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을 가진 배우 최송현(29)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키워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의 심장부에 위치한 르완다에 다녀왔다. 흔히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면 내가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마치 ‘연인’처럼 삶의 설렘을 가져다준 소녀와 함께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최송현은 그저 서로를 아끼고 서로의 삶을 진정으로 응원하는 마음을 배웠다. 최송현이 직접 보내온 ‘고마운’ 르완다 봉사활동 이야기를 전한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손을 잡고 걸으며 어디에 가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의 첫 만남. 아이의 이름은 키냐르완다어로 ‘평화’를 뜻하는 단어 ‘마호로’. 평화를 두 눈에 가득 담은 룬다 지역의 열한 살 소녀는 “사랑에 빠진 것 같다”라며 나를 설레게 했다.
내 삶을 설레게 하는 소녀, 마호로
굿네이버스와 함께 떠나게 된 르완다. 떠나기 전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생소해했다. 오로지 미디어를 통해서 보아온 아프리카 대륙. 그 안에 대한민국 면적 1/4 크기의 작은 나라. 1994년 민족 간의 내전으로 수백만의 피와 눈물이 서린 땅에서 나는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소녀 마호로를 만났다.
마호로 가족은 3대째 토기를 만들고 있다. 물레도 없이 돌 받침대를 손으로 돌리며 금세 토기 하나를 완성하는 마호로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지만 더 좋은 토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토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진흙을 캐기 위해 아이는 왕복 네 시간을 걸었다. 열한 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50cm가 넘는 긴 칼과 마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내 손을 꼭 쥐고. 마호로는 평소에 자주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을 경험하면 슬픔과 맞닿아 있지 않은 지점에서도 눈물을 마주한다고 했던가. 마호로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었을 때 어쩐지 나는 그 지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과 먹먹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귀하게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아이에게 부탁해서 휴대폰에 노래를 녹음했다.
먼 거리를 걸어왔지만 마호로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문가처럼 눈을 빛내며 좋은 진흙을 찾아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열한 살 아이가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기엔 다소 깊어 보이는 흙구덩이에도 마호로는 용감하게 뛰어들어서 가지고 온 긴 칼로 토질을 살폈다. 좋은 흙을 발견한 후 마호로는 칼을 이용해서 열심히 흙을 캐기 시작했는데,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땅으로부터 분리된 흙들을 마대에 담아 넣는 것뿐이었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마호로는 “어려운 가정 형편을 나아지게 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고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을 원하는 것은 문명의 이기가 주는 혜택을 많이 받는 나라에서 갖는 희망이라고 생각해버렸던 걸까. 천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예상치 못한 어른의 대답을 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바라보며 내 삶의 터전과는 완전히 다른 대륙, 아프리카에 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모습은 그저 그들에게 어울리는 삶이라고 느껴버렸던 걸까.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그럼에도 ‘이곳은 아프리카 대륙이고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니까’라는 편협한 생각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의 소리를 외면해왔던 것일까. 깊은 산속에서 해가 지는 밤이 되면 전기가 없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삶도, 왕복 네 시간을 걸어 캐온 흙으로 만든 토기 하나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이 고작 2천원 미만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마호로의 여덟 명의 가족이 한 달 동안 4만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긴 일과를 마치고 마호로의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즐겁게 토기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의 찰흙 공예를 떠올리며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 토기는 점점 못난이가 되어갔다. 마호로는 따뜻하게 웃으며 내 토기를 손봐주었고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그릇 두 개를 빚었다. 이미 어둠이 우리 모두를 가려버렸다.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이는 내 손을 씻겨주고 싶다고 했다. 내 손에 물을 부어주고 비누를 묻혀 정성스레 씻겨주었다. 태어나 혼자서 손을 씻을 수 있게 된 후로 누군가가 내 손을 씻겨준 일이 있었던가. 물도 비누도 귀한데 마호로는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내 손을 씻겨주고는 나를 차까지 배웅했다. 차에 타서 한참을 많이도 서럽게 울었다. 갑자기 삶 속에 나타난 낯선 외국인에게 아이가 마음을 준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정해진 시간이 다 되면 곧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라서.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굿네이버스를 통해 한국을 떠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작년 이맘때쯤 나는 인도네시아의 파당 지역에서 세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곱 살 바네사와 여섯 살 난다, 그리고 이제 태어난 지 갓 3개월이 된 아기 다올. 