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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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잘하는 사람이 곧 가수라는 진리를 일깨워준 MBC-TV ‘나는 가수다’는 BMK라는 존재를 우리에게 새롭게 각인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프로그램이다. 풍부한 성량만큼이나 파워풀한 무대 장악력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그녀는 인터뷰 자리에서도 한마디 한마디 노래하는 철학자와 같았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_ 많이 지쳐 보이세요.
BMK_ 오늘 하루도 너무 길었어요. 짬이 없었네요.

김진세_
최근에 더 바빠지셨죠?
BMK_ 늘 바빴기 때문에 갑자기 더 바빠진 건 아니에요. 대신 요즘에는 저 혼자서 컨트롤할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니까 여가생활을 할 시간이 줄어든 거죠.

김진세_ ‘나는 가수다’ 마지막 경연 마치고 하셨던 말씀이 인상 깊었어요. “최선을 다한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라고 하셨죠?

BMK_ 탈락 얘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서 소감을 밝힌 건데, 어떻게 보면 본능적인 인터뷰였던 거 같아요. 어떤 기분이었는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아쉽다, 슬프다, 좋다, 나쁘다 이런 느낌 없이, ‘내가 7등이고, 내가 탈락자구나’ 라고 그냥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느낌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 얘기가 그렇게 파장이 클 줄 몰랐어요.

김진세_
정말 감동받았어요.
BMK_ 심리학자분들이 트위터에 제 얘기를 올리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희 편곡자가 그 글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면서 ‘정말 멋있었다, 아내는 방송 보고 울었다’라고 하더라고요.

김진세_ 제가 꼽는 ‘나는 가수다’ 최고의 순간은 ‘그대 내게 다시’를 부르셨을 때였어요. 정말로요!
BMK_ 감사합니다. 제 첫 번째 경연 곡이었어요.

김진세_ 최악은 ○○○의 ○○○○이었어요(웃음).
BMK_ 으하하하하하.

음악 애호가 집안, 노래 잘하는 세 딸 중 장녀

김진세_
원래부터 호탕한 성격이세요?
BMK_ 어릴 때부터 워낙 웃음이 많아서 잘 못 참았어요. 게다가 목청이 커서 어디서 뭘 해도 꼭 티가 났어요. 1반에서 웃으면 7반까지 들렸죠(웃음). 수업 중간에 제가 웃었는데, 다른 반에서 수업하던 선생님이 “너, 수업 중간에 웃지 좀 마”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또 자기 색깔이 강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의견도 강하셨다고요?
BMK_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었어요.

김진세_
어렸을 때 별명은 있었어요?
BMK_ 저는 이상하게 특별한 별명이 없었어요. 제가 오히려 개구쟁이처럼 남들 별명도 많이 지어주고 개구지게 놀았던 기억은 나는데, 딱히 친구들이 저한테 지어준 별명은 없었어요. 제가 좀 묘한 캐릭터였던 거 같아요.

김진세_
묘한 캐릭터라니요?
BMK_ 그러니까 선생님은 ‘저 녀석 꿀밤 한 대 때리고 싶네’라고 할 정도로 개구쟁이인데, 아이들한테는 골목대장 같은 아이 있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묘한 캐릭터?(웃음)

김진세_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BMK_ 여동생이 둘 있어요.
김진세_ 어떤 언니였어요?
BMK_ 어릴 때 동생들을 그렇게 잘 놀렸어요. 예를 들면, 산등성이에 보면 풀들이 막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잖아요. 그걸 두고 “낮에는 귀신이 땅속에 있어서 저렇게 머리카락만 나오는 거야”라고 동생들을 겁주곤 했거든요. 그런데 동생들이 자기 친구들한테 그 얘기를 했다가 망신을 당한 거예요(웃음). 정말 동생들 많이 골려먹었어요. 그리고 노래도 잘 시키고요. ‘징글벨’을 부른다고 하면 “너는 ‘징글징글’을 하고, 너는 박수를 쳐”라고 해서 다 같이 아카펠라를 했어요. 그러고 놀았죠. 지금도 그 얘기를 자주 해요.

