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

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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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스트레스가 쌓이면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헤드뱅잉도 하고
짐승처럼 포효합니다. 제게도 야수의 본능이 막 나오더라고요”


원두커피보다는 인스턴트 커피믹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추위를 많이 타니 난방 온도를 높여달라고도 했다. 물론 이윤석이 한 말이 아니다. 스태프들이 진심으로 그를 살뜰히 챙겼다. ‘국민 약골’이기 때문에? 절대 아니다. 이윤석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이유, 아마 시청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_ 요즘 ‘남자의 자격’ 즐겨 보고 있어서 자주 뵙고 있네요.
이윤석_ 아, 감사합니다.
김진세_ 인상적인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러고 보니 별로 안 좋은 기억이실 텐데… 시골집에서 장판을 깔다가 손을 다치신 적 있죠?
이윤석_ 네.
김진세_ 당시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의 탄성이 마이크에 잡혔는데, 그들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질 정도였어요.
이윤석_ 아, 그랬어요?(웃음)
김진세_ 이윤석씨가 그분들 사이에서 굉장히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제가 별걸 다 분석한 건가요?(웃음)

이윤석_ 그런 것도 조금 있었을 테죠. (손가락을 보여주며) 여기가 그때 다친 건데, 전에 도배기능사 시험 보다가 베어서 꿰맨 자리거든요. 촬영만 나가면 자꾸 다치니까 작가들이 아마 짜증이 났을 거예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뭐 하면 다치고 넘어지고 그랬어요.
김진세_ 저도 뭐 잘 떨어뜨리고 해서 아버지께서는 저를 ‘부르튼 손’이라고 부르셨어요(웃음).
이윤석_ (웃음)
김진세_ 요즘 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남자의 자격’하고?
이윤석_ 이것저것 하다가 지금은 프로그램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쾌적 한국 미수다’는 없어지고, 라디오도 하다가 잘리고…. 아,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하면(웃음)….
김진세_ 아, 괜찮아요.
이윤석_ 지금은 고정 TV 프로그램은 하나만 하고 있고요. 게스트 출연하면서 학교 수업하고 있어요.
김진세_ 강의는 언제부터 하신 거예요?

이윤석_ 꽤 오래됐어요. 강의는 17년 전부터 했어요. 그때는 강사였고 2002년부터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하다가 재작년부터 서울예술전문학교에서 학부장으로 강의를 하고 있어요.
김진세_ 강의하는 거 재밌으시죠?
이윤석_ 네. 그런데 제가 욕심이 많은가 봐요. 우리 학생들이 극단에도 들어가고, ‘컬투’처럼 현직 개그맨이 기획사에도 소속되어서 피도 흘리고 눈물도 흘렸으면 좋겠거든요. 그런데 그런 도전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해요. 야단을 쳐야 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충실한 수업을 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건가…. 저도 (학부장이 된 지) 2년밖에 안 돼서 아직 고민이 많습니다.

행복한 남자의 자격
김진세_
윤석씨가 학부장이라고 하셨죠?
이윤석_ 네. 저보다 연세가 많은 분도 계신데,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좀 그렇기도 합니다.
김진세_ 학생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더 긍정적으로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될 수도 있겠죠?
이윤석_ 오히려 그 친구들은 이런 위로를 받는 거 같아요.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개그맨도 오래하고,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거 같은데 교수도 오래하고….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웃음).
김진세_ 남을 괴롭히면서 웃기는 사람과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웃기는 사람이 있잖아요? 후자 쪽이 훨씬 더 학생들에게는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를 낮추면서 웃음을 주니까요. 윤석씨는 그런 웃음을 많이 주는 편이시죠?

