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다 그래요”
정년까지 남은 기간은 8년, 국장급 직함을 달고 억대 연봉을 받으며 편안하게 방송국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영미는 달랐다. 1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나이 50세에 드물게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SBS 소속 아나운서가 아닌 자체 브랜드 ‘윤영미’로 제2의 인생을 연 그녀의 긍정 에너지를 주목한 이유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http://img.khan.co.kr/lady/201105/20110517155001_1_yymi1.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윤영미 제가 CJ오쇼핑에서 ‘오키친’을 진행하고 있잖아요. 굴비 판매를 앞두고 현지 공장에서 어떻게 생산하고 포장하는지 직접 확인도 하고, 굴비 맛도 보고 왔죠.
김진세 올 초에 프리랜서 선언하고 요즘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제 관리직으로 돌아설 연세잖아요?
윤영미 그렇죠. 국장급이죠.
김진세 그 위치를 버리고 SBS를 나오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는 건 어떠신지?
윤영미 더 맞죠. 저는 관리직이 하기 싫어서 나왔는걸요. 사장 시켜준대도 싫어요(웃음).
열 살 때부터 키운 아나운서의 꿈
김진세 방송 일이 왜 좋으세요?
윤영미 정신과 선생님이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으면 진짜 사랑하는 게 아니지 않아요?
김진세 그냥 좋다는 말씀?
윤영미 네. 왜 방송 일이 좋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아직도 해답은 몰라요. 그냥 좋은 거죠.
김진세 제가 알아본 바로는(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일이시잖아요? 그러니 의미는 상당할 거 같아요.
윤영미 정말 재밌죠. 방송 일 외에 다른 건 생각할 수도 없어요.
김진세 특별히 방송 일이 더 즐거운 이유가 있을까요?
윤영미 타고난 끼의 발산인 거 같아요. 사실 아나운서 이전의 꿈은 영화배우였거든요. 유치원 다닐 나이에 뭘 알겠어요.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 그렇게 몰입이 되면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고요. 동네 애들 모아놓고 리사이틀을 하고 교회에서 연극하는 게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쳐다봐주는 것에 우쭐해하며 기분이 좋아졌죠. 뭔가 희열이 느껴졌어요. 학창 시절에도 장기자랑 하면 꼭 앞에 나가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랬어요.
김진세 식구들 중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분이 또 계셨어요?
윤영미 아버지께서 그런 기질이 좀 있으셨어요. 전축을 틀어놓고 고모들하고 고고나 트위스트 추시던 모습이 기억나요. 풍류를 좋아하는 분이셨던 거 같아요. 제가 강원도 홍천에서 자랐는데, 그 시골에서도 아버지는 꼭 서울 명동에 가서 양복을 맞춰 입는 분이셨어요. 사냥도 즐기고 오토바이도 타시고, 남에게 뽐내는 걸 좋아하셨죠. 또 잘생기셨거든요. 연예인으로 빠지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질이셨는데, 그냥 평범하게 사업을 하셨어요. 제가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은 거 같아요.
김진세 형제가 언니 둘, 남동생 하나 있으시더라고요. 사실 참 안 좋은 순위잖아요(웃음).
윤영미 제가 다섯 살 때 남동생이 태어났어요.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인삼인가, 녹용인가를 사러 나가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기억이 나요. 그때 굉장한 소외감을 느꼈어요. 왜냐면 저는 아버지가 바라던 아이가 아니었거든요. 어머니가 딸 임신한 걸 알고는 아버지가 지우라고 하셨는데, 어머니가 결국 저를 낳으신 거예요. 어린 나이에 누구한테 들었는지 몰라도 제가 축복받지 못한 탄생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들 낳았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상처를 받았었죠.
김진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언니들과 남동생 사이에 끼어서 좀 애매한 위치이긴 해요.
윤영미 언니와 싸우면 “쪼끄만 게 왜 언니한테 대드느냐”고 혼나고, 남동생과 싸우면 “누나가 돼서 동생 하나 돌보지 못하고 싸우느냐”고 혼났죠. 저는 보살핌을 못 받고 자란 느낌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1등에 대한 강박관념이 컸어요.