김진세_
동생들도 노래를 잘해요?
BMK_ 솔직히 말해서 잘하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김진세_ 노래 잘하는 집안이시군요! 동생분들은 음악 쪽은 안 하시고요?
BMK_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막내는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둘째는 뷰티디자인 박사과정에 있어요.

김진세_
서로 다른 파트에서 활약하고 있네요. 부모님께서는 생존해 계신가요?
BMK_ 아니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김진세_ 아, 죄송해요. ‘나는 가수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하시면서 부른 ‘편지’도 들었는데 말이죠. 제가 방송을 보면서 아쉬웠던 게, 사실 초반에 감정이 격해졌는지 노래를 좀 놓치셨거든요.
BMK_ 네.

김진세_ 어머니를 위해 부르는 노래라는 얘기를 미리 하셨더라면, 오히려 청중평가단의 점수가 더 높게 나왔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어요.
BMK_ 그 자리는 관객이나 시청자를 위한 무대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만을 위한 무대이기도 하니까 제가 하고 싶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좋았어요. 성적도 안 좋았고 노래에 대한 완성도도 떨어졌지만 그래도 제 감정을 표현해서 그 노래를 불렀다는 게…. 지금껏 ‘나는 가수다’에서 불렀던 노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을 꼽으라면 ‘편지’를 꼽아요.

김진세_
마흔 살 넘으면서부터는 제가 잘 울어요. 그 노래 들으면서 울었잖아요.
BMK_ (웃음) 시청자들은 ‘가수가 왜 저렇게 감정 조절을 못하고 울지’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노래 부르기 전에 사전 인터뷰를 하면서 이미 너무 많이 운거예요. 녹화 전에 반나절 동안 계속 울었어요.

김진세_ 어머니와 특별한 관계셨나 봐요.
BMK_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셨으니까요(BMK의 어머니는 2년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더 기억에 남고, 아무래도 제가 맏딸이고 하니까 더 끈끈하죠.

김진세_
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BMK_ 뭐랄까, 굉장히 마음이 여린 분이세요. 두 분 다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마음이 여리세요.

음악은 나를 탈선의 길로 인도해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_
어려서부터 노래를 잘 부르셨어요?
BMK_ 네. 노래나 웅변이나 이런 특별활동을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었어요. 덕분에 아버지가 전근 가실 때마다 학교를 자주 옮겼는데도, 친구들과 금방 어울렸어요.
김진세_ 사춘기 시절은 어떻게 보냈어요?
BMK_ 중고등학교 때는 음악에 미쳐 있었어요.

김진세_
어떤 음악에요?
BMK_ 초등학교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하긴 했는데, 사춘기 때는 아예 음악이 저를 지배했어요. 정말 미쳐 있었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정말정말 좋아했어요. 또 부모님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어요. 집에 전축에 LP와 CD가 구비되어 있어서 주말이면 항상 음악을 틀어놓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그걸 좀 과하게 즐겼죠. 중학교 때 한번은 그리그의 음악이 저를 너무 미치게 해서 학교에 안 가기도 했어요(웃음).

김진세_ 학교를 못 갈 정도로요?
BMK_ 제가 또 강원도 속초에서 사춘기를 보냈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영향도 굉장히 컸어요. 푸른 하늘과 바다와 설악산과 바람과 여기에 음악이 곁들여지니까, 탈선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지요(웃음).

김진세_ (웃음)
탈선이요?
BMK_ 음악을 듣느라고 학교를 못 가겠는 거예요. 그런 적이 많았어요.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밖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노는 것도 아니고 음악에 미쳐서 학교를 못 간다는 걸요.

