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부모가 소은씨 같은 딸을 키우고 싶어 할 거예요”라며 인터뷰 제안을 하자, 그녀는 “아마 안 그럴걸요”라며 까르르 웃었다. 이소은 같은 딸이란, 가수 활동을 하면서 명문대 영문과 졸업에 이어 미국 최고의 로스쿨에 척척 합격하는 그런 딸만은 아닐 것이다. 부드러운 과육 속에 들어앉은 작고 단단한 씨앗처럼, 빛나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녀가 가진 힘을 주목했다. (편집자 주)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http://img.khan.co.kr/lady/201109/20110906145413_1_leeseun1.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
이소은_ 네, 아직 1년 남았어요. 잠시 방학을 틈타서 쉬러 왔는데, 이것저것 일이 잡혀서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웃음).
김진세_ 한국에서는 ‘나는 가수다’가 화제인데, 혹시 봤어요?
이소은_ 미국에 있는 동안 가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하나도 안 봤어요. ‘나는 가수다’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얘기는 들었는데 저 스스로 좀 피하는 것도 있어요. 제가 많이 감성적이라, 무대가 그리워질 거 같았고 또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그쪽에 신경을 뺏길까봐서요.
김진세_ 최근에는 로펌 근무를 했다는 보도가 많더라고요.
이소은_ 로펌 근무는 11주간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나름 사회생활을 했지만, 출근이라는 걸 해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어요. 한번은 사무실에서 제가 소송 문서를 작성하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노래가 나오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살면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김진세_ 어떤 느낌이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이소은_ 제가 대학에 진학할 때 실용음악과나 연극영화과가 아니라 영문과에 간 건, 가수 생활과 일반 생활을 완전히 분리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평범한 대학생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도 가끔은 제 위치에 대한 혼란이 왔어요. 특히 20대 초반에요. 무대에서는 가수였다가, 뮤지컬에서는 배우로, 학교에서는 대학생으로, 집에서는 막내딸로…. 그런 역할들이 좋으면서도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이걸 정의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 모든 게 나니까요. 어떻게 보면 로스쿨에 진학한 게 저한테는 여러 면에서 굉장히 도움이 된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러게요. 로스쿨은 어떻게 가게 됐어요?
이소은_ 가수 활동하면서 홍보대사나 모금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어요. 대학 진학 이후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리에서 사회 여러 분야의 어른들과 함께할 기회가 많아지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늘어나면서 저도 홍보대사가 아닌 대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진세_ 대사요?
이소은_ 단순히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홍보대사로서의 영향력이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제도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진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특히 ‘사랑의 리퀘스트’같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는 아는 게 정말 없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제 속에 다른 걸 채우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로스쿨 진학을 계획했어요.
법조문 세 페이지 읽는 데 세 시간 걸리기도
김진세_ 소은씨를 보면 작곡도 하고, 글도 쓰고 소위 말하는 우뇌 중심의 감성적인 두뇌를 갖고 있는데, 법 공부를 하는 게 힘들지는 않아요?
이소은_ 힘든 점 무척 많았어요. 처음에는 이해도 안 됐고요. 로스쿨에 입학하고 나서 첫 주 수업 중 형법이 있었어요. 미국은 아무래도 판례 중심이다 보니 케이스를 놓고 공부하거든요. 그런데 사람의 목숨을 경제적인 가치로 판단하는 학우들을 보면서 무척 분개했었어요.
김진세_ 어떤 사건이었는데요?
이소은_ 1600년대 영국의 케이스인데, 부자 여러 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인 한 명을 사형시키느냐 하는 문제였죠. 저는 ‘아무리 그 나라의 법이 그러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법은 있지 않느냐. 누구의 목숨이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저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노스웨스턴 로스쿨은 학부만 마치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각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거나 전문적인 경험을 쌓고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들은 나름의 지식을 인용해가면서 무척이나 유창한 영어로 논리적으로 자기주장을 펴는데, 저는 순간 꽉 막혔어요. 직감적으로는 분명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은데, 내 의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쇼크를 받고(웃음) 아, 내가 앞으로 여기서 3년 동안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나네요.
김진세_ 하긴 우리도 법조문을 보면 잘 모르잖아요.
