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얼굴에서는 아직도 풋풋한 청년의 기운이 묻어나지만 안정적으로 올라붙은 팔 근육은 성숙한 남성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고수(33)가 강한 남자 영화로 올 여름 극장가 흥행을 노린다.

고수, 사랑에 빠진 남자의 향기
지난겨울 해발 650m의 경남 함양 백암산에서 진행된 촬영은 시체 역으로 투입된 소년 단역 배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을 만큼 혹독했단다. 오죽 힘이 들었으면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투 동막골’에 이어 세 번째로 군인 역할을 맡은 신하균이 “앞으로 군인 역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을까. 첫 장면부터 거의 모든 배우들이 상처를 달고 살았고, 신하균과 고수는 피부병으로 꽤 고생을 했단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때문에 먼저 촬영을 마친 배우들은 담요와 뜨거운 물을 들고 뒤늦게 신이 끝난 동료를 향해 달려가곤 했다. 촬영이 없는 배우는 촬영장에 불을 지피는 것도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고수는 장작을 패는 일에 놀랄 만한 실력을 발휘해 ‘장작 패기의 고수’로 불리기도 했다고. 고되고 힘든 촬영 환경이 ‘전우애’를 샘솟게 하는 촉매제가 된 것일까. 남자배우들끼리의 촬영장 분위기에 대한 얘기가 오가던 중 ‘반듯한’ 이미지의 고수가 터뜨린 한마디에 제작보고회장에는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촬영 현장에 여배우가 없다 보니 화장품 냄새가 그리웠어요!” 순간 당황한 고수는 “하균이 형과 매니저의 스킨 냄새가…”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그가 진정 그리워한 화장품 냄새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좌중 모두 흐뭇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싫었다”는 고수는 장훈 감독으로부터 뛰어난 몰입력을 발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고수에게 ‘고지전’은 여름이면 만날 수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우리 역사의 한 자락을 담아내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전쟁에 관한 설문 결과를 접한 적이 있는데,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정확한 발발 시기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다른 나라와의 전쟁인 줄 아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전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장훈 감독은 고수를 만난 뒤 시나리오의 김수혁을 다시 재단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마냥 해맑은 눈빛을 가진 청년 김수혁이 치열한 전쟁을 겪으며 어떻게 변화해가는지 그 흐름을 살펴보는 건 배우 고수의 무르익은 연기력을 확인하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할 것이다.
■글 / 장회정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