김진세_
부모님도 음악을 많이 좋아하셨어요?
BMK_ 두 분이 워낙 좋아하시고,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성악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제가 그 계보를 이은 거죠. 학창 시절에는 성악실기대회나 콩쿠르 준비도 많이 했어요. 선생님께 아예 음악실 열쇠를 받아서 다른 아이들 보충 수업하는 시간에 저는 따로 노래 연습을 했어요. 그런 환경이 참 풍요로웠죠.

김진세_
어떻게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배려를 받을 수 있었죠?
BMK_ 제가 노래를 좋아하는 반면에 남들 앞에서 하는 걸 즐겨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워낙 목소리가 커서 자연스럽게 소문이 났어요. 학교 행사가 있거나 하면 제가 무대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경연대회에서 상도 받으면서 ‘현정이(BMK의 본명은 김현정이다)는 노래하는 아이’로 굳어진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럼 대학 진학도 성악과로 하셨어요?
BMK_ 그러려고 하다가 전공은 다른 걸 했어요. 유아교육과요.
김진세_ 유아교육과요?
BMK_ (웃음) 사람들 다 웃더라.

김진세_ (웃음)
어울리세요. BMK가 유아교육과 출신이라고 하면 웃길 수 있지만, 노래 잘하는 여학생이 유아교육과에 진학한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BMK_ 당시에는 사정이 있어서 유아교육과를 갔는데, 그때만 해도 다시 성악을 공부하거나 유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었죠. 그런데 인생이 참 신기하게 풀리더라고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선배가 시켜서 처음 가요를 불렀는데, 그걸 본 통기타 동아리 선배가 입단 제의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클래식과 팝만 알다가 그때부터 가요를 부르게 된 거죠.

김진세_
당시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세요?
BMK_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어요.
김진세_ 그 노래 부르는 모습도 보고 싶네요.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어떻게 됐나요?
BMK_ 동아리에서 불우이웃돕기 자선 콘서트를 했는데, 제 노래를 들은 음악 관계자들을 통해서 아르바이트 프러포즈가 왔어요.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던 그 아르바이트가 결국은 지금의 제가 되는 밑거름이 된 거죠. 그런 여러 가지 작은 씨앗들이 지금까지 조금씩 연결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신기하게도.

불의의 교통사고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다
김진세_ 그럼 대학 졸업 후 바로 재즈아카데미에 들어가신 거예요?
BMK_ 아니요. 바로 간 건 아니고요 졸업하고….
김진세_ 유치원 근무?
BMK_ 안 했어요. 병설 유치원 실습만 했어요(웃음). 그 아르바이트가 계기가 되어서 굉장히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20년 전에 유치원 교사의 초봉이 40만원이었다면,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로 6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평생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2, 3년 뒤에 유학을 가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만 교통사고가 났어요.

김진세_ 많이 다치셨어요?
BMK_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부러졌으니까요. 제가 조수석에 타고 있던 승용차와 버스가 정면충돌했거든요. 그 사고의 후유증으로 2년 전에도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했어요. 만약 그때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빨리 가요계로 진출했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 사고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김진세_
어떤 의미에서요?
BMK_ 병원에 누워서 인생을 포기하고 있던 제게 동생이 서울재즈아카데미라는 곳이 생긴다는 신문광고를 봤다며 입학을 권유했어요. 거기서 용기를 얻어서 그때부터 재즈를 시작하게 된 거죠.

김진세_
그게 언제인가요?
BMK_ 1996년이니까 15년 전이네요. 그런데 당시 다른 파트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제가 공부하는 재즈 보컬 파트만 유독 선생님들이 많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제가 아카데미를 다니는 틈틈이 독학을 해야 했는데, 이게 입소문이 나서 1년 뒤 졸업 후에는 제가 그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김진세_
대단한데요!
BMK_ 게다가 운이 좋아서 선생님들과 함께 재즈클럽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정말 신기하게도 제가 계획한 것보다 뭔가가 빨리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버클리로 유학 가서 하고 싶은 재즈 공부 실컷 한 뒤에 돌아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그 꿈이 이뤄진 거잖아요. 늘 이런 식으로 해오다 보니 정말 한 번도 쉰 적이 없어요. 제가 BMK가 되기 전부터 늘 바쁘게 뭔가 몰아치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굉장히 운이 좋았죠.