이윤석_ 옛날에는 그런 코미디가 주를 이뤘어요. 배삼룡, 이주일 선생님은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많이 줬잖아요.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김구라씨나 박명수씨는 다른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개그를 하죠. 과거에는 TV에서 그렇게 독설을 뿜고 화를 내면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거든요. 제가 이번 책 「웃음의 과학」에도 썼지만, 그런 강도 높은 농담이 방송에 등장할 수 있게 된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진 덕분인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런 면이 있네요. 그럼 윤석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연예 활동 중 어떤 것에 더 의미를 두시나요?
이윤석_ 아, 그게 참 어려워요.
김진세_ 그럼 힘들었던 때는요?
이윤석_ 처음 대학생을 대상으로 언론학 강의를 할 때는 오해를 좀 받았어요. 당시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왔어요. 저는 기획과 대본이 촬영과 편집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서 산교육 하는 셈치고 촬영에 응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교수 평가 때 보니 ‘본인의 홍보 목적으로 수업을 이용했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김진세_ 놀라셨겠네요.
이윤석_ 지금 같으면 그렇게까지는 상처를 받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제가 어리기도 했고 세상을 잘 모르기도 했고요. 한동안 강의를 쉬기도 했죠.
김진세_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대라잖아요. 본인이 가진 재능으로 학생도 가르치고, 대중을 상대로 개그도 하시고! 어떤 거 할 때가 더 행복하세요?
이윤석_ 음… 이거 어떡하죠?(웃음)
김진세_ 둘 다 행복할 수도 있죠.
이윤석_ 둘 다 행복한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남자의 자격’을 하면서 정말 행복해요. 경규 형님을 비롯해서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도 같이하고, 사생활도 같이하다보니 때론 프로페셔널리즘이 무너질 정도로 헤이해지는 건 아닐까 우려도 해요. 하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텐데 말이죠. 오늘도 인터뷰 마치면 경규 형님 뵐 거예요. 물론 수업할 때도 행복하고요.

모태 개그기-슬픈 윤석기-본격 개그기
김진세_ 윤석씨, 어렸을 때는 어땠나요?
이윤석_ 저는 아주 어렸을 때는 개그맨 같은 사람이었어요.
김진세_ 아주 어렸다면 초등학생 때요?
이윤석_ 네. 응원단장도 하고, 노래자랑 하면 꼭 나가고요. 그러다 사춘기가 오면서 반장이니 회장이니, 남 앞에 서는 거 딱 끊었어요. 다만 완전히 감추고 살 수는 없으니까 소풍이나 수학여행 가면 한 번씩만 쇼를 하고, 그 외에는 우울하게 지냈죠.
김진세_ 그런 계기가 있었어요?
이윤석_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사춘기가 오면서 그렇게 바뀐 거 같아요.
김진세_ 사춘기에 그럴 수 있죠.

이윤석_ 모든 게 무의미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남들 앞에서 웃기려고 하는 거 자체가 유치해 보였어요. 대학 가서는 쇼펜하우어 같은 책 보면서 그런 성향이 더 강해졌어요. 그래서 별명이 ‘슬픈 윤석’이었어요.
김진세_ 언제 때 별명이에요?
이윤석_ 대학교 1학년 때요. 만날 표정이 어둡고 술만 마시고…. 객기가 좀 있었어요. 항상 양복에 백팩을 메고 비닐우산을 꽂고 다녔죠. 기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게 더 튀는 거 아니에요?
이윤석_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더 유치한 건데 그때는 그냥 일상에 적응해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유치해 보였어요.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지?’ 그런 거 있잖아요. ‘내가 정상이고 저 사람들이 비정상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비도 안 오는데 괜히 비닐우산 쓰고 다니고(웃음). 요즘은 그 중간 정도의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약간의 평정을 찾은 거죠.
김진세_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사춘기가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의학적으로는 뇌가 성장하는 만 20세까지를 사춘기로 보는데, 그럼 대학교 1, 2학년까지는 사춘기로 볼 수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펑 터진 일은 없었으니, 혹독하게 보내지는 않은 거 같아요.