이소은_ (웃음) 미국 사람들도 ‘리걸 니즈(Legal Needs)’라고 표현할 정도로 법적인 용어는 ‘새로운 언어’라고 말해요. 평소 대화나 발음에서는 문제가 없는데도 초반에는 법조문 세 페이지 읽는 데 세 시간이 걸리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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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
이소은_ 일단 과 시험을 봐야 하고요. 그 다음이 고민이에요. 2학년 때 로펌이나 공공기관 쪽에서 실습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제안받으면 졸업 후 취업하는 게 보통의 수순이거든요.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로펌으로 나가는 것이 굉장히 힘든데, 저는 운 좋게 이번에 로펌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8월 말이면 제 진로도 결정이 날 거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요. 로펌에서의 경험이 되게 좋았거든요. 그 쪽도 많이 좋아했고요. 하지만 제안이 오면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를 확실하게 결정하진 못했어요. 로스쿨 재학생의 95%는 로펌에 가길 원하지만, 저는 꼭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건 아니거든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고, 또 새로운 분야로 나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외교 분야에 대한 관심도 있고요. 사실 요즘 고민이 많아요.
김진세_ 그럼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음악을 할 확률은 적어지는 건가요?
이소은_ 사실 음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더 좋아지긴 했어요. 예전처럼 곡을 꽉 채운 앨범으로 내지 않고 싱글로 활동하거나, 온라인 발매를 하는 게 가능해졌잖아요. 여유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음악을 할 생각이 있어요. 왜냐면 음악으로 소통하는 건 무척 소중한 일이거든요.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무대에서 느끼는 열정과 에너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할 거 같아요.
김진세_ 현실적으로 지금 공부하는 중간에는 뭘 하기가 힘들지 않아요?
이소은_ 그렇죠. 1학년 때는 아예 불가능했고, 3학년이 되면 조금 여유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곡은 많이 써놨거든요. 힘드니까 그쪽으로 풀게 되더라고요(웃음). 한국 집에 있던 기타와 키보드도 제가 혼자 사는 작은 원룸으로 옮겨놨어요. 공부하다가 스트레스 받으면 음악으로 푸니까 좋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생산적이기도 하고요.
김진세_ 좋은 예술 작품들은 작가가 힘들 때 나왔잖아요(웃음). 원래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이소은_ 네, 그런 편이에요. 사실 완벽주의자예요. 일단 뭔가 하면 잘해야 해요. 로스쿨 1학년 때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저 스스로를 들들 볶았거든요.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고 나니까 ‘내가 못할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바닥을 쳐보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쉽게 쉽게 잘되는 사람을 보면서 ‘역시 삶은 불공평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공평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거더라고요. 각자 사는 방식도 다르고, 운대도 다른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편해졌어요. 남이 잘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게 됐고요. 그래서 저 지금은 굉장히 좋아요(웃음).
김진세_ 올해 서른인가요?
이소은_ 서른 됐어요. 아아, 어떻게 해(웃음)!
김진세_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아, 이 사람 나이가 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이소은_ (웃음).
스필버그에게 편지를? 겁 없는 아이
김진세_ 로스쿨 공부가 정말 힘들다고 들었는데, 대단해요. 소은씨의 어린 시절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소은씨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이소은_ 겁이 없는 편은 아닌데 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정의를 하자면 그래요.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서 가족이 5년 반 정도 미국에서 살았거든요. 당시 그 도시에서 열리는 공모전이라는 공모전에는 제가 다 응모해봤어요. 그림을 정말 못 그리는데도 유명 마트에서 여는 포스터 공모전에 나가서 칠면조도 타오고요(웃음). 하도 약골이라 엄마가 보낸 스포츠 캠프에서는 자전거를 받을 욕심에 악착같이 운동을 해서 그걸 타오기도 했어요. 한번은 ‘베이비시터스 클럽’이란 걸 만들어서 제법 크게 한 적도 있어요. 한인 타운에 사는 아이들을 많이 돌봤죠.
김진세_ 사업이 된 거네요?
이소은_ 나름 돈도 잘 벌었어요(웃음). 그래서 제 용돈도 하고 언니에게 나눠주기도 했어요. 또 제가 어려서는 배우가 되고 싶었거든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당신은 이곳으로 와서 발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웃음). 굉장히 당돌하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런 대담함과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이소은_ 글쎄요. 저는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친구들에게 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 “우리 부모님들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부모님이 많이 봐주셨구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부모님께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김진세_ 하지 말라고 하는 얘기요?