김진세_
빅 마마 킹의 약자죠? BMK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건 언제부터죠?
BMK_ 그건 2002년부터예요. 리쌍과 김진표씨 앨범에 피처링하면서 BMK라는 이름을 알렸고, 제 1집 앨범부터는 본격적으로 BMK로 나섰죠.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_ 참, 인생이라는 게 자기가 정해놓은 대로 안 가는 거 같아요. 그죠?
BMK_ 그러게요. 얼마 전 제 결혼식장에 초중고 동창들이 많이 왔어요. 몇십 년 만에 본 친구도 있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우리 어릴 때는 다들 이렇게 될지 아무도 몰랐을 거 아니에요? 저조차 제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는데(웃음).

김진세_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BMK_ 저를요? 음, 부모님께서 저를 많이 믿어주셨다고 했잖아요. 그런 영향이 있을 거고, 특히나 제가 개인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분이 외할머니세요. 부모님께서 일을 하셨으니까, 외할머니께서 많이 돌봐주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이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힘인 거 같아요. 1집 앨범에도 외할머니에 대한 가사를 쓰고 노래한 곡이 있어요.

김진세_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면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게 되거든요.
BMK_ 네, 그 어떤 이유나 조건이 없는 그런 사랑이죠. 저의 가장 큰 멘토는 외할머니예요. 여러 가지로 깨우쳐주신 바가 많아서 지금까지도 제게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김진세_
2002년 BMK로 데뷔한 이후 별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BMK_ 아니죠. 저는 사람들이 저에게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편견 중 하나가, ‘BMK는 정말 부족한 거 없고 역경 없이 편안하게 음악을 했을 것 같다’라는 거예요(웃음). 이런 풍요로움의 이미지가 좋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데, 사실 인생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잖아요? 쉽게 가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딨어요. 정말 어렵게 어렵게….

김진세_ 편안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모습인 거예요. 모든 출연 가수가 잔뜩 긴장하는 ‘나는 가수다’에서도 ‘나는 행복해, 정말 잘한 거 같아, 최선을 다했어’ 이런 모습이 보였거든요. 물론 전부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만족하는 부분을 더 크게 보시잖아요? 그러니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다는 느낌이 드니까 ‘아, 저 사람은 걱정이 없구나’라고 보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쁜 거 아니에요.

BMK_ 어떨 때는 그런 얘기를 해요. ‘없어 보이는 거 보다 있어 뵈는 게 낫지. 그래 명품을 들고 짝퉁으로 보이는 거보다, 짝퉁 들고 명품처럼 보이는 게 나은 거야’라고(웃음).
김진세_ 어쩌면 더 많이 갖고 계신데 모르는 것일 수도 있어요.
BMK_ 그런가요?

가장 무서운 건, 행복 불감증

김진세_
그럼 BMK로 살면서 겪은 최고의 슬럼프는 언제였나요?
BMK_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서 힘들다기보다는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제일 힘들어요. 아마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늘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라이브를 하고 나서 목 관리가 안 되거나 제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못할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거나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괜히 자괴감이 들면서 수렁에 빠지는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럼 그 수렁에서 어떻게 탈출하세요?
BMK_ 저는 포커페이스가 죽어도 안 되는 편이라서, ‘나 지금 힘들어, 열 받았어’라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요. 그러니 주위 사람들이 그걸 읽어요. 남자친구도, 아니 이제 남편이지(웃음)! 남편도 그걸 읽고 함께 얘기를 잘하는 편이에요. 남편 만나기 전에는 지인들 불러내서 일부러 큰소리 뻥뻥 치곤 했어요. “덕분에 바닥을 쳤던 자존심이 돌아왔다”라면서요. 여자들끼리 밤새 수다를 떨면서 “이거야말로 정신치료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기도 하고요. ‘나는 가수다’ 하는 동안에도 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김진세_ 무대의 긴장감 때문에요?
BMK_ 녹화 한 번 하고 나면 문자 메시지가 정말 많이 오거든요. 그런데 일일이 답장을 다 할 수가 없었어요. 제 문자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파급력을 생각하니 지인들과의 소통도 어려워지면서 ‘이러다 인간관계 다 끊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답답했죠(웃음).