김진세 인정받고 싶은 마음?
윤영미 뭐든지 잘해야 되고, 하다못해 운동회 때 달리기를 해도 저는 1등을 해야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유학 와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김진세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어떠세요? 일찍 세상을 뜨셨던 걸로….
윤영미 네,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요. 어떻게 보면 전 굉장히 불운하고 드라마틱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성장해서도 성격적인 면이나 행동반경에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김진세 드라마틱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http://img.khan.co.kr/lady/201105/20110517155001_2_yymi2.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김진세 성장해서도 그런 혼란이 있었나요?
윤영미 제가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서 아나운서가 됐잖아요. 남들 앞에서는 아나운서라는 우월감을 느끼다가, 또 아나운서의 세계에 들어가서는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거예요. 그 세계에서는 제가 비주류였으니까요. 나이도 많고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아나운서는 아니었잖아요? 그런 혼란이 평생을 지배하는 거 같더라고요. 저는 긍정적인 면도 굉장히 강하고, 또 부정적인 면도 강했어요. 그것이 참 혼란스러웠어요.
일도 사랑도, 열정이 없으면 무효!
김진세 그런데 왜 영화배우에서 아나운서로 꿈이 바뀌었어요?
윤영미 초등학교 2, 3년쯤 되면서 ‘아, 난 영화배우 얼굴은 아니구나’ 하고 깨달은 거 같아요(웃음). 말을 잘한다고 하고 목소리도 좋다고 하니까, 그럼 아나운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방송 아나운서로 뽑히면서 그때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아나운서가 제 꿈이었죠.
김진세 학창 시절에 방송반 활동을 하셨죠?
윤영미 네, 창덕여고 방송반이었죠.
김진세 전 대광고 방송반에서 PD 했어요. 저희 때 창덕여고 방송반과 교류가 많았거든요.
윤영미 맞아요! 당시에 서울고, 중앙고, 대광고 방송반이 유명했어요. 그래서 자주 어울렸었는데…. 와, 반갑네요.
김진세 그러고 보니 한 번쯤 길에서 우연히 봤을 수도 있겠네요.
윤영미 어머! 그래요?
김진세 네. 저보다 두어 살 위시니까, 동네 누나를 만난 셈이네요(웃음).
윤영미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요(웃음).
김진세 그러게요. 그 시절, 청소년기는 어떠셨어요?
윤영미 저는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연애를 했어요(웃음).
김진세 네에?
윤영미 방학이면 어머니 계시는 시골에 내려갔거든요. 거기서 초등학교 때 전교회장을 했던 동창 남자애를 만난 거예요. 학교 도서관에서 한마디로 눈이 맞은 거죠.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사귀었어요. 나중에는 걔가 저 때문에 서울로 전학까지 왔어요. 그때는 연애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친구 사이였죠. 어머니도 알고 계셨고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http://img.khan.co.kr/lady/201105/20110517155001_3_yymi3.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윤영미 제가 찼어요(웃음). 저는 대학에 들어가고, 그 친구는 재수를 하게 되면서 헤어졌죠. 제가 미팅도 하고 딴 남자도 사귀게 되면서(웃음).
김진세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혹시 아세요?
윤영미 약대 졸업하고 나서 고향에서 약국을 하고 있어요.
김진세 이 얘기 써도 돼요?
윤영미 써도 돼요. 상관없어요(웃음). 저는 연애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나 따로, 너 따로’ 이런 걸 못해요. 뜨거운 연애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남편하고만 그걸 안 했네, 뜨거운 연애(웃음).
김진세 저서 「윤영미 아나운서의 열정」이 혜은이의 ‘열정’이었네요. 그렇죠?(웃음) 매사에 그런 면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그런데 그 열정 때문에 살면서 후회가 되신 적은 없어요?