이소은_ ‘하지 마라. 너는 그거 하면 안 된다. 그거 안 했으면 좋겠다. 넌 안 될 거다’ 이런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무리 어이없는 일을 해도요. 솔직히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베이비시터스 클럽 전단지 뿌리고 다닌다고 하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라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그래? 그럼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물으시고 전단지 붙일 때 필요한 테이프 사다주셨어요. 제게 부모님은 무한 서포터였어요. 그만큼 저를 믿어주셨어요.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을 믿어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김진세_ 지금 무슨 생각을 했기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요?
이소은_ 엄마와 관련된 얘기예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춘기이기도 하고.
김진세_ 한국에 돌아와서 환경도 바뀌었을 때 말이군요?
이소은_ 네,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하면 아이들이 구경 오곤 했거든요.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모든 게 다 어색했죠. 또 영어시간이면 선생님이 저한테 발음을 많이 시키셨는데, 여학생들의 질투가 심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러다가 오늘처럼 우중충하게 비가 막 오던 날이었을 거예요. 전 그냥 교실에 들어갔을 뿐인데, ‘싫은 애 또 왔어’라는 눈초리로 저를 쳐다보는 아이를 보았어요. ‘내가 왜 행복했던 미국 생활을 뒤로하고 친구도 없는 이곳에 와서 이렇게 지내나’ 하는 마음에 유난히 우울하고 힘이 들었어요. 1교시를 마치고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어”라고 했더니 가만히 듣던 엄마가 “그래 소은아, 알았어. 그냥 교실에 들어가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2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저한테 책가방을 싸서 교무실로 오라는 거예요. 거기 엄마가 계셨어요. 선생님은 엄마한테 “그럼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셨고. 영문을 모르는 제게 엄마는 윙크를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강촌 가는 기차를 탔어요. 옥수수와 고구마도 사 먹고, 도시락도 같이 먹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어요. 그 와중에 엄마는 단 한마디도 학교에 대해 묻지 않으셨어요. 왜 조퇴를 시켰는지에 대한 얘기도 않으시고요. 그냥 정말 편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어요. 그날의 여행 덕분에 저는 1년을 버틸 힘을 얻은 듯했어요. ‘나에게는 이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머, 또 눈물 나…. 제가 이래요.
김진세_ 괜찮아요.
이소은_ 그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무척 고마워요. 아빠, 언니한테도 그렇고요. 저는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임은 분명해요.
어머니, 내 인생의 롤모델
김진세_ 어머니께서는 어떤 분이세요?
이소은_ 능력자세요! 영어 유치원 원장도 오래하셨고, 그 전에 신문사에서 글도 쓰셨고, 정말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점은 제가 엄마를 닮았나 봐요.
김진세_ 소은씨한테 영향을 많이 주셨네요. 속이 깊으신 분 같아요.
이소은_ 모든 엄마가 다 그렇다고 하지만, 저와 언니는 “우리 엄마만큼 스페셜한 분은 없다”라고 말해요. 그렇다고 마냥 희생만 하는 분은 아니고, 재미도 있으세요. 제 인생의 롤모델이기도 하고요.
김진세_ 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이소은_ 아, 저희 아빠는(웃음), 같이 나가면 사람들이 제 남자친구로 착각할 정도로 굉장히 다정다감하세요.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무척이나 지극하셔서 지금도 엄마를 바라볼 때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웃음). 정말 사랑이 넘치는 멋진 남자예요.
김진세_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을 하세요?
이소은_ 원래 정치학을 전공하셨어요. 교수 생활 하시다가, 유학 다녀온 뒤에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김진세_ 공부하시는 분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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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_ 자라면서 혼나지는 않았어요?
이소은_ 그런 기억은 정말 없어요. 언니 혼나는 거 본 적은 있는데(웃음). 부모님께서 같은 자식이라도 교육 방식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걸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아셨대요. 언니는 하지 말라고 말을 해야 듣는 스타일이고, 저는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아이라는 걸요. 그래서 저와는 대화를 많이 나누셨어요. “소은아, 엄마 아빠는 네가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라는 어조로 얘기하시면 저는 들었죠.
김진세_ 본인이 뭔가 필요하거나 어필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요?
이소은_ 전 바로 얘기를 해요. 제가 단순한 면이 있어서 느끼면 바로 표가 나고, 또 바로 얘기해요. 반면 제가 되게 예민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안 좋은 배려를 많이 했어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하고 주변을 살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혼자 힘들어한 적도 많았죠. 지금은 많이 극복했어요.