김진세_ 슬럼프는 주로 표현을 하면서 푸시는군요. 그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BMK_ 한 가지 일이 끝나거나 최선을 다해서 달린 후에는 꼭 여행을 가서 풀어요. 왜냐면 너무 바쁘게 짬 없이 막 달려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중간에 끊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요. 숨도 못 쉬겠고, 제가 잘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김진세_
스킨스쿠버하신다고요?
BMK_ 워낙 물을 좋아해요. 물속에서 중성부력(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으로 있는 게 엄마 배 속에 있는 것 같잖아요. 남편하고 같이 시작했어요. 그렇게 일 끝나면 훌쩍 떠나는 거에 대해 저희 회사 식구들은 이미 익숙해요. 대표님도 때가 되면 “떠날 때 됐지, 안 쉬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라고 하시고요.

김진세_ 일을 계속 하다가 중간에 딱 끊을 수 있는 것도 굉장히 큰 힘이거든요. 대단한 결단이고요.
BMK_ 사실은 가다가 뚝 끊는 게 아니라, 미리 지정해놓고 가는 거죠. 얼마만큼 가서는 쉬겠다고 정하는 과정에서 타협하는 게 오래 걸리지, 일단 정해놓으면 그 지점까지는 전력질주해요. 그럼 쉬고, 또다시 일하는 거죠.

김진세_
우리나라는 참 경쟁이 심하잖아요. 자살률 세계 1위라고도 하고요.
BMK_ 맞아요. 제가 자살방지위원회 홍보대사예요.

김진세_ 아참 그렇지요! 꼭 심한 경쟁만이 자살의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거든요. 왜냐하면 심한 경쟁 끝에 얻는 만족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허무해지거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나는 가수다’ 혹은 최근 유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BMK_ 남에게서 오는 것보다 내 안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했잖아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저는 경쟁이라는 것에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아요. ‘나는 가수다’의 경쟁 구도는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포인트를 두기 때문에 크게 상처받거나 의기소침해지진 않았어요. 다만 저는 경쟁력이 약한 사람이라 다른 경쟁 프로그램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요. ‘저걸 어떻게 견뎌낼까’ 하면서요.

김진세_ BMK씨도 경쟁의 한가운데에 계셨는데, 어떻게 견디셨어요?
BMK_ 저는 경쟁이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김진세_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BMK_ 방송 초기에 가진 인터뷰에서 “예술적인 면에서 따지자면, 피카소가 일등이냐, 모네가 일등이냐 그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 음악에 있어서도 듣는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과 가치 기준이 다른데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누가 더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가, 하는 선호도의 차이이지 그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순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김진세_ 그래도 순위 욕심이 나진 않던가요?
BMK_ 꼭 1등, 2등이 중요한 게 아니지만, 나름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가 7등하고 나니까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기가 죽는 건 아닌가(웃음),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지 등수에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어요. 저처럼 차라리 7등하고 떨어지는 게 맘 편하다고 생각한 출연자도 있을 거예요. 특히나 음악 하는 사람들이 경쟁구도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음악은 자기의 개인적인 표현인데 그걸 남과 비교한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걸 경쟁이라고 느끼는 순간, 본질이 흔들리겠죠.

김진세_
그래요. BMK씨에게 행복이란 뭔가요?
BMK_ 행복이란, 느끼는 것이다! 좋아도 좋은 줄 모르고 기뻐도 기쁜 줄 모르는 불감증이 가장 무서운 거 같아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느끼면 그게 행복인 거고,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정말 기쁘다, 슬프다, 아름답다’ 느끼는 것 자체가 행복이니까요.