윤영미 후회는 없어요. 어떤 때는 ‘내가 되게 힘들게 사는구나’ 하고 느끼지만 맘대로 안 되더라고요. 전 목표로 딱 찍으면 끝까지 해내야 돼요. 그걸 안 하면 견디질 못해요.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다 그래요.
김진세 예를 들어 작은 일이라면?
윤영미 등산을 하다가 힘들면 중간에 내려갈 수도 있잖아요? 전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올라가야 해요. 그게 고질병이죠.
김진세 어떻게 보면 큰 장점이기도 하고….
윤영미 단점이기도 하죠.
김진세 본인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니까요. 경우에 따라서는 멈추거나 쉬거나 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윤영미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진정한 쉼을 못 누리는 사람이죠. 저는 이제까지 제 인생에서 목표로 삼은 것 중 이루어지지 않은 게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왜냐면 안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하니까(웃음).
김진세 그럼 여태까지 포기한 적은 없으세요?
윤영미 저 스스로 포기한 건 없고, 타의에 의해서 포기한 건 있죠.
김진세 예를 들면?
윤영미 골프 중계 같은 거요. 저는 골프 캐스터가 되기 위해 끝까지 매달렸거든요. 그런데 오디션에서 합격이 안 돼서 못한 거지, 제 의지로 포기한 건 아니에요. 야구 캐스터도 제가 연예오락 쪽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된 거지, 포기한 건 아니었어요.
투수가 뭔지도 모르던 여자,
최초의 여성 야구 캐스터가 되다
김진세 참, 그 얘기 좀 해주세요. 최초의 여성 야구 캐스터가 된 사연이요.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윤영미 그 얘긴 정말 2박 3일 밤을 새면서 해야 돼요(웃음). 제 첫 직장이 춘천 MBC였거든요. 그런데 5년 정도 있다 보니 뭔가 지역방송 아나운서의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나이는 이미 서른을 넘긴 상황이었죠. 그런데 때마침 SBS가 개국한 거예요. 제 인생의 행운이었죠.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력서를 넣었는데, 제가 1착으로 됐어요. 저는 정말 ‘백’도 없고, 유명한 아나운서도 아니었는데 제가 SBS 개국 멘트를 하는 아나운서가 됐어요. 소원을 다 이룬 것 같았죠.
김진세 이제 서울에 와서 방송을 하는구나!
윤영미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었어요. 기라성 같은 아나운서들 사이에서 나름 소외감을 느꼈어요. TV 방송은 시켜주지도 않는 상황이 2년이나 지속됐어요. 나는 평생 방송을 하고 싶은데, 어떡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김진세 그러다 생각하신 게 야구 캐스터였군요.
윤영미 아나운서만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뭔가 생각해보니 라디오 뉴스와 스포츠 중계밖에 없더라고요. 그 중 라디오 뉴스는 아나운서라면 누구나 하는 거니까, 그럼 스포츠 중계를 하자! 그런데 그게 정말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던 게, 저는 스포츠에 완전 문외한이었거든요.
김진세 그 중에서도 왜 하필이면 야구를 택했어요?
윤영미 스포츠 중에서도 임펙트가 강한 게 뭔가 생각해보니 축구, 농구, 야구로 압축이 됐어요. 축구는 중계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농구는 프로리그 출범 전이라 지금만큼 인기가 없었어요. 그럼 야구밖에 없는 거예요. 야구는 SBS에서 6개월간 매주 금·토·일요일 중계를 했으니까요.
김진세 그럼 찬스가 있겠다?
윤영미 네. 그날부터 스포츠 신문 야구 면을 펼쳐 들었는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포수, 투수도 모르고 안타가 뭔지도 모르겠고…. 선배들한테 물어서 단어장을 쓰기도 하고, 만화로 된 야구 규칙집을 사서 나달나달해질 때까지 읽었어요. 그런데 글로 배우니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세운 원칙 세 가지가 있었어요. 1번이 매일 야구장에 가자, 2번은 스포츠 신문과 야구 관련 책만 읽자, 3번은 야구 관련 테이프를 듣자!
