 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예요.
김기열 갑자기 왜 그렇게 진지해지고 그래. 아이고, 웃겨서 못 살겠네~(웃음).
김기열 개그맨으로 산다는 건 좋은 일이죠. 잘만 되면 높은 수익도 얻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잘 안 됐을 때는 힘들죠.
LADY 반면에 김영희씨는 아직 막내니까 현실적인 아쉬움보다는 아직 재밌고 신나는 기분이 더 클 것 같아요.
김영희 그렇죠. 저는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신인이잖아요. 아직까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재밌고 즐거운 마음이 더 커요. 지금의 패기와 열정이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돈과 인기를 얻고 잃느냐를 떠나서요.
LADY 꿈 많은 후배인 만큼 개그우먼 선배들을 보며 롤모델로 삼는 분들도 있겠네요.
김영희 네, 있어요. 신봉선 선배와 조혜련 선배요. 조혜련 선배는 제가 MBC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할 때 ‘하땅사’에 함께 출연했는데요. 당시 선배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해서 거동이 굉장히 불편하셨는데 절대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지 않고 그 아픈 몸으로 몸 개그를 직접 소화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뒤에 와서는 괜찮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그 다음날 결국 다시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좀 충격이었어요. 다른 선배들이 한 번쯤 대신 자리를 채워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경력과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열정이 부러웠어요. 그리고 신봉선 선배는 제가 개그우먼이 되기 전터 굉장히 좋아하던 분이에요. 그 선배의 연기와 코너 모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고요. 늘 얘기하지만 제 눈에는 신봉선 선배가 정말 예쁜 얼굴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기도 하지만요(웃음).
LADY 지난해 ‘두분토론’으로 뜨거운 사랑을 받은 만큼 2011년 계획도 남다를 것 같아요.
박영진 개인적으로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고, 직업적으로는 더 발전된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저는 이제 알겠거든요. 딱 느낌이 있어요. ‘두분토론’의 인기를 뛰어넘으려면 그보다 더 재미있는 코너를 갖고 나타나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융통성 있게 더 노력해야겠죠.
김영희 저는 앞으로의 활동이 좀 부담스러워요. 신인상을 탔을 때도 그날만 좋았고 다음날부터는 부담이 한 가득이었어요. 상 받은 것 이상의 값어치를 하고 싶거든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와 서울에서 둘이 살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엄마가 건강해지셨으면 좋겠어요. 당뇨를 앓고 계셔서 몸이 편찮으시거든요.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인데 풀 종류 반찬만 드셔야 하니까 마음이 아파요. 제 일도 잘되고 엄마도 건강해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아참, 저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제 동기들 모두 잘됐으면 좋겠어요.
김기열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더 잘되는 게 새해 소망입니다.
박영진 맞아요. 현실적으로 모두 잘될 수는 없어요.
김기열 그래서 저는 다 잘되라고 안 합니다. 망하는 사람도 있어야 잘되는 사람도 있죠(웃음).
박영진 그렇죠. 자본주의 시장은 경쟁 사회입니다. 다 잘되자고 하면 안 돼요.
김기열 영진이하고 지금 3년째 아이디어를 짜고 코너를 만들고 있는데요. 최근에 같이 시작하려고 생각해둔 아이템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더 잘되어야 하니까 주인공은 접니다.
박영진 사실 제가 어떤 코너에 들어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두분토론’을 기획하고 제게 손을 내밀어준 게 기열이에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참 고맙죠. 사실 이 코너가 잘 안 될 줄 알고 그냥 시큰둥하게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잘돼서 다행이고, 시청자분들께도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영희에게 가장 고맙죠. 이 친구는 ‘두분토론’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늘 선배들 뒤에서 박수 쳐주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두분토론’을 살려준 고마운 후배죠. 저는 이 모든 만남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김기열 그러니까 새 코너도 함께하자, 영진아.
박영진 저는 계속 잘될 것 같은데요. 같이 코너를 하느냐 마느냐는 과연 기열이가 얼마만큼 가느냐가 관건이죠. 제가 볼 때 기열이는 개그에 목숨 바칠 사람이 아니거든요. 사업적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언제 개그계를 떠날지 몰라요(웃음).
연기와 노래, 외모가 아닌 오직 아이디어만으로 무대 위에서 승부하는 개그맨들의 인생은 쉼 없는 마라톤이다. 잠시 찾아온 인기에 안주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웃음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감을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고, 대중을 웃길 수 없는 일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는 것이 개그맨의 세계다. 김기열, 박영진, 김영희의 멈추지 않는 열정에서 대한민국 개그계의 밝은 미래가 보인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