김진세_ 주변의 눈치를 본다고요?
이소은_ ‘내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슬퍼할까?’ 이런 우려 있잖아요. 제가 다섯 살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면서 “엄마 서운하지?”라고 하더래요. 그런 식으로 나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할 것 같으면 제 욕구를 억누르곤 했어요. 그래서 가슴 아픈 것도 많았어요. 예민한 사람들이 그런가 봐요.
김진세_ 살면서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었어요?
이소은_ 나름 겪었어요. 저희 언니를 보면서도 그랬고요.
김진세_ 언니가 왜요?
이소은_ 가족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언니만 미국에 남았었어요. 아트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보딩 스쿨에 남았거든요. 이후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가서 죽 성장하고, 지금도 피아노 공연하면서 모교에서 강의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그렇게 친하던 언니와 갑자기 떨어져야 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더 가슴 아픈 건, 저는 부모님과 같이 있으니까 괜찮지만 언니가 가뜩이나 경쟁이 심한 그 분야에서 혼자서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참 마음이 아팠어요. 또 저희 가족이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 부모님께서는 서슴없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소은아, 네가 잘 적응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어”라고요.
김진세_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건 언제였어요?
이소은_ 저희 가족이 미국에 갈 때도 어려웠어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아버지가 몸담고 계시던 대학교 재단의 비리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어요. 당시 아버지께서는 그 재단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가 불이익을 당하셨대요. 그렇게 학교를 나오신 뒤에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진 걸로 알아요. 그 무렵에 한 이웃분께서 제 생일이라고 초코파이 한 박스와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를 말없이 저희 현관문에 걸어놓고 가셨어요. 엄마는 그걸 보고, 작은 선행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크게 느끼셨대요. 그때는 제 생일이고 뭐고 뭘 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김진세_ 그럼 미국으로 갈 때도 특별한 지원을 받은 게 아니었어요?
이소은_ 네, 굉장히 힘들었어요. 저희는 아버지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피츠버그 인근에 살았는데, 엄마는 친구가 있는 시카고로 돈을 벌기 위해 가시느라 3개월 동안 떨어져 살았던 기억도 나요.
김진세_ 베이비시터스 클럽 만든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군요.
이소은_ (웃음) 그때는 그런 생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제 용돈은 제가 벌었어요. 또 항상 ‘내가 뭘 사달라고 떼쓰면 안 되겠다’라는 건 인식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것도 배려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혹시 소은씨가 가수 활동 시작할 때도 다소 어려울 때였나요?
이소은_ 아주 편할 때는 아니죠. 제가 가수 활동 하는 게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김진세_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소은씨야말로 소위 연예계 대표 ‘엄친딸’이라 불리고, 집안의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이소은_ 그거야 사정을 잘 모르시니까요.
김진세_ 사람들은 결과만 놓고 본단 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엄친아’니 ‘엄친딸’이니 하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보통 ‘엄친딸’이란 똑똑한데다 재주도 많게 태어나고, 게다가 부모까지 잘 만나,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젊은 여성을 뜻하잖아요. 문제는 남과 다른 부모와 배경만이 필수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에요.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어쩌면 일반인들보다 더 힘든 고생을 했을 수도 있는데, 그 엄청난 노력에 대해서는 별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비록 재능이 모자라거나 잘난 부모를 만나지 못했어도, 자신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퇴색되고….
이소은_ 네, 그런 거 같아요.
김진세_ 아까도 얘기가 나왔지만, 언니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소연씨잖아요.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아 보여요.
이소은_ 저희 언니는 일단 순수하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에요. 예술가 특유의 남다른 기질이 있잖아요? 언니도 굉장한 예술가지만, 저에게는 한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에요.
김진세_ 음, 소은씨에게 왜 그럴까요?
이소은_ 모르겠어요. 제 친구들은 “이거 또 언니가 사준 거지?”라고 할 정도로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거의 언니가 챙겨줬어요. 언니는 쇼핑 가서 예쁜 게 있으면 무조건 두 개를 사서 하나는 저를 줬어요. 그래서 저희는 옷도 비슷하고, 신발도 똑같은 게 많아요. 전 다른 자매들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또 저희는 정말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거든요. 지금은 이메일을 주고받지만, 집에 언니랑 제가 나눈 편지가 사과 박스로 한 가득 있어요.