아내보다 조금 더 섬세한 헬기 조종사 남편
김진세_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려요. 그런데 그 멋진 남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BMK_ 2008년에 갤러리에서 처음 만났는데… 내가 꼬드겼나?(웃음) 작품 설명을 하던 제 지인께서 “뒤에 서 있는 남자분에게 영어로 설명을 좀 해주세요”라고 하기에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게 굉장히 쇼킹했었나 봐요. 맨 뒤에 서 있는 자신을 배려했다는 데 감동해서 그야말로 저한테 꽂힌 거죠(웃음). 계속 집요하게 전화번호를 물어서 알려줬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김진세_ 어떤 분이세요?
BMK_ 섬세한 사람이에요. 군인이라는 직업이 굉장히 거칠 줄 알았는데, 헬리콥터 조종은 게이지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더라고요. 그 섬세함에 제가 오히려 위안을 받을 때가 많아요.

김진세_
겉으로 보이는 강인함에 빠지신 거예요, 내면의 섬세함에 빠지신 거예요?
BMK_ 저는 내면에 빠진 거죠. 강인함은… 제가 원래 익숙하게 좋아하는 터라(웃음). 남자다운 모습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니까 그냥 좋다는 느낌인데, 저는 그 사람을 더 알게 되면서 정직함, 솔직함 이런 면에 많이 끌렸어요.
김진세_ 조금 보수적이고 고루한 질문이긴 한데, 국제결혼에 대한 어른들의 반대는 없으셨어요?
BMK_ 국제결혼이라 그렇다기보다는 저에 대한 기대치가 더 크셨던 거 같아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더 크게 발전하고 멀리 뛰기를 바랐던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아, 제 외할머니가 한 번 예언하신 적이 있어요(웃음).

김진세_
예언이요?
BMK_ 외할머니께서 “나는 흑인이어도 좋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나는 오케이”라는 얘기를 한 20년 전쯤 하셨던 거 같아요.

김진세_
제가 봤을 때 BMK씨는 무대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는 사람인 것처럼 결혼에 있어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신 거 같아요. 그래서 ‘이 사람 정말 괜찮다’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BMK_
그럼요. 당연한 거죠. 평생의 반려자를 맞는 건데 당연히 사랑이 첫 번째죠. 그 다음이 믿음이고요. 저는 경쟁에 욕심을 내거나 특별히 고집을 피워본 적이 없어요. 지금 소속사와도 10년 이상 일할 수 있는 것은, 저의 어떤 행동이 괴짜스럽거나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말이 안 되거나 이유 없는 고집을 피운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타당한 거라고 이해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릴 때도 제가 뭔가를 하고자 하면 “아, 이건 현정이가 정말 원하는 거구나” 하고 인정해주셨어요. 이를테면 재즈 공부를 선택할 때도 어머니가 “너 앞으로 재즈 공부해서 뭐 할래?”라고 질문하지 않으셨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_ 왜 그렇게 사람들이 믿어줄까요?
BMK_ 진짜니까요. 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이가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한 것뿐입니다”라고 하잖아요(웃음). 진정성인 거예요. 다른 이유가 없는 거죠. 음악도 그랬고, 또 결혼에 있어서도 진정성이 느껴지니까 외할머니께서도 저를 믿어주셨어요.

김진세_ 사실 방송에는 편집이라는 게 있어서 부정적인 장면은 잘라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나는 가수다’ 하실 때는 내내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걸로 좋아. 오케이’라는 마음이 들던가요?
BMK_ 저는 ‘나는 가수다’ 무대뿐만이 아니라 늘 그래요. 그 프로그램이라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에요. 이 무대만을 위해 달려온 것처럼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요. 그래서 오늘도 낮 공연하고 나서 제 목이 간 거고요(웃음). 때로 아쉬운 때는 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저는 TV에서 보이는 그대로예요.

