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자연의 위대함이 깃든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네팔.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혜택을 받은 나라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가난으로 고통받는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보다 더 높은 가난의 벽 앞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이정진은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주저 없이 네팔로 향했다.
이정진이 찾은 곳은 아시아 최빈국으로 알려진 네팔에서도 손꼽히는 가난한 마을인 커이랄리 지역. 과거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은 이후에도 여전히 그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비행기로 2시간, 또다시 차로 3시간여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커이랄리에는 사금을 채취하는 소나하(Sonaha)족을 비롯해 불가촉천민으로 낙인찍혀 그들 사이에서도 멸시와 천대를 받는 소나하(Sonaha)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인도와 근접한 지리적 특성상, 남자들은 대부분 가족을 버리고 인도로 떠나버렸고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만이 빈곤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안전한 보금자리를 선물하다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출발하기 전 혹시 몰라 숙소에서 빵과 음료를 챙겨 갔는데, 그것이 그날 상기타와 할머니의 첫 끼니가 됐어요. ‘다행이다’라는 마음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마음이 아팠어요.”
상기타의 엄마는 10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마저 인도로 떠나 새로 살림을 차리면서 상기타는 할머니와 남겨지게 됐다. 눈이 점점 어두워져가는 할머니의 삯바느질 일거리가 두 사람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지만, 그마저도 예전처럼 일이 들어오지 않아 두 사람의 삶은 점점 더 고되다고 한다.
곧 우기가 다가오는 것을 감안해 우선 썩은 지붕을 새로 올려주기로 했다. 상기타와 할머니를 적어도 비와 바람으로부터 막아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붕 위로 올라가 볏짚을 걷어낸 뒤 새 나무 골자와 볏짚을 차곡차곡 올렸다. 집이 얼마나 낡았는지 지붕을 뜯어내는 데만도 1시간이 족히 걸렸다. 조금만 더 오래 있었으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는 현지인들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상기타의 할머니가 제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을 하셨어요. ‘내가 죽고 나면 불쌍한 우리 상기타를 꼭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키워줘요’라고요. 그곳에서는 여자아이들이 고아가 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거나 인도로 넘겨져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할머니도 상기타가 걱정이 돼서 제게 그런 당부를 하셨겠지요. 그 간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요.”
벽돌보다 몇 천배 무거운 삶의 무게
커이랄리 지역은 벽돌공장을 중심으로 혹독한 아동 노동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공장에서 무거운 벽돌을 나르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천진한 얼굴의 열세 살 소녀, 안잘리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그 어떤 기구나 도구 하나 없이, 동그란 받침대 하나만으로 애를 써야 벽돌을 옮길 수 있다. 더욱 말문이 막히는 사실은 성인 남성이 들어도 힘겨울 만큼 무거운 벽돌을 아이들이 하루 종일 날라서 버는 돈은 고작 50루피, 즉 우리 돈 700원 남짓이라는 것.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지만 안잘리의 벌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벽돌을 나르는 수밖에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숨이 턱턱 막혀와도 힘들어하는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어린 소녀인 안잘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그보다 몇 백 배, 아니 몇 천 배는 고되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열세 살이면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 나이잖아요. 학교에서 공부도 하고 좋은 것도 많이 봐야 하고요. 소녀의 어깨에 무거운 벽돌을 지워야 한다는 현실이 믿기 힘들 만큼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아이들에게 선물하려고 한국에서 학용품이랑 영양식 등을 준비해갔는데 선물을 받은 아이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기뻐해줘서 고마웠어요. 선물은 난생처음 받아본다고 하더군요. 함박웃음이 핀 아이들 얼굴을 보니 좀 더 가져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까지 했어요.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했던 것 같아요. 비록 저는 그런 작은 것밖에 해주지 못했지만 지금도 안잘리와 가족의 삶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어요.”
빈곤의 고리를 끊을 희망을 보다
현재 굿네이버스 네팔 지부에서는 커이랄리 지역의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빈곤 가정 아동들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중이다.
그러한 뜻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이 새끼 돼지와 양어장 사업이다. 빈곤 가정에 새끼 돼지를 배분해 가정의 소득 증대를 지원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양어장을 운영해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희망의 씨앗’으로 불린다는 이 사업에 이정진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사람들 얼굴을 살펴보니 새끼 돼지를 받는다는 기대 때문인지 잔뜩 들떠 있더라고요. 제가 새끼 돼지를 잡는 순간 돼지들이 우렁차게 울어대서 함께 한바탕 웃기도 했어요. ‘금덩이’처럼 돼지를 소중히 받아들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한 걸음씩 더 나아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어요. 또 커이랄리 지역이 점차 좋아지기를, 모두 행복할 수 있기를요.”
양어장을 만드는데도 힘을 보탰다. 커이랄리는 다행히 물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다. 근처에 커이랄리 강이 흐르고, 땅을 잘 파면 물을 끌어올리기 쉽다는 데서 착안해 양어장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 1차 양어장이 만들어져 물고기들을 키우고 있는데, 지역 주민들이 직접 치어를 키워서 되팔 경우 처음 들였던 비용보다 약 10배의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기적’과 같은 사업이다. 점차 이 규모를 늘려나가고자 지역 주민들이 직접 또 다른 양어장을 만들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도 크고 진행이 잘되어가고 있었어요. 땅을 다지고, 흙을 퍼 나르는 일이 힘들기는 했지만 싱글벙글 웃음 띤 주민들의 얼굴을 보니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더라고요. 거대한 호스가 양어장으로 차오르고 펌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자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는데, 저도 덩달아 신이 나는거예요. 앞으로도 그곳에서 사람들의 꿈을 담은 물고기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줬으면 좋겠어요.”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네팔 커이랄리에서 보낸 7박 8일. 그는 발을 내딛는 곳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희망’을 심었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직은 작지만 그래도 빛나는 ‘내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짧은 만남 속에서도 마음을 나누어준 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면서, 그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 동안 제가 한 일은 사실 참으로 작은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감동을 느꼈어요. 제가 한 것보다 훨씬 크고 소중한 마음들을 얻었고요. 앞으로도 이 의미 있는 경험을 더 많이 나누고, 또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나눔을 독려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시작은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였지만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커다란 이유를 발견한 것 같아요.”

네팔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돌아온 배우 이정진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로 당신의 사랑을 나눠주세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을 돕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봉사다. 한국인이 창립한 유일한 국제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인 굿네이버스는 네팔, 방글라데시, 말라위, 인도네시아, 케냐, 차드 등 전 세계 28개국의 빈곤 아동과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선물해줄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월 3만원의 후원금이면 아동의 기본적인 의식주 지원은 물론, 보건의료와 교육 등의 서비스를 지원해줄 수 있다. 이정진처럼 1:1 결연을 통해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싶다면 굿네이버스의 문을 두드려보자. 문의 1599-0300, www.gni.kr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제공 / 굿네이버스(작가 김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