이윤석_ 그랬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누르고 살았으니까요.
김진세_ 부모님은 어떠셨어요?
이윤석_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셨어요. 가장의 권위도 누리셨고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셨어요. 어머니는 평범한 맏며느리셨고요. 교양 공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교양을 갖춘 분이시죠. 글쓰는 거 좋아하셨고 아무리 힘들어도 한복 예쁘게 입고 계셨고요(웃음).
김진세_ 누님이 두 분 계시죠?
이윤석_ 네. 큰누나는 워낙 성격이 쾌활한 분이고 사회생활도 잘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고요. 작은누나는 공부도 좀 많이 했고 똑똑한데, 오히려 집에서 어른들 모시면서 아이들 잘 키우고 있고요. 누님 두 분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계세요. 그리고 남동생은 타고난 장사예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저보다 힘도 셌고요.
김진세_ 몇 살 차이예요?
이윤석_ 두 살 차이가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좀 맞고 자랐고요(웃음).
김진세_ 아, 진짜로요?
이윤석_ 네. 어른이 되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동생이 저를 안 때리는 거예요(웃음). 동생은 여러 가지로 저와 달라요. 굉장히 적극적이고 화도 잘 내고 힘도 세고 거침이 없죠. 지금은 저보다 더 어머니께 힘이 되어줘요.

지금껏 싸움은 해보지 않았다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_ 초등학생 이윤석은 정말 명랑하고 연예인 기질이 많은 아이였잖아요. 좀 웃긴 질문이지만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이윤석_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때는 부모님께서 저에게 거는 기대가 컸어요. 장남, 장손을 따지는 분들이시기도 했고요(웃음). 또 굉장히 열성적이셨거든요. 태권도장에도 그냥 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명예관장을 하시면서 특별 당부를 하셨어요. 제가 사랑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죠. 공부든 노래든 운동이든 뭐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요.
김진세_ 그게 원래 성격인 거죠?
이윤석_ 어렸을 때는 뭐든 잘해야 하고 나서야 하는 성격이었죠.
김진세_ 그럼 동생이 형에게 손을 못 댔을 거 같은데요(웃음).
이윤석_ 동생은 힘이 세니까요. 또 다혈질이었어요(웃음).
김진세_ 아버지께 많이 혼났겠네요?
이윤석_ 동생이 많이 혼났죠. 똑같이 선물을 받아도 저는 또 칭찬받을 생각으로 동생이 달라고 하면 양보했거든요. 나중에 부모님이 보면 동생이 제 것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언제나 야단맞는 건 훈석이, 칭찬받는 건 저였죠. 훈석이는 제 동생입니다(웃음).
김진세_ 사춘기 때 왜 그렇게 힘드셨을까요? 일단 윤석씨 하면 비춰지는 이미지가 워낙 말라서….
이윤석_ 제가 어렸을 때도 키가 크고 말랐어요.
김진세_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놀림을 받지는 않았어요?
이윤석_ 네. 그게 되게 싫었어요. 주위를 둘러봐도 저 혼자만 삐죽 컸으니까요. 어른들은 키가 커서 좋겠다고 하셨는데, 친구들은 ‘꺽다리’, ‘전봇대’라고 놀리니까 혼란스러웠죠. ‘어른들은 좋은 거라는데 애들은 왜 놀릴까. 나도 키가 작았으면 좋겠다.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김진세_ 싸움은 잘하셨어요?
이윤석_ 싸움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봤어요.
김진세_ 학창 시절을 보면, 보통 앞에 나서는 거 좋아하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을 제압하려 드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이윤석_ 저는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힘으로 제압을 못하니까 ‘빨리 친구가 되자’고 했죠.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항상 도시락을 맛있게 싸주셨거든요. 그럼 반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가져가서 먹었어요. 저는 말도 못하고 “야, 그러지 마”라고만 하는, 약간 ‘호구’였어요(웃음).
김진세_ 저희 때만 해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죠. 길가다가 타 학교 학생들에게 돈을 빼앗기기도 하고요.
이윤석_ 네. 그랬어요. 그런데 저를 직접적으로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공부도 좀 하고 웃기니까요. 힘 센 애들이 그런 애들을 곁에는 두거든요(웃음). 직접적으로는 안 괴롭혔는데 간접적으로는 괴롭혔죠. 제 사전 만날 팔아먹어서 사놓으면 또 팔아먹고, 그럼 저는 또 사고. 이런 정도였죠.
김진세_ 그렇게 사춘기를 호되게 앓다가 이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윤석_ 개그맨 활동을 하면서 좀 밝아졌어요.
김진세_ 어떻게 출전하게 되신 거예요?

