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원이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국내외 선교활동에 힘쓰며 신학 공부에 매진했던 그는 지난해 11월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작은 개척교회를 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기 개그맨에서 영화제작자로, 그리고 이제는 스무 명 남짓한 교인들을 이끄는 담임목사로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기까지는 아내 서정희의 역할이 가장 컸다. 뜨거운 신앙심으로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이제야 비로소 참된 행복을 찾은 서세원·서정희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한 서세원과 아내 서정희 직접 만났다
지난 2월 초, 서세원(56)이 목사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잘 알려졌던 그는 미국의 한 신학 교육기관에서 정규 과정을 수료하고 심사 과정을 거친 뒤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목회자로 변신한 서세원과 몇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고, 대신 아내 서정희(52)를 설득한 끝에 청담동에 자리한 그의 개척교회로 찾아갈 수 있었다.
일요일 오후, 예배를 앞두고 서세원은 교회 앞에서 교인들에게 일일이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환한 얼굴빛에서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진 듯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작고 아담한 예배당 안에서는 그의 아내 서정희를 비롯한 20여 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곳곳에 서정희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는데, 자녀들이 집에서 쓰던 책상과 책장, 남편의 사무실에 있던 수납함 등을 하나하나 재활용해 ‘서정희표 스타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윽고 서세원이 인도하는 예배가 시작됐다. 그의 힘 있는 설교는 진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며 좌중을 압도했다. 틈틈이 신앙심이 약했던 시절 자신의 경험담부터 목회자의 길에 첫발을 내딛고 ‘믿음의 증인’이 되기까지의 삶을 고백하는 모습은 그가 종교를 통해 다시 태어났음을 확인하게 했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예배가 끝난 뒤 서세원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다음에 또 보자”라며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과거 방송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정말 목사가 되어 있었다.
가정이 먼저 회복되면 믿음의 문 열린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곳에서 다시 아내 서정희를 만났다. 두 달째 대상포진을 앓고 있다는 그녀는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고왔다. 평소 꼼꼼한 성격에 자기가 맡은 일만큼은 완벽하게 마무리할 정도로 철두철미하다는 서정희는 직접 꽃을 사 와서 예배당을 장식하고, 교회 청소부터 주보를 만드는 일까지 일일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를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죠. 선교활동을 다니고 그 와중에 교회까지 챙기려니 면역력이 떨어지고 체력이 바닥난 것 같아요. 그래서 대상포진에 걸렸나 봐요. 게다가 벌써 나이가 쉰을 넘기다 보니 갱년기 증상도 있고요.”
사실 그녀는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세상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 같지 않아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저는 뭘 하든지 좋게 해석되지 않고 나쁘게만 매도되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마음이 무척 아파요. 때로는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고 제 마음을 표현하고도 싶은데 하나님은 제가 그냥 침묵하기를 원하시는 듯해요. 그래서 그냥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할 뿐이에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그거니까요.”
세상이 등을 돌릴수록 서정희는 신학 공부에 매달렸다. 서세원을 교회로 이끈 이도 바로 그녀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교회를 왜 다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새벽기도에 나가려다가 남편이 ‘들어와서 자’라고 하면 그냥 들어와서 잤어요.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면 혼자 울면서 기도했고요. 남편이 촬영하러 나간 틈을 타서 몰래 교회에 간 적도 있어요.”
