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의 ‘진짜 뽀통령’ 이선의 성우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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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아이들의 뜨거운 사랑 덕분에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어요”

성우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목소리의 유명세에 비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서 마음껏 거리를 누빌 수 있고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짜릿함도 있다. 2003년부터 8년 동안 인기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인공 뽀로로 역을 맡아온 이선은 일찍이 프리랜서 선언을 한 20년 차 베테랑 성우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욕탕 발성 없이도 그녀의 존재감은 충분히 빛난다.

뒤뚱뒤뚱 펭귄 캐릭터부터 섹시 스타까지
뽀로로의 ‘진짜 뽀통령’ 이선의 성우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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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 이선(39)은 지난 8년간 신기한 물건을 보면 왕성한 호기심이 발동하고, 하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사고뭉치 꼬마, 숲 속 마을의 분위기 메이커 뽀로로의 목소리를 연기해왔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코드에 탄탄한 스토리까지 갖춰 전 세계 110개국에 수출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류 애니메이션’ 뽀로로는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캐릭터다.

직접 만난 이선은 동심을 가득 담은 만화 속 캐릭터는 물론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모니카 벨루치까지 목소리로 모두 표현하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1992년 갓 스무 살의 나이에 KBS 공채 성우 23기로 데뷔해 1995년에 프리랜서를 선언한 후 무려 20년 가까이 줄곧 목소리만으로 사랑받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저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그녀는 수많은 외화 작품과 애니메이션, CF 등에서 목소리로 연기를 해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간 곳을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상 속에서 틈틈이 성우 이선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유독 부침이 심한 성우의 세계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외화 더빙의 비중이 줄고 대부분 자막으로 방송되기 때문에 공채 시험을 통해 성우를 뽑는 일도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이선이 지금까지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언어와 말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 평범한 목소리이지만 팔색조로 변신할 수 있는 연기력이 남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전 목소리가 평범한데다 편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어서 실제로 제가 성우인지는 아무도 몰라요(웃음). 어떤 성우는 카페에서 ‘여기요’라는 말 한마디에 눈에 띄기도 하고, 평상시 말투만 들어도 마치 한 편의 만화를 보는 듯 놀랍기도 하거든요. 저도 처음에 방송국에서 성우 선배님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외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굉장히 놀랍고 신기했어요. 왜냐면 성우 특유의 ‘조’가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외화 더빙을 할 때도 자연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고전극을 현대식 화법으로 하면 안 어울리잖아요. 장르에 따라 유연하게 화술을 구사해야 하고요. 저는 자연스럽게 해야 편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선이 그동안 순탄하게 승승장구하며 인기 성우로 계속 활동해온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있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졸업과 동시에 한 차례의 낙방도 없이 곧바로 성우 시험에 합격해 3년 만에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이듬해 인기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에서 첫 주연을 얻어내는 쾌거를 이뤘지만 갑작스러운 성대 결절로 인해 9회를 마지막으로 그만둬야 했다. 목소리로 밥벌이하는 성우가 성대 결절이라니, 무척 괴로운 나날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녀에게는 일보다 휴식이 필요했고, 그 시기는 이전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던 그녀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미래를 위해 체력을 기르며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타고난 연기력에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도 일품
성우로서 이선의 장점은 잘 듣고 금세 따라 하는 것이다. 뽀로로 역할을 처음 맡았을 때도 그녀는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펭귄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깍깍’ 소리를 내는 걸 보고 성대를 쥐어짜는 목소리를 냈다고.

“펭귄 소리를 흉내 내니까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기면서 ‘아이 배고파’, ‘아이 졸려’, ‘와! 재밌겠다’ 등을 말하는 게 포인트거든요. 아이들에게는 뽀로로가 ‘대통령’이자 ‘하느님’이니까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어요(웃음).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뽀뽀로 역을 맡은 성우들이 모두 저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 한다니 정말 뿌듯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죠.”

뽀로로의 ‘진짜 뽀통령’ 이선의 성우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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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경상북도 문경의 시골에서 자랐다. 성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성우가 되고 싶다는 뜨거운 열정이 이미 그녀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학교를 일찍 들어갔어요. 방송국에 들어간 후에야 성년식을 했거든요. 같이 일하는 선배, 동료들과 경험 차이가 클 수밖에 없었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정말 힘들었어요.”

당시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는 끼가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별다른 연고가 없었던 그녀는 외로울 틈도 없이 매일 대본만 파고들었다. 술자리나 장기자랑 시간에는 어김없이 불려 나가 노래를 불렀다. 얼마 전 방송을 통해 공개된 이선의 노래 실력은 바로 그때부터 다져진 것이다.