이윤석_ 그렇게 개그맨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 지원한 건데 덜컥 붙어버렸죠. 그때 같이 입상한 서경석과 방송국 구경 다니다가 대본 써오라고 해서 써 갔더니 촬영하자고 해서 촬영했고, 몇 달 지나니까 사람들이 막 알아보고…. 저도 모르게 개그맨이 됐더라고요.
김진세_ 무명 시절도 없이 바로 스타가 되신 거잖아요.
이윤석_ 사실 고민도 좀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꿈이 개그맨이라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도 있는데, 저는 거저 된 거 같아서 미안한 감도 있었고요.
김진세_ 다들 안 그랬을 수도 있어요(웃음).
이윤석_ 조금 다른 얘기인데요.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다 보면 ‘항상 꿈을 품고 목표를 세워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공식이 등장하는데, 제가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거 같더라고요. 제가 이번에 책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였어요. 혹시 아직 꿈이 없거나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걱정할 게 없다는 얘기를 제자들에게도 해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오늘 이 순간 최대한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야겠죠.

김진세_ 좋은 말씀이네요. 사회 전체가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목표 지향적으로 변하고 있죠. 제가 만날 떠들었던 ‘행복’조차 어쩌면 목표가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할 때도 있어요.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면, 개그 콘테스트 입상 당시 인터뷰를 보니 좋은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뽑힌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던데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윤석씨를 좋아하는 건 그만큼의 자질이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걸 애써 축소시키시는 것은 아닌가요?
이윤석_ 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지적인 개그’라고 하면 좀 뭐하지만, 어쨌든 그런 틈새 개그를 찾아내고 싶은데 아직까지 못 찾았어요. 제게는 항상 숙제처럼 남아 있죠.

슬럼프를 건너는 방법
김진세_
데뷔하신지 20년이 되어가는데,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이윤석_ 100% 그런 생각을 품은 적은 없지만 고민한 적은 몇 번 있죠.
김진세_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셨어요?
이윤석_ 가르치는 일로 완전히 돌아설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요. 데뷔 5, 6년 차쯤 되던 해에 엉뚱하게도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어요.
김진세_ 그때 손을 다치셨죠?
이윤석_ 네. 당시 방송을 6개월 가까이 쉬었는데, ‘이참에 방송을 접고 제2의 다른 인생을 찾는 계기로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망설인 적이 있죠. 아예 공부를 다시 해서 한의사를 할까, 아니면 PD를 할까.
김진세_ 그때 심각한 고민을 하셨군요. 사고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 직업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는 편인 거죠?

이윤석_ 왔다 갔다 하지만 크게 봐서는 만족하는 편인 거 같아요.
김진세_ 인생을 목표 지향적으로 살지 않고, 바로 앞에 보이는 것만 열심히 하고 살아도 좋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렇게 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아, 이것 하기 싫다.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바로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편이세요?
이윤석_ 네. 제가 뭘 미리 계획하고 해서 성공한 건 없었어요.
김진세_ 아, 그래요?
이윤석_ 경석이랑 저랑 ‘그렇게 심한 말을!’이라는 유행어를 낳았던 코너도 “우리가 대입시험 본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학교에서 배운 어려운 말을 써서 개그를 해보자”고 했던 게 시쳇말로 얻어걸린 거였어요. 제가 술 한 잔 걸치면 노래 따라 하는 걸 좋아하는데, 주위에서 재밌다고 하니 한번 해보자고 시도한 게 립싱크 개그(‘허리케인 블루’)였고요. ‘이거 하면 꼭 될 거야!’라고 해서 한 건 없었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_ 의외인데요.
이윤석_ ‘건강보감’이나 ‘대단한 도전’ 코너 하면서 ‘국민 약골’로 알려졌는데 그것도 제가 어려서부터 몸이 마르고 키가 삐쭉 커서 약골이라는 느낌을 많이 줬으니까 이걸 한번 ‘까발려보자’고 해서 했는데 괜찮게 어필이 된 거 같아요.
김진세_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어떤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을까요?
이윤석_ 성격적인 면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만둘 거면 당장 그만둘지언정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모색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존심이 많이 상하거든요. 방송국이라는 세계는 인기 조금 있으면 사방에서 달려들고 반기지만 또 인기가 좀 시들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심드렁해지죠. 그걸 몸으로 겪는 일이다 보니 ‘한 번 더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좀 더 강한 직업인 거 같아요. 고시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자격증을 한 번 따면 평생 그 자격이 유지되는데, 저희는 평균 3년에 한 번씩은 국민으로부터 자격증을 새로 받아야 해요.