김진세 죄송하지만 잠깐만요, 그렇게 하시는 중에도 재미를 느끼셨어요?
윤영미 그 당시에요? 음…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소소한 재미보다는 이 지구상에 없었던 여자 야구 캐스터가 된다는 생각에 설 어요. 그런 목표가 있었으니 1년간 제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죠. 당시 제가 아침 뉴스를 진행하느라 새벽 5시 30분에 출근했어요. 그러곤 저녁 6시면 잠실야구장으로 달려갔죠. 틈틈이 차 안에서 야구 방송 테이프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두 시간씩 야구 관련 비디오를 봤어요. 처음에는 왜 공을 치고 뛰어가는지조차 몰랐는데, 몇 달이 지나니까 경기의 흐름이 보였어요. 제 스스로가 깜짝 놀랐어요. 나중에는 뒤통수만 봐도 어떤 선수인지 알겠더라고요.
김진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하셨다는 거죠?
윤영미 네. 1년 정도 지났을 때 국회의원을 지낸 이계진 부장님께서 제가 야구 공부하는 걸 알게 되셨어요. 어느 날 저한테 10만원을 주시더니 “시범경기가 열리는 대전구장에 가서 야구 중계 녹음을 해오라”고 하셨어요. 커다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외야에 앉아서 혼자서 녹음을 했어요. “왼쪽에 이종범 선수가 원볼 어쩌고 저쩌고” 혼자서 녹음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저를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고(웃음).
김진세 (웃음) 잘됐어요?
윤영미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들어보니 ‘개판’이더라고요. 막 울었어요. 1년 동안 야구에만 몰입해서 체중이 거의 10kg이나 빠졌거든요. “SBS가 어떤 방송국인데 여자를 야구 캐스터 시켜주겠느냐”는 동료들의 비웃음을 들을 때면 흔들리긴 했지만, 한 번 목표로 삼은 이상 그걸 이루지 못하면 제가 못 견딜 것 같았어요.
김진세 부장님께서는 뭐라시던가요?
윤영미 엉망진창이었는데, 그래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회사 간부들 앞에서 오디션도 치를 수 있었어요. 그리고 희소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하셨는지 제가 그해 야구 중계를 하게 됐죠.
내 인생의 홈런, 이제 시작이다
김진세 아! 첫 중계 기억나세요?
윤영미 1994년 4월 7일 광주구장이었는데, 제가 중계석에 앉자마자 홈런이 터졌어요. 그래서 저의 일성이 “홈런~”이었어요. 한화의 강석천 선수가 홈런을 쳤는데, 그때 참 인생이 드라마틱하다는 걸 느꼈죠. “1년 동안 수고했다. 네 인생은 이제부터 홈런이다!” 이런 대가를 받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김진세 그때 스포트라이트 많이 받으셨죠?
윤영미 당시 각종 매체에 나온 제 기사를 스크랩한 앨범이 4권이나 있어요. ‘그렇게 노력하더니 결국은 성공하는구나’라는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준 거죠. 그랬는데… 인생은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잖아요. 야구 캐스터가 되고 나니, 목표가 없어져서 상실감이 오는 거예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http://img.khan.co.kr/lady/201105/20110517155001_4_yymi4.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윤영미 네. 잘하느니, 못하느니 소리를 들으면서 6년간 야구 중계를 했어요. 그 와중에 결혼도 했고요.
인간적인 ‘퀄리티’ 뛰어난 남편,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
김진세 남편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윤영미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소개팅이나 선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조건 좋은 사람도 많았는데, 그야말로 ‘필’이 안 왔어요. 사람이 좋아진 다음에 결혼으로 가야지, 결혼을 목표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순서가 뒤바뀐 것 같아서 못하겠더라고요.
김진세 맞아요.
윤영미 그러다 보니 서른다섯 살이 됐는데, 교회에서 알게 된 언니가 남편을 소개해줬어요. 크리스천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너무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아서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언니가 일하는 그 출판사에 갔다가 우연히 남편을 봤는데, 첫눈에 호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제 남편이 인상이 참 좋거든요.
