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욱과의 인터뷰가 잡혔다는 소식에 주변 사람들 모두가 부러워했다. 그러고는 사진 대신 ‘촤하하아’를 녹음해올 것을 부탁했다. 숨어 있던 ‘고영욱 지지자’가 이토록 많았던가. 쑥스러운 듯 굴면서 점잖게 할 말은 다 던지는 걸 보니 역시 팬들도 그를 닮았나 보다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부침을 겪는 예능계에서, 요즘 이 남자는 알게 모르게 ‘대세’가 되어 있었다. 과감한 카리스마를, 번뜩이는 순발력을, 능청스러운 친화력을,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만의 스타일로 치열하고 독한 예능 세계를 조금씩 개척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 남자 자꾸 보면 볼수록, 정말 ‘재미’있다.

낯가림 심한, 그러나 알고 보면 재미있는 남자 고영욱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화제가 된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좌르륵 기사가 쏟아지고 관련 단어가 포털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가히 ‘차기 예능 대세’라 불릴 만하다. 이토록 재미있는 사람이 왜 그동안 방송에 뜸했었는지 모두 궁금해할 정도다.
“아직도 제게 ‘최고의 그룹 룰라’라는 이름을 붙이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지금 같이 방송을 하는 연예인들 중에는 ‘룰라’를 모르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데다 꽤 쉬기도 했죠. 잠깐 ‘신나고’로 활동했다가 또 사무실 문제 등으로 쉬는 바람에 5년 정도는 방송을 거의 안 하고 (이)상민이 형이랑 하는 가게에만 신경썼었죠. 일본식 술집을 했는데 장사는 그때그때 돈이 들어오니까 대충 생활은 되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한테 단체 문자를 보내서 그날 시간 맞는 사람들이랑 만나 즐기는 것, 그게 제 생활이었어요. 계속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낸 거죠.”
종종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앨범이 나온 것도 아닌데 앨범 없이 무슨 방송을 해’라는 안일한 생각에 거절하곤 했었다. 가끔은 한 번 출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지만 소심하고 낯가리는 성격상 망설이다 놓친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그를 찾는 이들도 자연스레 없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데 에너지를 쏟는 것보다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인 방송을 하나라도 더 하는 게 어떻겠느냐’라고요. 저도 그 즈음 장사가 너무 힘들다고 느끼던 차였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고민 끝에 상민이 형한테 아주 어렵게 얘기를 꺼냈어요. 집중해서 방송을 해보고 싶다고요.”
마침 룰라 프로젝트 앨범 활동 직후였던 터라 SBS-TV ‘강심장’을 비롯한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다. 이제껏 방송에서 마음껏 꺼내놓지 못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영욱은 ‘진짜 재미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다만 워낙 숫기가 없고 낯을 가리다 보니 친하지 않거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주눅이 들어서 쉽게 입을 못 떼는 것이 문제였다.