김진세_ 자격증이요?
이윤석_ 히트작 하나 내면 한 3년은 가더라고요. 그러고 나면 또 만료가 돼요. 새로 따야 해요. 굉장히 힘든 직업이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어요. 저는 세 번 정도 자격증을 딴 거 같아요. 지금 네 번째 기로에 놓여 있는데, 딸지 못 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저 열심히 하고 있죠.
김진세_ 이제 이해가 되네요. 아까 하신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야’라고 들리지만 실은 윤석씨에게는 목표가 있고 그걸 추진할 수 있는 동기도 있으신 거네요. 그런데, 정말로 몸이 약하세요?
이윤석_ 그 정도는 아닙니다.
김진세_ 그죠? 설정인 거죠?(웃음)
이윤석_ 이번에 ‘남자의 자격’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장기는 제가 제일 깨끗하더라고요. 그런데 한의학적으로 봤을 때 남들보다 ‘기운’이 아주 조금…(웃음).
김진세_ 기운이 좀 달리는 거다?
이윤석_ 네. 막 정열적이고 이런 게 없죠. 항상 요렇게 앉아 있고(웃음), 힘없어 보이고.
김진세_ 그런 거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도 있나요?

이윤석_ 오히려 저는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하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기분 나쁘지 않냐, 섭섭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전 괜찮아요.
독서와 헤드뱅잉의 사이
김진세_ 살다 보면 누구나 슬럼프를 겪잖아요. 힘들 때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지 조언 좀 들려주세요. 개그맨으로서도 좋고, 그냥 이윤석으로서 경험에 비춰서 말씀하셔도 좋고요.
이윤석_ 누구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게 있잖아요. 그게 취미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식일 수도 있고요. 저는 책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의 고민은 잊게 되더라고요. 전혀 다른 세계의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정신이 쏠려서 고민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잊고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죠.

김진세_ 몰입됐을 때의 무아지경?
이윤석_ 네. 또 하나는 음악이에요. 저는 정말 록 음악을 좋아해서 스트레스가 쌓인 날이면 신촌의 헤비메탈 바에 갑니다. 양주 몇 잔 시켜놓고 헤비메탈 들으면서 헤드뱅잉도 하고 짐승처럼 포효도 하고요. 야수의 본능 같은 게 저한테는 없을 거 같은데도 막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3, 4일 정도 가요.
김진세_ 언제가 가장 큰 슬럼프였나요?
이윤석_ 방송 활동하면서요?
김진세_ 전체 인생에서요.