김진세 ‘필’이 느껴지던가요?
윤영미 네. 몇 번 만나보니까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제가 그동안 사회에서 만난 남자들과는 ‘퀄리티’가 다른 거예요. 인간적인 퀄리티 말이에요.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됐고, 또 남편도 만난 지 2주 만에 프러포즈를 해왔어요.
김진세 오, 2주 만에요?
윤영미 네. 6개월 정도 연애하고 결혼했죠.
김진세 좋으신 분 같던데요. 오늘 아침 트위터를 보니 남편분께서 베이글도 사오시고요(웃음).
윤영미 (웃음) 저는 지금까지도 남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거의 안 받아요.
김진세 남편분께서 좋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그럼 아내로서는 어떠세요?
윤영미 남편한테 물어보시면(웃음)…. 저는 다른 아내들처럼 밥을 해주고 남편을 내조하는 건 못해요. 제 남편은 자기 아내가 되게 잘난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작은 거 하나도 남편과 의논해요. 경제적으로는 제 벌이가 좀 나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남편에게 의지하거든요. 남편이 우리 가족의 빛이고 중심이라는 걸 자주 표현하는 편이에요.
김진세 현명하세요. 요리 같은 것도 잘하세요?
윤영미 한 3년간 배우긴 했는데, 평일에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주말에는 해요. 주로 고기 굽는 거 많이 하죠(웃음).
김진세 두 아들에게는 어떤 엄마세요?
윤영미 아이들하고는 세대차이가 없는 엄마인 것 같아요. 저희 아이들은 엄마를 어려워하거나 벽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엄마한테 불만이 뭐니?”라고 물었더니 “공부하라고 안 하는 거요”라고 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그럼 공부하라고 할까?”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래요.
김진세 (웃음)
윤영미 친구들이 부러워한대요. 다른 아이들은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스트레스 받는데, 저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요. 저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자율적이거든요.
김진세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건 있으세요?
윤영미 그런 거 없어요. 저는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너희들이 좋아하는 걸 하라”고 해요. “엄마는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산다. 너희들도 무엇이든 좋으니 네가 원하는 걸 빨리 찾아라. 그게 무엇이든지 엄마는 밀어줄 것이다. 그 대신 너희들이 많은 경험을 해야만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책도 읽게 하고 여행도 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죠.
김진세 요즘 ‘신입사원’이라고 아나운서를 뽑는 프로그램이 나오던데요. 아나운서가 정말 선망의 직업이잖아요. 그 꿈을 가진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해줄 말씀이 있으세요?
윤영미 내 아이가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이들에게는 굉장한 부담이 될 것 같아요. 특히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아이에게 강요하는 분들 있잖아요? 행복이나 성공이라는 기준은, 상대적인 게 아니잖아요. 본인이 행복을 느끼면 행복한 거고, 본인이 성공했다고 느끼면 성공한 거 아닌가요?
김진세 맞습니다. 비교를 하게 되면 불행해지고, 실패하는 거죠.
윤영미 저는 사회적인 성공과 스스로가 인정하는 성공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전 결코 사회적인 성공을 원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사회적인 성공에 자신만의 행복이 합쳐져야 하죠.
김진세 맞는 말씀이에요.
윤영미 그리고 저는 성공이라는 것은 지속될 수가 없다는 걸 알아요. 정점을 찍었다고 계속 거기에 머무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반드시 내려가는 길이 있게 마련인데…. 그래서 저는 성공보다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윤영미의 행복론
김진세 ‘성장’이요?
윤영미 저는 날마다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어제 모르던 것을 더 배우기 때문이에요. 그럼 더 깨닫는 게 있거든요. 어제 몰랐던 김진세 박사님을 오늘 알게 됐잖아요. 그리고 오늘 제가 박사님한테 또 배우는 게 있단 말이에요. 그럼 그만큼 성장하는 거죠.
김진세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http://img.khan.co.kr/lady/201105/20110517155001_5_yymi5.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김진세 예를 들자면?