낯가림 심한, 그러나 알고 보면 재미있는 남자 고영욱
다행히도 편안한 분위기의 좋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부담을 덜고 즐길 수 있었던 ‘비틀즈 코드’나 방청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컬투쇼’ 등은 그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키워준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던 것이 유효했던 모양이다.
“방송을 쉬며 가게를 하는 동안 항상 ‘언젠가는’이라는 꿈을 꿨어요. 잘나가는 동료들이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나도 저 자리에 있으면 잘할 수 있을텐데’라고 늘 생각했었죠. 무심한 듯 행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왜 나한테 기회가 오지 않나’ 속상해하기도 하고 ‘나라면 이렇게 말해야지’라고 연습해본 적도 있어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애태우던 시간이 길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꿈꿨던 것들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고 뿌듯해요. 요즘은 좀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요, 많이 흐뭇해요.”
드러내놓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은 욕심이 항상 있었다. 방송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말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요즘은 이런 게 사는 건가 싶단다.
알고 보면 의외로 순정남
방송을 하는 짬짬이 시간이 날 때면 주로 다양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팬들과 트위터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누군가와 어울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것인 만큼,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너무 한쪽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같아 살짝 걱정스럽기도 하다.
“최근 저와 관련된 내용은 온통 (장)윤주씨랑 (김)준희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더군요. 물론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과장이 좀 섞여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주셨으면 해요. 여기저기 ‘집적대는’ 이미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여러 곳에서 저를 마구 활용(?)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앞에서 정색할 수도,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요. 사실 저도 그런 기사나 반응을 보면 상처받아요. 어머니도 많이 속상해하시고요.”
자의든 타의든 방송을 통해 다양한 일화가 공개되면서 ‘잘 노는 남자, 연애 잘할 것 같은 남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졌지만 의외로 그는 그런 쪽에 서툰 편이다. 막상 사랑을 할 때는 숫기 없고 생각 많은 ‘A형’ 특유의 기질이 더욱 앞서곤 한다.
“못 믿겠다고 하시겠지만 지금껏 연애해본 건 두세 번밖에 안 되거든요. 그조차도 너무 서툴러서 금방 헤어졌어요.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만났던 것도 벌써 5, 6년 전이에요. 아마도 지금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또 서투를 것 같아요. 아직은 말이죠.”
비슷한 나이의 동료들이 하나 둘 가정을 꾸리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은근히 결혼 생각이 날 법도 한데, 그는 아직까지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 타인이 정해놓은 인생의 나이에 굳이 맞춰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연예계 대표 ‘애견인’ 답게 개사료 제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키우는 애견들과 촬영에 나섰다.
새로운 도약과 마음 깊이 간직한 꿈
최근 고영욱은 지난 9월 19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MBC-TV 시트콤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의 연습과 촬영에 여념이 없다. 수많은 유명 연기자들이 꿈꾸는 ‘기대작’에 출연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진심으로’ 기쁘고 뿌듯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던 ‘언젠가 꼭 한번 김병욱 감독님 시트콤에 출연하고 싶다’라는 바람이 기적처럼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확정은 아니었고 미팅 겸 오디션을 갖자고 하셨는데 그런 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어요. 현장에 갔더니 이미 5백 명 이상이 왔다 갔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된 연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긴장했겠어요. 떨어진다 하더라도 영광스러운 기회니까 일단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만 했죠. 저는 조금이라도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에 진짜 ‘예능톤’으로 대사를 했는데, 감독님께서 엄청 크게 웃으시고는 ‘그런데 그렇게 연기하면 안 된다’라며 세 번씩 같은 대사를 시키셨어요. 그래서 ‘아, 떨어지겠구나’ 싶어서 그냥 자연스럽게 했더니 ‘백 점’ 이러시는 거예요. 세상이 갑자기 환해지더라고요.”
시작 전부터 워낙 화제를 모은 작품인지라 기쁨과 설렘만큼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다. 다행히 현장 분위기와 배우들 간의 호흡이 좋아 순조롭게 촬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비록 조기 종영의 불운을 겪은 작품이긴 하지만 1990년대 중반에 ‘가문의 영광’이란 시트콤에 출연했던 경험을 살려 현장 적응도 수월하게 끝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이 편하게 배려해주세요. 배울 점도 많고요. 저는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여러모로 미숙해요. 그래도 제작진들이나 출연진 모두 좋은 분들이라 애정이 생겨요. 앞으로 자연스러운 연기, 재미있는 연기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노력해야죠.”
간절하게 원했던 기회가 찾아온 만큼, 지금은 일단 ‘하이킥3’에 모든 걸 걸고 달릴 생각이다. 물론 이제껏 진행해오던 ‘의미 있는’ 일들 또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주에는 유기견 보호 봉사활동을 하러 가요. 원래 동물을 좋아하는데다 ‘동물농장’ 이후로는 ‘애견’ 하면 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고 하셔서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물들을 돕고 보호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해요. 얼마 전부터는 강아지 사료 모델로 나서고 있는데, 판매 수익금의 4%를 유기견 사료 지원 보호시설에 기부하게 돼요. 저와 더불어 연예계 대표 애견인인 이효리씨도 동참하고 있어요. 홈플러스와 익스프레스, 롯데마트, GS마트와 슈퍼마켓에서도 판매되니까 많이들 도와주세요.”
언뜻 조용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과는달리,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는 그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유난스럽지는 않지만 진심을 다하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MBC-TV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만났던 가수들과도 모두 둘도 없이 소중한 인연이 됐다.
“제가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세 가수 모두 정말 좋아하던 가수들이었어요. 사실 좋아하는 가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어쩜 그렇게 신기하게 딱 만날 수 있나 모르겠어요. 제가 댄스 음악을 했지만 정말 ‘토이’의 팬이었고, 그중에서도 (김)연우 형 보컬을 가장 좋아했어요. 다른 방송에서 만났을 때 제가 처음으로 연락처를 물었던 사람이에요. 형이 탈락했을 때 한동안 너무 속이 상해서 내내 우울할 정도였어요. 친구라서 그런지 더 편하고 좋았던 (김)동욱이나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언제나 저를 먼저 챙기는 (김)조한이 형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나는 가수다’에서 고영욱은 ‘가수왕’ 출신 매니저로 주목을 받았다. 온 마음을 다해 열창하는 가수들을 바라보면서 룰라로 무대에 섰던 수많은 날들이 떠오르지는 않았을까.

낯가림 심한, 그러나 알고 보면 재미있는 남자 고영욱
댄스 그룹 ‘룰라’의 랩 담당이었던 고영욱은 사실 ‘가수’의 아우라가 강한 편은 아니다. 음악을 할 때도 뭔가 ‘웃기는’ 듯 보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그다지 음악적 욕심을 키우지 않았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의외로’ 그는 음악에 대해 말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있고 기대감에 가득 차 보였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야기 속에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애정이 담뿍 묻어났다.
“다들 의외라고 하던데 사실 저는 윤상, 유재하, 자화상, 김광진, 토이, 루시드폴의 음악을 좋아해요. 노래방 ‘18번’이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그대 모습’이랑 루시드폴의 ‘고등어’예요. 연우 형 노래는 늘 시도는 하려고 하지만 키가 너무 높아서 못하고요. 주변 반응이요? 목소리는 좋다고 해요(웃음). 저는 주로 담백하고 진솔한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가 당장 그런 음악을 할 수는 없고, 혼자서 이런저런 구상을 많이 해봐요. 기회가 된다면 꼭 제가 좋아하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음악을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때는 조한이 형, 연우 형한테 피처링을 부탁할까 봐요(웃음).”
고영욱은 지나친 욕심 없고 별 계획도 없는 것 같은 무심한 표정을 한 채로 인터뷰 내내 ‘언젠가’, ‘꼭’, ‘열심’, ‘노력’ 등의 단어를 여러 번 쏟아냈다. 연기 이야기에서도, 음악 이야기에서도, 예능 이야기에서도 말이다. 오래 벼려온 듯한 말들을 골라 진중한 눈빛을 빛내면서. ‘의외의’ 반전이 많은 남자 고영욱, 그에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원상희 ■스타일리스트 / 최현주 ■의상협찬 / 지오 송지오(02-516-5611), 미소페·벨그라비아·a dress(02-542-0385), 플랙진(02-540-7817), 더셔츠스튜디오(02-548-3956), 포에버21(02-6928-8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