이윤석_ 그때였던 거 같아요. 교통사고 당했을 때요. ‘허리케인 블루’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사고 이후 일이 하나도 들어오지를 않았어요. 직업도 뚜렷하지 않고 수입도 없었던 그때가 가장 힘들었죠. 서경석은 단독 MC로 자리 잡아서 자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저는 더블 MC 제안이 들어오다가 그게 게스트로 바뀌더니, 그나마도 안 들어오는 상황이 됐죠.
김진세_ 그때도 책과 음악으로 이겨내셨나요?
이윤석_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는 술을 많이 마셨어요. 담배도 많이 피우고(웃음).
김진세_ 요즘은 아이들을 연예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그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이번에는 교수님 입장에서 말씀해주세요.
이윤석_ 저는 약간 회의적으로 얘기해주거든요. “10년간 아무도 몰라주는 무명 연예인 생활을 할 확률이 적지 않다. 수입도 별로 없을 것이고 사람들에게도 무시를 당할 것이고 특히 방송국 내부에서 많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내 경험으로 봐서 기회는 반드시 오긴 온다. 그런데 대부분 그걸 못 참고 중간에 포기한다. 10년 인생 버릴 각오를 할 수 있으면 도전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김진세_ 혹시 제자 중에서 현업에서 활동하는 개그맨이 있나요?
이윤석_ 제가 저희 학교에 온 지 3년밖에 안 돼서요. 일단 제 작은 목표 중 하나는 제자들이 빨리 데뷔하는 거예요.
김진세_ 잘될 거 같은 학생은 한눈에 보이나요?
이윤석_ 조금은 보이죠. 안타까운 건, 꼭 재능 있는 학생들이 노력을 안 하더라고요. 반면 다른 학과를 가는 게 나을 듯한데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어요. 남들에 비해 반에 반도 노력을 안 하고 늘 여자애들 만나러 다니면서도 잘하는 아이를 보면서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죠.
김진세_ 공평한 거죠.
이윤석_ 공평한 건가요?(웃음)
<B>이윤석은…</B>연세대 국문과 재학 중이던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데뷔. 서경석과 콤비를 이뤄 ‘그렇게 깊은 뜻이~’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무명 시절을 생략하고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완벽에 가까운 신들린 립싱크를 선보인 김진수와의 ‘허리케인 블루’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평소 틈만 나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2007년 박사학위를 취득, 개그맨 최초의 박사가 됐다. 경기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학부 학부장으로 재직 중. 2008년 다섯 살 연하의 한의사와 결혼하며 ‘사랑’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부러움을 한 몸에 산 그에게 KBS-2TV ‘남자의 자격’에 동반 출연 중인 선배 이경규는 최근 “‘국민 약골’ 컨셉트는 상술이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이윤석은…연세대 국문과 재학 중이던 1993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입상하며 데뷔. 서경석과 콤비를 이뤄 ‘그렇게 깊은 뜻이~’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무명 시절을 생략하고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완벽에 가까운 신들린 립싱크를 선보인 김진수와의 ‘허리케인 블루’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평소 틈만 나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2007년 박사학위를 취득, 개그맨 최초의 박사가 됐다. 경기대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학부 학부장으로 재직 중. 2008년 다섯 살 연하의 한의사와 결혼하며 ‘사랑’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부러움을 한 몸에 산 그에게 KBS-2TV ‘남자의 자격’에 동반 출연 중인 선배 이경규는 최근 “‘국민 약골’ 컨셉트는 상술이었다”는 폭로(?)를 하기도 했다.

김진세_ (웃음) 그래서 결국 적당히 재능이 있고 노력을 잘하는 아이들이 더 크게 되는 거잖아요.

이윤석_ 재능이 좀 부족해도 노력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돼요. 그런데 결국 재능이 있고 노력도 하는 놈들이 톱스타가 되더라고요.
죽음의 두려움 넘어 힘을 얻다
김진세_ 제가 이번에 쓴 책 좥애티튜드좦에 비슷한 내용이 있어요. 흔히 재능, 아이큐, 배경 등은 사람이 타고나는 것이라 바꾸지 못한다고 하죠? 그렇다면 삶의 태도를 바꿈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조언을 담았거든요. 윤석씨가 지적한 부분도 바로 삶의 애티튜드에 대한 문제인 거 같네요. 자, 그럼 이제 공식 질문 드릴게요. 이윤석에게 있어서 긍정의 힘, 혹은 행복은 무엇일까요?

이윤석_ 제가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은 못 되는 거 같은데, 굳이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해보자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제 마음에는 항상 죽음이라는 것이 걸려 있어요. 죽음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지만 이것이 다른 모든 어려움이나 근심 걱정을 날려버리는 힘이 되는 걸 느껴요. ‘그렇게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작은 고민은 손가락 끝으로 튕겨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큰 문제가 안 되죠. 누굴 부러워한다거나 일이 잘 안 될까봐 걱정할 것도 없고요.
김진세_ 언제부터 그렇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나요?
이윤석_ 아마 사춘기가 오면서 그런 거 같아요.
김진세_ 사춘기부터면 거의 성숙되어 있을 때부터 인생을 많이 지배하는 힘이겠네요.

