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춤 선생님? 이제 ‘박지우 누나’라고 불려요”

‘춤추는 남매’ 박지은&박지우의 ‘Shall We Dance~’
“방송 끝나고 홀가분했어요. 제시카와도 서로 수고했다고 다독여줬고요. 처음 출연할 때부터 우승보다는 좋은 춤과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이 목적이었거든요. 저 역시 즐기면서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어요.”
방송을 하는 동안 살이 6kg이나 빠졌다. 파트너였던 제시카 고메즈와의 핑크빛 무드에 대해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런 일은 전~혀 없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안무 총감독으로 현장에서 동생의 마지막 무대를 지켜봤을 박지은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슬쩍 동생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이내 “못 봤다”라고 고백했다.
“생방송 전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보니 최종 드라이 리허설이 끝나면 진이 다 빠져요. 특히나 그날은 다른 때보다 힘들어서 카메라 리허설 끝나고 집에 왔어요. 집에 와서 TV를 틀었는데 지우 무대는 벌써 끝났더라고요. 나중에 재방송으로 봤어요. 저는 많이 아쉬웠는데 정작 지우는 홀가분해 하더라고요.”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국과 미국에서 크게 히트한 댄싱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한국 버전으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의 특집 방송이나 몇몇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을 탄 적은 있지만 댄스스포츠라는 종목 자체로 정규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댄스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외국에서는 댄스스포츠가 워낙 인기가 많고 대중화되어 있거든요. 제작진들로부터 안무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어요.”
2007년 MBC-TV ‘무한도전’ 댄스스포츠 특집에서 멤버들의 댄스 선생님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그녀는 그 이후 댄스스포츠를 소재로 한 여러 방송을 통해 실력 발휘를 해왔다. 20년 넘게 댄스스포츠 선수로 활동하며 국내 댄스스포츠 저변 확대에 힘써온 베테랑으로 댄스스포츠 무대를 구성하고 기획하는 데 있어 그녀만 한 사람이 없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 섭외와 안무를 비롯해 무대 컨셉트와 음악, 의상 하나하나까지 그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댄스 무대가 워낙 화려하잖아요. 그만큼 뒤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요. 생방송이라는 게 정말 피 말리는 작업이더라고요. 힘든 점도 많았지만 대중에게 댄스스포츠를 알리는 데에는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그것만으로도 전 만족해요.”

‘춤추는 남매’ 박지은&박지우의 ‘Shall We Dance~’
댄스스포츠는 국내에서 많은 설움과 부침을 겪었다. 댄스스포츠가 처음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1980년대, 무도장인 ‘카바레’는 불륜의 온상으로 여겨졌고 일명 ‘사모님’들과 ‘제비족’들은 풍기문란으로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다. 우리나라에 처음 사교댄스를 들여온 댄스스포츠 원로들이 음지에 있던 댄스스포츠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면 2세들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오기 시작했다. 박지은·박지우 남매는 그 선봉에서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2004년 동양 선수로는 처음으로 모든 댄스스포츠인들의 꿈의 무대인 ‘블랙 풀’ 12강에 올랐고 파트너로 함께 출전한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 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댄스스포츠 사상 국제종합대회 첫 금메달이었다. 그 외에 이제까지 국내외 대회에서 거둔 성적과 메달 수는 일일이 열거하기에 입이 아플 정도다.
우리나라 댄스스포츠 1세대였던 아버지(박효, 서울시 댄스스포츠 경기연맹 회장)와 어머니(김숙희, 서울시 댄스스포츠 경기연맹 부회장)의 피를 이어받은 남매는 배 속에서부터 ‘스텝’을 밟았다. 춤을 추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 익숙한 두 사람에게 춤을 추게 된 계기를 묻는 건 의미가 없었다.
“여섯 살 때부터 아빠 손을 잡고 춤을 춘 기억이 나요.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댄스스포츠를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대학교에 댄스스포츠 전공이 없거든요. 둘 다 무용을 전공하면서 춤을 췄어요. 외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커플로 춤을 많이 추는데 저희는 댄스스포츠를 하는 또래가 거의 없었어요. 제가 중3, 지우가 중1 때부터 파트너로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최연소 선수였죠.”
아버지뻘 되는 대선배들과는 갭이 있었고 함께 경쟁하며 성장할 또래 선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선수가 없다는 건 댄스스포츠에 대한 편견에 함께 맞서줄 동료가 없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던 시절이다 보니 가까운 일본에 대회를 하러 가도 학교에서는 무슨 일본까지 가서 댄스스포츠를 하느냐는 반응이었어요. 지금은 대학 교양과목 중에서도 제일 먼저 수강 인원이 마감되는 과목인데, 그런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껴요.”