김진세_ 보통 사람들을 성취지향주의자와 만족지향주의자로 나누거든요. 성취지향주의자는 항상 불만족스러워해요. 결국에는 성취를 못하고 끝나죠.
BMK_ 무슨 말씀인 줄 알겠어요. 오늘의 포인트네요!

김진세_ BMK씨는 만족을 하고, 또 스스로 행복을 느끼시니까 금상첨화죠. 두 유형이 적당히 섞이면 좋은데, 요즘 사람들은 너무 성취지향에 시달리면서 살죠.
BMK_ 그게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어려서 받은 교육 덕을 봤어요. 어릴 때 누구도 저에게 “너는 왜 이렇게 다르니?”라고 윽박지른 분이 없었어요. 전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컸거든요. 어릴 때부터 비만했고, 늘 목소리도 컸죠. 어떻게 보면 남들이 쉽게 얘기하는 ‘다른 사람’ 중 하나였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는 남들이 입는 일반적인 사이즈의 옷을 입은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예요(웃음).

김진세_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셨어요?
BMK_ 특별하게 그런 욕심이 없었어요(웃음).
김진세_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힘들진 않았어요?
BMK_ 그게 제 성격이었던 거 같아요. ‘아니 이게 뭐가 문제야? 이게 왜?(웃음)’라고 생각했죠. 우스갯소리로 ‘옷이 안 맞으면 옷에다 몸을 맞추라’고 하던데 저는 ‘나한테 맞는 옷을 찾아 입으면 된다’라고 여겼거든요. 그건 부모님 덕분인 거 같아요. 저를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인정해주셨거든요. 덕분에 ‘다른 게 뭐가 잘못된 건데?’라는 자의식이 생긴 거 같아요.

김진세_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신랑은 좀 짜증나겠어요. 결혼해놓고 신부가 바빠서 신혼여행도 못 가고, 집에도 늦게 들어오니까요(웃음).
BMK_ (웃음) 저보다 직업의식이 더 강해요. 제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사람이에요. 저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사람은 더 큰 가치로 보는 때가 있어요. ‘나는 가수다’만 해도 저는 7등 한 게 괜찮은데, 남편이 더 힘들어하고 응원하고 그랬어요. 저의 가장 큰 서포터죠. 가장 큰 팬이고요.

김진세_ 새신부니까 드리는 질문인데, 2세 계획은 어떻게?
BMK_ 남편이 정말 원하고 있는데 그게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 둘 다 나이가 있으니까, 일단 건강을 되찾은 다음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요.
김진세_ 식사는 잘 해주세요?

BMK_ 저 원래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요리 솜씨로 남편을 꼬드겼다고 할 정도로요. 남편이 또 한국 음식을 참 좋아해요.
김진세_ 아내가 요리를 잘하면 부부 금슬이 좋다고 하잖아요.
BMK_ 아, 그래요?
김진세_ 남자들은 사랑을 먹는 걸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대요. ‘사랑은 위장을 통과한다’라는 독일 속담도 있잖아요.
BMK_ 아, 그래요? 써먹어야겠다(웃음).
김진세_ 그럼 오늘은 이만 새신부를 댁으로 보내드려야겠네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BMK, 진심을 노래하는 행복한 가수

