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같은 어머니와 조금 무뚝뚝한 아들. 두 사람은 웃는 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다시 미소 짓고 서로를 바라볼 때면 눈빛만으로도 모든 사랑이 전해지는 듯하다. 하지만 지난 가을과 겨울,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참 많이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갑작스레 떠나보내야 했던 슬픔은 유난히도 시리고 혹독했다. 그 후 1년, 모자(母子)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탤런트 서재경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어머니 손해선씨가 본지에 처음으로 털어놓은 서희승씨의 의료소송 내막과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군대와 대학에서 보낸 3년 반의 공백기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밝히기 위해 의료소송 중인 서재경
“군대에 다녀왔어요. 2009년 9월에 제대했죠. 작품에서 비쳐졌던 이미지와 달리 제가 실제로는 좀 내성적이에요. 함께 작품에 출연한 선후배, 동료들과도 꾸준히 활발하게 교류하는 편이 아니고요. 좀 무뚝뚝한 성격이거든요. 그런데 군에 다녀온 뒤로 바뀌었어요.”
아역 배우로 데뷔해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경험한 그는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먼저 터득했다. 인간적인 관계가 단순히 일적으로 연결되는 가식적인 관계로 변질되는 데 상처받는 것이 싫어 어느 순간부터는 탄탄한 방어막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군 생활은 서재경의 그런 마음을 다시 열어놨다.
“싸이 형과 연예 병사로 활동했는데 형이 저를 많이 변화시켰어요. 당시 함께 지냈던 공유, 이켠, 여현수씨도 마찬가지지만 연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느 울타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가수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성향이 훨씬 밝고 활기차잖아요. 토니 형도 우울증이 있었는데 군에서 저와 싸이 형 덕분에 거의 다 치유됐어요. 저희들끼리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면서 종종 만나요. 연기할 때 알았던 사람들보다 군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내요.”
제대 후에는 대학교에 복학해 공부에 매진했다. 뒤늦게 학업에 눈을 뜬 그는 수강 과목마다 A+를 받았고, 평점 4.37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 결과 지난 2월, 10년 만에 학사모를 썼다.
아홉 살에 데뷔, 부모 재능 빼닮은 타고난 연기꾼
어릴 적부터 서재경은 배우로 활동하던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어머니 손해선씨(58)는 25년째 시립뮤지컬단 단원으로, 아버지 서희승씨는 40년간 국립극단 수석배우로 지내며 다수의 연극, 영화, 뮤지컬에 출연했다. 그런 부부에게서 태어나 외아들로 자란 서재경에게 연기자의 피가 흐르는 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가 소속되어 있던 극단에서 새로 무대에 올릴 뮤지컬에 출연할 아역 배우들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단장님께서 재경이는 어떻겠냐고 하시기에 좋다고 했죠. 그래서 연기를 시켜봤는데 정말 잘하는 거예요. 연기라는 것을 처음 해봤을 텐데 말이죠. 함께 출연했던 여러 아이들 중에서 재경이가 단연 눈에 띄었어요.”
당시 아홉 살이었던 서재경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통해 연기자로서 신고식을 치렀고, 주위의 추천으로 연기학원까지 다니게 됐다. 급기야 학원에 나간 지 이틀 만에 MBC-TV 인기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거머쥐고, 곧이어 KBS-1TV 6·25 특집극이었던 ‘침묵의 땅’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재경이가 부모가 힘을 써줘서 그렇게 된 줄 아는데 절대 아니에요. 누가 봐도 연기를 정말 잘했어요. 어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연기를 다 해내더라고요. 하지만 남편은 재경이가 배우가 되는 것을 결사반대했어요. 심지어 얘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국어책과 대본을 앞에 놓고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재경이는 대본을 골랐죠. 어쩌겠어요. 아들이 하고 싶다는데 지켜보며 응원해줄 수밖에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밝히기 위해 의료소송 중인 서재경
“저는 재경이가 워낙 잘나가니까 곧 돈방석에 앉게 될 줄 알았어요(웃음). 남편이랑 둘이서 ‘아들 덕분에 이제 우리 팔자 펴겠다’라고 했었죠. 그런데 사회라는 곳이 참 만만치 않더라고요. 재경이가 대학에 입학한 뒤로는 찾아주는 작품이 별로 없고, 전속 계약을 맺으려는 소속사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아차’ 싶었죠.”