이윤석_ 네, 지금도 그렇고요. 종교 관련 서적이나 죽음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어요.
김진세_ 죽음은 타나토스라고 리비도의 반대 끝에 가 있기는 하지만 큰 힘이거든요.
이윤석_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늘 신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신이 계시면 죽음이 두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신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럼에도 신은 없는 것 같다는 슬픔을 동시에 갖고 있죠. 그런 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복잡한데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더라고요. 뻔한 얘기 같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고민조차 못해보고 죽는 아이들도 많잖아요.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는 것, 그럴 수 있는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김진세_ 감사할 일이죠.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살지만 하늘 끝에 올라가보면 지구도 결국 한 점 티끌이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윤석씨가 가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떻게 보면 삶을 겸손하게 만드는 큰 의미가 되는 거 같네요.
이윤석_ 네. 저에게는 살게 만드는 힘인 거 같아요. 또 웃게 만들고 싸움 안 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게 하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와주려고 하고, 고민이 있으면 저에게 털어놓으려고 해요. 그건 참 좋아요.
김진세_ 그런데 사실은 야수의 성질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윤석_ 있죠, 있죠(웃음).

김진세_ 성격이 되게 꼼꼼하시다고 들었어요.
이윤석_ 오해하는 거예요.
김진세_ 아니에요?
이윤석_ 저는 제 수입이 얼마인지, 방송국 출연료가 얼마인지, 내일 스케줄이 몇 시인지 몰라요.
김진세_ 일에 있어서 완벽주의는 아니세요?
이윤석_ ‘최대한 성의껏 하자’ 정도이지, ‘이게 아니면 안 돼’ 이런 건 없어요.

김진세_ 항상 긴장해 있으시죠?
이윤석_ 그런 거 같아요. 성실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강박관념처럼. 제가 지금 ‘남자의 자격’에서 태권도 학원과 탭댄스 학원에 나가는데 시청자들이 알든 모르든, 촬영을 하든 안 하든 무조건 가서 배워요. 사실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되거든요. 그런데 이상한 강박증이 좀 있어요. 최소한 성실해야 된다는 거죠.
김진세_ 최소한?
이윤석_ 거짓이 없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진실이 좀 더 커야 된다는 생각이죠.
김진세_ 아이가 있으시던가요?
이윤석_ 아직 없어요. 빨리 생겨야 하는데.
김진세_ 참 좋은 아빠가 되실 거 같아요.

이윤석_ 이제 결혼 3년 차가 됐으니까 이제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는 항상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 결국은 아버지처럼 살게 되는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는 거 같아요.
김진세_ 부모는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잖아요? 어떤 부모를 만나게 될지 누구도 몰라요. 하지만 앞으로 아기를 낳으시면 본인이 어떤 부모가 될지는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 세대간의 좋지 않은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거죠. 왜냐하면 윤석씨가 좋은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이가 자라서 또 그렇게 보고 배울 수 있으니까요.
이윤석_ 큰일 났어요. 아직 아기도 없는데 벌써 아버지가 이해되기 시작했어요(웃음).
김진세_ (웃음)
이윤석_ 실은 벌써 딸에게 줄 편지를 써놨어요. 어느 날 갑자기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이상한 놈 만나서 잘못될까봐서요. 그래서 일단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이 되고 아빠 말도 듣기 싫을 때는 이 편지를 봐라’라고 써놨어요. ‘어떻게 됐든 가장 너를 사랑하는 사람 1등은 아빠다. 그 다음에 신랑이거나 네 남자친구다. 그걸 명심해라’라고 써놨죠.
김진세_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면 어떡해요?
이윤석_ 아들이면 (편지 안 줘도) 괜찮아요(웃음). 제가 욕심 없이 산다고 생각하는데, 자식 욕심은 있어야겠더라고요(웃음).

김진세의 에필로그
이윤석, 타나토스와 페이소스가 함께하는 진정한 유머꾼

요즘 TV는 온통 허세 덩어리다. 식스 팩을 노출하지 않으면 노래를 잘해도 아이돌 축에 끼지 못하고, 잘난 척하지 않고 겸손하게 굴면 예능 프로그램의 카메라에 잡히지도 못한다. 몸이 되지 않으면 입담이라도 걸어야 시선을 받는다. 내실이 중요한데 외형만 강조하니 잠시만 눈에서 멀어지면 금방 잊혀지는 인물이 된다. 개그맨의 세계에서는 그 공식이 더욱 치열하다. 그런데 입심이 월등하게 센 것도 아니고 ‘국민 약골’로 불리지만, 우리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개그맨이 있다. 서경석씨와 콤비를 이루어 수재(秀才) 개그맨으로 명성을 날리더니, 어느 날 로커 분장을 하고 절묘하게 립싱크를 하며 위태로운 헤드뱅잉으로 시선을 잡은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남자의 자격’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개그맨 이윤석이다.