대신 그녀는 서세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일상을 남편에게 맞췄다.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가정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참고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남편도 언젠가는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남편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함께했어요. 언제나 남편을 존경했고, 사랑했고, 견뎠고, 기다렸고요. 그러다 보니 제 마음을 알아주면서 조금씩 변하더라고요. 아이 다루듯 달래면서 같이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죠. 남편이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요즘 주위를 보면 힘들다고 헤어지는 부부들이 많은데 저희에게는 전혀 그런 게 안 통했던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선택한 길
서세원은 서정희의 살뜰한 내조를 받으며 안수집사와 전도사로 차근차근 교회 직분을 수행해나가면서 신앙심을 키웠다. 국내를 비롯한 해외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사 안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희 부부가 간증만 하기를 원하더라고요. 뭘 그리 대단하게 살아왔다고요.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쌓지도 못했는데 말이죠. 저와 남편은 간증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또 선교활동을 다니다 보니 전도사라는 직분만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저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이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하고, 세례와 축도를 하고 싶은데 그건 목사만의 권한이거든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남편에게 목사 안수를 받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녀는 인터뷰 도중 남편과 신학교를 다니며 매일 작성했던 묵상 노트들을 꺼내 와서 보여주기도 했다. 손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노트 안에는 그동안 그녀가 성경을 읽고 기도에 매달리며 보내온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목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한 서세원과 아내 서정희 직접 만났다
서정희는 서세원과 함께 꾸려 나갈 개척교회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규모로 작지만 알차게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가정교회’의 틀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 모으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다치고 무너진 영혼들을 일대일로 만나 그들을 치유시킨 뒤 다른 교회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으로 믿음의 일꾼들을 양육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내 교회’를 운운하면서 부흥에만 목적을 두고 싶지 않아요. 세계 어디든지 하나님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서 기도하며 돕고 싶어요. 그게 저희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요.”
교회는 철저히 서세원·서정희 부부의 자비로만 운영된다. 감사헌금 외에는 십일조도 절대 받지 않는다. 특히 감사헌금이 10만원을 넘길 때는 반드시 확인을 거친다. 교인들로부터 무리하게 헌금을 걷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에 자주 식사를 대접해서 ‘밥 사주는 목사’로 통하게 됐다고 한다.
“1월 1일에는 새해를 맞이한 기념으로 교인들에게 세뱃돈을 나눠드렸어요. 외부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갔을 때인데, 사례비를 받기는커녕 만원짜리를 봉투에 넣어서 30여 명의 학생들에게 전달했죠. 그들이 기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모습을 보니까 정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해마다 이런 이벤트를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쉽게 풀리지 않는 세상의 오해, 답답했던 시간들
서세원과 서정희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금전적으로 그리 풍족하지 못하다. 한때는 연예계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서세원이 여러 사건사고에 휘말리면서부터는 제대로 돈을 벌 수 없었다. 영화 제작자로 이따금 활동하기는 했지만 겨우 적자를 면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신앙생활에만 매달리면서부터는 물질로부터 조금씩 더 멀어지게 됐다.
“저희는 절대로 돈을 벌려고 이 길을 가는 게 아니에요. 간혹 저희 부부더러 인기가 떨어지고 돈이 필요하니까 생활비를 구하려고 간증 예배를 다니는 게 아니냐고 왜곡해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서 참 속상해요. 저랑 남편이 그동안 300번 이상 국내외 간증 예배에 다녔지만 해당 교회로부터 돈을 받은 적은 네다섯 번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어요. 돈을 받았던 경우에는 한 교회에서 열 번 이상 참석해줄 것을 부탁할 때 다른 부분들과 연계된 게 있어서 선교활동에 쓰고자 그랬던 거고요. 그런데 저희가 돈 때문에 그렇게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억울하죠….”
그녀는 목이 멘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왜 우리 부부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비난을 들어야만 하느냐”라며 고개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잠시 후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솔직히 저희는 교통비는 물론이고 교회 관계자분들 식사까지 사드리고 돌아오면 굉장히 적자예요. 대부분 형편이 어렵고 교인 수가 100명 이하인 작은 교회들을 찾아가고요. 저희는 이렇게 나누면서 살고 있는데 세상으로부터는 칭찬을 받지 못하네요.”
서정희는 ‘쉬 이즈 앳 홈’ 쇼핑몰 사업과 관련해서도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교회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돈을 벌고자 시작했던 일인데, 폭리를 취한다는 여론의 따가운 뭇매를 맞으며 오픈한 지 이틀 만에 물건을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고 한다.