윤영미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각 한 번 한 적 없고, 방송 펑크란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방송 시간에 늦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마흔을 넘기면서 ‘나는 부지런하게 약속을 잘 지키는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고, 저 사람은 밤늦게 일하고 늦게 일어나는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제 인생이 행복해졌어요.
김진세 상대를 인정하니까 행복해지더라는 말씀?
윤영미 어떤 책에서 봤는데요, 물 한 잔을 놓고 “사랑해, 좋아해, 고마워” 등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현미경으로 보면 물의 입자가 정말 아름다운 눈꽃송이처럼 바뀌어져 있대요. 반대로 욕을 하잖아요. 그럼 육각형의 모양이 망가져버린대요. 말의 힘이 정말 대단하잖아요?
김진세 그럼요. 잘 아시잖아요.
윤영미 말로 용기를 얻을 수도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전 그 다음부터 부정적인 말을 안 해요. 결론이 뭐냐면, 우주의 70%가 물이고 우리 인체도 7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아요.
김진세 좋은 말을 해주신다는 거죠?
윤영미 네. “너는 정말 특별해. 엄마는 너를 무척 사랑해. 네가 최고야. 넌 정말 잘할 수 있어” 이런 얘기를 만날 해요. 그러면 우리 몸의 70%인 물이 좋은 육각수로 바뀌는 거예요. 사람이 사랑받으면 예뻐지잖아요? 그게 근거가 있는 거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제 몸의 70% 수분이 저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반면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그 사람이 잘못되는 게 아니라 내가 잘못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미워할 수가 없죠. 그걸 알고 나니 누구든 좋은 점만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제 얼굴이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만나고 싶어 하더라고요. 저를 만나면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진대요. 여기저기서 저를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 삶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느껴졌어요. 이게 인생의 비밀이구나, 깨달았죠.
김진세 아까 다 해주신 말씀인데, 독자들을 위해 정리 한번 해주시겠어요. 윤영미에게 있어 행복이란?
윤영미 날마다 성장하는 나를 보는 것!
김진세 그럼, 가장 큰 긍정의 힘은?
윤영미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다
김진세 제가 윤영미씨와의 인터뷰를 추진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동안 걸어온 길을 보니 주부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윤영미 그런 의미라면 할 얘기가 많죠. 우리나라에서 여자의 나이, 특히 여자 아나운서에게 있어 나이는 무척이나 큰 족쇄예요. 여자 아나운서에 있어서 나이는 커리어와 반비례하는 게 현실이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소외되죠. 여자 나이 50이라고 하면, 어디 여자로 봐주기나 해요? 하지만 저는 여자가 정말 아름다워지는 나이가 30대 중반부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스타일도 찾고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숙되어가는 시기죠. 그러니 일찌감치 조로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김진세 그럴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윤영미 저는 제 자신이 불행하거나 늙었다고 생각할 때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30년 후로 가요. 거기서 제 모습을 봐요. 그럼 지금의 내가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또 지금의 불행이 정말 웃기는 고민이 될 수도 있고요. 지나간 고민을 이제와 돌아보면 너무 우습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 이렇게 가족이 함께 있고, 내 일이 있고 건강한 것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죠.
김진세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라는 말씀이시죠?
윤영미 얼마든지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거든요. 우리 사회에도 40에 뭔가를 시작해서 일가를 일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 나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뭔가 잘하는 분야가 있으면 거기에 매진했으면 좋겠어요. 일단 반걸음만 더 행동하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쉽게 예를 들자면, 저는 차를 한 잔 마셔도 좋은 곳을 찾아가요. 아무데서나 떼운다? 이런 거 안 하려고 해요. 제 미니홈피 사진을 본 분들이 “어쩜 그렇게 좋은 곳을 많이 다니느냐”고 하시는데, 큰 차이는 없어요. 그분들은 하지 않으시는 거고, 저는 하는 것뿐이거든요.
김진세 부러워만 하지 말고, 움직이라는 뜻인가요?
