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 오후, 녹음으로 둘러싸인 경복궁에서 SBS-TV 새 수목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촬영에 한창인 장혁(35)을 만났다. 땡볕 아래 사극 복장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며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불꽃 카리스마로 사극 재도전! 속까지 뜨거운 남자, 장혁
“원작 소설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어요. 시놉시스를 봤는데 입체적으로 각색된 캐릭터가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죠. 그동안 제게 한글날은 그저 국경일일 뿐이었는데 이번 드라마를 통해 한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연기하면서도 기분이 좀 남달라요.”
장혁은 ‘뿌리 깊은 나무’에서 노비 출신의 겸사복 관원 강채윤 역을 맡았다. 세종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뒤 세종을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궁에 들어가 노비에서 관원으로 입신양명하는 인물이다. 슬픔을 간직한 차가운 카리스마, 복수심에 불타는 강렬한 눈빛 연기 등 어둡고 거친 내면을 지닌 채윤의 모습은 지난해 장혁이 ‘추노’에서 열연했던 ‘대길이’ 캐릭터와 거의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장혁은 “대길이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남아 있어 극 초반에는 채윤의 캐릭터를 대길이와 비슷하게 볼 수도 있지만 드라마의 에피소드대로 흘러가다 보면 채윤만의 깊이와 색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길이는 희망도 없고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채윤은 아버지의 원수인 세종을 죽이고 말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어요. 궁에서의 하루하루가 무섭고 두렵지만 암살을 성공시켜야 하는 개인적인 의무 때문에 대길이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죠. 그 부분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평균 시청률 30%를 웃돌았던 ‘추노’의 뜨거운 인기로 연기대상까지 거머쥐었던 그에게 또 한 번의 사극 도전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한 방송사 PD는 “장혁은 사극에 출연할 때 가장 빛이 나는 배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청률 부분에서 항상 어느 정도 부담이 돼요. 하지만 제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시청자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감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독창적인 연기를 완벽하게 잘 소화해내는 일뿐인 것 같아요.”
장혁의 열정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추노’부터 ‘마이더스’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오며 제법 지쳤을 법도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기대와 애정 때문에 여름휴가까지 반납하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지난 7월에는 드라마 속 주요 소재인 한글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자 한글박물관 관련 행사에까지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연기 그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며 온전히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장혁이야말로 천생 타고난 배우임에 틀림없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