‘우린 재미있지만, 그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소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필자의 생각이다. 살아남기 위해,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콘서트 1회 치른 것처럼 힘이 든다고 한다. 팽팽한 긴장감을 이길 수 없어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이 가사를 까먹기도 한다. 살아남은 자는 안도의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탈락은 치명적인 결과를 남길 수도 있다. 프로에게 자존심의 손상은 엄청난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이상, 이미 그들은 가수가 아니다. 경쟁자일 뿐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가수가 있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행복해”, “와우! 멋졌지! 최고의 무대야!” 자신의 무대가 끝나고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며 자신의 실수에 대한 후회와 탈락의 걱정으로 어두운 표정을 보이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랐다. 소울 국모, 독한 보컬 트레이너,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라고 불리는 BMK는 늘 자신의 무대에 찬사를 보낸다. 그냥 잘난 척하거나, 짐짓 행복해 보이려고 하는 가식이 아니다. 누가 보아도 최선을 다한 무대였고, 또 진심에서 우러나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 공감할 것이다. 어떻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그녀는 행복할 수 있을까? 지나친 경쟁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그녀의 긍정의 힘은 정말 소중한 ‘해피필’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 전에 솔직히 걱정을 했다. TV에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BMK는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우선 그녀는 ‘진정성’이 있었다. 자신의 일을 정말 좋아하고 즐겼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틀림없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고, 그녀를 따른다고 했다. 진정성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신뢰를 쌓는다. 아마도 진정성은 외할머니와 부모님의 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부모의 사랑과 지지는 삶의 가장 큰 보호막임을 또다시 실감했다.

그녀는 다름을 인정한다. 어느 음악감독의 인터뷰 기사로 불거졌던 그녀의 외모에 대한 썩 유쾌하지 않은 뒷이야기들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절대 미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바꾸려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남과 다른 엄청난 성량을 가지고 태어났듯이, 그냥 남과 다른 외모를 갖고 있을 뿐이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남과 비교하거나 눈치를 보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일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는 과정을 사랑한다. 최선을 다해 일할 때 행복한 사람이다. 또 일을 끝내고 달콤한 휴식도 즐길 줄 안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했다. 오로지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생각으로 여행길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과 음식과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면 진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 없듯이,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없다. 경합이든, 음반 작업이든, 사랑이든,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그녀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을 무기로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과정을 즐기는 그녀는 우리의 바람대로 경합의 자리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탈락한 후에 더욱 밝은 빛으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경쟁에 찌들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행복의 묘약’과도 같은 이 한마디를 기억하는가.
“최선을 다한 내게 박수를 보냅니다!”

긍정의 힘을 더하는 선물_BMK 콘서트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와! 대박!’ 이럴 때 쓰는 말 맞지요? 지난달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의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선물에 이어, 이번에는 오는 9월 17일, 18일 양일간 열리는 BMK의 콘서트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긍정의 힘을 보태는 선물’이, 이제는 긍정의 감동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꼭 봐야 할 문화 경연장이 된 듯하네요. 음악을 비롯한 모든 공연에서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하는 것과 TV를 통해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BMK가 노래를 부를 때, 그 엄청난 성량에 놀라 “누가 TV 볼륨 이렇게 높였어!”라는 사람도 있다는데요, 그 전율을 직접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더불어 그녀의 성량만큼이나 고강도의 긍정 에너지도 피부로 체감하시길 바랍니다. 생각만 해도 흥얼거리게 되는데요. “다시 돌아올까, 네가 내 곁으로 올까… 다시 꽃피는 봄이 오면~”

*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BMK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5분을 선정해 ‘BMK 콘서트’ 2인 초대권을 드립니다. 자세한 공연 일정은 개별 통보합니다.

◆ BMK는…
1973년생. 빅 마마 킹(Big Mama King)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음량과 성량으로 ‘소울 국모’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2002년 김진표의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 리쌍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피처링으로 이름을 알린 뒤 ‘꽃피는 봄이 오면’, ‘하루살이’ 등의 히트곡을 냈다. 녹음 시간이 짧은 가수로 정평이 난 그녀는 ‘무서운’ 보컬트레이너로 잘 알려졌다. SG 워너비, ‘빅마마 소울’의 박민혜, 이정, 버블 시스터즈 등이 그녀의 제자.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김천대 실용음악학과 겸임교수이자 BMK 소울트레인 보컬아카데미 대표로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6월 24일 3년간 교제한 미군 블랙호크 조종사 출신 맥시 래리 디렐씨와 결혼해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꽉 찬 여자, BMK 진심을 노래하다

◆ 김진세 박사는…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으며, ‘행복연구소 소감’을 통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Love Myself’를 연재하고 있다.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티튜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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