윤영미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거나, 좋은 사람과 함께하거나 하면 엔도르핀보다 4천 배나 좋은 다이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대요.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외곽으로 나가서 다이도르핀을 얻는 게 낫지, 도심에 마냥 죽치고 앉아 있으면 뭐 하겠어요? 저는 영화도 혼자 보러 다니고 밥도 혼자 잘 먹어요. 조조 영화 보러 가면 얼마나 여유롭고 좋은데요. 부럽다고 말만 하지 말고, 꼭 반걸음만 더 행동하세요. 그럼 행복해질 거예요.
김진세 앞으로 인생의 계획을 여쭤봐도 될까요? 어쩌면 은퇴 이후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이 50에 계획을 얘기한다는 게 이상할 수 있지만, 윤영미씨는 충분히 가능한 것 같아요.
윤영미 당연하죠! 사실 저는 작년까지 제 이름을 내건 연예 프로그램과 영화 프로그램을 했어요. 이 나이까지 현장에서 활동하는 아나운서가 없거든요. 하지만 월급쟁이로 58세까지 SBS에 남아 있을 것이냐? 그건 싫었거든요.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어요. 올해는 50세가 되는 해, 그리고 아나운서 경력 25년째 되는 해라는 나름의 상징성도 있었고요. 4, 5년 전부터 프리랜서를 꿈꿨고, 1년 전부터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죠.
김진세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죠?
윤영미 50대에 프리랜서 선언한 아나운서가 있느냐? 없거든요. 다 30대에 하죠. 하지만 분명 제가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부라는 강점을 살려서 CJ오쇼핑에서 MC를 맡게 됐어요. 그렇다고 이 일만 하는 건 아니에요. 명지대에서 스피치 교육을 담당하는 초빙 교수로 있고, 스피치컨설팅 회사를 차려서 아나운서 지망생과 CEO들을 교육하는 강연을 하고 있어요. 여러 가지 일을 하겠다는 의도로 회사 이름도 스피치아카데미가 아닌 그냥 ‘윤영미와’로 정했어요. 왜냐면 ‘와’가 컴온(Come on)이 될 수도 있고, 와우(Wow!)라는 감탄사가 될 수도 있으며, 함께라는 위드(With)의 뜻도 될 수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한테 ‘윤영미는 자기 길을 개척해서 가는구나’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매력적인 50대가 아닌 매혹적인 50대가 되고 싶거든요.
김진세 늘 도전하는 모습이 매력도 있고 충분히 매혹적이기도 하세요. 동네 누나와의 깊은 이야기, 감동적이었습니다(웃음).
윤영미_ (웃음) 저도 반가웠어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윤영미, 행복은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온다 25년 경력의 아나운서. 밖에서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선망의 위치지만, 방송국 관리직으로 밀려나는 직장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영미는 선입견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여성 최초의 야구 캐스터로 당당히 중계를 했다. 마냥 점잔 뺄 것 같은 아나운서의 고정관념을 깨고 충분히 망가지고 끼를 발산해 스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50대의 나이에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TV 홈쇼핑 시장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열정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윤영미 아나운서의 열정」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녀가 이룬 파격과 도전은 모두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뜨겁게 달구어지지만 곧 식어서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류의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무척 흔하다. 어쩌면 우리 국민의 핏줄 속에는 그런 기질이 조금씩은 다 있을지도 모른다. 간혹 ‘냄비 근성’이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이루고자 한 일을 거의 모두 이루어냈다. 그녀에게는 열정 말고 또 다른 것이 있다. 어떤 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어떤 힘이 열정의 에너지를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행동한다. 남보다 반걸음이라도 더 움직인다. 부지런함이기도 하지만, 생각을 실천하는 ‘실행력’이 남다르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그가 사는 춘천 MBC 입사를 갈망했었다는 이야기는 실은 곧이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고는 달라졌다. 그녀는 소망하고, 열망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긍정의 사고’는 물론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념을 갖고 죽을힘을 다해 실행해야 한다는 ‘긍정의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귀찮고 불편해도 참고 움직인다. 별것 아니라고 흘려 넘길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맛집 탐방이 그렇다. 중년이 되면 익숙한 것에 더 익숙해지려 한다. 새로운 맛집에서 치를지 모를 실패가 두렵다. 음식 한 끼 먹자고 초행길을 나서기가 귀찮다. 그냥 단골집에서 대접이나 받고 싶어지는 나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새로운 맛집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미니홈피에 사진과 함께 소소한 감상을 올려놓는다. 