‘춤추는 남매’ 박지은&박지우의 ‘Shall We Dance~’
이러한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고 두 사람은 댄스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묵묵히 지켜나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지은은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고 박지우 역시 타고난 재능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랬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서울예고 무용과 3학년 시절 대학 입시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다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것이다.
“난생처음 앰뷸런스에 실려 갔어요. 그 뒤로 1년 동안 춤을 추지 못하고 재활훈련을 해야 했죠. 지금도 발목에 철심이 박혀 있어요.”
댄서에게 발목은 생명 같은 것이다. 춤을 시작한 이후 닥친 가장 큰 시련에 힘겨운 날들을 보냈지만 부상이 춤을 향한 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죽기 살기로 재활치료에 매달린 결과 다시 플로어에 설 수 있게 됐고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1학년을 마치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춤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더 넓은 세계무대를 경험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공항 픽업 아르바이트도 하고 담배도 팔아봤어요. 커피숍 아르바이트는 기본이었죠.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파트너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당시만 해도 동양인 선수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서양 선수들이 파트너로 동양인을 선호하지 않았거든요. 그때 파트너 없이 지낸 2년은 제 댄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예요.”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그는 제시카 고메즈의 파트너로서 통역까지 도맡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은 힘든 유학 시절 갈고 닦은 것이다. 파트너에 의해 댄서의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댄스스포츠에서 파트너는 중요한 존재다. 오죽하면 배우자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할까. 사실 그가 영국으로 간 이유 중에는 실력이 맞는 외국인 파트너를 구할 목적도 있었다. 때문에 파트너 문제는 생활고나 인종차별보다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결국에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성공적으로 유학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라니 당시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했던 건 댄스스포츠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해와 마주쳤을 때다. 댄스스포츠를 업으로 삼은 뒤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댄스스포츠가 직업이라고 하면 백댄서냐,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냐 등등 질문이 한결같았어요. 그런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더 많은 사람에게 댄스스포츠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어요. 지금은 댄스스포츠가 전보다 대중화되고 편견도 많이 사라진 걸 느껴요.”
방송에 출연하게 된 이유도 댄스스포츠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나는 가수다’에서 옥주현의 댄스 파트너로 출연해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댄스스포츠가 알려진 뒤 댄스 스튜디오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부부가 함께 춤을 추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쉬쉬해왔는데 이번 프로그램이 방송되면서 주위에 당당하게 이야기하게 됐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박지은은 ‘사람들이 댄스스포츠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을 때’를 본인의 댄스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을 정도로 댄스스포츠를 알리는 일에 뜻이 깊다. 댄스스포츠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을 묻자 입이라도 맞춘 듯 두 사람에게서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이잖아요. 댄스도 많은 볼거리와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댄스스포츠계에서도 김연아 선수처럼 스타성 있는 멋진 선수가 많이 배출됐으면 해요. 실력을 가진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해 우리나라의 댄스스포츠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3개월 동안의 ‘외도’를 마치고 본업으로 돌아온 박지우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 선수 생활을 접고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박지은 역시 댄스스포츠를 알리기 위한 도전을 계속할 계획이다. 댄스스포츠를 향한 순수한 열정과 애정, 두 사람의 춤이 더욱 빛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안진형(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