이름이 없었던 아기에게 ‘모든 복이 다 올 것이다’라는 뜻의 한글 이름인 ‘다올’을 선물했었다. 노쇠하신 할머니와 지진, 해일의 피해를 늘 두려워해야 하는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나를 벅차게 하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사실 나는 어린아이들을 유독 예뻐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저 예쁜 아이를 보면 기분이 좋고 부모님이 뿌듯하시겠구나 생각하며 지나치는 정도였는데 이상하게도 다올과 처음 만난 날은 숙소에 돌아와 내내 그 아이가 생각나서 뒤척였다. 빨리 가서 보고 싶고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아이가 내게 처음 안겼을 때 울음을 멈추고, 젖병을 가득 채운 우유를 다 먹는 동안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내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무언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처음 듣는 수업인데도 주눅 들거나 낯설어 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또랑또랑한 눈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소리 내어 외우고 있는 바네사를 보면서 무척 대견하고 고마우면서도 내가 곧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에 목이 메어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 한참을 울었다. 일곱 살 소녀 가장으로 의젓하게 다올을 챙기던 바네사는 나와 지내면서 점점 그 나이 또래의 아이로 변해갔다. 옷도 입혀달라고 하고 신발도 혼자서 신지 않으려 했으며 가방 안에 책도 챙겨달라고 했다. 나는 아이를 한국에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자 답답해져왔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사람들은 때때로 전문 분야가 아님에도 왠지 내가 친근하다 느끼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일에는 과한 욕심을 부리거나 착각을 하기도 한다. 화면에 비쳐지는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늘 접하는 미디어 때문에 종종 나의 직업과 삶이 쉽게 회자되거나 오해를 받을 때 억울해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낯선 땅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을 오랫동안 지키는 방법 역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시작된 이 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알아가는 일반적인 인간관계 이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 매우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만들어가야 하는 만남이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활동기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위대한 변화
바네사, 난다, 다올이 나에게 자식 같았다면 마호로는 연인 같았다. 나는 마호로를 생각하면 마음이 두근거렸고 내가 무언가를 챙겨주고 도와준다는 기분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마호로의 집에 갈 때마다 아이는 저 멀리서 양팔을 벌리고 맨발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내 품에 꼭 안겨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다가 “오늘은 뭘 하고 싶냐”라고 물으면 조금만 더 안아달라고 했다. 통역이 없어도,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마호로가 편하고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분명히 교감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나는 굿네이버스를 통해 마호로와 1:1 결연을 맺어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헤어지던 날, 나는 처음으로 마호로의 굳은 얼굴을 마주했다. 아이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돌아가서도 잊지 않겠다고, 마호로는 웃는 얼굴이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아이를 웃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다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돌려주고 싶은 것들은 나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러나 나는 오늘도 휴대폰에 녹음된 마호로의 노래를 들으며 설렌다. 우리의 만남을 시작으로 내가,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무엇이 진정 세상에 필요한지 관심 갖게 될 것이며 언제나 큰 변화는 작은 관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경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기억하는가이다. 실천은 마음이 불러내는 행동이며 마음은 꽤 많은 순간 기억에 의해 움직인다. 흘러가는 대로 그저 두지 말고 좀 더, 좀 더 노력해서 붙잡고 잊지 않아야 할 기억이 늘어간다. 고마웠어, 마호로. 그리고 르완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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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아이들을 돕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봉사다. 지금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아이가 꿈과 희망을 선물해줄 후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이 창립한 유일한 국제구호개발기구(NGO)인 굿네이버스는 네팔, 방글라데시, 말라위, 인도네시아, 케냐, 차드 등 전 세계 28개국의 빈곤 아동과 가정을 지원한다. 월 3만원의 후원금이면 아동의 기본적인 의식주 지원은 물론, 보건의료와 교육 등의 서비스를 지원해줄 수 있다. 최송현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면 굿네이버스의 문을 두드려보자. 아동과 1:1 결연을 통해 건강한 성장을 돕고 꿈과 희망을 선물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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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이연우 기자 ■글 / 최송현 ■사진 제공 / 굿네이버스(작가 김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