이상하게, 그의 유머는 슬프다. 실없는 그의 개그를 듣고 있자면 웃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싸하다. 사실 유머는 역설적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가치가 있다.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는 인간의 정신방어기전에서 가장 성숙한 것 중 하나가 ‘유머’다. 비극적인 현실을 웃음과 즐거움으로 감싸고 치유하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의 ‘이타주의’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승화’와 비견되는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그다지 튀는 면도 없으면서 이처럼 실한 유머를 선보이는 그에게는 어떤 힘이 있을까? 무엇이 그를 오래도록 진정한 유머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을까?

‘긍정의 힘’ 인터뷰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스타들은 참 힘들겠다. 화면에서 만나는 그들과 실제로 만나는 그들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가지 모습으로 살아야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는 물론 약간은 긴장하고 수줍어했지만 여느 인터뷰이보다 아주 조금 더한 정도이지, 브라운관에서 보이는 그런 이미지의 약골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필자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절의 반항적인 심리와 대학 시절 튀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할 무렵, 그의 마음 구석에서 언뜻 강인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하자면, ‘야수의 본성’과도 같은 강인함. 그는 강인함을 숨기고 있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강인함이었다.

“죽음이 두려워요!” 그가 그랬다.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 강인함의 근원을 읽는 순간이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원초적인 본능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창조와 보호의 본능인 ‘에로스’와 다른 하나는 파괴와 공격의 본능인 ‘타나토스’다. 이 두 가지 본능은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엄청난 에너지로 잠재해 있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며 때론 행복을, 때론 불행을 준다. ‘죽을힘을 다해서’, ‘죽기 살기로 애를 써서’ 혹은 ‘죽도록 열심히’ 등 우리는 심심찮게 죽음을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진정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죽기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가 그랬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죽음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어떤 슬럼프나 고통도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못 이겨낼 이유가 없다. 죽음이라는 가장 슬프고 힘든 고통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조용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가 왜 강단 있고 뚝심 있어 보이는지 이제 알 수 있다. 죽음을 느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강인한 겸손함이 그의 무기였다. 그의 유머 속에 왜 그리 짙은 페이소스가 배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허세 덩어리만 설치는 세상에서 진짜 유머꾼을 만난 순간이었다.

긍정의 힘을 더하는 선물
「웃음의 과학」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사실 이윤석씨에게는 동병상련이랄까 아니면 동질감이랄까, 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 저도 대학 다닐 때는 60kg이 되어보는 것이 소원인 갈비씨였답니다. 지금 같으면 “몸 관리 잘했네” 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예전에는 똥배가 나와도 좋으니 갈비뼈가 빨래판처럼 보이지만 않았으면 했습니다.

왠지 이윤석씨와는 코드가 맞을 거 같아서 그의 책 「웃음의 과학」을 빨리 보고 싶었고, 운 좋게도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미리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좀 웃어보고 싶은 마음도 많았습니다. 개그맨이 쓴 책인데 얼마나 웃기겠어요! 그런데 아뿔싸, 이 책은 웃긴 책이 아니었습니다. 웃음에 대한 진화심리학, 생물학,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기대도 못했던 웃음에 대한 통섭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웃자고 들면 조금 당황스럽지만 이해하고자 하면 정말 유익한 책입니다. 책을 읽은 소감이요? 이윤석씨, 박사 맞습니다!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이윤석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웃음의 과학」(사이언스북스)을 보내드립니다.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남자의 온기가 전해지는 이윤석의 ‘인생 자격증’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으며,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Love Myself’를 연재하고 있다.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에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티튜드」를 집필했다. 트위터 @yourden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스타일리스트 / 유미경 ■장소 협찬 / 스튜디오 하늘(070-4250-8733, www.studiosk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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