“비슷하게 생긴 물건이라도 잘 살펴보면 소재가 다르고 내부 구성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똑같이 생긴 게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매도당했어요. 게다가 수입업체들이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을 그들과 협의하에 쇼핑몰에서 다시 팔았을 뿐 제 마음대로 가격을 정한 적이 없어요. 제가 물건을 들여오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사람들의 오해가 점점 깊어지더라고요.”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돈을 버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크다. 얼마 전에도 몇 곳으로부터 큰 사업 제의를 받았지만 선뜻 계약하지 못했다.
“마음이 아파요. 자꾸 나쁘게만 보시니까 속상하고요. 자신감도 많이 잃었어요…. 저희가 잘못을 했으니까 어려움이 생긴 것이겠지만 그래도 저희 부부에게는 억울한 부분이 많은 편이에요. 31년 동안 결혼생활을 해오면서 아이들 잘 키웠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과 잘 견뎌왔거든요. 그런데 다른 분들에게는 쉽게 허용되는 것조차 저희 부부는 못 받아들여주시는 부분들이 속상해요. 그래도 원망하지는 않아요. 저희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 테니까요. 다만 이제는 저희 때문에 교인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그게 더 염려돼요.”
그 사이 경제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여유롭던 시절 갖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 팔면서 채웠다고 한다.
목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한 서세원과 아내 서정희 직접 만났다
2년 전 여섯 살 연상의 재미교포 벤처사업가와 결혼식을 올린 뒤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딸 서동주는 서세원과 서정희 부부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어준다고 한다. 해외 선교활동을 다닐 때 비행기 표와 호텔을 마련해주는 이도 딸이었다.
“딸이 저희의 유일한 스폰서예요. 언젠가는 베이징 사진전에 출품했다가 10인 안에 뽑혀 상금을 받았다면서 돈을 부쳐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그때 제가 경제적 도움이 절실하던 상황이었거든요. 어떻게 제 마음을 알았는지 적시에 해결해줬죠. 동주는 남편을 따라 프라하, 중국을 거쳐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그 아이 덕분에 저랑 남편이 해외 선교활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그녀도 평범한 여자다
기도에만 매달리며 이겨낸 시간들이 이제는 값진 기쁨으로 되돌아왔다는 서정희. 그 사이 그녀는 어느덧 50대에 접어들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동안’이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저도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늙어갈 뿐이에요. 보름에 한 번씩 흰머리를 염색하고, 돋보기 안 쓰면 책을 못 봐요. 물론 여자로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끔 피부과를 다니기는 하지만 억지로 어려지려고 얼굴에 주사를 맞는다거나 그런 건 절대 하지 않아요. 외모에 크게 비중을 두고 꾸준히 투자를 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오로지 교회활동에만 매달린 채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전도 및 사역활동을 하는 게 그녀의 삶 전체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때로는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잠깐의 일탈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일탈이 그리 대단하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딸이 비행기표를 보내주면 미국으로 가서 쇼핑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찾아 먹으면서 푹 쉬다가 오는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
서정희는 인터뷰를 마치며 둘째 아들 미로(본명 서동천)군이 3월 2일자로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기존에 다니던 성균관대학교를 자퇴하고 새로운 꿈을 위해 다시 대학 입학을 준비해온 결과라고 한다. 게다가 아들의 대학 등록금은 큰딸이 대신 내주었다고 하니 가족 간의 사랑이 참 대단해 보였다.
“선입견을 내려놓고 저를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2004년에 자궁 수술을 받아 자궁을 적출한데다가 2006년에는 가슴의 종양을 제거하는 등 여자로서도 힘든 세월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꿋꿋하게 버텨냈어요. 물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요. 이런 저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아름답게 쓰이기를 원하고요.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는 통로가 되고 싶어요.”
교회에서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서정희의 두 손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왜소한 체구에 작은 손으로 가족을 지켜내며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견뎌냈다고 생각하니 참 대단해 보였다. 하루하루 온 진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서정희의 간절한 기도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움직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 / 윤현진 기자 ■사진제공 / 경향신문 포토뱅크, 서정희