김진세_ 어떤 내용을 그렇게?
이소은_ 제가 고등학교 때 ‘소은아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하고, 아무리 바빠도 아침에 스트레칭은 꼭 해야 하고, 네 건강은 네가 꼭 챙겨야 돼. 다른 사람들이 널 위해 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공부의 끈은 절대 놓으면 안 된다. 공부에는 다 때가 있는 거야’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저보다 더 제 걱정을 하는 사람이에요.
김진세_ 혹시 물어봤어요. 왜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고?
이소은_ 네, 그런데 모르겠대요. 그냥 보면 가슴이 아프고 왠지 더 해주고 싶고 막 걱정되고 그런 마음이래요. 그러면서 ‘엄마가 우리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겠구나’라며 이해가 간다고요. 언니가 굉장히 언니스러워요(웃음).
사랑 듬뿍 받은 에너자이저
김진세_ 워낙 사람을 좋아하죠? 소은씨를 보면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스타일이에요. 무엇이 그렇게 소은씨를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느끼게 할까요?
이소은_ 저의 에너지? 제 별명이 에너자이저(Energizer)거든요. 심지어 한 라디오 PD께서는 제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제가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그 공간이 터질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게 기가 세다는 느낌이 아니라 언제나 즐거워 보인다는 의미로요. 누구나 밝은 면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있잖아요. 저도 그렇지만, 제가 좀 단순한 면이 있어서 그 어두움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힘이 있어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얘기하면 다 풀리고, 쉽게 상대를 이해하죠. 어떻게 보면 기복이 심하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웃음), 저는 좋은 기복인 거 같아요.
김진세_ 가족은 소은씨의 그 어두운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정이 가는 거 아닐까요?
이소은_ 그럴 거예요. 제가 요즘 책을 쓰고 있거든요. 출판사에서 저와 친한 (김)동률 오빠에게 저에 대한 글을 부탁했어요. 그 글을 보면 ‘소은이를 보면 늘 즐겁다. 항상 할 얘기가 많고 항상 도전하고 항상 에너지가 넘친다’고 쓰여 있는데, 그게 제 모습이 맞아요. 저는 그 글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언니에게 보여줬는데 언니는 그 글을 읽고 우리 가족 생각을 했대요. 왜냐면 제가 이렇게 밝아질 수 있도록 저의 어두운 부분을 엄마, 아빠가 치유해준 덕분인 거 같다고요. 그래서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아팠대요. 저도 사실 그 글을 읽으면서 같은 생각을 했거든요.
김진세_ 혹시 어두운 면의 일면을 얘기해줄 수 있어요?
이소은_ 음… 어렸을 때부터 연예활동을 한 게 쉽지만은 않았던 거 같아요. 자아를 알아가는 시기가 고등학교부터 대학 갈 때 즈음이잖아요? 저 나름은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제가 스스로를 알기도 전에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라는 게 생겨버렸잖아요. 그래서 어린 마음에 그 이미지를 따라가야 하나, 혼란도 겪었어요. 요즘 아이돌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때는 다행히 인터넷이 그렇게 발달되지 않아서 악성 댓글 같은 게 줄줄이 달리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음악에 대해서 비판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그냥 너무 어이없는 걸로 날아드는 비난은 굉장히 상처가 됐어요.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http://img.khan.co.kr/lady/201109/20110906145413_4_leeseun4.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
이소은_ ‘재수 없는 게 부모 잘 만나서 영어만 잘하고, 노래도 못하는데 괜히 이승환과 윤상의 백을 업고….’ 그런 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 시기 아이들이 못되려면 되게 못될 수 있잖아요. 저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됐죠.
김진세_ 상처죠.
이소은_ 또 너무 일찍 사회를 경험하다 보니 보기 싫은 면도 보게 됐어요. 이를테면 매니저들이 음반을 홍보하는 그런 과정이요. 저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보이더라고요. 오히려 둔해서 모르고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우리 매니저한테 저 나이도 어린 PD가 예의 없이 굴지? 왜 서로 존중하지 않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음악 하는 선배들과는 잘 지냈는데, 또래 연예인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공통의 관심사가 별로 없고 그 속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무대에 오르는 건 좋아하지만, 연예계라는 그 물에 완전히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김진세_ 그럴 만해요.