인터뷰 전 그녀의 미니홈피를 보면서 든 첫 생각은 ‘귀찮을 텐데’였다. 20, 30대는 모른다. 미니홈피,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등 요즘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가 중년에게는 ‘금주의 인기가요’나 ‘퓨전 음식’과도 같이 ‘낯설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낯섦과 귀찮음을 그녀는 행동으로 극복해나간다. 맛집 탐방이 작은 예라면, 여성 최초의 야구 캐스터 도전과 50대의 프리랜서 선언은 그녀의 실행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커다란 예라고 할 수 있다. 투수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던 사람이 야구 경기를 중계할 정도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까. 일단 ‘꿈’을 품고서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그녀는, 1년 동안 매일같이 야구장을 드나들었다. 집에서든, 차에서든 늘 야구와 함께했다. 그 실행의 힘으로, 이번에는 50대의 여자 아나운서로 또 다른 모범 사례를 보이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 이미 1년 전 그렸던 50세 윤영미의 모습을 지금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성공은 그저 이름값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행동이 뒤따랐다. 굴비 판매 방송을 앞두고는 기꺼이 법성포까지 간다. 냄비 판매를 위해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백화점 시장조사를 나간다. 이런 적극적이고 치밀한 그녀의 행동을 주부들은 진작에 알아봤다. 이것이 성공의 중요 요소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Share My P!’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가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주었다. P의 의미를 물으니 열정(Passion)이라고 했다. 자신의 열정을 나누어준 것이다. 내가 본 그녀의 P는 ‘실행의 힘(Power of Practice)’이다. 행복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 말이다. |
![]()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이달에는 모처럼 신간을 선물로 드립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구별하는 1%의 차이’라는 부제가 달린 「애티튜드」란 책이에요. ‘애티튜드’는 자세나 태도로 번역되고, 스타일과 혼동하기도 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몸가짐’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애티튜드는 ‘행복을 지향하는 마음과 몸의 가짐’이라고 해요. 좋은 애티튜드를 갖기 위한, 감정, 사고, 행동에 대한 배려, 인내, 미소 등 21가지 키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이달의 인터뷰이 윤영미씨와 가까운 애티튜드가 있네요. 바로 ‘실천’입니다. 독자분들도 함께하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준비했습니다. 끝으로 고백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인터뷰어 저, 김진세입니다. 쑥스럽네요. *김진세의 인터뷰 _ 긍정의 힘 윤영미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애티튜드」(웅진윙스)를 보내드립니다. |
윤영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품었던 아나운서의 꿈을 1985년 춘천 MBC 아나운서가 되며 이뤄냈다. 1991년 SBS로 자리를 옮겨 개국 방송을 진행했으며, 최초의 여성 야구 캐스터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명절이면 방송되는 특집 프로그램에서는 신신애, 신바람 이박사 등의 패러디 무대로 우승을 독식하며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예능감 충만한 ‘아나테이너’로 맹활약했다. 50세가 되던 2011년,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CJ오쇼핑의 간판 프로그램 ‘오키친’ MC로 변신, 판매 상품마다 매진을 기록하며 ‘완판녀’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각종 강연, 스피치 아카데미 운영 등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더 많은 ‘꿈 많은 중년’이다.
트위터 @yoonyoungme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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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여자 나이 50세, 윤영미는 지금도 성장 중…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으며, ‘행복연구소 소감’을 통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행복멘토’라 불리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Love Myself’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헤어&메이크업 / 작은차이 청담점(준수·은혜, 02-549-3470) ■장소 협찬 / 청담 48번지(02-512-4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