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철민이 내 인생에 훅 들어왔다. 그 역할을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고, 촬영하고 그리고 촬영이 끝나 철민이 관객을 만나는 순간까지 나에게 철민은 사랑의 대상이고, 고통의 대상이며 소지섭 그 자체였다.
첫 도전한 멜로 영화로 나는 ‘연기’라는 것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정말 잘하고 싶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촬영 막바지가 되면서는 스트레스가 심해지기도 했다. 내가 연기를 잘하고 있는 건지, 기교만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남들은 다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만큼은 속일 수가 없다. 당분간 멜로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인스턴트 사회에 물들어가고 있던 소지섭에게 철민을 만나게 함으로써 ‘사랑’이 무엇인지 기억하게 해주었다. 사랑은 아름다운 모습 이면에 배려, 희생, 고통이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점점 불가능한 나이가 되어가면서 ‘사랑’을 잃고 살던 나에게, 장철민은 영화를 통해서나마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긴 시간, 철저한 준비,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참여한 다양한 작업,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어 한 편의 영화가 탄생한다. 그래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저 영화를 스크린에서 두 시간 만에 보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섭섭하다.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내용에 따라 웃고 울겠지만 영화를 만든, 영화에 참여한 배우나 스태프들은 일반 관객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겨우 한 시간 반, 두 시간 만에 다 표현될 수 있을까….
처음 영화를 보던 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기자 시사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훌쩍였다. 채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서인지 기자회견을 어떻게 마치고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를 다시 봐도, 또 다시 봐도 눈물이 난다. 매번 같은 장면에서 우는 건 아니다. 관객들이 모두 웃는 장면에서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제 보내야 하는데 떠나보내기 싫다. 철민아, 가지 마…. 네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낼 수 있게,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어….
Story #2 작품을 결정하고 나서 새벽에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다.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그저 잘 보살펴주시라는 것밖에는…. 처음 ‘오직 그대만’의 시나리오를 받은 건 2009년 9월이다. 그때 왜 시나리오를 거절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오직 그대만’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3일, 딱 3일이었다. 내가 철민이가 되기로 마음먹는 데 걸린 시간은.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소속사 식구들이 영화 크랭크인을 축하한다며 사준 옷. ‘오직 그대만 철민’이라고 박아달라고 했다. 내가 진짜 현장에 입고 갈 거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매일 입고 갈 거니까! 난 철민이니까.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철민은 정화와 사랑하게 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체육관으로 찾아간다. 운동을 시작하고,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철민. 촬영을 하는 건지 운동을 하는 건지….

영화 거의 맨 앞에 들어가는 신.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좀 몰렸는데, 연출부에서는 자동으로 보조 출연이 많아진다며 좋아한다. 얼떨결에 영화에 출연하고도 아직 모르고 계시는 삼성동 주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정화의 집 베란다 배수구로 물이 내려가지 않자 철민이 배수구 뚜껑을 열고 손을 집어넣어서 막혀 있던 무언가를 빼내는 장면. 사실 감독님은 배수구에 막혀 있던 것을 ‘곰돌이 귀가 달린 팬티’로 하자고 했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다들 “취향 특이하네”라며 한마디씩 했다. “20대 후반 여자가 그런 속옷을 입나? 감독님의 저 확신은 뭘까? 솔직히 말해보세요. 감독님 경험담이죠?” 역시 그랬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인정했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곰돌이 팬티가 아닌 다람쥐 팬티로 변경됐다.

아…. 연애를 하면 이렇겠구나 싶었다.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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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철민이 체육관에서 운동 중 오열하며 샌드백을 친다. 이번 영화에서 철민의 첫 감정신이었다. 컷 소리가 나고도 북받친 울음이 그치지 않아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감독님이 조용히 오셔서 등에 손을 얹어주셨다.
촬영을 하다 보면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는데, 맞았을 때는 아파도 발 뻗고 잘 수 있지만 때리는 신을 찍었을 때는 사실 마음이 아주 무겁다. 여러 번 때리지 않으려고 한 번에 시도하다가 너무 과하게 액션이 나오기도 하고, 긴장해서 실수를 하기도 하고….
촬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온몸은 만신창이. 발이 다 붓고 까져서 운동화를 다시 신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체력이 이틀 만에 바닥으로 떨어진 건 처음이었다. 여태까지 인조인간 철민이라고 부르던 감독님이 별명을 바꿔주셨다. “야, 철민이도 방전이 되는구나. 이제 방전 철민이다. 얘들아, 휴대폰 충전기 어딨니? 철민이 충전 좀 시켜줘라.”
To. 소지섭 처음 소지섭을 만나기 전, 나의 상상 속의 소지섭은 장철민이 가지고 있는 묵직함, 한 여자를 위해 희생하고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을 것 같은 남자였어요. 실제 지섭씨를 처음 만나보니 생각보다 피부가 하얗고 너무 댄디하고 세련된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처음 질문이 “감독님, 현장에서 욕 잘하세요?”라고 묻는 거예요. 무슨 사연이 있나? 생각했죠. 알고 보니 욕하는 사람, 특히 현장에서 욕하는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 멜로 영화에 첫 도전한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 못다 한 이야기 지섭씨는 꿈과 열정이 많은 사람이더군요. 특히 안정된 연기를 보였는데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죠. 그 에너지를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안으로 딱 쥐고 있는 힘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별명을 많이 지어줬는데 ‘냄새 철민’, ‘땀 철민’, ‘인조인간 철민’, 마지막 격투기신 촬영 후 ‘방전 철민’이 되었죠. 현장에서 지섭씨는 개구쟁이 본능이 있어요. 가위바위보도 아주 잘하죠. 절대 지지 않아요. 진 사람이 커피 사기 내기를 하곤 했는데, 커피 사고 싶어서 일부러 졌다고 하는 거예요.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가위바위보를 잘했어요. 나는 그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서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바람이라면 본인이 힘든 일이나 기쁜 일을 가까운 사람들과 좀 더 나누면 좋겠어요. 고통도 기쁨도…. 그럼 웃을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프로로서의 완벽함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예요. 우리 영화는 지섭씨의 헌신 덕분에 무사히 잘 끝났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기 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정한 자유는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만요. 인생에 아주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즐겁게 ‘인간 소지섭’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태국 촬영 중 아주 잠깐 “아, 내가 이런 호사를 다 누리네”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정말 아주 잠깐의 휴식일 뿐이었는데 무척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 순간을 조금씩이라도 늘려서 하루에 한 번이라도 마음이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파이팅! From. 송일곤 감독 |
■정리 / 윤현진 기자 ■글 / 소지섭 ■사진 제공 / 51K 참고 서적 「소지섭의 오직 그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