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유럽은 K-POP 열풍으로 뜨겁다. 푸른 눈빛의 10대, 20대들이 한국 가수들에 열광하고 한국어로 된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대체 이들은 왜 K-POP을 사랑하게 됐을까. 프랑스 파리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주부 백은주씨가 직접 보고 느낀 한류 이야기를 한국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한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비틀즈는 싸구려’라고 폄하하던 콧대 높은 유럽 문화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 한류 바람이 일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요즘 그들의 K-POP 사랑을 쉽게 믿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유럽을 뒤덮은 한류 바람은 신기하리만큼 이색적이다.
지난 6월 10일과 11일 프랑스 파리 북부의 대형 공연장 ‘르 제니스 드 파리’에서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f(x) 등 인기 가수들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의 대형 콘서트가 열렸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사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극성 팬들의 주도하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잠시 의심했었다. 하지만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의 모임 ‘코리안 커넥션’이 형성되고, 그들을 주축으로 다수의 프랑스인들이 K-POP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 유럽과 차별화된 역동적인 K-POP 문화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게 됐다.
결국 SM 콘서트는 하루를 더 연장해 이틀에 걸쳐 열리기로 확정됐고, 나는 중학생 아들과 함께 간신히 예매를 마쳤다. 추가 공연 예매도 10분 만에 모두 매진됐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반응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돌 그룹들의 공연을 기대하기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나이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 콘서트는 40대 아줌마인 나조차 무척 설레고 기다려졌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6월 9일, 프랑스 드골공항으로 SM사단이 입국했다. 공항에는 프랑스 팬들 700여 명이 군집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한국 가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대부분 이곳 지역의 중고생들이었는데 그들을 보며 한류 바람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6월 10일, 첫 공연이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공연을 보기 위해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핀란드, 벨기에, 세르비아, 네덜란드, 터키, 스웨덴 등 유럽 전 지역에서 팬들이 찾아왔다. 한국인은 7천여 명의 관객 중 2%도 되지 않았다.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은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르고는 감정과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관객이 프랑스어도 아닌 한국 노랫말을 잘 따라 하더라”라며 외신 인터뷰를 통해 벅찬 소감을 밝혔다. 대체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궁금하고 기대돼 콘서트 관람을 하루 앞두고 내 마음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드디어 6월 11일, 나와 남편은 일찍부터 공연장 앞에 가서 진을 치고 있는 아들과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에 프랑스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불 가정의 재불 교포 2세 두 명도 합류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이 아이들은 비록 먼 타국에서 전혀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굉장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중학생 아이는 평소 가수 오디션을 보러 다닐 만큼 음악에 재능이 있고 관심도 남달랐다. 내가 “K-POP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오로지 K-POP만 듣는다. 프랑스 친구들도 K-POP을 좋아해 오늘 공연에도 많이 왔다”라고 대답했다.
다른 고등학생 아이는 “공연을 무척 보고 싶었는데 일찍 표를 구하지 못해 아쉬웠다. 암표가 무려 500유로에 팔리고 있어 이대로 공연을 못 보는 것이 아닌가 낙심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공연을 보러 가는 지금 이 순간조차 기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팔목에 매직으로 써놓은 소녀시대와 f(x) 글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K-POP에 대한 아이의 애정은 정말 대단했다. 또래의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K-POP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묻자 “프랑스인 여자친구는 빅뱅 이야기만 들어도 소리를 지르고 기절할 정도다. 그만큼 좋아한다. 우리 반 아이들 20명 중 5명 정도가 K-POP을 좋아하는데 K-POP을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한국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고 춤도 따라 춘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샤이니의 ‘링딩동’이다”라고 설명했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지하철에서 내려 공연장을 찾아가는 일은 무척 쉬웠다.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도착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1, 2차 공연 예매가 모두 10여 분 만에 매진된 상황으로 미뤄봤을 때 아마 이보다 큰 공연장이 있었다면 훨씬 많은 유럽 팬들이 모였을 것이다. 표 한 장에 50~110유로(한국 돈으로 8만~17만원)이니 벌어들이는 외화만 해도 엄청나지 않을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던 외국인들이 한국의 음악을 즐기기 위해 유럽 전 지역에서 몰려와 비싼 표 값을 지불하며 이번 공연에 뜨거운 성원을 보내는 광경을 마주하는 한국인으로서 참 감동적이었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이번 SM 사단 공연은 한류 바람의 유럽 상륙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다. 지금 이 분위기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일단 유럽에 한류의 뜨거운 바람이 분 것은 확실해 보였다. 프랑스 대표 언론기관인 「르몽드」와 「피가로」는 각각 ‘자동차·전자 수출국인 한국, K-POP으로 유럽 강타’, ‘한국의 쇼비즈, 파리 공연장을 한류 파도로 뒤덮다’라고 크게 보도했다.
아마 한류 바람이 유럽까지 영향력을 미친 데에는 SM, JYP, YG 등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가수 양성과 기획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본다. 「르몽드」는 한류에 대해 집중 조명한 기사를 통해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오디션을 치러 기획사에 소속되어 오랜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노래, 춤, 연기, 외국어를 훈련받는 시스템과 작곡이나 안무를 자국이 아닌 해외 유명 음악가들로부터 배우는 과정 등이 매우 독특하다’라고 분석했다.
유투브, 트위터, 페이스북 등 인터넷의 힘도 크게 한몫했다. 아마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한류 바람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세계 최대 동영상 사이트인 유투브에서는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무려 6억 건을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벌써 4억 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파리에서 열린 이번 SM 공연이 끝난 후 페이스북에 올라온 공연 하이라이트 영상 조회 수도 이틀간 328만 건을 기록했다.

‘파리 아줌마’ 백은주의 프랑스 한류 바람 체험기

프랑스 대표 언론기관인「르몽드」와 「피가로」에 대서특필 된 유럽 내 한류열풍 기사.
■기획 / 윤현진 기자 ■글 / 백은주(www.twitter.com/pistos11) ■사진제공 / 경향신문 포토뱅크, SM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