이선이 속한 성우 밴드 ‘온에어’는 최근 KBS-2TV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에 출연해 자우림의 ‘매직 카펫 라이드’로 무대를 완벽하게 꾸며냈다. 밴드의 보컬인 이선이 만화 캐릭터 뽀로로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라는 사실은 한동안 인터넷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저는 술을 안 마셔요. 그런데 대학 시절부터 술자리에서 노래하는 기쁨조 역할을 했어요(웃음). 요즘은 아나운서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시대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성우도 목소리로만 하는 연기에 국한되지 않았으면 해요. 알고 보면 재밌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많거든요. 대중에게 다방면으로 각인될 수 있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봐요. 잠깐의 일탈이 아니라 성우테이너로 이미지를 전환하는 것이지요.”

연기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여느 배우 못지않다. 그의 첫 도전이 성우 시험이었고 덜컥 붙어버린 바람에 연기 인생을 성우로 시작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고백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다만 연기는 일생을 두고 공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에 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2006년 연극 ‘메밀꽃 필 무렵’을 시작으로 해마다 대학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일도 사랑도 야무진 아줌마, 최종 목표는 배우
뽀로로의 인기 덕분에 요즘 이선은 예전보다 몇 배는 더 바빠졌다. 그녀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 20년 동안 매니저 없이 혼자 일하면서 힘들기도 했고, 언제나 모든 일이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연륜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기관리에는 이제 도가 텄다. 목이 약한 편이라 늘 신경을 써야 하는데, 과거 성대 결절로 인해 체득한 노하우들이 그동안 계속 활동해오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가을부터는 다시 뽀로로 연기에 들어가니까 관리 잘해야죠. 비결이요? 술, 담배 안 하고요. 자극적인 음식 피하고 소금물로 가글해요. 여름에도 정수기 물 미지근하게 해서 마시고 탄산음료도 안 마셔요. 절대 무리하지 않고 아무리 바빠도 6~7시간은 자요. 특별히 운동하지 않아도 근육이 잘 붙는 건강 체질이라서 여름에 몸매가 드러나면 사람들이 부러워해요.”

그녀는 심지어 살림도 잘한다. 연극 무대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한 지 3년째, 나름 신혼에 맞벌이인 셈이지만 살림은 거의 혼자 해내고 있다. 성우로 바쁘게 활동하면서 살림과 요리는 물론 취미로 틈틈이 그리는 그림도 수준급이다. 완벽한 슈퍼 우먼이다.

뽀로로의 ‘진짜 뽀통령’ 이선의 성우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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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같이 공연을 하다가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사람이 참 괜찮더라고요. 아직 유명하진 않지만 영화와 연극 무대를 오가는 배우예요. 결혼을 늦게 한 편인데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좋아요. 아이는 그냥 생기면 낳으려고요.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도무지 제 성에 차질 않아요. 좀 완벽주의인데, 가끔은 그런 제가 피곤해요(웃음).”

그녀는 남보다 고집이 좀 센 편이다. 연극 무대에 설 때는 방송을 접고 연기에만 몰두한다. 잘 훈련되고 계산된 연기보다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높이 평가한다. 어차피 수입의 대부분은 방송 일을 통해 얻지만, 순수 예술인으로서의 포지션을 놓치지 않으려는 건 그래야 연기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는 배역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그냥 믿고 느끼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보통 사주를 보면 음양오행 중에 특정 요소가 부족하다는데 어머니 말에 따르면 저는 다섯 가지를 다 갖고 있대요. 꿈꾸고 소망하면 이뤄지는 사주라고요. 사실 무의식의 힘이라는 게 굉장히 크잖아요. 긍정적 사고를 하면 할수록 무의식에서 분명 작용한다고 믿거든요. 꿈꾸면 또 노력하게 되고요. 꿈꾸지 않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잖아요.”

앞으로 그녀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은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는 진정한 배우다. 이제는 목소리가 아닌 온몸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목소리로,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갈고닦아온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라면 배우 이선으로 다시 주목받게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배우 고두심씨를 좋아해요. 저도 그렇게 아름다운 배우로 늙어가고 싶거든요. 연기도, 인생도 그분을 닮고 싶어요. 오래전 함께 광고 작업을 한 적은 있는데, 앞으로는 무대에서 만나 뵙고 싶어요. 제 꿈이 이뤄지겠죠?(웃음)”

■기획 / 윤현진 기자 ■글 / 위성은(객원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 협찬 / 그랑씨엘(02-548-0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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