이소은_ 3집 앨범을 내고는 소속사도 옮기고, 음악에도 나름 변신을 시도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댄스 신고식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일부러 편집되지 않으려고 카메라 앞에서 엄청 오버를 하기도 했죠. 그런 방송을 앞둔 날이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솔직히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면 음반 판매량은 쫙 올라가요. 그런데 그런 환경에서 정말 스트레스 받고 괴로웠어요. 가수 이소은, 뮤지션 이소은은 좋은데, 연예인 이소은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았죠. 한창 예민할 때 그런 문제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그렇게 치열하게 10대와 20대를 보내면서 이성 교제는 할 수 있었어요?
이소은_ 연애, 했죠(웃음).
김진세_ 제 질문의 의도는, 평범한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행복은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해서요(웃음).
이소은_ 저 CC(캠퍼스 커플)였어요.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오르기도 했고요(웃음). 제가 ‘무한애교심’이 있거든요. 고려대라는 소속 집단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그래서 정말 행복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CC가 됐을까, 싶기도 하지만(웃음).
김진세_ 한창 연예인으로 날리던 때잖아요?
이소은_ 매니저들이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소은아 제발 관리 좀 하자”라고.
김진세_ 기사는 안 났어요?
이소은_ 다행히 안 났어요(웃음).
김진세_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안 하셨어요?
이소은_ 모르셨죠(웃음).
김진세_ 아, 그런 재주가 있었구나(웃음).
이소은_ 저는 인복이 많은 게, 주변 친구들이 다 저를 가수 이소은으로 보지 않았어요. 제가 지금도 대학 선후배들과 무척 잘 지내거든요. 연락도 자주하고요. 친한 선배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소은이는 자기 자신의 평범함을 사랑할 줄 알고 특별함을 내세울 줄 안다’라는 글을 써서 감동받은 적이 있어요. 제 자랑 같지만(웃음), 그 말이 맞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는 무대에 오르거나 내가 특별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특별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평범해도 되는 장소에서는 평범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과 선배와 CC도 되고(웃음), MT도 다 갔고요. 평범함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저는 저의 가수 활동이 제 삶에서 뭔가를 빼앗아가는 느낌은 싫었어요.
김진세_ 아, 좋은 얘기예요.
이소은_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선에서는 뭐든 다 해보자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김진세_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내 인생 최대의 반항이 있었어요?
이소은_ 저는 한 번에 팍 속 썩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은근히 속 썩이는 스타일이에요. 최대의 반항이라면, 제가 대학 때 힙합댄스와 살사에 미친 적이 있어요. 그래서 8주 연속 주말에 홍대 클럽에 가서 밤을 새고 귀가를 했어요. 술도 안 마시고 오로지 춤만 추느라 4kg이 빠졌을 정도예요. 그때 집안이 완전히 뒤집어졌죠.
김진세_ 그때도 부모님은 강제하거나 하진 않으셨어요?
이소은_ 한 번쯤 말씀하셨어요. 근데 사실 제일 무서운 게, 막 혼내는 것보다 엄마의 딱 한마디 “요즘, 정신 못 차려” 하는 말이 어우, 진짜 무서웠어요(웃음).
설렘을 주는 딱 한 가지만 있어도 도전
김진세_ 소은씨, 음악과 공부 모두에 충실할 수 있는 비법이 있어요?
이소은_ 비법이요? 에너자이저 말고 다른 별명이 설렘쟁이예요. 옛날부터 잘 설레요. 저 지금껏 수천 번 무대에 올랐지만, 매번 설레고 좋아요. 제 첫 무대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우림 콘서트 게스트로 나선 자리였는데, 그때의 기분과 지금이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 정말 행복해요. 설레거든요.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얘기하면 웃으실 수 있지만, 법이라는 게 저한테는 낯선 영역이잖아요. 그 낯섦에 대한 설렘이 있었어요. 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공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로펌 실습 중에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김진세_ 설렘을 갖고 해라?
이소은_ 네. 뭘 하든지 거기서 내가 즐길 수 있는 걸 찾으면 되잖아요. 전부가 아니더라도 설렘을 주는 게 한 부분만 있어도 ‘내가 이것 때문에 한다’라고 마음먹고 계속 해왔던 거 같아요.