그러나 서재경은 연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기에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드라마 ‘종이학’, ‘레인보우 로망스’, ‘하늘만큼 땅만큼’과 영화 ‘와일드카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에 꾸준히 출연하며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엄마는 제가 실력파 조연으로 평생 길게 갔으면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비록 천천히 느리게 시작하더라도 때를 기다리면서 조연보다는 조금 더 큰 역할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그동안 쌓아온 경력도 있고, 부모님이 못다 이룬 꿈을 제가 반드시 이루고 싶기도 하고요. 아직 제게 시간은 많다고 봐요. 지금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칼을 갈고 있고요(웃음).”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의료소송으로 싸우는 중
부모와 자식이 한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한다면 얼마나 멋진 장면이 될까. 하지만 서재경은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9월, 아버지 서희승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4년 전 직장암 초기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완쾌 판정을 받았던 서씨는 3년 만에 암이 재발하며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 역시 수술 결과가 좋았고, 추가적인 전이의 위험도 발견되지 않아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퇴원 후 두 달 만에 남편은 뮤지컬, 연극,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했어요. 본인의 몸이 괜찮아지니까 연기를 다시 한 거죠. 그래도 저는 불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여보, 우리 1년만 휴직하자.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 일단은 좀 쉬자. 조용한 시골에 가서 요양이라도 하고 오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배우는 죽더라도 무대에서 죽어야 행복한 거야’라고 웃으면서 말하더라고요. 남편은 일에 대한 의리가 있고 오직 예술을 따라가는 사람이었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며 몸 상태를 체크했지만 매번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그러다가 2010년 초, 해외 공연을 다녀온 서씨는 평소처럼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또다시 암이 재발됐다는 진단을 받았고 급히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에 비해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처럼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결국 서씨는 퇴원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극심한 두통과 잦은 고열에 시달렸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응급실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하고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혈압이 너무 떨어지고 있다면서 혈압상승제를 투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수습 간호사가 실수로 혈압상승제를 과다하게 쏟아 붓는 바람에 남편에게 쇼크 증상이 찾아왔어요. 그 후 두 달 조금 넘게 병상에서 버티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고요. 엄연히 의료사고죠.”
말을 잇던 손씨의 눈에서 금세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1년 전 그렇게 남편을 떠나보낸 것이 여전히 무척 서러워 보였다. 연신 휴지로 눈물을 닦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억울해요. 설령 그렇게 눈을 감아야 했다고 하더라도 제 옆에서 아프다는 말 한마디도, ‘재경아 잘 있어’, ‘여보 잘 있어’ 등의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76일 동안 중환자실에 누워만 있다가 세상을 떠났거든요. 이 아쉬움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어요.”
남편을 떠나보낸 뒤, 손씨는 6개월 내내 눈만 뜨면 영정사진을 품에 안고 울었다. 다른 유품은 모두 정리해도 영정사진만은 도저히 태울 수가 없었다.
현재 서재경은 아버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데 대해 병원 측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1차 공판까지 마쳤지만 병원 측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하다.
“병원 측도 잘못을 인정했어요. 최선을 다해 남편의 장례를 치러주고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딴소리예요. 첫 공판 당시 저는 판사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의료소송은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도 돈을 벌고, 아들도 돈을 버니 돈이 필요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라고요. 남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저는 어떻게든 꼭 이 소송에서 이겨야 해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밝히기 위해 의료소송 중인 서재경
어머니 인생의 전환점 되어준 ‘청춘합창단’
비록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서재경과 손씨는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서재경은 오는 9월부터 서울 삼성동에 있는 백제예술대학교 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비록 강사이기는 하지만 이른 나이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 벌써부터 감회가 남다르다. 손씨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 그녀는 지난 1월부터 동대문 의류도매상에서 밤을 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남편 앞으로 나오는 연금은 한 달에 100여 만원 정도고, 통장은 점점 바닥을 보이더라고요. 더이상 넋 놓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몸과 마음도 추스를 겸 동대문 청평화시장 1층에서 밤 12시부터 오전 7시까지 옷을 팔아요. 중간에 쪽잠 자면서 겨우 눈을 붙이죠.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최소한 1년 이상은 열심히 해보려고요. 오늘도 아침에 두 시간 잠깐 자고 일어나서 인터뷰하러 나온 거예요(웃음).”
그러던 차에 서재경은 KBS-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에서 50세 이상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청춘합창단’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손씨의 이름으로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어머니가 다시 예전처럼 밝은 웃음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 결과 손씨는 1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보며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당장 수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용돈을 드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요. 그러다가 ‘청춘합창단’ 소식을 듣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어머니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닌 솔리스트는 아니지만, 20여 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노래하며 연기해왔기에 앙상블에는 최고세요. 합창단 단원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확신했어요.”
‘청춘합창단’ 촬영에 임하며 노래 연습에 한창인 손씨는 오는 9월 24일 열리는 ‘KBS 전국민 합창대회’에 참가한다. 연극, 뮤지컬 무대가 아닌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난생처음으로 출연하며 스포트라이트를 톡톡히 받고 있는데다가 주위에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한다.
“새벽에 동대문시장을 방문하는 소매상인들이 저를 보고 놀라요. 반갑게 인사해주면서 ‘아줌마 스타 되셨던데요’라고 하기도 하고요. 요즘 이런 재미로 살아요(웃음).”
서재경과 어머니 손해선씨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 하지만 떠난 이의 빈자리를 보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그리움이 가슴 한구석을 쿡쿡 찌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소송은 앞으로 더욱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도 그들은 용기 내어 세상 앞에 보란 듯이 섰다. 진실은 결국 통하고, 희망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 / 원상희 ■장소 협찬 / 어반가든(02-777-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