김진세_ 소은씨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많을 거예요. 물론 소은씨 같은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님도 많을 거고요.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이소은_ 믿어주세요! 어떤 산을 올라간다고 하면, 정해진 길을 잘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잘 헤쳐 나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특히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검증된 길, 남들이 가는 길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들마다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세요. 어린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찾게끔 놔두는 것도 좋고요. 만약 제 부모님께서 저에게 정해진 길을 강요하셨으면 아마 저는 답답해서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제 친구들 중에도 지금 자신의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명문대 나오고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본인이 즐겁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 아이들이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진세_ 어떻게 하면 행복해져요?
이소은_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어요. 제가 요즘 「마더 테레사의 삶 그리고 신념」을 읽고 있어요. 테레사 수녀님께서 인도 캘커타에서 고아의 집을 운영하시는 대목을 읽었는데, 전 그런 감동적인 얘기를 들으면 행복을 느끼는 거 같아요. 또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지금 힘듦은 단지 과정일 뿐이거든요. 그것으로 인해 힘들어하지 말자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힘든 게 없을 때 행복해져요.
김진세_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소은_ 또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행복해지는 거 같아요. 연예인이 더 힘든 이유가 끊임없는 비교에서 오는 열등의식과 피해의식 때문은 아닐까 해요. 저도 그런 시기를 겪었는데, 그걸 딱 끊는 순간 행복해졌어요. 지난달에 BMK 언니 인터뷰 하셨잖아요? 저도 그 언니 되게 좋아하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열심히 한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라고 말하는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것, 이게 다 연결되어 있는 거 같아요.
김진세_ 소은씨가 역대 긍정의 힘 인터뷰이 중 가장 어리다고 했잖아요. 가장 젊은 사람!
이소은_ 기분 좋아요(웃음).
김진세_ 그래서 질문 한 가지가 더 생각났어요. 10년 뒤 이소은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이소은_ 일단 제가 원하는 이상형의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서, 기왕이면 키도 크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서(웃음), 두 딸을 낳고 저만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꿈꾸는 외교 분야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녀 사랑 많이 하고, 남편 사랑 많이 하고, 부모님과도 잘 지내고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음악회 열어서 저만의 공연을 하고 봉사활동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김진세_ 그럼 소은씨, 어떤 남자가 좋아요? 배우자로서.
이소은_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죠. 클리셰 같은 것도 있지만, 끊임없이 같이 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제대로 볼 줄 알았으면요. 그게 경제 동향이나 돈, 직업 같은 게 아니라 사회가 가진 문제를 직시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랄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살고 싶거든요. 그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어요. 초면에 실례지만요, 선배님! 저 소개팅 좀 시켜주세요! 외롭거든요(웃음).
김진세_ 후배님 부탁이니, 찾아볼게요!
김진세의 에필로그 부모님이 주신 가장 큰 긍정의 선물, 방임 혹은 무한 사랑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삶의 불공평함을 인정해야 행복해진다고는 하지만, 좀 억울할 때도 있다. 가수 이소은을 보면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 가수로 데뷔해 인기를 끌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한민국에서 음악깨나 한다는 뮤지션들과 작업을 하는 실력파 가수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소식을 들으니 미국에서도 톱 10에 꼽히는 명문 로스쿨을 다닌단다. 누구는 그중에 하나만이라도 흉내 내기조차 힘든데, 그녀는 다양한 방면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갓 서른밖에 안 된 이 젊은이에게는 어떤 긍정의 힘이 있을까? 긍정의 힘 인터뷰이 중 가장 어린 주인공을 만났다. 역시 거침이 없다. 간혹 거침없음이 도를 지나치면, 건방지다는 말을 듣기 쉽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배려심이 있었기에, 패기가 지나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낯섦이나 거리감을 쉽게 무너뜨리는 친밀함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음에도 법학 공부와 같은 낯선 도전을 겁내지 않았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도 칭찬해줄 만했다. 스스로를 에너자이저라고 부르듯, 그녀는 정열적이다. 쉼 없이 주변 일들에 관심을 갖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 애쓴다. 처음 무대에 오를 때 느꼈던 설렘 또한 원하는 목표에 몰입하게 하는 긍정의 힘이었다. 거침없음, 배려, 친밀함, 용기, 정열, 몰입 등 그녀에게서 찾은 긍정의 힘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하나가 유난히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아직은 미완성인 듯했다. 그 미완의 에너지는 무르익지 않아서 오히려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고, 앞으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예감할 수 있었다. 역시 부모였다. 지난 3년간 만난 많은 인터뷰이들의 ‘긍정의 힘’의 배경에는 많은 경우 부모가 있었다. 이소은의 다양한 힘의 원천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자존감’이라 할 수 있고, 자존감은 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신뢰에서 온다. 거절하거나 금지하지 않는, 비록 뉘앙스가 약간 다르지만 그녀 말을 빌리자면, ‘방임’의 양육방식은 사랑과 신뢰를 의미한다. 자식을 한없이 사랑하고 믿기에, ‘방임’할 수 있었다. 그 방임의 믿음을 기초로 ‘자존감’은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부모의 사랑에서 자식은 친밀함을 배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를 발휘하면 상처가 아닌 애정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체득했기에 거침없이 대할 수 있다. 도전 끝에 비록 실패를 하더라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다. 집안이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서로 믿고 의지하니 일어설 수 있었던 경험 속에서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용기라는 것을 배웠다. 하도 ‘엄친딸, 엄친딸’ 하는 이야기를 들어서, 인터뷰 전에 우려를 했다. 불공평한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며 허탈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아주 좋았고, 또 단순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긍정의 힘이 많고 적음과 상관이 없다는 진리, 그리고 긍정의 힘의 근원에는 언제나 우리의 부모님이 계시다는 사실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긍정이란 나무는 때론 세대를 지나 행복의 열매를 맺기도 한다. |
긍정의 힘을 더하는 선물_「마더 테레사의 삶 그리고 신념」![]()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 이 책은 이타주의를 통해 행복을 실천하는 테레사 수녀님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사진작가인 오키 모리히로가 수녀님 곁에서 찍은 사진을 에세이와 함께 실어서 그 감동이 더합니다. 행복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감사하는 것과 남을 돕는 것이죠. 소은씨가 느낀 행복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봅니다. * 김진세의 인터뷰_ 긍정의 힘 이소은 편을 읽고 애독자 엽서에 소감을 적어 보내주시는 독자 중 10분을 선정해 「마더 테레사의 삶 그리고 신념」(예담)을 보내드립니다. |
◆이소은은…
지금처럼 아이돌 붐이 일지 않았던 1998년, 고등학교 1학년생 신인 가수 이소은은 꾸밈없는 맑은 음색으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 ‘작별’, ‘서방님’, ‘오래오래’, ‘키친’ 등의 대표곡 외에 김동률과 함께 부른 ‘기적’은 커플들이라면 한 번쯤 꼭 불러보는 곡이라 할 만큼 오랜 사랑을 받고 있다. 가수 활동을 병행하며 대입을 준비해 2001년 음악이나 연기 관련 학과가 아닌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해 또 한 번 화제를 뿌렸다. 직접 곡을 쓰며, 뮤지컬에 출연하고 친언니인 피아니스트 이소연과 동반 콘서트를 갖는 등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던 그녀는 단 2년여의 준비 끝에 미국 로스쿨 랭킹 톱 10에 드는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에 합격(코넬대, 조지타운대, 노트르담대 로스쿨도 동시 합격)하며 ‘연예계 대표 엄친딸’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로스쿨 3년 과정을 마치는 내년 5월,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http://img.khan.co.kr/lady/201109/20110906145413_6_leeseun6.jpg)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엄’마랑 ‘친’한 ‘딸’, 이소은의 성장 에너지
여자보다 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여성 심리 전문가로 유명한 정신과 전문의. 고려제일정신과에서 일상의 스트레스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으며, ‘행복연구소 소감’을 통해 기업체를 대상으로 임직원의 스트레스 관리와 행복 찾기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행복 멘토’라 불리고 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인 그의 또 다른 재주는 글쓰기. 다년간 여러 매체에 메디컬 칼럼을 써왔으며 노숙자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김진세의 Love Myself’를 연재하고 있다. 「마흔의 심리학」(공저), 역서「뜨겁게 사랑하거나 쿨하게 떠나거나」 외 고민 많은 20대 여성에게 보내는 세심한 위로를 담은 「심리학 초콜릿」, 행복한 시작을 위한 심리학 처방 「스타트 신드롬」, 행복한 삶으로의 변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애티튜드」의 저서가 있다. 트위터 @happy_mentor
■기획·진행 / 장회정 기자 ■사진 / 이주석 ■장소 협찬 / 호텔 프리마(02-6006-9114) ■헤어·메이크업 / 이희 헤어·메크업(02-3446-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